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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향기
우정이 무엇인지 아나요.
“그것은 오누이가 되는 것, 두 넋이 서로 섞여 들지 않고 마주 닿는 것, 한 손의 두 손가락이 되는 거 지요.” (라 에스메랄다)
그럼 사랑이란?
“그건 둘이면서도 하나가 되는 거예요. 한 남자의 한 여자가 하나의 천사로 서로 섞여 드는 거예요. 그것은 하늘이지요.”
고귀한 양반들의 인생도 우리의 인생과 매일반으로, 선과 악이 섞여 있는걸요. 사랑이란 나무 같은 것이기 때문인데, 그것은 저절로 자라나고, 우리의 온 생명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폐허가 된 가슴 위에서도 흔히 계속 푸르러지는 것이다.
“나 자신이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었던 곳에, 숙명은 나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어......내 안에 지하 감방을 지니고 있어. 내 안은 거울이고, 얼음이고, 절망이야. 나는 내 마음 속에 어둠을 갖고 있어......
당신은 스스로 불행하다고 믿고 있지만, 당신은 불행이 무엇인지 몰라. 한 여인을 사랑하는 것! 성직 자라는 것! 미움을 받고 있다는 것!.....이것이야말로 지옥의 불에 새빨갛게 단 진짜 집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당신이 있다면 지옥도 내게는 천국이야“ (프롤로: 노트르담성당 부주교)
(프롤로 부주교는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사랑하지만 그녀를 사형에 빠뜨리고 만다. 콰지모도가 그를 성당에서 밀어서 떨어뜨려 죽게 하고 에스메랄다 옆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몽포콘 무덤에서 한 여인의 해골을 꼭 껴안고 있는 콰지모도의 해골이 발견된다. 평론가의 말을 빌리면 프롤로가 빅토르 위고의 분신이라고 한다.)
말이 나온 김에 노트르담의 꼽추 이야기를 조금 하고 시작해야겠네요.
프랑스의 낭만파 시인,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빅토르 위고는 어느 날 노트르담 성당을 찬찬히 살펴 보던 중 성당 벽 한구석에서 손으로 새긴 단어 하나를 눈여겨봅니다. 'ANARKH'. 아나키아는 희랍어로 '숙명'을 의미하는 단어. 그 때 위고는 세월의 때가 묻어 검게 파여 진 글씨로부터 불길하고도 말 그대로 어떤 숙명적인 느낌이 뿜어져 나오는 충격에 사로잡히게 됩니 다. 도대체 얼마나 고통스러운 영혼이 있어 이런 글을 남길 수 밖에 없었을까?' '이 '숙명'이라는 단어는 그의 영혼이 담겨 있는 것 같구나.'
이렇게 해서 1831년 당시 28세였던 위고는 불후의 명작 '노트르담 드 파리(Notre Dame de Paris)'를 남깁니다.
오늘은 그 유명한 노트르담입니다.
파리에 와서 노트르담을 보지 않고 간다면,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요? 잘 아시겠지만 노트르담 성당(Cathedrale Notre-Dame de Paris)이란 말은 "우리의 귀부인(Our Lady) 혹은 어머니" 라는 뜻으로 1638년 루이13세가 프랑스를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한 이래, 프랑스에는 노트르담으로 명명된 성당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생겨났습니다. 벨기에로 넘어가서 브뤼셀의 노트르담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지요.
"외국인은 파리하면 에펠탑을 떠올리겠지만 프랑스인에겐 노트르담이 더 먼저다."
파리를 가로 질러가는 센강이 흐르다가 두 갈래로 갈라지면서 만들어진 시테섬(우리나라의 여의도 를 연상하시라)이 있습니다. 섬 동쪽에 자리한 파리 교구 주교좌성당 노트르담은 1159년 36세의 나이로 파리 교구장이 된 모리스 드 쉴리에 의해 계획되어 185년이 지난 1345년에 완성된 유서 깊은 교회랍니다. 앞에서 보는 모습, 석양을 업은 뒷모습이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뽐내던 이 성당은 유럽에 '프랑스 유행'을 처음 전파한 건축물이다. 첨탑으로 상징되는 중세 고딕양식은 파리 외곽 생드니 성당이 시초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뒤 완공된 노트르담 성당을 고딕 건축의 표준으로 꼽지요.
