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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6/244일차> 2012년 6월 11일(월) 라파스-->코파카바나, 맑음, 숨막히는 비경들
라파스에서 코파카바나로 향하는 버스에서 바라본 티티카카 호수.
오염되지 않은 태초의 자연의 색깔을 보는 듯합니다.
오전에 시내를 돌아보고 우체국에서 가족에게 엽서도 보내는 등 휴식을 취했다. 시내에선 볼리비아의 유명한 볼거리 중 하나인 성 프란치스코 성당(Iglesia de San Francisco)도 돌아보았다. 스페인이 볼리비아를 점령하고 라파스를 설립하던 1548년 처음 건축됐으나 1610년 폭설로 인한 눈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붕괴돼 1784년에 재건됐다는 성당으로, 웅장하고 고색창연하게 서 있었다. 시내에선 차량이 늘어나자 얼룩말 모양의 복장을 한 사람들이 교통질서 캠페인도 펼치고 있었고, 한편에선 광산 노동자들의 작은 시위도 벌어지는 등 복잡했다.
가족들에게는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이 담긴 엽서를 보냈다. 둘째 동희가 가장 가보고 싶어했던 곳이었는데, 유럽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는 바람에 나 혼자 여행하게 된 아쉬움을 엽서에 담아 보냈다. 엽서에 “여기가 동희가 가보고 싶었던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이야. 굉장해.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야. 아빠는 3일 동안 우유니 고원사막을 종횡무진 누비면서 무척 행복했어. 평소 아빠도 무척 보고 싶었거든. ‘아빠는 꿈을 이뤘다’는 생각도 들었어. 동희도 열심히 노력해서 자신의 꿈을 이루도록 해. 꼭~. ‘꿈은 이루어진다’. 동희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 파이팅!!”이라고 썼다. 꿈을 갖고 앞으로 걸어가길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라파스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
16세기에 처음 지어졌다가 눈의 무게로 붕괴돼 18세기에 다시 건축됐습니다.
라파스의 중앙우체국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부들의 시위 현장.
취재진도 보입니다.
얼룩말 모양의 복장을 한 사람들이 횡단보도의 교통질서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11시40분 숙소에서 택시를 타고 코파카바나(Copacabana)행 버스가 출발하는 세멘타리오(Cementario)로 이동했다. 세멘타라오 터미널은 번듯한 건물이 있는 터미널이 아니라 코파카바나 등 일부 지역을 운행하는 버스회사들이 승객을 모으고 차량을 운행하는 장소였다. 아직 공공버스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돼 있지 않아 공터에서 손님들을 태우고 내렸다.
숙소에서 소개해준 대로 망코 카팍(Manco Kapac) 버스회사를 찾았으나 회사는 없고, 버스만 서 있었다. 버스 앞에서 티켓을 팔고 있었다. 버스비는 20볼리비아노(약 3400원)였다. 50볼리비아노를 줬더니 20볼리비아노만 거슬러 주고는 뭐라고 한찬 떠들어 정신이 산란할 지경이었다. 차장의 횡설수설이 조금 수그러들자 20볼리비아노를 보여주며 나머지 거스름돈을 달라고 하니 그제서야 10볼리비아노를 더 내주었다. 그 버스 회사 직원이 얼렁뚱땅 10볼리비아노를 챙기려 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혼란스러웠다. 아무래도 신경을 써야 할 일이 많았다.
코파카바나로 가는 버스. 티켓을 버스 앞에서 팝니다.
12시15분 버스가 세멘타리오를 출발해 코파카바나로 향했다. 어제 신나게 돌아다녔던 알토(Alto)~훌리오(Julio) 지역을 거쳐 시내를 빠져나갔다. 알토 언덕을 지날 때 차창 밖으로 포토시 전경이 펼쳐지자 서양 여행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대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무리 봐도 장관이다. 인간이 만든 경이적인 삶의 현장이다. 어쩌면 이것이 진정한 인류의 문화유산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또 들었다. 나는 반대편의 나무에도 관심이 많았다. 여기가 해발고도 4000m가 되는 곳인데 나무들이 튼튼하게 자라 있었다. 조림을 하면 충분히 숲으로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라파스 외곽의 언덕 비탈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나무들을 보니 중국 정부가 해발 4000m 이상의 티벳고원에서 실시한 조림이 떠올랐다. 아직 볼리비아가 그것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지만, 궁극적으로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려면 조림이 필요하다.
