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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달리기대회 출전이라니 생각도 못했던 일인데...
원정훈련할 때, 등반에 필요하다 싶을 때 빼고는 달리기를 꾸준히 즐기는 편이 아닌데 중년이 된 지금 어느날 갑자기 달리기에 호기심이 생겼다.
올해 언제쯤이었던가 TV를 통해 우연히 부부가 대한민국종단 622km 철인울트라마라톤대회에 참가한 인간극장 다큐멘터리를 보고 달리기가 뭔가 매력이 있나보다 그게 뭘까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우연히 육교에 걸린 대청호마라톤대회 현수막을 보게 되었으며 8월 충동적으로 참가신청을 하게 되었다. 신청할 당시 심신이 복잡했던 사유도 있었고 해서 머리 속을 털어버리고 싶은 계기와 이것저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대회 신청한 이후로 9월 초부터 일주일에 한번 정도 6km 내지는 7km를 뛰었고 대회 4일전 집에서 관평동까지 갑천을 따라 약 13km 정도 달렸다. 내 생애 자발적으로 6, 7km를 뛴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13km 라니 있을 수 없는 기록인데 대회신청한 책임감이 뭐라고 그렇게 되더라.
내가 대회신청한 코스는 하프코스인데 10km도 달려본 적 없던 내가 21km 코스를 신청한 이유는 보통 10km는 훈련없이도 그냥 뛴다고들 하던데 21km 정도는 뛰어야 평소 내가 훈련이라도 할 것 같았고 완주는 어렵더라도 얼마나 뛸 수 있을까 한번 테스트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욕심을 내었다. 완주를 하겠다는 그런 의지도 없었고 그냥 훈련과정에 의의를 두었다고 할까.
아무튼 그렇게 대회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고 대회 참가하기 전에 훈련거리의 두 배인 14km 정도는 달려보고 참가해야 하지 않겠나 계획해오던 것이 있어서 겨우 간신히 10월 13일(목), 집에서부터 출근해야 하는 관평동까지 천변을 따라가면 대략 13.8km가 나오길래 버스를 타고 가던 이동방법을 마지막 훈련도 할 겸 뛰어서 가볼까 날씨도 좋은데 하여 바로 실행. 생애 처음으로 10km가 넘는 거리를 뜀박질로 가보겠다는 무모한 도전을 하게 되었다. 선글라스 챙기고 팔토시 입고 운동화 바닥창도 두툼한 걸로 갈아끼우고 출발하려는데 살살 배가 고프다? 밥을 먹으면 뛸 수가 없을테고 에이 그냥 가자. 물도 안챙기고 핸드폰도 놓고 교통카드 하나 달랑 챙겨 출발했던 것이다.
달릴 때 숨이 가쁘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문제는 내 속도이다. 더 빠르게 속도를 높이면 지쳐버려서 장거리를 달릴 수가 없다. 평속대로 달리면 좋은데 2시간 30분 내에 21km 완주는 불가능할 것 같다고 생각하다가 헉? 내가 지금 21km를 완주할 생각을 하고 있는거야? 너 뭐 착각하는 거 같다.
10km 지점 정도였을까 골반이 흔들리는 것처럼 시큰한 느낌이고 운동화 속에서 발가락 끝이 아프다. 엉치쪽을 손으로 두드려가며 달리는데 용신교 바로 밑에서 나도 모르게 배터리 방전되듯 다리가 서버렸다. 걷는 것이 이렇게 편안한 일이었다니... 한동안 좀 걷다가 다시 뛰어 관평동으로 이어지는 도로가로 빠져나와 간신히 간신히 목적지까지 도착은 했지만, 너무 배가 고프고 지쳐서 편의점으로 뛰어들어가 양갱 3개와 우유300ml를 흡입하고는 편의점을 다시 나오니 왜 이렇게 추운지... 오종종한 몰골로 어기적어기적 암장까지 겨우 걸어갔다.