빅토르 위고의 '파리 의 노트르담'이 명성을 얻으면서 유럽 곳곳에 고딕양식이 퍼집니다.
웅장한 규모에 정교한 세련미까지 갖춘 이 성당은 '돌이 빚어낸 거대한 교향악'이라는 찬사까지 듣게 됩니다. 성당의 조각들과 스테인 글라스는 자연주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이는 초기 로마네스크 건축에서 부족한 세속적인 외관을 더해줍니다. 1790년경 프랑스 혁명이 휘몰아치는 와중에 노트르담 성당은 많은 성상이 손상되거나 파괴되었지요.
19세기에 다방면에 걸친 복원 작업이 완료되어 성당은 이전의 모습을 되찾았다고 합니다. 전체 길이 130m, 폭 48m, 천장 높이 35m, 정면의 두 개의 탑 높이 69m의 건축물입니다. 이 성당은 잔 다르크의 명예 획복 재판이, 나폴레옹의 대관식(1804), 파리 해방을 감사하는 국민예배(1944. 8. 26) 등 여러 가지 역사적 사건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파리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해마다 14백만 명이 찾아온다지요.
{중세 그리스도인들은 늘 천국과 가까워지기를 갈망했습니다. 죄를 용서받고 천국에 가기 위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머나먼 순례를 떠나고, 목숨을 걸고 십자군 원정에 나서기도 했죠. 한편 이들은 신앙심을 더 고취시킬 방법을 찾아나서면서 지상에 천국을 구현해보려고 합니다. 만약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신앙심은 더 깊어질 수 있었겠지요.
그래서 중세인들은 교회를 천상의 공간처럼 건축하기에 이릅니다. 지상에서 신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을 천국과 좀 더 가까운 공간으로 만드는데 성공하지요. 그곳이 바로 고딕 성당입니다. 고딕은 건축적으로 보는 이를 압도하는 신비로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세 유럽인들은 그 힘을 이용해 천상의 세계로 한 걸음 다가가려고 했지요.}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4권"(양정무)에서
프랑스 문화의 정수가 축적. 집약됐다는 평가를 받는 노트르담 성당은 1991년 센 강 일대의 자연환경 및 주변 문화유산들(루브르 미술관, 생트 샤펠 성당, 그랑 팔레, 에펠 탑 등)과 함께 '파리의 센강변' 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됐다.
유럽의 모든 도시의 중심에는 꼭 두 개의 큰 건물이 있지요.
하나는 교권의 상징인 성당이고요, 다른 하나는 정권을 쥐고 있던 성주의 성이지요. 유럽관광은 주로 이 두 개의 건물을 보려는 것이기도 하구요. 파리의 옛 성주가 살던 곳은 지금은 법원이 자리 잡고 있지요. 그럼 성주는 어디로 갔나구요? 정치권력이 커지니까 섬 안의 성이 좁아져 강 건너로 갔죠. 그게 루브르였고 그것도 모자라 파리코뮌 때 타 서 지금은 없어진 뛸르리궁의 왕궁을 지었고 또 그것도 모자라 베르사이유 궁을 지었던 것이지요. 그래도 파리의 중심은 역시 노트르담이랍니다.
파리의 중심은 곧 프랑스의 중심이니 프랑스 도로의 영점 포인트가 바로 노트르담 앞에 있어요.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다비드의 그림, '나폴래옹 대관식'의 무대가 바로 이곳이지요. 프랑스 역사를 통해 종교적, 정치적 사건의 무대로 자주 등장하는 노트르담에 제가 다가갑니다. 그 웅장한 외관에서 가득히 번져 나오는 안온함, 부드러움, 이름에 걸맞게 영원한 모성적인 부드러움이 저를 받아들입니다.
"잘 왔다, 세상사가 힘들었나보다. 이리 오렴..."
