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무곡 청소년 마을

이번 학기 초에 나는 새 스승님을 만나게 됐다. 내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하고 오히려 피하기만 했던 일들이 일어났다. 나는 스승님을 돌봐줘야 했고, 많은 집착도 받았다. 처음엔 힘들고 원망스럽기만 했다. 그것들이 내겐 너무 버겁고 억울하기도 했다. 그 스승님을 마주하는 것이 두렵고 지쳐갈 때쯤, 내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친절하게 모든 말에 웃어주던 내가 점점 화도 내고, 대답을 회피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어딘가 불안했다. 내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그 스승님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 그 스승님에게는 언제나 내 화를 참아가며 웃어주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조건 없는 사랑이라는 게 그런 건 줄 알았다. 현곡께 여쭤보니 웃는 것만 조건 없는 사랑이 아니라, 화내고 잔소리하는 모든 게 사랑이라 하셨다. 이때는 이해가 안 됐지만, 그래도 안심하고 조금은 편안하게 지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 힘들고 지쳐서 스승님을 피해 다녔다. 그럴수록 그 스승님은 내게 집착했다. 내가 대꾸를 안 하니까 40분 동안 쉬지 않고 울어댄다거나, 새벽 2시까지 안 자고 기다리고 있는다거나, 어딜 가든 쫓아다니며 운다거나. 내가 눈앞에 30분 만이라도 사라진다면 날 찾아다니며 울었다. 난 그게 너무 힘들었다. 내게 악성 스토커나 사생팬이 생긴 기분이었다. 한창 그럴 때 현곡의 강의를 듣다 내 머릿속에 꽂힌 말이 있었다. 사건을 해석하는 것. 최상의 해석. 그리고 난 그걸 경험했다. 다들 옆에서 내게 스토커가 붙었다 했고, 나조차도 그렇게 생각했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애초에 그 스승님이 내게 집착하는 것은 날 너무 사랑하기에 그런 것 아닌가. 나는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는 행복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내게 집착하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사랑받는다고 생각하니 좋았다. 그래도 지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똑같은 말을 하며 울어대는 그 소리를 듣기가 힘들었던 나는 결국 나를 찾아내지 못하도록 슬리퍼를 숨겨가면서까지 피했다. 그 사실이 선생님들 귀에 들어가고, 잠시 거리를 두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렇게 홀로서기를 시작하게 됐다. 그 얘기를 듣고 좋기도 했지만 아쉬움이 더 컸다. 난 사랑받는 기분이었으니까 그렇게 힘들지도 않았고, 홀로서기를 하면 그 스승님과 있으며 배울 기회를 놓쳐버리는 게 아닐까 조급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 과제를 어떻게 해야 빨리 끝낼지만 생각했다. 그런데 앞이 너무 막막했다. 난 아직 이 과제가 뭔지도 모르겠고 겁부터 났다. 그때 스치듯 지나간 생각은 순간을 즐기자는 것. 그렇게 순간을 살아가니까 막막함의 해답이 보였다. 막막한 기분이 들면 막막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지. 여공께선 이 과제가 내게 주는 상이라고 하셨다. 말 그대로, 내게 이 과제를 주신 건 내가 더 힘들어지라고 한 것도 아니고 내가 더 행복해지기 위해 과제를 내주셨을 텐데 쓸데없는 걸로 스트레스나 받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홀로서기를 한 후에도 내게 집착하는 건 변하지 않았지만 내게 직접적으로 집착하지 않았다. 대신 내 주변 친구들을 힘들게 했다. 그래서 친구들은 그 스승님에게 "네 옆에 지혜가 없으면 행복하지 않고, 지혜가 있을 때만 행복한 건 가짜 행복이야."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리고 놀다가 친구가 내게 농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을 똑같이 해줬다. 일단 나는 그 말이 크게 와닿았다. 내가 나로 있을 수 있어야 행복하다. 나는 살면서 그걸 느끼고 있었다. 언제나 사랑이 넘치고 즐겁고 행복했던 건 지금 이 순간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되고 싶은 내가 무엇인지 아직 정하지 않았었다. 곰곰이 생각하니 이번 학기를 시작하면서 마음속 한편에 자리 잡고 있던 그냥 살기라는 말이 자꾸 튀어나오려 했다. 무언가를 할 때 굳이 이유를 찾으려 애쓰다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 그냥 하는 게 훨씬 좋지 않은가? 그냥 살았더니 이렇게 행복해졌는데. 사람들이 내게 삼무곡에 왜 왔냐고 물어봐도 난 그냥 왔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정말 그냥 살았더니 삼무곡을 만났고, 그냥 살았더니 사랑이 넘치게 살고 있고, 그냥 살았더니 지금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현곡께서 애쓸 필요 없다고 하신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됐다. 그래서 난 그냥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정했다. 습관적으로 사는 거랑은 조금 다른 그냥 사는 사람. 검색해보니 그냥의 뜻은 (있는 그대로)/(아무 생각·조건 없이)라는 뜻이다. 난 그냥 사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인 나다. 시간이 좀 지나자, 변화가 생겼다. 그 스승님은 스스로 발전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없으면 안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서로 너무 잘 살아가고 있어서 놀랐다. 친구들은 그 스승님을 나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대하고 있었다. 난 그게 잘못됐다 생각했다. 내가 생각했던 조건 없는 사랑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주는 거였는데, 이렇게 떨어져 보니 떨어져 있는 것도, 매정하게 대하고 화를 내는 것도, 어떤 것이든 정말 모든 게 사랑이구나를 알았다. 나는 요즘 정말 행복하다. 사랑이 넘치는 기분이라서 평소에는 절대 안 하던 행동들을 해도 전혀 조급하지 않고 모든 순간이 나고, 사랑이라는 걸 느끼고 있다. 삼무곡 친구들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