지금 왜 다빈치인가
예술·과학·인문학 교차점에서
창조적 천재들 정점에 오른 인물
초인적 정신의 천재는 아니다
다빈치 또 나오려면
한 분야 전문가 돼야 한다지만
잡스처럼 미의 중요성 깨닫고
테크놀로지에 창조성 연결해야
그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을 그린 이다(‘모나리자’). 어쩌면 두 번째로 유명한 그림(‘최후의 만찬’)도였다. 그는 해부학·광학·지질학·식물학·수리학 등을 넘나들며 당대의 광범위한 지식을 쌓았다. 7200쪽이 넘는 분량의 노트가 현존하는데 그중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드로잉도 포함됐다(‘비트루비우스 인간’).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다. 오는 5월 2일은 그가 숨진 지 500주기이다. 이에 맞춰 세계 곳곳에서 전시가 열리고 출판이 이어지고 있다. 르네상스적 인간이라고 하면 그를 떠올릴 정도로, 500년 후에도 그는 여전히 영감을 주는 인물로 남아있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영웅으로 꼽았고, 빌 게이츠는 그의 72쪽 분량 노트를 사는데 3080만 달러를 들였다(‘코덱스 레스터’). 왜일까. 근래 다빈치 관련 저작을 낸 세계적 학자와 작가와 연쇄 인터뷰를 두 차례 걸쳐 게재한다.

월터 아이작슨
아이작슨은 e메일 인터뷰에서 호기심을 강조했다. 그는 “다빈치의 호기심은 인간적인 것”이라며 “이는 우리도 열망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질의 :전기를 쓰는 일로부터 물러나고 싶다고 했는데 500년 전 인물인 다빈치에 관해 썼다.
- 응답 :“다빈치는 내가 그간 써왔던, 예술과 과학, 인문학이 교차하는 곳에 선 창조적 천재들의 정점에 있다. 그는 알 수 있을 법한 모든 것을 배우는 데 흥미를 느꼈다. 모든 분야를 이해하려는 열망은 창조를 가로지르는 패턴을 볼 수 있게 도왔다. 이는 예술과 해부학, 수학을 통해 자연에 깊숙이 내재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했다. 내가 그에 관해 쓴 건 이런 호기심을 기리고 독자들에게 이를 장려하기 위해서다.”
잡스는 애플 신제품 공개 행사를 할 때 ‘LIBERAL ARTS(교양 학문)’와 ‘TECHNOLOGY(기술)’란 표지판이 교차하는 장면을 배경으로 삼곤 한 데 대해 “창의성이 발생하는 건 교차점이다. 다빈치는 그것의 궁극(ultimate)이었던 인물”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https://pds.joins.com/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1902/16/0c14a71e-c3ed-45fb-bb2f-b45ab67b7ef6.jpg)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 질의 :다빈치를 일종의 사회 부적응자라고 봤고 그의 천재성은 인간적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 응답 :“그는 왼손잡이였고 동성애자이자 채식주의자였고 사생아였으며 (다른 일에) 주의를 빼앗기곤 했다. 또 국외자로서 세상을 봤다. 하지만 그는 피렌체에서도 밀라노에서도 사랑을 받았다. 이는 관용의 가치를 보여준다. 수학이나 과학 이론에서 그는 초인간적 정신의 천재는 아니었다. 그는 매우 호기심이 강했고 관찰력이 있었다. 그런 건 우리가 되고자 열망할 수 있는 것들이다.”
- 질의 :호기심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한다.
- 응답 :“우리 모두 어린이일 때 모두 호기심으로 가득하다. 왜 하늘은 파랗지, 연못엔 왜 물결이 일까 물었다. 나이 들면서 관찰하길 그만둔다. 장성한 사람들이라면 어리석다고 할 만한 질문들을 더는 하지 않는다. 레오나르도의 위대한 재능은 어린아이와 같은 궁금증, 호기심, 그리고 관찰력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https://pds.joins.com/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1902/16/345a497d-d8ab-46ce-a44b-152580cfbaf1.jpg)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 질의 :오늘날엔 다빈치와 같은 르네상스적 인간이 되기 불가능한 게 아닌가.
- 응답 :“우린 ‘사일로(분야·부문·전공 등 구획)’에 들어가는 경향이 있다.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돼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들은 공학 못지않게 미(美)도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미래엔 테크놀로지에 창조성을 연결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가장 성공적일 것이다.”