프랑스 예술의 극치라고까지 극찬받는 노트르담은 그 구조에 있어 완벽함을 자랑한다지요.
하느님의 영광과 인간의 기쁨을 위해 모든 형태의 예술이 집약된 인간이 드리는 위대한 봉헌이라고 말씀드린다면 어떨까요?
성당의 정면은 각기 다른 크기의 세 개의 반 아치형 문이 있습니다.
중앙의 문은 '최후 심판의 문'으로 예수의 수난에 이용된 도구들을 잡고 있는 천사들과 무릎을 꿇고 인류를 위해 중재하고 있는 성모님과 성 요한이 계십니다. 두 분으로부터 둘러쌓인 채, 슬픈 모습으로 그리스도께서 좌정하고 계십니다. 그 아래로는 미카엘 천사가 영혼들을 저울질하여 어떤 사람들은 왼쪽의 아브라함을 향해 가게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오른쪽 지옥으로 향하는 장면이 조각되어 있지요.
왼쪽은 '성모의 문'이며 오른쪽은 '성녀 안나의 문'이랍니다.
그래서인지 성모의 문, 문설주에 조각되어 있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상은 얼굴 표정이 아주 아름다운 평온함을 보여주고 있답니다. 성모님 모습을 그린 조각과 그림을 보면 한결 같이 젊고 아릿답게 묘사하고 있어요. 요샛말로 얼짱이라 하나요?
제 소견으로는 기약 없이 평생을 기다려 온 인고의 세월, 외 아드님이자 주님이신 '그분' 옆에서 말없이 바라보며 더러는 알 수 없는 신비를 마음에 담고 새기던 성모님. 참혹한 ‘그분’의 수난에 칼에 찔리는 듯, 에이는 아픔을 참고 견디며 살아온 순명의 표상인 성모님을 지향하는 인간의 갸륵한 마음이 그리 했겠지요. 아름답다는 것은 축복이지요.
어느 영성가는 마리아가 흑색의 머리카락과 눈빛을 지니고,
피부는 백 적색이었으며, 완전한 아름다움의 소유자라고 확신하면서 나름으로 근거를 제시합니다. "육신은 영혼을 향하여 정립되어 있고, 육신의 아름다움은 영혼의 아름다움에 좌우된다. 따라서 가장 완전하고 아름다운 영혼이 있는 곳에는 가장 아름다운 육신이 있어야 한다." 제가 따온 이 견해에 동의하시나요?
중세 교회 건축에 있어 조각과 스태인 글라스는 대개 성인들과 성서의 내용(천지창조, 노아의 홍수, 지옥도 등)을 표현하고 있지요. 이것을 개신교에서는 우상숭배라고 일갈하며 캘빈, 쯔빙글러 같이 개신교를 만들어 나간 사람들은 성상과 조각예술품을 교회에서 파괴하고 불태워버리는 어리석은 짓을 자행했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요. 생각해보세요?
그 당시 유럽의 일반신자들은 대개 문맹자였답니다.
그리고 인쇄기가 발명되기 전이라 사람이 일일이 써내려간 필사본 성서가 얼마나 귀한 것이었을까요. 성서를 볼 수도 읽을 수도 없으니까 교회 안에 성경 내용을 담은 그림과 조각은 일반교우들에게 성서와 교리를 가르치는 교육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답니다. 터키 이스탄불의 소피아성당을 보세요. 한때 동로마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풀에서 제일 큰 성당으로 지어졌지만 이슬람국가로 변신한 이래 이슬람 사원으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당연히 가톨릭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조각품과 성화를 파괴하지 않았답니다. 가톨릭 조각물과 성화 위에 다시 이슬람의 종교적 장식을 덧붙인 셈으로 지금도 뜯어보면 온전히 보존된 가톨릭 성화와 각종 조각을 볼 수 있다네요. 비록 종교가 다르다 해도 남이 믿는 종교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지금도 북한산에 자리한 사찰은 한 밤 중에 인근 기도소에서 철야기도를 하다가 올라와서 불상에 페인트칠을 하거나 돌부처님 목을 부러뜨리는 몰지각한 개신교 광신자들로 인해 피해가 크답니다. 뭐, 뻔 하지요. 우상숭배를 한다고 멀쩡하게 다른 종교를 핍박하는 별종 때문에 한분이신 하느님을 믿는 우리까지 부끄럽지 뭐예요.