해발 4000m 근처에서도 자라는 나무.
그렇다면 조림도 가능한 것 아닌지...
어제 작은 노점들과 주민들로 법석거리던 알토지역과 훌리오 시장은 깨끗이 정리돼 있었다. 시장이 일요일만 열리고, 평일에는 사람과 차량이 운행하는 도로로 바뀌는 것이었다. 어제 그렇게 붐비던 시장이 진짜 현실이 맞았는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바뀌어 있었다. 버스는 알토와 훌리오 지역의 정류장에 정차해 손님을 더 태우고 출발했다. 정류장 표시는 없지만, 코파카바나로 가는 승객들이 몇 명 기다리고 있다가 버스가 도착하자 올라탔다.
라파스 시내를 벗어나 외곽으로 나가자 숨 막히는 풍경이 펼쳐졌다. 때 하나 묻지 않은 파란 하늘과 그 하늘에 점점이 떠 있는 하얀 구름, 저 너머로 흰눈을 뒤집어 쓰고 있는 설산들, 한참 가을걷이가 진행중인 들녘과 평화롭게 자리잡은 마을들... 모든 사물들이 선명하고 또렷하게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이곳이 고산지역이라 구름이 바로 잡힐 듯이 하늘에 떠 있고, 공해나 먼지가 전혀 없고, 건조한 날씨로 시야를 가릴 것이 전혀 없다.
가을걷이를 끝낸 들녘과 산, 구름, 하늘이 멋지게 펼쳐집니다.
멀리 높은 산에는 눈이 쌓여 있습니다.
해발고도는 4000m 안팎으로 매우 높지만 위도로 보면 16도 안팎으로 사실상 열대지역인 관계로 한창 가을걷이가 진행 중이다. 언뜻 보면 한국의 1970년대 농촌 풍경을 보는 듯하다. 그러고 보니 가을을 계속 여행하고 있다. 중국, 티벳, 네팔을 여행할 때도 가을이었고, 남미로 넘어와 칠레의 산티아고에서 안데스를 넘어 아르헨티나 멘도사로 넘어올 때, 산티아고와 멘도사의 와이너리를 여행할 때에도 가을이었는데, 여기도 가을이다. 해발고도는 티벳과 비슷하지만 적도에 가깝기 때문에 훨씬 따뜻하다. 나무도 푸르다. 아름답고 환상적이다.
가을걷이를 끝낸 후 밭을 갈아놓기도 했습니다.
들판과 마을이 마치 1970년대 한국을 보는 듯합니다.
환상적인 풍경에 젖어들어 가면서 이번 여행을 시작하기 전의 숱한 고민과 갈등의 나날들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번 여행을 생각할 때만 해도 여행을 통해 나와 가족에 어떤 변화의 전기를 마련하면 좋겠다는 염원과, 경제적인 문제, 창희와 동희의 학업, 특히 고등학생인 동희가 학교를 중도에 그만두어야 하는 문제 사이에서 끝없이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기 해외여행을 위해 나나 아내나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 것도 심각한 고민이었다.
여행 이후의 삶에 대해 아내와 수없이 많은 대화를 나누었지만, 딱히 해답은 없었다. 대화는 항상 이상과 현실 사이를 오락가락할 뿐이었다. 결론은 단순했다. 우리가 하고 싶은 여행을 하느냐, 아니면 현실의 벽을 받아들이느냐의 ‘선택’의 문제였다. 여행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단순한 ‘결단’의 문제였다. 아무리 대화를 나누고, 제3의 길을 찾아봐도 최종 결론은 동일했다. 둘 사이의 타협은 있을 수 없었다. 그렇게 고민과 갈등을 반복한 끝에 ‘여행을 하자’는 쪽으로 결단을 내렸다. 그런 다음, 여행은 어떻게 할 것이며, 여행한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고, 캄캄하던 앞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행을 시작해 아내와 창희, 동희는 유럽을 끝으로 귀국했고, 나만 나머지 일정을 진행하고 있다. 남미와 북미 일정을 함께 하지 못한 아내에게는 미안했지만, 우리 가족은 그 동안 진한 가족애와 서로간의 신뢰를 쌓을 수 있었다. 직장과 학교생활에 정신없이 지내던 한국에서 가질 수 없었던 가족만의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 동희는 대학 진학을 위한 공부에 전념하겠다며 귀국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여행을 하면서 자신의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고, 나름 결론을 내렸다. 여행하기 전의 고민과 걱정은 기우였다. 우리 가족은 더 강해졌다. 현실의 끈을 내려놓으니 새로운 길이 보였다. 각자 희망을 본 것이다.