도착하니 미영이가 놓고 간 고구마와 삶은 계란이 있다길래 뜨거운 물에 그것도 먹어주고... 그렇게 마지막 훈련을 마치니 그제서야 하프코스 완주는 불가능하다는 것과 몸이 지쳤을 때 단 1km도 그렇게 멀게 느껴지는 것이란 걸 체감했다.
훈련 다음날인 금요일은 계단을 내려갈 수 없어서 어기적거렸고 이래서야 일요일 대회도 출전할 수 없는 것 아닐까 하는 불안감으로 토요일까지 푹 쉬는 일에 매진했다(금요일 저녁에 또바기 회의, 토요일에 암장 출근이었지만).
토요일 저녁에도 경미한 근육통이 느껴졌지만 문제는 그제서야 대회본부에서 보내준 코스개념도를 파악했다는 것이다. 개념도를 보니 6km 지점부터 엄청난 오르막길이 이어지고 전체적으로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되는 힘든 코스라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지루하지 않아서 좋기야 하겠지만, 오버페이스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할 것 같다. 지도를 통해 음수대가 평균 2km 마다 있고 두 번의 이온음료가 제공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초반에는 물을 마시지 않고 10km 쯤 가면 마셔야겠다 계획했다.
불안한 마음에 유튜브에 들어가 마라톤 tip을 검색했다. 호흡이 중요하단다. 특히 뱉어내는 호흡. 꾸준한 마라토너도 달리는 내내 호흡에 집중한단다. 그리고 오버페이스 하지 않도록 초반에 천천히 달리라는 것. 장거리 대회에 참가할 때는 2~3일전부터 탄수화물 섭취에 신경을 쓰란다. 대회 당일에 에너지 소모가 크기 때문에 에너지 공급이 잘 되도록 탄수화물을 저장해놓으라는 것인데 나는 당장 내일이 대회이니 이미 늦었다. 그래도 괜히 저녁먹은지 얼마 안되었지만 바나나 두 개를 먹어주었다.
욕심부리지 말고 17km지점에서 회수차량을 타고 도착지점에 들어가자. 기껏해야 13km 정도 뛰었는데 너무 불가능한 일이다 생각되는데도 예민해진다. 퇴근해서 들어오는 남편에게 짜증내고...
10km 미니코스 신청할 껄 괜히 욕심을 내었나 마음이 불안정하다.
웬만하면 혼자 참석해서 뛰고 오고 싶은데 마라톤 대회에 혼자 참가하는 경우 개인소지품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 본부측에 맡길 심산으로 혼자 갔다가 안맡아준다고 하면 어떻하지? 힙색을 차고 뛸까? 아무래도 불편할 것 같다. 에이,, 친정부모님께 바람쐴겸 같이 가주십사 부탁드려볼까? 아무리 생각해도 누가 함께 가주는 방법 밖에는 없을 것 같아 아버지께 부탁을 드렸다. 다행히 스케줄이 없다고 하셔서 부모님 모두 동행해주시기로...
16일(일) 대회 당일 아침 6시 30분.
누룽밥에 가볍게 아침식사를 했다. 꿈자리가 매우 뒤숭숭하다. 호러물도 그런 호러가 없을 정도로 잔인한 꿈을 꾸었다. 무서운 영화도 잘 못보는데 꿈 속의 장면은 왜 그렇게 잔인한지 내 무의식에 뭐가 있길래 그런 꿈을 꾸는건지 모르겠다.