이렇게 저를 이끄시는 대로 안으로 들어갑니다.
노트르담은 6,5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넉넉한 품으로 우리를 맞이하네요. 제대는 기하학적이라고 해야 하나, 현대적인 감각으로 만들어졌고 촛대, 해설대 그 모든 것이 프랑스의 예술적 감각으로 빚어진 듯 해요. 그 단순함과 곡선이 주는 아름다움은 저의 한참이나 모자라는 안목으로 설명해드릴 수 없어 그저 입을 다물 수 밖에요. 그런데 잠시 뜸을 들이며 보노라니 그건 바티칸 공의회 후에 만들어진 현대적인 제대이고 벽 쪽으로 또 하나의 제대가 있어요. 성모님의 피에타! 그래요, 예수님의 싸느란 시신을 무릎에 올려놓고 비탄 에 빠진 성모님과 두 사람의 여인들, 좌 우 편에는 검은 대리석으로 조각된 천사가 지켜주는 하얀 대리석 제단이 사뭇 침통하게 다가옵니다. 이것이 공의회 이전의 제대랍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제대는 프랑스의 멋스러움이 풍부한 모던 제대라고 할까요.
그런데 그런데....저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황홀하게 서 있었어요.
오- 세상에 !!! 제대에서 위를 올려보니 엄청나게 커다란 원형의 스테인글라스 창(窓)이 신비하게 떠 있습니다. Rosetum, 장미창(薔薇窓)이라 하지요.
노트르담의 장미창을 프랑스의 보석이라고도 하지요.
그냥 하늘에 둥실 떠올라 있는 듯 그 아름다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신비함이, 오묘한 황홀함이 저를 홀리는데.....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의 제대는 천장 돔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으로 환하게 빛난다면, 노트르담은 형형색색의 장미창을 통해 비춰지는 빛은 색유리의 옷을 걸쳐 입고 우리네 알몸의 영혼을 폭포수처럼 적십니다. 스테인글라스는 당시 사람들에게 빛으로 쓴 성경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요즘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주로 장식용으로 제작되지만 중세에는 거의 예외 없이 성경 이야기를 담아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용도로 제작되었거든요.
지상에 재현한 천상의 공간인 고딕 성당 안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풍부한 빛을 받아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주는 종교적 가르침은 엄청난 감동으로 다가왔을 겁니다.
'고딕 교회의 둥근 창을 장미창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장미가 지혜의 꽃이며 거룩하신 성모님의 상징이기 때문이지요. 고딕 교회의 장미창은 밝고 크기도 하지만, 어느 한 군데 모난 곳 없이 둥근 모양입니다. 이 둥근 창의 내부에 바퀴살이 붙으면서 천상의 문, 또는 태양의 문이라는 이름이 붙었지요. 태양이란 바로 그리스도를 의미하는데 장미창 속에는 반드시 별모양의 바퀴살이 들어 있는바 자세히 들여다 보면 크고 작은 바퀴들이 안팎을 서로 감싸고 있지요.' (차동엽 신부님 글에서)
노틀담의 서쪽 장미창의 한 복판, 즉 바퀴의 중심축에는 성모 마리아가 있으며, 그 주위로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하는 인물들이 있고, 두 번째 태두리 원에는 거의 모든 종류의 악, 즉 우상숭배, 분노, 실망, 망언, 불화, 폭동, 비열함 등이 나타나 있지요. 이 장미창의 지름은 13.36M가 된다네요. 별로라고요? 막상 눈앞에 닥친다면 엄청난 크기에 압도 당할 걸요. 노트르담에는 세 개의 장미 창이 있는데 이 서쪽 창이 제일 크지요. 바깥에서 성전을 정면으로 보면 보이는 것이 바로 이 서쪽 창 인데 성전 내부의 제대에서 바로 올려보면 파이프 오르간 위에 있는 창이지요.