- 질의 :그간 여러 명의 전기를 썼다. 이 중 누가 당신을 가장 바꿔놓았는가.
- 응답 :“레오나르도다. 매일 매 순간 우리 세계 일상의 경이에 대해 관찰하고 질문을 던지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다.”
고정애 기자 ockham@joongang.co.kr
염정아 “날 건드리면 확 물어버리겠단 걸 보여주려 했죠” 김서형 “카리스마 넘치는 김주영 매력에 푹 빠져 살았죠”
- 기자
유주현 기자
‘돼지 엄마’ 역할 염정아
비뚤어졌지만 모성이 최고의 무기
‘아갈머리’ 대사 혼자 많이 연습
얼굴에 메이플시럽 뿌리는 센 모습
나도 모르게 어딘가 잠재돼 있더라
캐릭터와 달리 실제론 털털한 성격
‘입시 코디’ 역할 김서형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김주영
내면의 심리 표현하느라 힘들어
실제로 난 내성적이고 겁도 많아
카리스마 이미지 굳어졌다고?
캔디역도 맡으면 잘할 수 있을 것
중년 여배우들의 화려한 귀환
![[사진 아티스트 컴퍼니]](https://pds.joins.com/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1902/16/586b8988-2043-45a6-831f-f29f2abcc725.jpg)
[사진 아티스트 컴퍼니]
- 질의 :배우 인생에서 가장 핫한 순간을 맞았으니 다음 행보가 부담스럽겠는데요.
- 응답 :염정아: 부담은 없어요. 다음 작품도 이전과 똑같은 기준으로 제가 하고 싶은 걸 선택하겠죠. 다만 들어오는 작품수가 좀 더 많아져서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게 진짜 좋은 일 아닐까요. 우리 또래가 모여 같이 만든다는 자체로 의미가 있었거든요. ‘우리가 잘하면 또 이런 작품을 만들거야’라면서 파이팅했는데, 잘돼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김서형: 아무래도 부담이 되죠. 저에 대해 다른 기대치들이 생긴 것 같아서요. 지금까지도 열심히 했는데, 다음 행보는 어떻게 더 잘 해내야 될까 싶고. 사실 저희도 방송 모니터하고 깜짝 놀랐을 정도로 스태프들이 잘 찍어주신 덕분에 돋보인 거라서요. 기분 좋은 부담감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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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정아
- 질의 :악역에 가까운 캐릭터지만 자기 배역이니 연민을 갖고 합리화했겠죠.
- 응답 :염: 한서진에게 안쓰럽단 생각이 많았어요. 최대한 인간적인 면을 끌어내려 했죠. 평상시에 늘 가면을 쓰고 있지만 이면의 ‘곽미향스러움’이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겠다 싶어서, ‘나를 건드리는 것들은 확 물어버릴 수 있는 여자라는 걸 거침없이 보여주겠다’ 생각했어요. 모성도 최고의 무기였죠. 비뚤어진 모성이긴 하지만, 왜 그러는지는 누구나 공감했을 테니까요.
김: 김주영은 수단 방법 안 가리는 여자거든요. 결국 살인을 했으니 합리화할 순 없어요. 엄마에 대한 연민은 있었죠. 김주영 또한 한서진처럼 자기 욕심을 아이에게 투영한 엄마니까. 다만 이 여자가 어떤 집에서 태어나 어떻게 살았길래 이럴까, 남편을 죽인 심정은 또 어떨까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펴야 하는 게 고통스러웠어요.
- 질의 :한서진과 김주영 모두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배우라는 가면 뒤에 인간 염정아와 김서형도 궁금합니다.
- 응답 :염: 저는 일터를 떠나면 평범한 주부예요. 직업이 배우라고 특별할 건 없죠. 한서진보다는 영화 ‘완벽한 타인’의 수현과 더 가깝달까. 한서진은 심지어 요리도 잘하고 완벽하게 모든 걸 다 해내는 여자인데, 저는 그렇지 못하고 좀 어리숙한 면도 있죠. 낯을 가리는 성격이다 보니 다소 차가워 보인다는 소리도 듣는데, 그래도 동네 엄마들 모임은 꼭 가서 편하게 행동하려 해요. 엄마들은 오히려 ‘저 언니가 TV 나오는 게 너무 신기하다’고 하죠.
