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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神話
요약
신화는 우주의 기원, 초자연의 존재의 계보, 민족의 시원 등과 관련된 신에 대한 서사적 이야기이다. 한국의 신화로는 고조선 및 가락국과 삼국의 건국신화가 있다. 또 성씨의 시조신화인 씨족신화, 마을의 마을신화, 무당사회의 무속신화 등도 있다. 건국신화에 단군신화·주몽신화, 씨족신화적 성격의 박혁거세신화와 석탈해신화가 있다. 무속신화는 「천지왕본풀이」가 대표적이다. 이들 신화는 창업주에 관한 이야기, 즉 본풀이이며 전설적 속성이 강하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한국신화는 신화와 전설의 복합체적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신화는 가장 엄밀한 의미에서 종교적 교리 및 의례의 언어적 진술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 이 정의가 대체로 적용될 수 있는 한국의 신화로는 흔히 고조선 · 신라 · 고구려 · 백제 및 가락의 이른바 건국신화 또는 시조신화를 으뜸으로 꼽아 왔다. 그러나 오늘날에까지 전해지는 것으로는 각 성씨의 시조신화인 씨족신화와 여러 마을의 수호신에 관한 마을신화, 그리고 무당사회에 전승된 무속신화 등을 들 수 있다.
이렇게 네 묶음이 될 한국의 신화는 그 차이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공통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의 공통성은 이들이 다같이 창시자 내지 창업주에 관한 이야기, 곧 본풀이 내지 본향풀이라는 데서 찾을 수 있고, 둘째의 공통성은 이들 신화가 실제에 있어 전설적인 속성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말하자면 한국의 네 가닥 신화들은 창시자의 본풀이인 신화 · 전설의 복합체라는 공통의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본풀이란 근본 내력에 관한 이야기풀이라는 뜻이다. 어떤 신격(神格)이 어떤 내력을 지니고 어떤 과정을 밟아서 신격을 향유하게 되었는가에 관한 사설이 본풀이이다. 그것은 이야기로 진술된 신 또는 신령의 이력서이다. 따라서, 당연히 신 또는 신령의 전기(傳記) 내지 생애 이야기라는 성격을 가지게 된다.
이 때 전기의 길이, 세부적인 부분의 취사 선택에는 신화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태어나서 무엇인가를 성취하고 신격에 오르는 과정을 포함하는 근본 골격에는 변함이 없는 일군의 신화와, 애초부터 신격을 타고난 인물이 범상을 넘어선 과업을 성취하는 근본 골격에 변함이 없는 또 다른 일군의 신화를 갈라서 생각할 수 있다.
전자의 전형은 무속신화이고, 후자의 전형은 이른바 건국신화이다. 고려왕조의 시조전승들도 이 후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 근본 골격 가운데 전자만을 두고 본풀이라는 말을 사용해 왔던 것이다. 이 말은 무속사회, 특히 제주도의 무속사회에 적용된다. 무속신화가 무당시조에 관한 본풀이라면, 건국신화는 건국시조에 관한 본풀이이다.
마찬가지로 씨족신화는 씨족의 시조에 관한 본풀이이다. 여기서 한국 신화에서 시조 혹은 창시자가 지닌 비중이 떠오르게 된다. 한국 신화가 시조 혹은 조상령에 바치는 신앙과 맺어져 있음을 여기서 확인하게 된다. 한국 신화는 조상 숭배의 신화라는 일면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조상 숭배의 실현으로서 한국 신화는 조상의 역대기(歷代記)라는 형식을 취하게 된다. 예컨대 단군신화(檀君神話)와 동명왕신화(東明王神話)가 각기 그 왕국 창업주들의 삼대기라면, 고려왕조 전승은 왕건(王建)의 조상들의 사대기이다. 「용비어천가」가 이 선례를 답습하고 있음은 말할 나위 없다. 특히 조선왕조의 소설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삼대기의 연원을 이들 신화 삼대기에서 구할 수 있음은 흥미롭다.
한국 신화들의 또 다른 속성인 ‘신화 · 전설의 복합성’은 한국 신화가 역사화된 신화 내지 역사 속에 편입된 것이라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무조, 곧 무당의 시조에 관한 신화는 이 사례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고조선 · 삼국 및 가락의 건국신화는 실존한 왕국, 역사적인 왕국의 시조에 관한 이야기인만큼 그 신화성이 역사성과 공존하고 있다.
분명히 여러 가지 신비징후 내지 신성징후(예컨대 천마, 자줏빛, 신령의 공수 등) 들을 수반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존재임에도(또는 그와 같은 존재의 아들이나 손자임에도) 인간 세계에서 왕국을 건설하는 것이 우리 신화에 등장하는 건국 시조들이다.