음~ 제가 들은 풍월로 아는 채를 해볼까요.
성당은 대게 동향입니다. 왜 그럴까요? 해가 동쪽에서 뜨기 때문이지요. 이른 아침 새벽의 여명을 뚫고 떠오르는 찬연한 햇빛은 동쪽으로 향한 장미창을 거쳐서 그 아름다운 스테인글라스의 형형색색의 빛을 제대에 쏟아놓습니 다. 그렇지요. 성당의 중심은 바로 제대거든요. 바티칸은 둥근 돔을 통해 햇볕이 온통 제대에 쏟아지게 설계가 되었고 고딕식 중세의 성당은 스테인 글라스를 통해 제대를 신비하게 비추지요.
그리고 제대 좌우편으로 조금 작은 규모(지름 12.9M)의 장미창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어요.
북쪽 장미창은 13세기 이래 온존하게 보존되고 있으나 남쪽 장미창은 새롭게 복원 되었는데 그 내용은 묵시록에 나오는 모든 상징, 즉 일곱 개의 봉인된 책, 양, 일곱 개의 등잔과 함께 예수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수레바퀴가 으레 그런 것처럼 바퀴가 돌아가는 동안 바퀴축은 움직이지 않아요.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서 삼라만상을 굴리는 부동의 동인, 곧 제 1원인 셈이라 할까요. 장미창의 구성에서 중심과 주변의 위계적 질서는 이처럼 신과 세상, 창조와 피조물, 하나와 여럿 사이의 일체화된 관계를 드러낸답니다. 이 관계는 바퀴와 바퀴 축처럼 튼튼하고 조화롭다고 하는데 큰 의미가 있데 요.'(차동엽 신부님 글에서)
제가 읽은 책 중에서 도움이 될까 하고 옮겨봅니다.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um 우니베르숨)를 풀어서 읽으면 <하나를 향한다>가 된다는군요. 쿠사의 추기경 니콜라우스 쿠나수스는 원의 중심점을 그리스도로 보고 그로부터 모든 지식이 비롯된다고 말합니다. 인간이 작은 우주라면 장미창은 큰 우주의 중심에 서 있는 하나의 진리로 이어지는 '깨침의 문'이라는 뜻입니다.
무한한 사랑의 궁극적 표상. 장미창의 열두 갈래 바퀴살은 원의 완전한 형태에 잘 어울립니다.
열 두 겹 우주, 시간의 열두 구획, 예수를 따랐던 열두 제자, 밤하늘의 12궁도, 이스라엘의 12지파, 새 예루살렘을 떠받치는 열두 주춧돌이 모두 장미창의 비밀스런 정체를 말해줍니다.
장미창이 등장하기 전에도 둥근 창이 있었데요.
모양새가 눈동자를 닮았다고 오쿨루스라고 불지요. 인간의 육신에서 눈동자는 영혼의 빛을 담는 밝은 창문이라고 해서 그랬겠지요. 눈동자는 또 사랑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눈빛은 사랑을 전달하고 나누는 정직한 수레이기 때문이지요.
이탈리아 시인 단테는 천국의 마지막 하늘에서 사랑하는 연인 베아트리체가 펼쳐보인 장미꽃처럼 둥근 빛의 형태를 응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시인의 눈길은 <원의 면적을 구하려는 기하 학자처럼 집요했으나 측정할 수 없었다고>고 고백합니다(천국 편 33장 133~135). 사랑의 크기와 무게를 어떻 게 측정할 수 있겠어요, 그 무망한 일을...
이곳 파이프오르간은 정말 기막힌 것이에요.