김: 전 묵묵히 내 일 하는 스타일이에요. 주어진 걸 잘 해내려고 하죠. 카리스마 있는 역할을 많이 했지만 사실 내성적이고 겁도 많아요. 여리기 때문에 다치지 않으려고 많이 웃어도 보고 강해 보이려고도 하죠. 영화 ‘봄’의 캐릭터가 잘 맞았어요. 내가 이렇게 정적인데도 자유롭고 강하고, 외향적인 면도 있구나 느꼈거든요.
‘스카이캐슬’은 두 ‘쎈 언니’의 강한 면모를 드러내는 명대사의 향연이었다. 한서진의 본성을 드러낸 충격적인 대사 “아갈머리를 확 찢어버릴라”와 김주영이 사극체로 속삭이는 “전적으로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감수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등은 수많은 패러디를 낳았다. “다른 장면들은 연습 때 감정을 써버리면 안되니 말만 입에 붙여놓는 편인데, ‘아갈머리’는 여러 가지로 해보면서 제일 편하게 할 수 있는 톤을 열심히 찾았어요. 인간적인 면을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대사잖아요.”(염) “첫 대본에서 현대물과 좀 안 맞는 단어들이 나와 그 표현이 숙제였어요. 전에 ‘기황후’의 황태후를 할 때 위엄 있고 누르면서 연기한 기억을 살려 준비했죠.”(김)
두 사람 모두 미스코리아 출신
![[신인섭 기자]](https://pds.joins.com/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1902/16/2a578d82-9630-412f-bbf0-5a3f01a7c001.jpg)
[신인섭 기자]
- 질의 :카리스마 넘치는 ‘걸크러시’로 사랑받았는데, ‘쎈 연기’의 비결이라면.
- 응답 :염: 저는 그저 털털한 정도인데, 그런 연기를 계속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같아요. 내가 불편하면 보는 사람이 더 불편하다는 생각에 뭘 억지로 만들려 하지는 않거든요. 어차피 내 안에 있는 모습에서 끌어내는 정도죠. 아무렇지 않게 사람 얼굴에 메이플시럽을 뿌릴 수 있는 쎈 모습이 저도 모르게 잠재되어 있더라구요.(웃음)
김: 배우가 자기 성격으로 모든 캐릭터를 할 수 없으니 팔색조가 되어야 하는 거겠죠. 배우 김서형은 그동안 습득한 캐릭터로 성장해온 부분이 커요. 사회생활을 통해 알게 되는 것보다 캐릭터를 통해 인생 공부를 한 부분이 많거든요. 드라마가 끝나도 제가 연기한 사람에 대해 고민하면서 시간을 보내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것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SKY캐슬’은 여운이 긴 드라마
- 질의 :이 정도 몰입도의 드라마라면 캐릭터에서 잘 못 빠져 나올 것 같은데.
- 응답 :염: 저는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스타일인데, 이 드라마는 여운이 오래가네요. 하지만 제게 캐릭터는 제 삶에 뭔가를 더하는 것도 빼는 것도 아닌, 완전히 다른 것이죠. 전에는 역할에 잘 들어가질 못해서 슬픈 장면에선 실제 슬펐던 일을 떠올리기도 했는데, 이제 연기에 노하우가 좀 생겼달까. 세월이 흘렀고 경험이 많아졌으니까요. 사실 지금도 겁나긴 해요. 중요한 씬 앞두고는 고민도 많이 하고 예민해지죠. 담담한 척 하는 거예요.
김: 저는 연기와 나 자신이 딱 분리되지 않는 스타일이에요. 흡수되려고 노력하거나 어느새 흡수가 되어 있거나죠. 김주영이 악역인 걸 떠나 그 카리스마나 매력은 공부가 됐어요. 김주영뿐 아니라 과거의 모든 캐릭터가 제게 쌓여서 김주영을 풍부하게 그릴 수 있었구요. 다만 힘들었던 건 방송을 보면 나 자신이 없고 김주영만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런데도 내 스스로 김주영을 이해할 수 없는 지점들 때문이었어요.