신이면서 동시에 왕인 이들은 신이자 인간이기도 하다는 면모를 지니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온 신화적 존재가 ‘탈신화화’하여 역사적인 왕국의 창업주로 변모하는 것이다. ‘탈신화성’은 다름 아닌 ‘역사성’이거니와 그런 뜻에서 한국신화는 피안의 원리, 초월적인 어떤 원리가 인간화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단군신화에서 유명해진 ‘홍익인간’, ‘재세이화’ 등의 이념은 바로 이와 같은 사실과 관련지어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탈신화화하여 역사화된 신화가 곧 한국신화, 특히 건국신화이거니와 전설이 역사적 믿음을 그 이념으로 삼고 있음을 전제로 하여 한국신화가 ‘신화 · 전설의 복합’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복합성은 고려왕조의 조상전승의 경우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신격의 표상
부분적으로 보아 탈신화화한 신화가 건국신화이거니와 이들 건국신화는 한 왕조의 시조신화라는 점에서 씨족의 시조신화와 상당한 정도의 동질성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신라의 왕조신화는 박씨 · 석씨 · 김씨의 시조인 박혁거세(朴赫居世) · 석탈해(昔脫解) · 김알지(金閼智)에 관한 신화로서 씨족신화의 면모를 분명하게 지니고 있다. 혁거세도 알지라고 불려진 사실을 고려한다면 세 신화의 동질성은 그만큼 깊어질 것이다.
혁거세신화와 알지신화를 통하여 하늘에서 내린 시조라는 관념을 찾아내기는 힘들지 않다. 그런 관념은 수로신화와 단군신화에서도 쉽게 추출될 수 있다. 한편, 신라의 육촌장에 관한 『삼국유사』의 기록에서도 같은 관념의 추출이 가능하다면 육촌장과 왕조의 시조들의 신화가 기본적 성격에 있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관념에 천상에서 세계의 중심 혹은 세계의 정상에 내리는 최초의 신 또는 최초의 왕이라는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관념을 겹쳐보기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하늘에서 내린 최초의 왕이 이른바 ‘거룩한 왕’ 또는 ‘신성 왕’이었다면 씨족의 시조 또한 거룩한 존재였던 셈이다. 양천허씨(陽川許氏) · 하음봉씨(河陰奉氏) 그리고 창녕조씨(昌寧曺氏) 등의 시조신화에서도 비슷한 관념이 발견되는 것은 말할 나위 없거니와 이와 같은 시조신화의 특성은 역사시대 인물의 전기 혹은 조선조 소설 및 비범한 인물전설에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일부 지방에 전해지는 마을굿 및 탈춤의 기원에 관한 신화 및 전설에서도 하늘에서 내린 존재로 숭앙되는 대상들을 찾을 수 있다. 마을굿에서 숭앙하고 있는 신체(神體) 또는 신격의 표상인 서낭대에 매달린 방울이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이야기는 대표적인 것이다. 마한의 소도에 매달린 방울 및 무당의 신대에 매달린 신방울들이 신령의 표상임을 생각한다면 하늘에서 떨어진 신방울의 관념에 하늘에서 하강한 신령의 이미지를 겹칠 수 있게 될 것이다.
씨족의 시조신화와 왕조의 시조신화 사이에 단순한 병행관계만이 존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혁거세신화의 성립과정으로 미루어보면 혁거세신화는 기왕에 씨족장으로서 세력을 확보하고 있는 씨족시조 위에 군림하는 통합적인 세력을 지닌 한 씨족의 시조가 나머지 씨족의 시조들을 그 예하에 신종(臣從)시켜가는 과정을 반영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웃한 씨족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통합적 힘을 지닌 씨족의 시조신화가 왕조의 시조신화이자 건국신화인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미 하늘에서 내린 씨족의 시조들이 새로이 하늘에서 군림하는 씨족의 시조를 그들의 통치자로 추대한 과정에서 생겨난 신화가 건국신화임을 뜻하고 있다. 연합씨족사회의 통치세력인 씨족의 시조신화가 다름아닌 혁거세신화인 것이다. 가락의 수로신화(首露神話)도 이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하늘에서 내리는 씨족과 왕조의 최초의 시조라는 관념은 한국 신화의 신격을 규정지을 때 매우 중요한 것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한 편의 신화가 만일 ‘신들의 서사적 이야기’라고 간결하게 정의될 수 있다면 그 정의에서 신이 무엇인가 하는 개념이 중요한 것임은 말할 나위 없다.