양치질 하면서 보이는 화장실 창문 바깥 하늘이 흐리네~
상의는 대회측에서 보내준 hummel 티셔츠를 입고 하의는 오늘 날씨를 고려해 아주 얇고 신축성 좋은 긴 쫄쫄이를 입었다. 신발은 런닝화가 없어 고민을 좀 했지만, 굳이 새로 사지 않기로 하고 밑창 좋은 k2 트레일화를 신기로 했다. 오래 달리면 피가 발쪽으로 쏠려 열 발생은 물론 발이 붓게 되어 다소 큰 사이즈로 신는 게 좋다고 하니 괜찮을 것 같다. 지난번 뛸 때 발가락이 아팠던 것은 신발 사이즈가 원인이었던 것 같다. 양말은 깔맞춤으로 밑창 두툼한 k2 등산양말. ㅎㅎㅎ
오전 8시 아버지차로 대청공원으로 이동한다. 신탄진 쪽으로 해서 대청대교 조금 못미쳐서부터 도로 양쪽에 주차된 차들이 길게 줄지어있고 대회티셔츠를 입은 많은 사람들이 줄 서 있다. 뭐지? 갑자기 불안해진다. 집결장소가 여기가 아닌데 왜 참가자들이 여기 이렇게 많은거지? 처음 참가라 이것저것이 불안한데 알고보니 이곳에서 셔틀버스를 이용하려는 참가자들의 탑승대기줄이었다. 이미 여러번 참가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대청공원에 주차하기가 어렵다는 걸 알고 대청대교에 주차한 후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한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대청공원에 도착하니 자원봉사자 분들이 형광봉과 호루라기로 차량통제를 하고 있었고 우리는 대청댐 진입도로 바로 아래에 주차할 수 있었다. 운이 좋았다. 그렇지 않으면 도로 갓길에 대기 위해서 한참 자리를 찾아서 주차한 후 한참을 걸어서 대청공원으로 다시 내려오는 수고로운 일을 했어야 했을텐데...
참가자들이 공원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보이고 벌써 공원에는 진행자가 스트레칭을 리드하고 있었다. 나도 서둘러 티셔츠에 번호표를 붙이고 칩을 운동화끈에 부착한 후 부모님과 함께 얼른 내려갔다. 가보니 여러 개의 천막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해 어리벙벙한 가운데에서도 개인소지품을 보관해주는 천막을 발견했다. 아~ 대회에 참가하는 참가자들을 위해 번호표별로 보관해주는 천막이 3~4대 있구나 이번에 경험했으니 다음에는 혼자 올 수 있을 것 같다.
달리기 대회참가를 준비하면서 힙색을 매도 되나 혼란스러웠는데 힙색을 매도 된다는 걸 알았다. 지난번처럼 배가 고플까봐 초콜릿이나 사탕을 넣어서 달리면서 먹으려고 했단 말이다. 아무튼 힙색을 가져오기는 했는데 초콜릿이나 사탕 때문에 맬것까지는 없어서 맨몸으로 편하게 달리기로 한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진행자의 구령에 맞춰 스트레칭을 한다. 나는 화장실에 들렀다가 스트레칭을 함께 하며 현장을 스캔해본다. 마라톤클럽에서 참석한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표정이 편안해보이고 자신감이 있어보인다
출발시간이 임박하여 엄마, 아빠께 이따 만날 장소를 약속했다.
오늘 나의 계획은 15km이다. 15km 까지 뛰고 걸어서 17km 언저리에 대기하고 있는 회수차량을 타고 시간에 맞춰 도착지점으로 들어가는 것. 그러면 물론 완주증은 받기 어렵겠지만, 할 수 없다.
진행자의 카운트다운에 맞춰 출발라인을 통과한다. 운동화에 부착한 칩이 출발선을 통과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TV에서 보던 출발선 통과하는 그림을 직접 경험하고 사람들의 달리는 속도와 보조를 맞추어 그렇게 달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따라 뛰다보니 어느덧 3km 지점 표지판을 지난다. 1차 반환점을 향해 달리는데 숨이 너무 차다. 훈련할 때는 숨이 찬걸 잘 몰랐는데 내가 지금 달리는 속도가 빠른가보다. 그때는 물 생각도 안났는데 10km 에서 첫 물을 마시기로 한 계획은 급수정해야할 것 같다. 속도를 늦추고 호흡을 길게 내쉬면서 뛰는데도 조절이 잘 안된다. 아무래도 출발할 때 긴장이 되었던 것들이 심폐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슬슬 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나쳐 앞서간다. '2시간 15분' 페이스메이커 풍선이 지나가는 게 보인다.
