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을 사랑함에
올 여름 더위는 대단했다. 장마가 끝나고 덥고 더운 여름이 시작하나보다 착각하기 십상이다. 엊그제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다가 감기까지 걸렸네. 지멋대로 오고가는 계절따라 가려니 몸도 고생이다. 하지만 들에 나서면 짙푸르던 숲에는 보일락말락 옅은 갈색 기운이 스며드는 걸 보면 가을이 올 모양이다. 방죽 따라 무성하던 억새하며 잡초들도 어느듯 갈색으로 또는 노랗게 물들어가는 가을의 쓸쓸함이 묻어난다. 개울이 구비를 틀 때마다 허리를 내어준 모래밭은 짙은 갈색, 그 가운데를 흘러가는 개울물은 시리도록 투명한 담갈색이다. 아침나절인데도 햇살이 피부에 내리꽂히는 게 여간 따갑지 않다. 그래도 햇볕이 반갑고 고맙다. 오랜 장마에 눅눅했던 모든 게 아연 생기를 띄고 살아나기 때문인가? 아내는 재빨리 눅눅하던 이불이랑 요를 볕 잘 드는 베란다에다가 펼쳐서 말리고 있겠지. 처서가 지난터라 공기도 건조하다. 그리고 뜨거운 햇빛도 견딜만 하다. 가을날, 한 뼘의 햇볕이야말로 농부에게는 황금보다 소중할 테니. 과수원에는 키 작은 사과나무마다 주렁주렁 달린 열매에 자글자글 내려쬐는 햇볕이 사금파리처럼 반짝인다. 눈부신 계절이다. 눈부신 햇살이 과육을 살 찌우고 단맛을 깊이 갈무리할테지. 너른 들녘, 온통 푸르게 펼쳐진 벼들 또한 패기 시작한 이삭이 야물딱스럽게 여물어갈 때라 농부들의 마음도 바쁘기 짝이 없을 게다. 비 그친 하늘은 쳐다보기만해도 기운이 난다. 이 아침에 청포도 생각이 난 건 왠 일일까? "내 고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로 시작하는 육사의 청포도가 말이야. 하기사 하늘이 모처럼 푸르다 못해 시리기까지 하니 청포도가 떠오른 건 무리가 아닐게다. 혹시나 샤인머스키가 익어가는 시절이라고 부르는 일은 없겠지. 청포도가 주는 음율이 멋지지 않은가? 그냥 별 생각없이 읊조리던 시도 곰곰히 뜯어보면 참 재미나는 노릇이다.
청포도와 푸른 바다. 그리고 청포를 입은 손님 처럼 온통 푸른 색갈이 품어내는 신선하고 생기를 돋우는 시어가 반복되더니만 돌연 마지막 련에 나오는 은쟁반과 하이얀 모시 수건으로 반전하는 대목은, 무릎을 치게 하는 절창이 아닌가. 푸르다라는 좀은 흔해보이는 색갈이 은쟁반과 새하얀 모시옷감이 지니고 있는 청량함과 어울릴 때면 심산유곡 깊은 샘물에서 길어온 한 사발 물을 연상시키지 않는가. 어제 저녁, 평소에 밥에 물 말아먹던 내가 와인을 곁들인 성찬을 한터라 청포도까지 발전했던가? 와인 하니까 불현듯 옛날 내가 저질렀던 사고(事故)가 생각나는군. 후후~ 달콤했던 소싯적 이야기라 한 번 들어볼라요?
어려서부터 나는 노래를 꽤나 좋아했지. 노래를 잘 부른다는 것과 즐겨 부른다는 것은 다른 거지만. 늘상 특기활동은 합창반이었어. 대학교에 진학해서도 그랬고 직장생활을 할 때도 합창반에 들어갔으니 대단한 게 아니겠어. 하지만 우리본당에서는 구역 성가대회에서 열씸이 불러도 성가대에서 불러주지 않더구먼. 당시 내가 속했던 합창단에 음대생은 없었어. 그저 노래가 좋아 모인 학생들로 구성되어 몇 해째 내려오는 동호인 성격이었지만 실력은 괜찮았어. 상대에 적을 둔 크리스찬이 지도했는데 이 친구는 교회성가대 지휘자라 우리 합창단은 일취월장했어. 이 친구가 졸업후에 회계사를 하다가 신학대학을 가서 목사님이 되었다는 소식은 후일담으로 들었고. 그때 부르던 노래가 가물가물하지만 지휘자 탓으로 대게 교회성가가 아니었을까? 그것가지고는 부족해서 관중의 관심을 끌기위해 우리 가곡과 가요, 그리고 당시 유행했던 포크송도 끼워넣었으니 다양했지 레퍼토리가. 지금 장충동인가 엠버세더 호텔 아래에 있는 대학생회관 옆에 있는 교회에서 공연을 한 기억도 나고. 은평 천사의 집에다가 방학 때 전국 교도소 위문공연 간 것도, 아~ 케이비에쓰 티부이에 출연한 적도 있었는걸 보면 대단하지 않는가.
