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연일 무더위가 계속되었습니다. 하늘도 견디기가 힘들었는지 오전부터 비를 뿌렸습니다. 퇴근을 하고 거충이부부는 밭에 일하러 갔습니다.
들게 심을 밭에 풀을 다 뽑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들깨 심을 밭에 풀을 마저 뽑고 달게 난 들깨 모종을 솎기로 했습니다. 일 할 시간은 고작해야 3시간 남짓합니다.
반거충이는 풀을 뽑고 팔부거충이는 들깨모종을 속았습니다.
들깨 심을 밭에는 산딸기나무가 많았고 풀이 크고 양도 많습니다. 그러나 오전에 비가 와서 풀은 아주 잘 뽑힙니다.
절반 정도 풀을 뽑고 나니까 양 손목이 얼얼하고 구부리기가 거북하더니만 급기야 팔 전체가 저려옵니다.
비가 오고 난 후에 습도가 높으니까 땀은 비 오듯 쏟아집니다. 물을 먹어도 갈증은 계속되고 입에서는 단 냄새가 풀풀 납니다.
양팔은 아프다 못해 마비가 되면서 허리까지 욱신욱신 통증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들깨 모종을 다 솎은 팔부거충이는 콩밭에 풀을 뽑고 있습니다.
“한 가지 일이라고 마무리하자. 콩밭에 풀은 다음에 뽑고 들깨 심을 밭부터 뽑자.”
이렇게 말을 해도 팔부거충이는 대꾸도 없이 자신의 일에만 열중하고 있습니다.
반거충이는 아무런 대꾸가 없는 팔부거충이의 행동에 조금 짜증은 나지만 참으면서 풀을 뽑았습니다.
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힘들고 지치니까 서서히 짜증이 나기 시작합니다.
“들깨 심을 밭부터 뽑자!”
언성을 조금 높이니까 팔부거충이는 일을 중단하고 깨밭으로 왔습니다.
“일에는 순서가 있는 거야. 무엇부터 먼저 해야 하는지 몰라.”
잔소리에 짜증이 묻어있으니까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팔부거충이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풀을 뽑고 있으나 행동에서 불만스러움이 나타납니다.
풀을 다 뽑고 나니까 날은 서서히 어두워지고 비가 조금씩 오고 있습니다.
팔부거충이는 솎아 놓은 들깨 잎을 따고 있습니다.
“너무 어려서 맛도 없다.”
“반찬 해 먹으면 맛있어요.
“비 온다. 내려가자!”
“아까워서.”
“아깝기는 뭐가 아까워.”
반거충이의 성화에 팔부거충이는 비도 오고 마음이 급해지니까 들깻잎을 따다 말고 비닐봉지에 담기 시작합니다.
“흙하고 같이 담으면 어린잎에 흙이 붙어서 어떻게 먹나? 흙을 먹을 거야, 무슨 욕심이 그렇게 많아!”
목소리도 높아졌습니다.
몸도 피곤한 대다가 반거충이의 잔소리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팔부거충이는 욕심이 많다는 말에 토라졌습니다.
“다시는 밭에 오나 봐요.”
“나도 다시는 밭에 안 온다."
반거충이와 팔부거충이는 화가 나서 말다툼을 했습니다.
반거충이는 평소 같았으면 일을 마치고 집에 갈 때 부모님 산소 앞에서 호들갑스러워 집니다.
저들 내려갑니다. 편히 주무세요. 내일 올 때 막걸리 받아 올게요. 하면서 이런저런 말들을 하고 내려가는데 오늘은 저들 내려갑니다. 한마디만 했습니다.
차 안에서 팔부거충이는 떡을 반거충이 입에 넣어주려고 합니다.
“안 먹어!”
"……."
배가 출출한데 팔부거충이는 야속하게도 한번 권하더니만 다시는 권하지 않았습니다.
힘들고 지치면 누구라도 신경이 예민해지는데 팔부거충이 마음을 헤아리지도 못하고 목소리를 높이고 잔소리를 했습니다. 그러니 대접 못 받는 것은 당연지사, 자승자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두 번 권해보지도 않고 한 번만 권하고 그만 둔다는 것은 사랑이 식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서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거충이부부는 부부의 인연이란 표를 끊어서 결혼이란 열차에 탑승했습니다.