7,800개의 파이프 112개의 건반을 가진 세계에서 가장 큰 오르간 중의 하나라네요. 제 안목으로 바라본 노트르담의 오르간은 수직으로 늘어뜨린 파이프 제일 밑에는 앞으로 가지런히 튀어나온 나팔처럼 생긴 파이프는 정말 신기하더군요. 대개 우리나라에 설치되어 있는 파이프오르간은 밋밋하게 파이프를 수직으로 세운 독일식인데 노트르담 것은 스페인식이랍니다. 그러니 신기할 수 밖에... 매주 토요일 저녁 8시에 무료 오르간 연주회가 열립니다. 노래가 함께 할 때도 있는데, 아쉽게도 뒤로하고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아마도 이 일은 오래오래 아쉬움으로 남을 거예요. 기왕에 노트르담에 가신다면 토욜 저녁에 시간 맞춰 가신다면 금상첨화겠네요.
그리고 무엇보다 성전 벽을 따라 놓여 있는 구유를 볼 수 있어 행운이었습니다.
저희 순례 일정이 성탄시기인 관계로 이태리와 프랑스의 구유를 살펴 보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어요. 바티칸의 구유는 큰 광장 중앙에 아주 집을 지었더군요, 오히려 실물 크기보다 더 커서 실감은 나지만 뭐랄까, 구유에서 느끼는 감흥은 별로였습니다. 이태리 성당의 구유는 대게 사실적인 분위기였다면 노트르담의 구유는 분명 다른 감흥으로 다가옵니다.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지극히 현대적이라고 할까요. 또 기하학적인 비구상이라 해야 하나요. 하여간 프랑스의 미적 분위기를 흠씬 풍기고 있었습니다. 성모님과 요셉성인은 하얀색으로 처리하고 동방박사였나요, 파란색과 이국의 점성술사 분위기가 물씬 나는 브라운색 벨벳 옷감으로, 그리고 또 한 사람은 가물가물한데 아무튼 길게 늘어뜨린 망토가 흡사 "2003년 파리 신춘 패션 쇼" 분위기가 날 정도로 감각적이며 신비한 인상을 주더군요. 목동들과 양들과 나귀까지... 참 구유 주위를 둘러싼 나무를 세로로 세운 물결 형태로 처리한 기하학적인 배치가 절로 감탄을 터뜨리게 했습니다. 정말이지 성탄시기 때 잠시 설치했다가 치워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웠고 보관하여 계속 전시해야할 하나의 예술작품이었습니다.
예쁜 카드 몇 점과 색깔 별로 초도 사고, 우리 아이들을 위해 봉헌초에 불을 붙였지요.
밖으로 나와서 다시 한 번 성당 전면을 올려봅니다.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둥근 흐름이라고 해야겠지요. 직 사각형으로 좌 우 대칭하여 올라간 고딕 양식의 두 개의 탑이 전면에 떡 버티고 선 사이에 뾰족한 첨탑이 중앙에서 하늘로 솟아올랐습니다. 그리고 세 개의 문 위로 서쪽 장미창의 바깥 모습이 크게 자리하여 안정감을 주고 있습니다.
성당을 끼고 후원으로 돌아갑니다.
어쨌거나 미색 대리석이 주는 부드러움과 따뜻함이 성당의 앞모습을 지배하고 있다면 그 부드러운 성당을 받혀주는 기하학적인 선과 화려한 배열로 그 뒤편을 처리한 모습에 절로 감탄하고 맙니다. 아마 건물을 떠받치기 위한 역학(?)을 면밀히 계산한 기둥이라고 봐야겠지요. 그래요. 고딕 건축이 유행하면서 자꾸만 높이 올라가는 건물을 버티기 위해서 외부에 복잡한 버팀벽이 많이 세워져야 했습니다. 건축용어로 플라잉 버트레스, 우리 말로 공중부벽이라고 부르지요. 버팀벽일 뿐인데도 보기에 좋더라고요. 어쩌면 좋아 완전히 노트르담에 반해도 중증인가 봅니다.
프랑스 문학을 전공했던 아내는 연신 감탄하며 많은 관광객들로 훼손될법한데 여전히 우아하고 정숙한 분위기에 젖어 있는 노트르담의 후원을 자꾸만 거닐고 있습니다. 아마, 장 꼭도의 시를 떠 올리고 있을 테지요.
콰지모도는 어디에 있을까요?