30명 남짓한 합창단은 당시 데모 땜에 휴교가 태반인지라 학교 공연은 드물었고 밖으로 쏘다녔어. 합창단 선배가 정훈장교로 있는 홍천의 어느 부대에 군인 위문공연도 갔던 게 기억나네. 말도 마. 그때는 식은 땀이 났어. 준비한 레퍼토리가 먹혀들 턱이 있나. "님은 먼 곳에" 라는 영화를 보셨던가? 포탄이 터지는 전장터, 수지랬지? 공연을 하다가 포탄이 터지자 공연을 즐기던 군인들이 단번에 총을 들고 경계하던 장면.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군인들에게 가곡은 무슨, 그렇다고 교회성가가 통할까. 즉석에서 황포돗대와 전선야곡에다가 월남에서 돌아온 새카만 김상사같은 대중가요로 땜방을 했는데 대단했어. 군인 위문공연이란 건 그래. 흥이 나면 무대에 올라온 군인들이 흔드는 막춤이 항상 휘날래를 장식하지 아마. 연대장이 수고했다고 막걸리를 하사하셨는데 코가 비뚤어지도록 마셨지. 어쩌면 여자 단원이 예뻐서 성황리에 끝났겠지만 장소에 따라 곡을 선택하는 게 제일 중요할 거야. 지금도 본당 구역대항 합창대회를 할 때면 자유곡으로 뭘 하나 할 때면 부득부득 황성옛터를 부르자 그러지만 난 왕따를 당하기 마련이야. 해마다 열리는 본당행사에서 한 번도 황성옛터가 성전에서 울리지 않았어. 하지만 잘 생각해보라고. 우리 대중가요를 화음을 잘 갖춘 합창단이 부른다면 대단할 거라고 생각해. 내 생각에 동의하는 분, 손들어보시지. 사랑에 울고 삶에 지친 우리네 민초들이 쓰라린 가슴을 달래며 즐겨 부르던 노래, 대중가요가 가지고 있는 음악적 가치를 모르는 탓이야. 아마 우리네 핏줄을 타고 흐르는 뽕작을 비웃는다면 사람이 아니야 암 사람이 아니고말고. 뭐 이런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닌데 이야기가 길어졌구먼. 당시 내가 저질렀던 사고를 이제 털어놓을까해. 학교 축제를 대비해서 합창단은 열심히 준비하기 마련. 4학년이 되자 그동안 소흘했던 노래연습에 열심히 나갔어. 사실 4년 동안 나는 있으나마나한 단원이었어. 우선 내 파트가 불분명했지. 테너가 많으면 베이스에. 베이스가 빵빵할 때면 테너로 가라했으니 알만하잖은가. 하지만 4학년이 되고보니 내 비중이 달랐어. 왜냐고? 연습 빼먹고 땡땡이 까는 단원들 잡아오는데 4학년 고참보다 위력이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나 때문에 전단원이 열심히 준비했어.
1부는 교회음악이나 클래식에서 선곡을 했고. 아~ "히브리노예들의 합창"과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보리밭"이 생각 나는구먼. 3부는 밴드가 가능해서 팝도 불렀지. 퍼스트, 세컨에다가 요즈음 오빠밴드에서 읏싸 하며 신동엽이가 골몰해서 치는 베이스 기타까지 갖추어서. 후후 드럼도 있었지. 제법 구색을 맞춘 반주에다가 팝을 부르면 관중들의 호응도 괜찮았어. 곡은 "엘콘도 파사"하고 거쉬인의 "썸머타임" 포기와 베스에 나오는 곡이지. 당시 시민회관에서 공연했던 연극 포기와 베스에서 김성녀 선생이 주연으로 나왔던 게 생각나네. 생각해봐, 김성녀 선생이라면 마당극에서 으뜸가는 국악인이지만 당시에 거슈인의 썸머타임에 뒷골목의 흑인으로 출연했던 게 상상이 될까?