천생연분이라는 축복 속에서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면서 검은 머리가 파 뿌리가 될 때까지 한마음으로 부부의 도리를 지키며 살기로 많은 사람 앞에서 언약을 했습니다.
열차는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살아온 나날을 보관하는 기억 창고에는 사랑과 미움이 정리되지 않고 뒤엉켜 있습니다.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다 풀어서 정리를 해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거충이부부의 인생은 살아갈 날이 노루 꼬리보다 짧게 남아 있어서 맨날 더 사랑하고 맨날 더 아끼며 살아도 성이 차지 않습니다. 그러나 탐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자꾸 생기는 것은 아직도 부부의 도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거충이부부가 밭에 가는 길옆에는 미륵부처님이 한 분 계십니다.
만들어진 시기는 고려 시대라고 하는데 근엄하지도 않고 서민적이고 다정다감한 표정입니다.
소원을 말하면 잘 들어준다는 속설이 있어서 오고 가는 사람들이 소원을 한마디씩 하고 다닙니다. 이런 이유로 거충이부부도 오고 갈 때마다 차안에서 인사를 합니다.
“미륵부처님 우리 신랑 화 좀 풀게 해주세요.”
차가 미륵부처님이 계시는 곳을 지날 때 팔부거충이가 합장을 하면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반거충이는 더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속 좁은 자신이 부끄러워 얼굴이 달아올랐습니다.
사과를 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으나 마땅한 구실을 찾지 못했습니다. 마침 물꼬를 터주는 바람에 사과를 했습니다.
“미륵부처님이 방금 나보고 화 풀라고 했다. 나 화 풀었다. 배고프다. 떡 하나 먹자."
팔부거충이는 반거충이가 말한 것이 우스운지 웃으면서 떡을 입에 넣어주었습니다. 언제 말다툼을 했나 할 정도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다음 날 일할 계획을 세우면서 집으로 왔습니다.
일요일에도 비가 오락가락했습니다. 아랑곳없이 거충이부부는 밭에 일을 하러 갔습니다. 비를 맞으면서 들깨 모종을 다 심었습니다.
부모님이 산소에서 내려다보면서 이 떡 할 놈들 비 맞으면서 무슨 일을 한다고. 감기 들면 약값이 더 들겠다. 라는 말씀하실 것만 같았습니다,
이 떡 할 놈들이라는 말은 우리 어머니가 즐겨 사용하시던 말입니다. 말이 씨가 된다고 자식에게 욕 대신에 사용했든 말입니다.
풀만 있던 곳에 들깨를 심어 놓으니까 보기가 좋았습니다.
“오늘 비 맞고 일해도 기분은 좋지?”
“그럼요. 햇볕 짱짱한 날에 심었으면 살기 힘들 덴데, 오늘 심은 것은 다 살 거예요.”
팔부거충이는 반거충이 보다 더 기분이 좋은 모양입니다. 거충이부부는 기분이 흐뭇했습니다. 반거충이는 부모님 산소 앞에서 평상시보다 더 수다스러워 젖습니다.
“비 맞고 일한다고 걱정하셨지요. 어때요, 들깨 심은 것 보기 좋지요. 한 말은 나오지 십 내요. 기름 짜서 동생들 한데도 한 병씩 줄게요.”
저녁에 들깻잎을 따서 기름에 살짝 볶아서 반찬을 만들었습니다. 팔부거충이 요리 솜씨는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데다 농약을 하나도 뿌리지 않은 싱싱한 재료로 반찬을 만들었으니 그 맛은 가희 일품입니다.
내가 힘들면 팔부거충이는 더 힘들 텐데 쓸데없는 말로 마음고생을 시키지 말자. 고 다짐을 하면서 팔부거충이를 쳐다보았습니다. 팔부거충이도 반거충이 마음을 알았는지 방긋이 웃으면서 화답을 해주었습니다. 이게 부부간의 이심전심인가 봅니다.
반거충이가 조금 더 철이 들은 아주 소중하고 멋진 저녁 만찬 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