4.5km 지점에 있는 음수대에서 물을 마셨다. 한 모금만 살짝 마시고 나머지는 입안을 헹구기만 한 채로 열심히 1차 반환점을 향하는데 조금 달리다보니 왼쪽 옆구리가 아프다. 아, 물을 괜히 마셨나. 달린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옆구리를 부여잡고 달리는거지. 속도를 더욱 줄이고 달린다.
1차반환점을 턴한다. 그린브라우니 카페를 지나 달리다보니 오른쪽으로 드디어 경사가 제법 있는 오르막길 진입이다. 보폭을 좁게 해서 통통 제자리뛰기느낌으로 오른다. 걷는 사람들이 보였지만, 여기서 걸으면 안될 것 같았다. 진도는 안나가더라도 뛰는 걸음을 멈추지는 않겠다는 각오이다. 엄청나게 긴 오르막길을 기어이 뛰어올라 약한 경사도의 길을 뛴다. 계속 옆구리를 부여잡는다. 이제는 고개를 들고 뛰지 못하겠다. 호흡이 힘들어서 약 30도 각도로 땅을 보고 뛴다. 음수대는 보이는 족족 이용했다. 입으로 호흡을 계속 했더니 입 속이 건조하고 폐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듯한 입냄새 때문에 입 속을 촉촉하게 하기 위해서 물로 계속 헹궈줬다. 반 컵씩 밖에 담겨 있지 않은 물을 옆의 컵까지 물을 합쳐서 한 모금은 가글해서 버려내고 한 모금은 꿀꺽 마시고 남은 한 모금은 입에 담고 뛰다가 뱉었다. 내 옆구리 결리는 게 물 때문이 아닌 것 같다는 확신이 든 다음에는 물을 조금 더 많이 마셨다. 입 속에 들어오는 물을 마시고 싶다는 충동 때문에 안먹기가 쉽지가 않다.
지루한 오르막이 심한 구간을 힘겹게 달리면서 거리를 줄여나갔다. 언제 2차 반환점이 나오나. 벌써 반대편으로는 속도가 빠른 선두그룹이 내려가고 있고 8km, 9km 이를 악물며 2차 반환점만 나오기를 고대하며 달린다.
중간그룹과도 거리가 많이 벌어져 나는 이미 후미에 속해있다는 걸 감으로 느꼈다. '2시간 30분' 페이스메이커도 이미 내가 8km 지점 달리고 있을 때 내 앞을 지나가버렸지만 어차피 나는 완주가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15km를 목표로 내 속도로 달리자고 마음을 먹었다. 내가 달리는 코스는 한산하다. 간간히 몇 명의 런너들이 보였고 지금도 간간히 나를 앞서달려나가는 참가자들도 있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속도이다. 다행히 옆구리를 누르고 뛰면 달릴만하다는 것이다. 결리는 고통이 심하면 압박해도 소용이 없는데 다행이다.
음수대가 보이고 이제 2차 반환점 까지 제법 온 것 같은데 멀리 보이는 런너들이 턴을 하는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오히려 급경사 오르막을 오르는 모습이 보여서 '이거 다시 이를 악물어야 하나' 마음을 다잡고 있는데 반환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급경사 오르막을 오르다보니 반환점 통과 울림음이 들린다. 사람이 적어져서 그런지 출발점과 1차 반환점에서 들었던 요란한 사운드가 아니다. 나도 드디어 2차반환점을 통과! 고개도 못들고 눈만 돌려 11이라는 숫자만 겨우 확인한다.
급경사 내리막을 살살 내려가며 내뱉는 호흡을 길게 하면서 심폐를 가다듬었다. 좀 전에 지나친 음수대에서 바나나 1/3조각을 먹고 물을 왕창 넘겼다. 입 속을 가글하고 다시 뛰기 시작. 2차 반환점을 돌아서 가는 길은 내리막구간이 많다. 약한 경사의 오르막도 있었는데 다리가 지쳐서인지 이제는 약한 경사도 힘이 든다.