김서형
“작년에 4작품을 했어요. 드라마 3편과 영화 1편인데, 그 전 해는 칸 영화제 갔다와서 1년을 쉬었거든요. 쉬고 싶어서 쉰 게 아니라 마땅히 할 게 없었던 건데, 그래서 작년에 어떻게든 일을 하려고 여러 편 하다 보니 오히려 ‘스카이캐슬’을 놓칠 뻔 했어요. 심신이 소진된 상태에서 연기 잘하는 배우들과 붙게 생겼는데, 거기서 내가 카리스마 있는 역을 잘 소화할 수 있을까 덜컥 겁이 나서 처음엔 고사했죠. 안 했으면 어쩔 뻔 했나 싶어요.(웃음)”(김)
- 질의 :배우 인생에 꽃길만 걸었던 건 아니죠.
- 응답 :염: 미스코리아가 되자마자 주인공으로 데뷔했지만, 20대 때는 작품만 많았지 특별할 것 없는 연예인이었어요. 영화 ‘장화홍련’ 때 김지운 감독님이 많이 이끌어 주신 후 배우로 인식되기 시작했죠.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하고 싶은 만큼 할 작품이 없었어요. 작년 ‘완벽한 타인’ 하기 전까지가 힘들었죠. 지금도 모든 여배우들이 비슷한 얘기를 해요. 저는 ‘스카이캐슬’을 운 좋게 했고 연달아 작품이 나왔지만, 아직도 여배우의 역할 자체가 거의 없어요. 재주 있는 배우들이 작품이 없어서 쉬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죠. 중년 배우들 역할이 많아졌으면 해요.
김: 쉴 때 가장 힘들었어요. 에너지도 있는데 할 게 없다고 하니. 1~2년 쉬다 보면 우린 그냥 백수거든요. 주변에서는 돈을 쌓아놓고 있느냐고 하는데, 저도 아껴쓰다가 없으면 밖에도 못 나가고 그래요. 조심스럽지만 말씀 드리고 싶은 건, 제작자들이 마음을 열어줬으면 해요. 배우는 주어진 것을 열심히 할 뿐인데 그 이미지가 굳어졌다니 답답하죠. 정말 오디션이라도 보고 싶어요. 내가 캔디역에 안 어울리는지 기회도 안 줘보고 어떻게 아나요. ‘아는 형님’에 나가니 예고편만 보고도 “김주영과 너무 다르다”는 댓글이 달리던데, 꼭 예능에 나가야 제 여러 모습을 알아주나 싶더군요. 작품으로 보여주고 싶은데, 같이 일하는 분들부터 알아주셨으면 해요.
두 사람은 한때 같은 소속사에서 친분을 쌓은 사이지만 작품으로 만난 건 처음이다.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처럼 끊임없이 기싸움하는 두 여자의 연기대결이 드라마 인기에도 큰몫을 했는데, 이는 서로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 시너지로 나타난 결과다. “그 사무실 세트만 가면 서형의 분위기에 압도됐어요. 서형이 ‘감수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러면 마치 빨려들어가듯 ‘네네, 감수할께요 쓰앵님’이 돼버리는 거죠(웃음). 거기 매일 있었던 서형은 힘들었을 거예요. 장소 자체가 음침한데, 서형이 눈물도 많고 마음이 약하거든요. 쫑파티에서도 저는 노느라 못 봤지만 혼자 울었다는 소문도 있더라구요.”(염) “그 공간 속 장면들은 숨도 못 쉴 정도로 텐션이 팽팽했어요. 카메라 감독님도 계속 핸드헬드로 감정을 쫓아오면서 그 긴장감을 화면에 고스란히 담아주셨죠. 정아 언니도 엄청 힘들었을 거예요. 모든 어른·아역 다 상대하러 돌아다녀야 하는 빡센 스케줄을 소화하는 걸 보면서 내가 뭐라고 힘들어하나 싶더군요. 언니 보면서 기운 낼 수 있었어요. 언니가 대장처럼 버팀목이 돼줘서 고마워요.”(김)
성공 비결은 연출 … 음악도 큰 몫
‘스카이캐슬’의 이례적인 성공에 대해 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연출과 영상의 힘을 꼽았다. “배우들의 열연을 카메라로 시청자에게 100배, 200배 전달했다”는 것이다. 음악도 빼놓을 수 없다. “평생의 테마송 하나씩 얻은 것 아니냐” 하니 둘 다 얼굴에 화색이 돈다. “‘We All Lie’는 모든 배우가 다 ‘내 노래’라고 할 것 같아요. 쫑파티에서도 눈만 마주치면 ‘위올라이~’ 했거든요. 하지만 제가 엔딩에 제일 많이 걸렸으니까, 제 음악이죠.(웃음)”(염) “언니꺼래요?(웃음) ‘위올라이’도 탐나지만 작가님이 제게 ‘마왕’을 주신 걸 보고 대단하다 싶었어요. 저조차 무섭게 느껴질 정도로, 음악 때문에 김주영이 더 살아 움직인 것 같거든요. 전 ‘마왕’이 있으니 ‘위올라이’는 언니 드려야죠.(웃음)”(김)
“쓰앵님~”
“네 감수 할게요. 감수하고 말고요”
“얻다 대고 따따부따야”
“우리 예서 꼭 서울 의대 보내야 돼요”
“집으로 들이십시오”
“감수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어머니, 예서는 유리멘탈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시청자의 욕망을 과감히 외면했다. 속물덩어리 한서진을 비롯해 현실감 넘치던 모든 등장인물이 갑자기 도덕교과서 같은 대사를 읊으며 마무리되는 훈훈한 풍경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것이다.