그 정의를 다시 ‘신들이 무엇인가에 관한 이야기’라고 고쳐본다면 여기서 신들이 누구인가, 그리고 그 신이 한 행위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럴 때 한국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왕족의 시조이고, 그들이 한 행위는 하늘에서 내려와 지상에다 하늘의 뜻을 펼 왕국을 건설한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게 된다. 이 요약 속에 한국 신화, 그 가운데서도 이른바 건국신화의 윤곽 또는 그 단순구조가 잡힐 것이다. 이 단순구조 속에 따르는 신격 또는 신상(神像)은 시베리아 샤머니즘 신화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시베리아 샤머니즘 신화가 말해주는 바에 의하면, 그들의 최초의 샤먼은 하늘에서 최고의 신의 뜻을 받들어 지상에 내려와 하늘의 뜻을 지상에 편 존재이다. 이리하여 이들 샤먼은 하늘과 지상의 매체 또는 영매(靈媒)가 된다. 그리고 이들 영매가 영매로서의 구실을 수행하기 위하여 천상과 지상을 내왕하면서 의지하는 것이 높은 산, 높은 나무(또는 기둥), 그리고 독수리 · 곰 · 오리 · 사슴 등의 동물이다. 이와 같은 샤먼(영혼)의 ‘천계여행’ 또는 ‘우주여행’은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우주구성론’을 보여주게 된다.
한국신화의 기본 성격시베리아 무속과 한국신화
예컨대, 사슴뿔과 나무와 새(독수리)의 깃털 등의 도형을 갖춘 신과 왕관의 원형이 시베리아의 무관(巫冠)에서 찾아진다는 것은 학계에 이미 잘 알려져 있으나, 신라왕관과 시베리아 샤머니즘과의 연관은 이보다 훨씬 깊고 본질적이다. 신라왕관은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우주구성론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나무 도형은 마한의 소도나 단군신화의 신단수, 그리고 오늘날까지 전해져오는 수살대나 솟대와 함께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세계나무(우주목)’ 또는 ‘샤먼의 나무’ 혹은 ‘오브’에 견주어질 만하다. 세계의 한가운데 솟아서 세계의 기둥이 될 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 위와 땅 밑 세계를 이어주고, 그럼으로써 샤먼의 영혼이 그에 의지하여 우주여행을 하게 되는 매체가 다름 아닌 이들 나무들이다.
그런가 하면, 동명왕신화에서 하늘에 대한 호소력을 지닌 존재로 묘사되어 있는 사슴은 시베리아 샤머니즘에서 ‘우주사슴’으로 불린다. 특히 사슴은 무당영혼의 지하세계 여행에 임하여 큰 구실을 하게 되는 짐승이다. 이 짐승의 뿔은 그것이 지닌 나무와 같은 속성 때문에 영원한 생명력의 표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날카롭고 뾰족한 모양 때문에 샤먼의 무기로 간주되기도 하였다.
이에 비하여 독수리는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이른바 ‘우주새’로서 샤먼의 영혼이 우주여행을 하는 동안 천계여행을 도맡아 안내한다. 심지어 최초의 무당이 깃들인 알을 천상에서 품었다가 지상의 나무 위에서 부화시킨 새가 곧 독수리이다. 이 경우, 독수리가 품고 온 알에서 최초의 무당이 탄생된다는 모티프는 우리들의 건국시조가 알에서 태어난다는 모티프와 상관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결국, 나무와 사슴과 독수리를 종합하게 되면 샤먼의 영혼이 우주여행을 하게 되는 도정과 그에 대응된 우주의 구성이 드러나게 된다. 세계수가 이음자리 구실을 하고 있는 하늘 위와 땅 밑을 각각 분담한 짐승이 곧 독수리이고 사슴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추정이 옳다면 신라의 금관은 하늘과 지상과 지하의 삼계로 이루어지는 우주를 나무와 사슴뿔과 독수리깃을 수평선상에 배열함으로써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이러한 왕관을 쓴 왕권이 어떠한 것이었던가를 유추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해 보면, 신라왕관은 샤머니즘적인 우주구성론이 바탕에 깔려 형성된 왕권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비교신화론에서 차지하는 우주발생론과 우주구성론의 비중이 큰 만큼 신라왕관의 구도와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우주구성론이 지닌 공통성은 매우 뜻깊은 것이 되고, 따라서 우리 문화와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유대가 지닌 뜻도 깊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신라왕관의 형상은 특정한 신화적 발상법을 조형예술적 언어로 기술한 표현 체계로 포착되어 있음은 말할 나위 없다.