나는 구불구불한 길이 나오면 직선주로를 찾아 조금이라도 달리는 거리를 줄였다. 내 나름의 머리쓰기.
얼마나 달렸을까 머릿속으로 가늠하고 있는데 표지판이 보인다. 남은 거리 7km!!
사람 심리가 14km 달려왔다는 것과 남은 거리 7km는 받아들이는 인식에 있어서 차이가 큰가보다. 15km 만 달리자 생각하고 뛰고 있었는데 남은 거리 7km라고 하니 끝까지 완주를 해보자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 표지판을 보자마자 시계를 보니 10시 40분쯤 되었었고 1시간 가량 남았으니 한번 해보자로 생각이 바뀐 것이다. 게다가 2차 반환점을 돌고 내리막구간이 많은 길을 달리는 동안 조금 기운이 살아났던 것 같다.
그렇게 해서 나의 목표가 14km 통과하면서 바뀌었다. 어떻게 되었든 달려서 완주해보는 것으로.
15km 구간쯤을 통과하는데 음수대에 계시던 봉사자분들의 응원의 목소리가 들린다. 분명 내 앞으로 사람이 없으니 나에게 보내는 응원인데 갑자기 왈칵 하며 뜨거운 것이 목구멍으로 올라왔다. 나도 알 수 없는 뭔가가 터지면서 울음이 나는데 그게 뭐였을까. 그것에 대해 생각할 새도 없이 목울음 때문에 호흡이 갑자기 엉키기 시작하여 진정시켜야 했다.
16km 구간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이 틀어졌다. 그것은 이제 로하스캠핑장 쪽으로 가는 마지막 후반구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음수대에서 물을 또 왕창 마시고 짧지만 급경사 오르막을 치고 오른다. 보폭을 조금씩 해서 올라보자 했건만 오르막길 2/3쯤에서 자동으로 다리가 멈춰버렸다. 11km 지점에서부터 나랑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달리던 0.5안나라는 티셔츠를 입고 계셨던 분은 허벅지에 근육통이 오는지 간간히 멈춰서 두들기기도 하고 스트레칭도 하는 모습이다. 이를 악물고 걸어서 오르막꼭지점에 올라섰다. 한동안 계속 걷다가 앞에 보이는 런너 두 분이 다시 뛰는 모습을 보고 나도 다시 뛰기 시작했다. 구불구불하게 틀어지는 주로가 보인다. 계속 뛰면 언젠가는 끝나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멈추지만 말자 뛰어야 거리가 줄어든다 주문처럼 계속 되뇌였다.
로하스캠핑장을 지나친다. 오른쪽 갓길에 펄럭이는 깃발에 하프코스 18km 라는 글자가 보인다. 아직도 3km나 가야한다.
'으~~~'하는 신음소리가 절로 난다. 내리막길이 이렇게 힘들수가 있나. 어떤 남자선수는 내리막길을 힘차게 뛰어내려가던데 나는 내 무릎을 위해서 절대로 그렇게 갈수가 없어서 나름의 주법으로 무릎에 부담을 최소화하며 내려갔다. 무릎을 굽히지않고 좌우로 넓게 벌려서 통통 뛰듯 내려가면 무릎에 불편감이 줄어든다.
하지만 내리막도 싫다. 그냥 평지만 나와라 그런 심정이다.