작가는 대체 왜 미스터리 스릴러급으로 몰아붙이던 그간의 파죽지세와 결이 전혀 다른 착하디 착한 권선징악으로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준 걸까. 염정아와 김서형은 이런 엔딩에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풀이했다. 작가가 첫 대본 리딩에서 밝혔던 “이 드라마를 통해 한 가정이라도 살리고 싶다”는 기획 의도로 돌아가 직설적인 메시지 전파에 충실했다는 것이다.
올해 초등학교 5학년과 4학년이 되는 연년생 자녀를 둔 염정아는 “부모된 입장에서 작가의 바램이 잘 와닿는 결말이었다”고 했다.
“우리 어릴 땐 학교 끝나면 가방 집어던지고 놀았는데, 요즘 아이들은 각자의 학원으로 향하죠.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보면 대체 누구를 위한 교육인가 싶어요. 이 슬픈 교육현실에서 너무나 상처 받고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아이도 있는데, 아이를 사랑하는 방식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 않았을까요. 저도 이번에 많은 생각을 했어요. 애들 위주로 생각하는 노승혜 같은 엄마를 추구하면서도 진진희처럼 갈팡질팡하는 면도 있었는데, 이제 좀 달라지지 않을까 싶네요.”
김서형도 “작가가 한서진의 가정을 살리고 싶었던 것”으로 해석했다.
“구치소에서 제가 한서진에게 ‘당신도 나랑 똑같애’라고 한 게 기억에 남아요. 그러고 나서 한서진이 자기를 돌아보면서 옛 가족에게 연락도 하는데, 김주영이 한서진에게 던진 말로써 한서진이 제자리로 더 가게끔 한 것이죠. 한서진이 갑자기 회개했다기보다 ‘한 가정이라도 살리고 싶다’는 맥락에서 그런 결말이 필요하지 않았을까요. 자식이 내 삶을 투영해 살아줘야 하는 게 아니라 자식은 자식대로 인정하고, 한서진이 결국 가족을 추스려 가길 바란 거죠. 그 대신 제가 벌 받으며 끝났잖아요.(웃음)”
물고 뜯는 ‘진격의 혐오’…돈벌이·표 구걸에 악용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https://pds.joins.com/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1902/16/9dbf426e-1508-4f64-9b42-df4f49216920.jpg)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남녀는 김치녀·한남충 서로 비하
일베·워마드 등 인터넷은 전쟁터
유튜버, 혐오 영상 올려 수익 올려
정치인은 표 얻으려 혐오 발언
포털에 시정 요구한 혐오 표현 급증
“희망 없는 사회가 약자 때리기 불러”
일베는 ‘××녀’ 시리즈로 여성을 비하하며 눈요깃거리로 삼았다. 여성주의 사이트 ‘메갈리아’와 ‘워마드’는 똑같이 갚아주겠다는 미러링(mirroring) 전략으로 대응하고 나섰다. ‘한남충’ ‘씹치남’ 등 남성 비하 발언이 잇따랐다.
김민정 한국외국어대 교수팀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시정 요구 유형 분석에 따르면, 방심위가 포털에 시정을 요구한 혐오 표현은 2014년 280건에서 2016년 1983건으로 급증했다. 이 기간 여성 비하 표현은 6건에서 238건으로, 남성 비하 표현은 3건에서 476건으로 눈에 띄게 늘었다.