높다랗게 올라간 종탑을 가늠하며 에스멜다였나요? 그렇게 콰지모도의 가슴을 애태우던 사랑이 주는 갈등과 번민을 품에 안고서 어머니는 ...우리의 어머니는 신앙적인 모습만이 아닌 우리들의 범상한 일상의 고통도 " 다 안다, 알어!!!" 하며 따뜻한 손길로 우리를 보듬어 주십니다.
빅토르 위고가 쓴 “파리의 노트르담“, 우리나라에서는 ”노트르담의 꼽추“라고 알려진 영화로 유명했지요. 여기가 노트르담의 꼽추가 이루지 못할 사랑에 번민하던 곳입니다. 안소니 퀸은 알겠는데 에스메랄다, 가슴을 아리게 했던 여배우가, 아~지나 롤로브리지나? 제 기억이 엉키는군요... 이렇게 추억 속의 현장에 있어본다는 게 여행의 별미가 아니겠습니까!!!
최근에 나온 노트르담에 관한 기사내용입니다.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성당의 종이 교체된다. 제1차 대전 종전(終戰), 1944년 독일 나치로부터의 파리 해방, 2001년 9·11 테러 희생자 추모 등 역사적 순간마다 심금을 울렸던 역사적인 종이 '노화로 인한 불협화음' 때문에 바뀐다 고하네요. 1856년 구리 합금으로 제작된 이 성당 북쪽 탑의 종 4개는 마모가 심하고 소리 상태가 변해 "프랑스 에서 가장 끔찍한 종의 조합으로 조율이 전혀 안 돼 있다"(음향 전문가 에르베 구리우)는 평을 듣는다.
노트르담 성당은 2013년 성당 건립 850주년을 앞두고 이 종 4개를 교체할 예정이라고 최근 밝혔다. 내년에 250만유로(39억원)를 들여 종 4개를 녹인 뒤 9개의 종으로 새롭게 제작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종은 1831년 프랑스 문호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의 꼽추'에서 성당 종지기 콰지모도가 쳤던 것으로 유명하지만, 실제 북쪽 탑의 종 제작 시기는 위고의 작품 발표보다 25년 늦다. 프랑스 성인들의 이름을 따 북쪽 탑의 종 4개에는 앙젤리크프랑수아즈, 앙투아네트 샤를로트, 이아신트잔, 드니즈다비드라 는 이름이 각각 붙어 있다.
노트르담 성당의 파트릭 자켕 주교는 "종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노트르담 종소리를 보강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물화된 유적이 아니라 실제 타종이 이뤄지는 실용 목적 때문에 교체한다는 설명 이다. 하지만 "종 자체가 문화유산이므로 보존해야 한다"(시민운동가 자비에 질리베르)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번 교체 작업에서 '에마뉘엘'이라는 이름이 붙은 남쪽 탑의 종은 그대로 보존된다. 1680년대 제작된 이 종은 200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84세로 선종(善終)했을 당시 84차례 울렸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이전까지 노트르담 성당에는 종이 20개 있었지만, 혁명군은 에마뉘엘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모두 녹여 무기로 만들었다.
또 다른 기사를 볼까요.
2019년 4월 15일 오후 6시 50분경 대규모 호재가 발생해 성당의 상징인 첨탑과 본관 지붕이 소실됐다. 다만 성당 전면의 두 개의 쌍탑 등 주요 구조물은 화마를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15시간이 지나서야 완전히 진화됐으며 첨탑을 개.보수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조기 진화에 실패한 것은 노트르담 성당이 대부분 목조 구조로 돼 있는 데다가, 성당 안에 여러 문화재가 보관돼 있어 진화 방식에 제약이 있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복원 공사 중인 노트르담성당의 내부는 2024년 12월경 개방 예정이며, 2028년까지 외부 공사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화창하던 날씨는 이내 비를 뿌린다. 버스까지 다들 뛰어가지만 나는 천천히 걸었다. 오래오래 이 감동을 아끼고 싶기 때문이다.
노트르담, 아마 앞으로도 잊지 못할 테지.
우린 아직 파리에 있습니다. 파리 이야길 이거로 끝낼 수야 없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