11시 16분 19km 구간을 통과한다. 맨 후미그룹인가보다. 음수대 테이블 두 개중 한 개를 철거하는 것이 보인다. 역시나 물을 벌컥벌컥 마셔주고 남은 2km를 달린다. 저 앞서 달리던 0.5안나 님이 드디어 허벅지에 쥐가 난건지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힘내시라는 마음의 응원을 오면서 몇 번이나 했는지 아마 모르실껄요. 입으로 내뱉지않은 이유는 나나 힘을 내자 싶어서 마음으로만 ... ㅎㅎ
남은 2km 레이스는 그야말로 정신력을 쥐어짜야하는 구간이었다. 입으로 신음소리가 절로 나고 걷게 된다. 남은 구간 1km 푯말을 보자마자 500m만 뛰자 싶어 앞에 멀리 보이는 깃발 하나를 정해놓고 타겟삼아 무조건 거기까지 뛰었다. 이제 대청공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거의 다 왔는데 여기가 오르막길이라 뛰어지지가 않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나를 향해 막 가깝게 다가오시는데 우리 아버지셨다. 기다리시다가 여기까지 마중을 나오셨나보다. 힘들어죽겠는데 아빠가 내 손을 잡고 이끄신다. 따라갈 수가 없어서 아빠 못뛰겠다고 하고 걸었다. 조금 걷다가 finish 라인이 보이자 다시 뛰기 시작, 드디어 말도 안되는 21km 완주가 현실이 되었다.
엄마, 아빠의 지극정성 지원으로 물 500ml 원샷을 하고 finish라인에 서서 사진도 찍었다. 감동을 되새김질할 새도 없이 엄마, 아빠의 손에 이끌려 묵국수를 먹는다. 막걸리 까지 먹어야 한다는 아버지 말씀에 그거 마시면 저 큰일난다고 말리고 묵국수 국물까지 원샷하고는 과일로 마무리하였다.
부모님과 데크에 앉아 노란색으로 물들어가는 가을 풍경 속에서 소풍나온 기분을 만끽하였다. 아빠가 출전한 어느 가족과 나눈 짧은 담소도 좋았다. 그 가족은 아빠가 10년째 출전해왔는데 올해는 2시간 30분으로 경기시간이 단축된거라고 하신다. 아마추어 런너들에게 2시간 30분은 부담스런 시간이라며 참여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경기시간을 단축하면 안될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씀을 들으니 내가 더 잘 한 것 같아 혼자만 기분이 좋아졌다. 첫 대회에 2시간 40분이라니 그것도 21km를 말이다.
내가 완주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믿어지지않고 어떻게 된 건지 어안이 벙벙하기까지 하다.
오늘 날씨가 구름이 많은 흐린 날씨였다는 것은 완주할 수 있게 된 큰 이유 중 하나이다. 그리고 계속 내 속도를 유지했다는 것 그래서 근육경련이나 통증 없이 무사히 들어올 수 있었다. 지속적으로 음수대를 이용한 것도 지치지 않고 완주할 수 있게 된 이유이다. 다만, 이온음료제공위치를 잘 기억했어야 했는데 음수대만 계속 이용하니 정작 이온음료를 마시기가 부담스러웠다. 이온음료제공위치가 가까워져오면 음수대를 패스했어야했다.
뿌듯하고 장하다. 뭔가 자신감이 생기는 것도 같고 무엇보다 혼자 오지 않아서 잘 한것 같다.
처음 출전이라 느긋하게 대회를 즐기지 못했지만, 대회를 무사히 마치고 부모님과 기념사진 찍고 완주 기쁨을 함께 하고 묵국수도 먹고 데크에서 과일도 깎아먹을 수 있어서 참가의 즐거움이 배가 될 수 있었다. 혼자 왔더라면 셀카 몇 장 찍기나 했을까.
좋은 경험을 했다. 왈칵 혼자 제 감동에 겨워 목울음이 두 번 올라왔었던 것도 좋은 경험이다.
아침엔 날씨가 흐리다고 불만이었는데 아무래도 대회관계자분들이 덕을 많이 쌓으셨나보다. ㅎㅎ
21km 마라톤대회 완주 성공!!
첫댓글 저희 클럽에 오셔요 ~ 같이 다려요
대청호 대회 몸 풀기한 대마클 회원입니다.
반갑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