2016년 5월엔 강남역 인근 노래방 화장실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이 여성 혐오 범죄로 인식되면서 남성 혐오로 번졌다. 지난해 5월에는 남성 누드모델 사진을 워마드에 올려 성기와 신체를 비하한 ‘홍대 누드모델’ 사건도 벌어졌다. 워마드는 리비아에서 피랍된 한국인 남성에 대해 “60대면 어차피 낼 모레 죽을 XX 아니냐. 이 XX 구해주기만 해봐라”는 내용을 게재하며 남성 혐오뿐 아니라 노인 혐오까지 곁들였다. 혐오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모양새다.
지난해 7월 한 사이트에는 아버지나 할아버지로 추정되는 잠자는 남성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사진이 올라왔다. 그러면서 “잠자는 틀딱칼X 넣기 딱 좋다. 자고 있을 때 죽여버리면 네가 뭘 어쩔 건데”라고 적었다. ‘틀딱’은 ‘틀니 딱딱’의 줄임말로 노인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일부 젊은 세대는 노인들이 연금을 축낸다며 ‘연금충(蟲)’이라고 비하한다. 과거의 ‘꼰대’ ‘노인네’라는 표현은 그야말로 양반이었다.
임홍재 아셈노인인권정책센터 원장은 “젊은 세대가 노년 세대와 직접 접촉할 기회가 줄어든 데다 방송에서도 노인층을 희화화하는 내용이 자주 나오다 보니 부정적 판단이 늘어나는 것”이라며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공동의 활동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혐오는 인종과 민족을 가른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https://pds.joins.com/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1902/16/a56ad21c-c866-4262-a2aa-84125992d03c.jpg)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지난해 6월엔 제주도 예멘 난민 수용 여부가 이슈로 떠올랐다. 정부가 이들 난민에 대한 조기 취업 허용 방안을 검토하자 “이슬람 테러 위협에 노출된다”는 반대 의견이 거셌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도 “무슬림은 여자를 사람으로 보지 않고 애 낳는 도구로만 생각하는데 성범죄는 불 보듯 뻔한 일”이라는 등 근거 없는 글들이 올라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이를 근거로 ‘인종차별을 예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 제출했다. 인종차별철폐위는 “한국은 인종차별철폐협약을 심의한 지 6년이 됐지만 아무 진전이 없다”며 “이주민들이 노동력을 제공해 국가의 부를 창출하고 있음에도 그에 따른 대가를 공정하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혐오는 소수자를 겨눈다
성소수자를 다룬 한국 영화 ‘퀴어영화 뷰티풀’은 지난해 10월 개봉 후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 한 누리꾼이 포털 사이트 영화 명대사란에 신체 특정 부위를 언급하는 대사가 나온다는 댓글을 달면서다. 이 누리꾼이 올린 대사는 실제 영화엔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누리꾼들은 ‘역시 퀴어영화는 더럽다’는 등 악플을 잇달아 달았다.
이 영화를 만든 백인규 감독은 이들을 경찰에 고소했다. 백 감독은 페이스북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성 발언을 간과하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대다수의 선량하고 합리적인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혐오 세력을 위축되게 하고, 소수자에게도 혐오를 내재화하지 않고 건강한 자아상을 갖도록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혐오는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김모(25)씨는 최근 유튜브에서 ‘김치녀 엿 먹이기’ ‘한남충 저격’ ‘6.9㎝의 진실’ 등의 영상을 봤다. 그는 “재미있기 때문”이라고만 했다. 이런 종류의 혐오 영상 조회 수는 수십만 건에 이른다. 이들 영상에 광고가 붙으면서 유튜버에게 돈이 지급된다. 관련 업계에서는 구독자 30만 명을 기준으로 한 달 조회 수가 800만 건이 넘으면 월 1000만원이 넘는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말이 오간다.