원초성과 풀이
오늘날 남겨진 건국신화나 씨족신화, 그리고 마을신화에서는 우주발생론을 찾을 수가 없고 아울러 우주구성론의 뚜렷한 윤곽도 잡을 수 없다. 이들 신화들은 다같이 인간 문화 및 제도의 기원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원초적’이다. 단군신화가 그 전형으로, 이들 신화의 원초성은 ‘문화적 원초성’이다.
따라서, 단군 일가가 그렇듯이 이들 범주에 속하는 신화의 주인공들, 특히 건국신화의 주인공들은 ‘문화적 영웅’들이다. 하늘 또는 타계에서 지상 또는 이 세상에 나타나 인간세상에 문화와 제도의 기틀을 베푼 존재들인 것이다.
제주도에 전해지는 무속신화는 이 점에서 아주 특이한 성격을 드러낸다. 그것들은 우주의 창생과 우주의 구성에 대하여 말하면서 문화나 인간적 제도가 있기 이전의 자연에 관한 주제를 포함하고 있다. 인간들이 살 만하지 않았던 자연 또는 우주가 어떻게 해서 한 신령에 의해 인간들이 살 수 있도록 길들여지고 질서화되었는가에 관한 이야기를 제주도 무속신화는 지니고 있다.
제주도 무속신화의 원초성은 ‘우주적 원초성’이라는 점에서 건국신화의 원초성과는 사뭇 다르다. 제주도 무속신화에서는 이 로고스가 있기 이전의 공간이 큰 몫을 차지하고, 낮 · 밤의 가름이 있기 이전의 시간이 아울러 중요한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건국신화의 공간은 마을이거나 인간공동체이고 시간은 역서(曆書)상의 시간이다.
제주도 무속신화와 건국신화의 이와 같은 차이는 결정적인 것이다. 무속신화에서는 자연과 문화 사이에 빚어질 갈등의 조화가 곧 신화의 기능이라는 명제를 확인해도 좋을 것이다. 이와 같은 두 신화의 차이는 무속신화가 본질적으로 더 원초적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건국신화는 무속신화에서 유추될 수 있으리라는 추정을 해볼 수 있다.
제주도 무속에서는 신화를 ‘본풀이’ 또는 ‘본향풀이’라고 칭하고 있다. 이 두 용어는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무당 조상의 전기(傳記)’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면서 아울러 ‘개벽신화’ 또는 ‘창생신화’라고 불러도 좋을 이야기를 지칭하고 있다.
예컨대, 제주도 무속의 대표적 신화인 「천지왕본풀이」는 신들의 내력과 천지창조의 과정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본토의 무당들은 본풀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본토 무속의 대표적 신화인 「바리공주」만 해도 서울지방의 무당들은 이를 ‘말미’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이 「바리공주」는 그 성격상 본토 무당의 유일한 본풀이 또는 본향풀이이다.
‘말미’란 ‘말미암음’의 말미와 관계가 있을 듯하다. 인연 · 동기 · 사유 등을 나타내는 말이 곧 말미일 것이라 본다면 ‘말미’라는 용어가 본풀이라는 용어와 그 내포하고 있는 의미에 있어 별로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이음동의어라고 보아도 큰 잘못은 없을 듯하다. 실제로 「바리공주」는 한 여성과 그 일족이 무신(巫神)이 되어가는 사유와 유래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이를 보면 말미가 본풀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뜻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런 점에서 본풀이라는 개념을 제주도 바깥으로 넓혀서 쓸 수 있는 실마리를 얻게 된다. 뿐만 아니라 비록 본토에서 무당들이 그들의 신화를 본풀이라고 부르고 있지는 않아도 그들의 신화나 노래 속에 본(本)이라는 말은 많이 쓰고 있다. “누구의 본을 볼작시면…….", “무엇의 본을 받아…….” 등과 같은 사례들이 보이고 있다. 이것은 본토의 무당들이 부르는 신화 역시 본에 관한 이야기를 함축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고조선과 삼국 및 가락의 시조신화는 각기 신화적 인물들의 원향(原鄕)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되어 출생과 성장, 그리고 혼인과 즉위를 거쳐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음을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다. 이것이 한국 상고대신화의 전기적(傳記的) 유형이다. 한 인물의 출생과 성장 및 행적을 더듬고 그 죽음은 어떠하였는지를 한국 신화는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다. 사후에 신격화된 모티프를 지닌 것도 있다.
이런 줄거리가 한국 상고대의 왕권을 신성화하고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천신의 아들로 ‘홍익인간’을 위하여 신단수에 의지하여 지상에 내려온 환웅(桓雄)은 시베리아 원주민의 무조신화(巫祖神話)를 반영하고 있다. 혁거세와 수로, 그리고 알지의 신화적 성격도 환웅과 멀지 않다.
