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여행 1일 차 — 2025.10.13 월
드디어 오늘, 집을 떠나 네팔 카투만두에 도착했다.
둘이 떠나는 자유여행. 이 나이에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처음 가는 네팔이라 설렘이 크다. 막내딸은 걱정이 되었는지 준비한 자료를 세 장씩 인쇄하라며 다그쳤다. 게다가 오늘이 내 생일이라는 사실이 이 여행의 의미를 한층 깊게 했다.
아내는 8,000미터급 히말라야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들떠 있었다. 실제로 오를 수는 없지만, 그 거대한 산을 눈으로 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동안 생각과 영상으로만 보던 풍경을 이제 현실 속에서 마주한다.
히말라야는 만연설산이다.
빙하는 3,000미터쯤 내려와서야 녹기 시작하고, 작은 물줄기가 되어 갠지스강, 인더스강 같은 거대한 강으로 이어진다.
그 물은 대지의 젖줄이 되어 수많은 생명을 길러낸다. 우리 부부는 평생 한 번쯤, 그런 일급수의 청정 계곡을 보고 싶었다.
야스퍼스는 중세를 히스테리로, 근대를 정신분열로 진단했다.
나 역시 현대 도시를 바라보며 비슷한 생각을 했다.
탁한 물에는 수많은 물고기가 모여들지만, 진정 맑은 1급수에는 버들치와 꺽지처럼 소수의 생명만이 산다. 얼음처럼 차고 맑은 물에는 산천어조차 드물다. 우리가 이곳을 향한 이유는 단 하나, 혼탁한 세상을 잠시 벗어나, 깨끗한 물을 흘려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남은 인생을 노력하여 청정하고 깨끗한 물을 다음세대에 흘려보내기를 소망해 본다.
히말라야를 본다는 건 단순히 산을 보는 일이 아니다.
설악산의 네 배 높이에 이르는 그 웅대한 설산은 그 존재만으로도 상징이 된다. 이제껏 말로만 듣던 그 산을 직접 마주한다는 생각에 기대와 설렘이 자연스레 밀려왔다.
잘 해보지 않은 자유여행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쉽지 않다는 걸 깨닫게 했다.
앱으로 비행기표를 구입하며 실수로 편도만 결제했고,
결국 돌아오는 표도 따로 끊어야 했다. 게다가 내 이름이 ‘하성일 하’로 잘못 기재되어 있었다. 가는 비행기는 정정했지만, 돌아오는 표는 한 사람분 요금을 고스란히 물어야 했다.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라리 화라도 냈으면 덜 답답했을까. 그래도 다행이었다. 이 문제를 공항에서 몰랐다면 출국조차 어려웠을 테니까.
인천공항 출국은 순조로웠다.
광저우를 경유해 카투만두로 향하는 여정. 서류를 계속 요구했지만, 아내가 미리 인쇄해둔 덕분에 차분히 대응할 수 있었다.
비자도 인터넷으로 신청해둬 큰 혼란이 없었다. 준비와 인쇄, 일정 확인까지 모든 게 아내의 손끝에서 이루어졌다. 덕분에 환승도 무사히 통과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내는 광저우 환승이 제일 불안했다고 했다.
좁은 좌석과 많은 탑승객들 속에서 갑자기 폐쇄공포증이 찾아왔다고 했다. 내가 물을 건네자 조금씩 진정됐다고.
트리부반 공항에 닿자 또 다른 해프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짐을 찾아야 했는데, 컨베이어 벨트가 여러 곳에서 동시에 돌아가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비행기 번호 옆에 ‘5’라는 표시.
그곳으로 가보니 내 가방은 이미 벨트 밖에 나와 있었다.
비자 카운터에서 1인당 30달러를 냈다. 옆의 환전소엔 사람들이 몰려 웅성거렸다. 나도 달러를 루피로 바꾸려 했지만, 이유도 모른 채 거절당했다. 직원이 무언가 설명했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 일은 끝내 작은 미스터리로 남았다.
마지막 관문은 비자 확인과 여권 도장이었다.
아내가 내민 인쇄 서류 덕분에 절차는 순조로웠다. 그런데 담당 직원이 ‘보딩 서류’를 요구했다. 순간, 보딩카드가 뭔지 몰라 잠시 멍해졌다. 주머니 속 점선으로 잘라둔 항공권을 꺼내 보여주자
그제야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었다.
검색대를 지나 나오자 또 다른 환전소가 눈에 띄었다.
이번엔 루피로 환전이 잘되었다. 아내는 늘 서류를 끝까지 챙기는 사람이다. 나는 필요 없으면 버리는 편인데, 이번만큼은 그 습관이 얼마나 위험한지 절감했다.
공항택시를 타고 어둠 속 도심을 달렸다. 창밖으로 스치는 불빛들이 낯설고도 따뜻했다. 밤 12시가 가까워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그 순간, 아내의 얼굴에 묘한 안도감이 스쳤다.
이렇게 길고 험난했던 자유여행의 첫날이 마무리되었다.
첫댓글 낯선 외국, 게다가 말도 잘 통하지 않는 곳에서 자유여행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용기가 대단하십니다.
불편하고, 마음 졸이고, 신경도 많이 쓰셔야겠지만 낯선 곳에서 만나는 새로운 맛과 느낌이 있겠지요.
더구나 히말라야 볼 수 있다니 여행의 설렘이 무척 크겠네요.
안전과 건강 조심하시고 편안하고 즐거운 여행하시기 바랍니다.
사진속의 편안한 얼굴 뒤에 이렇게 맘졸이던 순간들이 있었군요
두분 여행길에 주님가호 있으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