연주실력은? 당시 학교마다 밴드가 있었고 경연대회까지 있었지. 우린 그 수준에 감히 견줄 수 없는 진짜 아마추어였어. 드럼하고 기타도 빌려서 공연을 했지. 누구한테? 학교를 대표하는 프로 보칼한테서. 하지만 우리 리드 기타리스트는 대단한 실력가였어. 의대 본과 4학년인 자그마한 형인데 지나가다가 들은 곡을 흥얼거리더니 기타로 재연하면서 무슨 곡인지도 모르고 하는거야. 클립 리차드의 "에버그린트리"를 말이야. 그냥 길을 걷다가 전파상에서 나오는 노래를 듣고서 연주한 거래. 의대생이 더우기 본과 4학년이 기타를 매고 연습하랴 공부하랴 과히 천재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거야. 거기다가 우리 수준에 맞추어 편곡도 할 줄 아는 대단한 양반인데 지금도 기타를 치고 있을까? 눈치 빠른 사람은 "그럼 2부는 뭐였다고?" 흐흐.... 남여단원 서넛이 기타를 매고 부르는 중창단 순서였지머. 3학년 누나 세 명과 오빠 둘이서 부르는 레파토리가 아마 "코튼필드"하고 "언덕위에 하얀집"이 분명했지만 나머지는 기억이 나지 않네. 두 개 팀 중에서 나머지 하나는 2학년이 만든 팀이었는데 특히나 여학생이 이뻤지. 여학생 두 명과 기타를 잘 치는 남학생이 둘, 네 명이 한팀이었어. 그날, 남학생 둘 중에 하나가 빠진거라. 난리가 났지. 그래서? 놀라지 마시라. 예쁜 아이들이 날 지명했거든. 나도 기타를 칠 줄은 알아. A, B, C, D, E, F, G에다가 마이너까지 코드 겨우 열두엇 정도 아는 것 가지고 가벼운 포크송을 치며 부르는 게 고작이었는데 나보고 나가자더군. 후후 솔직히 말하면 귀여운 2학년 애들한테 평소에 잘했거든. 겨우 두 살 차이었는데 그때는 그 두 살이 대단했지. 선배하며 얼마나 날 졸졸 따랐는지. 그 재미에 합창단에 열심히 나왔는지도 몰라. 합창 연습은 뒷전이고 나는 부랴부랴 중창 연습하느라 골몰했지.
그때 곡목이 바로 "썸머 와인"이었어. 당시 프랭크 시나트라의 딸 낸시 시나트라와 헤즐우드가 혼성 이중창으로 부른 썸머와인이 유명했지만 사실 뚜아에무어가 부른 게 더 좋았어. 훗날 여자가 독립해서 나갔는데 바로 박인희였어. 이 노래를 키타를 치는 남학생 둘이 앉고서 예쁜 여학생 둘이는 서서 불렀거든. 생각해봐 금방 끼어든 노털 4학년짜리가 변변찮은 솜씨로 기타를 치랴 노래꺼정 부르랴 식은 땀이 다 나더라고. 베이스였던가, 따라 부르기도 벅찼는데 화음은 무슨 화음을. 누가 그러대 칭찬은 코끼리도 춤추게 한다고. 그랬어, 예쁜 여학생이 "형, 너무 잘 한다"하며 날 추켜주는데 그날따라 노래도 되고 기타도 되더라고. 단원들 전부가 조마조마했는데 무사히 잘 끝났어. 그 다음엔 뭐였더라? 제네파쥬네파였던가. 비슷한 풍의 포크송이었을거야. 박수가 제일 컸던 거 같아서 우쭐했거든 그런데 다음 공연 때는 아무도 나보고 노래 부르라는 사람이 없었던 걸 보면 같이 불렀던 여학생의 미모 땜에 박수가 컸을거야. 썸머와인을 추억해볼까. "방울소리 울리는 마차를 타고/콧노래 부르며 님찾아 가네/하늘엔 흰구름 둥실 떠가고/풀벌레 다정히 우짖는 소리/으음- 썸머와인 ♪~♬
따스한 웃음지며 반겨줄 그녀/그리운 고향땅이 저기 보이네/달콤한 포도주를 따라주겠지/입술에 감도는 향기로운 맛/으음- 썸머와인 ♪~♬
눈부신 태양은 옛과 같지만/그리운 그녀는 간곳이 없네/처량하게 주머니는 텅텅비었고/잊을 길 없어라 달콤한 수울/으음- 썸머와인 ♪~♬