남미 고원의 환상적인 풍경 속으로 달려가고 있는 나는 지금 무척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체를 알 수 없지만, 여행으로 새로운 활력을 찾고 있다. 마음을 비움으로써 찾은 행복감이 그 희망과 활력의 원동력이었다. 그 동안의 치열했던 삶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도 든다. 새벽 여명을 받으며 우유니 소금사막을 달릴 때에도 행복감이 몰아쳤는데, 라파스에서 코파카바나에 이르는 안데스 고원을 달리면서 무엇에도 견줄 수 없는 행복감이 몰아친다.
이 여행으로 갈등과 번민에 휩싸여 생활했던 20여년의 사회생활에 대한 보상을 받은 것 같다. 나는 이제 ‘내가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얼마나 달리고 싶었던 티벳의 고원이었고, 안데스의 고원이었나. 각박한 현실에서 얼마나 벗어나고 싶어했던가. 나는 이제 그 모든 것을 이루었다. 여행이 삶에 대한 희망과 활력을 가져다준다면 바로 지금의 이 만족감과 행복감이 아닐까. 그 행복의 바이러스를 가족에게 그대로 전달하고 싶다. 내가 행복해야 가족도 행복할 것 아닌가. 나는 가족을 위해 희생한다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으면서, 그래서 자신은 불행하다고 생각하면서, 자식과 가족에게 꿈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의 희생과 불행은 가족에게도 불행이다. 내가 행복해야 가족도 행복한 것이다.
고원에 쏟아지는 햇살과 맑고 투명한 공기로,
모든 사물의 색깔이 원형 그대로 드러나는 듯합니다.
한국에서 보던 것과 색깔이 다릅니다.
라파스를 떠난지 2시간여가 지나자 티티카카(Titicaca) 호수가 나타났다. 호수 저편으로는 여전히 설산들이 자리잡고 있고, 파란 하늘을 반사한 쪽빛 호수가 아름답게 펼쳐졌다. 2시간 30분 정도가 지나자 버스가 호수 앞에 정차하고, 승객들이 버스에서 내렸다. 중간 휴게소에 정차한 것인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코파카바나는 라파스에서 오다 보면 티티카카 호수 건너편에 있는 마을로 다리가 없기 때문에 산 페드로 티퀴나(San Pedro Tiquina)라는 곳에서 호수를 건너야 했다. 사람들은 1.5볼리비아노의 탑승료를 내고 작은 보트로 호수를 건넜다. 우리가 타고 온 버스는 따로 바지선을 타고 호수를 건넜다.
티티카카 호수를 건너는 버스를 태우고 바지선이 출항합니다.
선착장. 청명하기 그지없습니다.
티티카카 호수와 마을.
아름다운 고원의 호수를 이색적으로 횡단하는 경험이었다. 한께 보트에 탑승한 아르헨티나 젊은 남녀 여행자도 이런 호수 횡단은 처음이라며 흥미롭다고 연신 혀를 내둘렀다. 티퀴나 마을도 아름다웠다. 날씨는 전형적인 가을의 청명함 그 자체다.
티티카카 호수를 건너자 잉카의 상징인 망코 카팍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
선착장의 작은 상점.
호수를 건넌 승객들이 다시 버스에 탑승하자, 이번에는 호수를 끼고 1시간 정도 달렸다. 코파카바나는 아름답고 작은 마을이다. 버스가 터미널에 도착하기 전에 아이폰을 켜보니 내가 점찍어 놓은 소니아 호스텔(Sonia Hostel)이 나타났다. 버스가 바로 소니아 호스텔이 있는 골목 입구에 정차했다. 나는 잽싸게 일어나 짐을 챙겨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가 코파카바나에 근접하면서 일종의 시외버스 역할을 하기 시작해 운전수에게 얘기하자 바로 내려주었다. 아이폰을 보면서 걸어 바로 호스텔을 찾을 수 있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코파카바나에 따로 버스 터미널이 있는 것이 아니라 타운 중간에 버스 정류장이 있을 뿐이었다.
버스가 티티카카 호수를 끼고 달립니다.
양과 말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습니다.
차창으로 비치는 청명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눈은 물론 마음도 시원하고 상쾌해집니다.