정치인들도 혐오를 활용한다. 지난해 8월 인권위가 ‘선거 과정에서 혐오 표현 대응 방안’을 주제로 마련한 토론회에서는 지난해 6월 지방선거 때 후보들이 일부 지지층의 표를 얻기 위해 혐오 발언을 쏟아낸 사례가 소개됐다. “동성애는 흡연보다 해롭다” “세월호는 죽음의 굿판” “어떻게 장애를 가진 사람이 (구민을) 이끌 수 있겠느냐” 등이 대표적이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노력해도 좋은 대학이나 괜찮은 직장에 갈 수도 없고 승진도 어렵다는 좌절감의 팽배와 희망의 부재가 단순한 분노를 넘어 약자를 집중 공격하는 혐오로 확대 재생산되는 양상”이라며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의 정민석 대표도 “선관위와 인권위가 보다 강력한 규제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난민 학살·테러·내전…혐오가 국제정치 뒤흔든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https://pds.joins.com/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1902/16/9dbf426e-1508-4f64-9b42-df4f49216920.jpg)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로힝야족 학살, 시리아 내전 불러
포퓰리즘에 ‘묻지마 테러’도 기승
일본 극우파도 ‘혐한’ 강도 더해
유럽의회 선거 때 극우파 약진 주목
아우슈비츠 추모관선 반유대 시위
#세계 각국 혐오 범죄·테러로 골머리
![2017년 8월 미국 LA에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https://pds.joins.com/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1902/16/e964dde0-86e6-4d5a-a262-f88bed2a221e.jpg)
2017년 8월 미국 LA에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독일에선 새해 첫날부터 외국인 혐오주의자에 의한 테러가 발생했다. 50대 남성이 차량을 몰고 시리아인과 아프가니스탄인 등 네 명을 들이받았다. 수사당국은 “용의자가 외국인을 향해 차를 몰았다. 외국인 혐오에 따른 범행”이라고 밝혔다. 프랑스에서도 지난해 12월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총격 테러를 벌여 다섯 명이 숨졌다.
한·일 관계가 악화되는 가운데 일본 극우파들의 ‘혐한’도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지난 6일 일본 오키나와 법원은 재일 한국인에 사이버 테러를 자행한 일본인 두 명에게 벌금 10만엔씩을 부과했다. 일본에서 온라인상의 ‘헤이트 스피치(공개적 혐오 발언)’에 명예훼손죄를 적용한 것은 처음이다. 처벌받은 일본인은 인터넷 게시판에 피해자 실명을 언급하며 “사기꾼” “개와 고양이를 먹는다” 등의 글을 올렸다.
천재 발레리노 세르게이 폴루닌은 성차별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경우다. 프랑스 파리 오페라 발레단은 이달 폴루닌 주연의 ‘백조의 호수’를 공연할 예정이었지만 이를 취소했다. 폴루닌은 최근 “남자는 남자여야 하고, 여자는 여자여야 한다. 남자는 늑대고 사자다. 남자가 가정의 리더”라는 글을 올려 물의를 빚었다.
미국에선 인기 TV드라마 ‘엠파이어’에 출연 중인 저시 스몰렛이 성소수자를 겨냥한 혐오 범죄 피해를 당했다. 시카고 경찰에 따르면 스몰렛은 지난달 29일 스키 마스크를 쓴 괴한 두 명에게 성소수자 비하와 인종차별적 욕설을 듣고 폭행을 당했다. 스몰렛은 이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커밍아웃을 했다.
#극우파, 유럽 선거서 127석 기대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https://pds.joins.com/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1902/16/a56ad21c-c866-4262-a2aa-84125992d03c.jpg)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최근 몇 년간 유럽 각국의 선거에서도 극우파의 성장이 뚜렷하다. 올 초에는 스페인 극우정당 ‘복스’가 44년 만에 주의회 입성에 성공했다. 반이민·반이슬람을 앞세운 복스는 당초 109석 중 5석 정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두 배가 넘는 12석을 얻었다. AP통신은 “독재자 프랑코 이후 극우 세력에 반감을 가져온 스페인 유권자들이 변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프랑스 대선과 네덜란드·독일·오스트리아 총선도 마찬가지였다. 반난민 극우 바람은 남미까지 전해져 지난해 10월 브라질 대선에선 “난민은 쓰레기”라고 비난한 자이르 보우소나루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지난달 27일 홀로코스트 해방 74주년 기념행사가 열린 폴란드 아우슈비츠 추모기념관에선 극우주의자들이 모여 반유대주의 집회를 열었다. 로이터통신은 “홀로코스트 추모일에 극우파들이 아우슈비츠 추모관에서 반대 집회를 연 것은 처음”이라며 “유럽의 인종 혐오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라고 전했다. 최근 유럽 7개국 성인 7000명 대상 설문에서도 응답자의 33%가 “홀로코스트에 대해 아는 게 없다”고 답했다. 미 캘리포니아주립대 어바인캠퍼스의 마이클 테슬러 교수는 MS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인들이 정치적 동기를 갖고 인종과 성 차별, 난민 문제 등을 다루고 이를 통해 이익을 추구할 경우 정치권뿐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극단적인 대립이 조장될 것”이라며 “이는 결국 공동체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지적했다.