석양을 등에지고 돌아가는 길/쓸쓸한 이내 마음 그 누가 아랴/가슴에 스며드는 갈바람 소리/산새도 모옥메어 우짖는 마음/으음- 썸머와인/썸머와인/썸머와인♪~♬" 내가 그래도 쓸모가 있었던 것은 굵직한 베이스로 깔리는 내 목소리가 이 노래에 어울렸던 게야. 어찌 잊으랴, 썸머와인과 내 푸른 젊은날의 노래를. 조금은 씁쓸했지만 달콤했던 와인을. 통키타를 뜯으며 참 행복했는데. 당시 기타를 못치면 간첩이랬지. 음 이제사 기억이 난다. "혼자서는 독서, 둘이서는 대화, 셋이 모이면 노래를." 대학생들의 구호였다. 암울했던 학창시절, 최류탄에 눈물을 비벼먹으며 탄식하던 날에도 이렇게 달콤한 추억이 있었는가 실감이 나질 않아. 당시 내가 데모 주동자로 수배령까지 내려서 친구 하숙집으로 경부선 고속도로 현장 질통을 메고 숨어 살던 전력이 있은 줄 누가 알까? 잡혀가서 죽도록 두드려 맞고서 학교에 돌아오니 벚꽃이 화사하게 핀 캠퍼스는 젊음이 넘쳐흘렀어. 잔디밭이건 벤취건 자리가 나면 둘러앉아서 기타를 띁으며 노래를 하더군. 음침한 지하 고문실에서 매를 죽도록 맞고 나온 캠퍼스는 노래를 부르며 화사한 벚꽃이 꽃비되어 내리고 있더라고. 나는 멍이 들도록 고문당하다가 나왔는데. 왠지 손해보는 기분이었어. 하긴 포크송이 얼마나 재미난 노래인지 아직도 그 시절 부르던 노래보다 더 마음에 드는 게 없더라고. 세시봉 세대가 바로 우리였어. 가수 낸시 시나트라가 말하기를 딸기와 체리에다가 천사의 키스를 곁들어 만든 썸머와인이 바로 로제와인이라 하더군. 우리 로제와인을 구해서 시원한 여름 끝물인 오늘 밤에 마셔볼까 하는데 어때! 로제와인의 연한 살구빛갈과 드라이한 맛이 혀끝을 감도는 구먼. **************************** 생각 나는가? 절망에 절은 신새벽, 잔뜩 쉰 목소리로 자유를 읊조린 시인이 있었지만 막걸리 받아놓고 세상에서 제일 긴 노래를 부르는 청년도 있었지. 세상에서 제일 긴 노래가 뭐냐고? "나나나나 에에에 굿~바이, 나나나 에에이 굿~ 바이......" 한 번 불러봐. 엘피판이 자꾸만 헛돌듯 이 밤이 새도록 불러도 노래는 끝이 나지 않을 걸. 비틀즈의 '헤이 주디'였어. 왜 그랬을까? 밤이 새도록 불러도 끝이 나지 않는 노래를.... 술판이 끝나는 게 두려워서였겠지. 술자리가 끝나고 하숙집으로 올라가는 길, 내 앞으로 전봇대가 왔다갔다 하더니 날 붙잡더라고. 전봇대를 붙잡고 토악질을 하면서 세상이란 깊은 강을 건너기가 무척 두려웠다네. 도무지 앞날이,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캄캄한 미망에 잡힌 자신을 생각하는 게 싫어서 그냥 목놓아 헤이 주디를 부르고 또 불렀어. 그때 공책에 자꾸만 낙서한 것은 불가지성(不可知性)이란 단어였어. 모호하기 짝이 없는 낱말놀이를 한 건 또렷하게 정신을 차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게 무서웠기에. 이삭이 팬 논에는 바람이 불어갈 때마다 푸른 물결이 이리 쏠리다가 저리 쏠리며 우아한 춤을 춘다. 가을에는 바람의 소리가 구석구석 들린다. 귀가 밝아지기 때문이 아니라 바람이 맑아지기 때문이다. 바람이 숲을 흔들 때, 소리를 내고 있는 쪽이 바람인지 숲인지 분별하기 어렵다.... 바람소리는 바람의 소리가 아니라 바람이 세상을 스치는 소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