호스텔에 도착해서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내가 도착하자 주인의 딸인 듯한 어린 직원이 혼자냐고 묻더니 아무런 절차도 없이 싱글 룸으로 안내하는 것이었다. 나는 “아니다, 나는 도미토리를 원한다”고 했더니, 그 직원은 “도미토리는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내가 “가격은 얼마냐”고 물으니 “40볼리비아노(약 6800원)”라고 답했다. 놀랄 정도로 저렴했다. 포토시에선 6인 도미토리가 35볼리비아노, 라파스에선 6인 도미토리가 55볼리비아노였는데, 여기선 화장실이 달려 있고 커다란 침대를 가진 싱글룸이 40볼리비아노라니 믿기지 않는 가격이었다.
그 이후 다른 가격을 알아보면서도 저렴한 가격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태양의 섬(Isla del Sol)’을 왕복하는 보트 가격은 25볼리비아노(약 4250원), 쿠스코까지 12시간 버스로 여행하는 비용도 90~160볼리비아노(약 1만5300~1만7200원)에 불과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야간버스비가 10만원이 넘었는데....그러고 보니 3시간 반 동안 달려온 라파스~코파카바나 버스비도 20볼리비아노에 불과했다. 볼리비아의 물가는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하다.
태양의 섬 보트 예약을 마치고 코파카바나 타운을 둘러보았다. 3810m의 고원에 자리잡은 대형 호수 티티카카 호를 끼고 있는 작고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타운 한 가운데엔 2월 광장이 있고, 그 앞에 1583년에 지어졌다는 카테드랄이, 광장 공원엔 사람들이 평화롭게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상가를 따라 걸어 내려가 호수 옆에 있는, 햇살이 잘 비추는 카페 겸 레스토랑에서 샌드위치(12볼리비아노)와 카페(5볼리비아노)를 주문해 먹고 마시면서 이것저것 여행 메모를 했다. 여유와 평화를 만끽했다. 호수 저편으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면서 붉은 노을이 호수와 마을과 카페를 물들였다. 글로만 보던 마음의 평화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코파카바나의 성당.
해가 막 넘어갈 때 태양의 섬 여행을 마친 여행자들이 작은 항구에 도착했다. 마치 황혼의 호수에서 막 올라온 듯, 그들도 붉은 노을에 흠뻑 물들어 있었다. 카페의 내 옆 자리에 프랑스 여행자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들에게 태양의 섬이 어떠했느냐고 물으니 “환상적이었고, 흥미진진했다”면서 만족감을 표했다. 그들은 맥주를 주문했다. 나는 내일 태양의 섬을 일주할 계획이라고 하니, “섬에 난 길이 환상적이니 꼭 걸어보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프랑스 여행자들로부터 태양의 섬 여행에 대한 정보도 얻으며 따뜻한 가을 오후를 마음껏 즐겼다.
석양이 비치는 코파카바나 선착장.
티티카카 호수에 해가 지고 있습니다.
코파카바나 선착장 옆의 건물들이 석양에 빛나고,
그것이 다시 호수에 반사됩니다.
해 지는 것을 감상한 다음, 동네 식당을 찾아 스테이크를 주문해 식사를 했다. 그런데 가격이 12볼리비아노에 불과했다. 일부러 관광객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곳을 피해 동네 주민들이 이용하는 로컬식당을 찾으니 가격이 더욱 저렴했다. 호숫가의 전망 좋은 식당에서 먹은 샌드위치 가격과 비슷했다. 그런 다음 4.5볼을 주고 비누를 하나 사서 숙소로 돌아오는데 너무 기분이 좋아 동네 가게에서 와인도 한 병 샀다. 숙소에서 와인을 한 잔 하며 인터넷에 글을 올리려 했으나, 와이파이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글은 올리지 못하고, 향후 일정만 점검했다.
내일 ‘태양의 섬’을 돌아본 다음, 13일(수) 오전 9시 코파카바나를 출발해 페루로 넘어가 푸노를 거쳐 쿠스코에 도착할 예정이다. 14일(목)~16일(토) 3일간 쿠스코와 마추픽추를 여행한 다음, 17일 리마로 이동해 2일 정도 머물며 이후 일정을 다시 짜야 할 것 같았다. 우유니에서 포토시~라파스를 거쳐, 이제 안데스 고원의 전통문화가 유지되고 있는 산맥의 심장부로 점차 다가가고 있다. 남미 여행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는 묘한 설렘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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