최익재·김홍준 기자, 김나윤 인턴기자 ijchoi@joongang.co.kr
5학년 여자아이 이윤아. 2학년 때 아빠가 위암으로 돌아가시고 난 뒤 엄마가 보험설계사 일을 하면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 엄마는 밤낮없이 돈을 벌기 위해 일하며 윤아를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을 일생일대의 목표로 삼고 있는 분이다.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도 줄곧 1등을 하던 윤아였지만, 엄마는 딸을 위해 가장 교육열이 높다는 동네로 이사를 한다. 전학 온 학교에는 전교 1등을 내놓지 않는 수영이라는 아이가 있다. 엄마는 이곳에서 1등을 해야 진짜 1등이 되는 거라며 수영이를 이기기를 바란다. 그리고 어떤 친구를 사귀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며 수영이와 친해질 것도 요구한다. 교실 대청소 때문에 늦어 학원버스를 놓친 어느 날, 윤아는 시내버스를 타고 내려 학원을 찾아가다가 길에서 이상한 전단지를 발견하게 된다.
초록색 손목시계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찾아간 시간 가게의 주인 할아버지로부터 받은 손목시계. 그 시계는 하루 한 번, 자신의 행복했던 기억을 파는 대신 오직 자신만이 쓸 수 있는 10분의 시간을 살 수 있는 요술 시계였다. 윤아는 그 거래에 응하게 되고, 그로 인해 많은 기쁨을 맛보게 된다. 중간고사 올백으로 전교 1등을 하고, 영어인증시험에서도 최고 점수를 받고. 하지만 그 대가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컸다. 절친 다현이, 할머니, 아빠, 엄마... 소중한 사람과의 행복했던 추억들이 점점 사라질수록 윤아는 점점 행복하지 않은 아이가 되어갔다. 윤아는 무언가 잘못되어간다는 생각에 다시 시간 가게를 찾아가고, 행복한 기억을 되돌려 받는 대신 자신의 10분을 파는, 새로운 거래를 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시간을 주는 대가로 돌려받은 기억은 자신의 기억이 아니었다. 엉뚱하게 들어온 다른 사람의 행복했던 기억이 윤아의 삶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자 결국 시계를 돌려주리라 마음먹고 다시 가게를 찾아간다. 이야기는 윤아가 모든 걸 깨닫고 새롭게 자신의 삶을 시작하리라 마음먹는 것으로 끝이 난다.
윤아는 이제 달라질 것이다. 자신의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조차 해보지 않고 달렸던 시간들. 엄마의 뜻에 따르고 엄마를 기쁘게 하는 것이 자신의 행복이라 믿으며 버텨왔던 시간들.
시계가 고장 났을 거라 생각하며 다시 찾은 시간 가게에서 할아버지는 말한다.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유영진 씨가 쓴 심사평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소설 속 아이들은 5학년이라고 보기에는 생각이나 행동들이 다소 조숙해 보인다. 이야기를 만들어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설정이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겪고 있는 생활은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윤아 엄마의 행동과 반응들. 어쩌면 너무 과장된 것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우리 사회의 보통 엄마들의 마음과는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 생각을 얼마나 겉으로 드러내느냐 하는 정도의 차이일 뿐.
책 뒤편의 심사평을 읽고 나니 쉽사리 흘려 읽었던 글들이 뒤늦게 더 마음 아프게 느껴진다. 그저 비현실적인 판타지 소설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너무나 깊게 현실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이다. 심사평의 마지막 부분의 이 문단은 부모가 된 우리들이 꼭 기억해야 할 말이다. 정작 당사자인 학생들은 그저 '힘들다'고만 표현할 뿐, 소설 속 윤아처럼 깊이 생각하고 깨닫기에는 아직은 힘도 선택권도 없는 아이들일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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