이와 같이 볼 때 한국 상고대신화는 상고대왕조의 왕권이 무속원리에 의하여 신성화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상고대신화들은 오늘날 굿판에서 구연되는 무속신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그것은 무속신화의 중요한 속성 중의 하나가 ‘본풀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듯이 상고대신화도 역시 ‘본풀이’의 신화로 간주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풀이와 공수
한국 신화의 기본적 성격은 이와 같은 ‘본풀이’에 ‘공수’라는 개념을 삽입시킴으로써 포착할 수 있게 된다. 신화는 기본적으로 신들이 주체가 된 신들의 이야기라는 성격을 가진다. 그러나 그러한 신화의 속성에서 신들이 가지는 주체성은 신들이 신화 속에서 전개되는 행동의 주체라는 정도에 머무르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신화에서 나타나는 신들의 주체성은 신화라는 이야기마저 신들 자신이 서술하고 있다는 데서 더욱 중요해지는 것이다.
신화는 신들 자신이 이야기한 신들의 이야기이다. 신화에서 신들이 가지는 ‘이야기하는 자’로서의 주체성은 『삼국유사』에 실린 「가락국기」에 아주 잘 드러나 있다. 신들이 일러준 대로 인간들이 받아 적거나 인간들의 입으로 다시 이야기한 것이 신화라는 점에서 신화에는 디크타트(받아쓰기) 의식이 작용하고 있다고 말하여도 좋거니와, 「가락국기」는 무엇보다도 신들이 일러준 대로 인간의 입으로 옮겨서 서술한 이야기이다.
한국 무속에서는 신이 직접 불러주거나 일러주는 것을 ‘공수’라고 한다. 신에 접한 무당이 신의 말을 옮겨 놓은 것이 공수이다. 공수 속에 신 스스로가 자신의 내력에 관하여 진술하는 이야기, 곧 본풀이가 포함됨은 말할 나위 없다. 이리하여 공수는 본풀이와 겹쳐지고 여기서 한국 신화의 기본적 성격이 결정된다. 무속현장에서는 이야기 서술로서의 풀이와 제액(除厄)이나 축마(逐魔)하는 제의적 행위로서의 풀이가 한데 엉겨 공존하고 있다. 이것은 이야기풀이로서의 신화가 지닌 제의적 기능에 대하여 말해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본향풀이는 굿에 수반되어 가창된다. 단순히 수반되는 것이 아니라 무당굿의 핵심을 이룬다. 이 때 무당은 굿을 하면서 신화를 노래와 춤으로써 이야기풀이하는 복합성을 띤 연행자(演行者)가 된다. 무속신화는 노래와 더불어 춤추어지는 것이다. 그것도 굿 속에서 굿과 더불어 춤추어진다. 무당은 몇 가지의 배역(act role)을 혼자 도맡아 연행하는 일인무극(一人舞劇)으로 그의 굿을 치러가는 것이다. 그런 면을 강조한다면 무속신화는 몸짓과 노래로써 이야기되는 신화라 하여도 좋을 것이다.
무속신화의 이와 같은 속성은 사실상 상고대, 예컨대 신라 · 가락 등의 왕조신화에서도 발견되는 것이어서 한국신화의 보편적 속성의 하나로 여겨진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락의 수로신화는 집단으로 노래와 춤을 곁들여 연행된 현장을 구체적으로 문헌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다.
「가락국기」의 신화가 신이 일러준 공수를 기반으로 삼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공수와 풀이의 이중성이 떠오르게 된다. 신에 의하여 인간에게 주어지는 신의 풀이가 공수일 때 공수와 풀이는 한짝이 되어 존재하는 것이다. 공수와 굿거리로서의 풀이와 이야기로서의 풀이가 서로 맺어져 있는 맥락 속에 신과 제의와 신화의 상관성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 맥락의 구체적인 모습은 앞서 말한 대로 한국 샤머니즘의 현장에서 드러난다. 이 맥락은 상고대의 「가락국기」 서두의 영신의(迎神儀)와도 접맥되어 있다. 천신의 공수에 따라 신맞이를 하고 그 굿의 줄거리가 신화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가락국기」의 영신 부분은 한국 상고대신화가 간직한 가장 오래된 한국의 신화적 원형이다.
신 자신이 직접 불러준 것이 공수라면, 그 공수를 인간이 다시 서술한 것이 풀이이다. 공수와 풀이는 서술자의 처지가 달라질 뿐 동일한 실체의 서로 다른 양면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공수와 풀이의 양면성에서 한국 신화가 지닌 기본 성격의 하나가 부각되게 되는 것이다.
참고문헌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