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 Angeles]
입력 2024.09.18 11:16
[오픈 업] 시니어 활동의 중요성
올해 들어 유난히 내 나이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내가 ‘뒷방 늙은이’로 보였나? 그런데, 비슷한 활동을 함께 했던 미국인들은 내 나이를 묻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직장 후배들은 내가 건강하고 젊어 보인다고 칭찬해 주었다.
특이하다. 어쩌면 한인 1세들은 삼강오륜의 장유유서를 지키는 문화에 깊숙이 배어 있어서, 상대방의 나이를 눈치로 알아채고, 에티켓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나이에 민감한지도 모르겠다.
우리 문화는 상대편에 대한 호칭도 까다롭다. 성(性)에 따라, 직업에 따라 호칭의 뉘앙스를 이해하고, 신경을 써서 적절한 단어를 골라 사용해야 한다. 혹시 실수라도하게 되면 버릇없다, 싹수없다고 찍힐 수도 있다.
지난달 8월 참석했던 한인 문학 축제에서 연세 든 문인들을 많이 만났다. 평균 연령도 65세는 되지 않았을까 싶다. 연령 외에 문학 축제의 또 다른 특성도 볼 수 있었다. 첫째, 한국을 떠나 살고 있지만 한글로 소설, 수필, 시, 시조, 동화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활동한다는 점이다. 참으로 존경스러웠다.
두 번째로 동인지(同人誌)를 만들어 작품들을 기록하고 보존해 왔다는 것이었다. 동인지에 실린 작가들의 소중한 삶이 이민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조상들이 그랬듯이 말이다.
분단된 탓에 지금은 한반도 북쪽의 문학세계를 모르는 채 살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굴욕적인 패망의 시대는 조선 말기가 아니었나 싶다. 이후 광복때까지, 거의 반세기 가깝게 많은 우리 조상들은 러시아, 멕시코, 중국, 미국으로 이주했다.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후손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그들은 서로를 찾아 나섰고, 함께 모여 살았으며, 정보를 교환하고 도왔다. 신문을 발간해 조국과 동포 간의 소식을 나누었다. 한글을 통해 모국과의 명(命)줄을 놓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조국에도 한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언론기관들이 있었다.
다시 문학 축제로 돌아간다. 미국에도 한국문학 단체들이 있다. 어느 단체에서든지 작품이 선정되면 특수 장르의 신인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작가 중에는 문학을 전공한 분들도 있고, 본업과 문학 활동을 병행하는 분들도 많다. 한국의 김훈, 프랑스의 알베르 카뮈, 미국의 헤밍웨이도 기자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나도 본업과 문학을 병행하는 사람 중 하나다. 환자를 보는 틈틈이, 여가에 통계를 확인하고, 칼럼을 준비하는 의사의 삶을 살아왔다. 희귀 질환을 가진 환자에 대한 정보, 암을 극복한 투병기, 그리고 삶을 마감하는 호스피스 환자 이야기 등을 글로 전했다. 나는 ‘글쟁이’로 생을 마치고 싶다는 생각이다.
2018년 자료에 의하면 한국 작가의 평균 등단 나이가 29세(최연소 16세, 최고령 90세)라고 한다. 하지만 이십 대, 삼십 대가 선호하는 웹 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압도적으로 늘면서 등단 평균 연령도 낮아졌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통계청 (KOSIS)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 수명은 82.7세( 여자 85.6세, 남자 79세)라고 한다. 시니어들이 꼽는 주요 활동으로는 취미·오락(49.6%)과 휴식(52.7%)이 압도적이다. 반면, 문화·예술 활동 참여는 5%에 지나지 않았다. 창작 분야에서 활동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또 한국에서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하는 시니어 인구는 2.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원봉사 시간은 월평균 6.3시간이라고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미국 시니어의 자원봉사 참여율은 25%에 이른다. 연방정부 주도하에 자원봉사를 장려하는 기관과 기업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국제사회보장 리뷰: 2023 가을호, 강은나, 류병주).
우리 세대의 평균 수명은 부모님 세대보다 훨씬 길어졌다. 시니어층에 입문한 후에도 일 할 능력이 있다면 직업을 찾아보고, 참여하면 좋을 것이다. 꼭 수입을 창출하는 직업이 아니라도, 봉사 활동이나 여가 활용을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신 건강, 육체 건강, 정서 건강에 신경을 쓰면서, 사회활동에도 참여하는 시니어가 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혹시 영어 소통이 힘들다고 생각된다면 한인 단체에서 활동하는 것도 방법이다.
나이가 들었다고 ‘뒷방 늙은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세상엔 ‘노년병’의 참여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 도와 달라고 손 내미는 곳에, 도움을 주자. 도움을 주는 삶이 축복의 삶이 아니겠는가.
류 모니카, M.D. / 미국 종양방사선학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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