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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동양에서는 <자치통감>을 제왕학의 교과서라고 평가했다. 중국의 주나라(BC 403)부터 후주시대(959)년까지 1362년의 역사를 매해의 사건을 중심으로 편년체로 구성하여, 전체 294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송나라 신종이 명해서 사마광이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편찬한 책으로, 송나라 신종은 완성된 책에 <자치통감>이라는 명칭을 부여했다고 한다. <자치통감(資治通鑑)>이란 ‘다스림(治)에 도움(資)이 되고 역대를 통하여(通) 거울(鑑)이 되는 책’이란 뜻이라고 한다. 사마천의 <사기>와 더불어 동양의 대표적인 역사서라 할 수 있으며, 흔히 <사기>를 기전체의 대표로 꼽는다면 <자치통감>은 편년체의 대표적인 저작으로 평가하고 있다.
<자치통감>에 주석을 달았던 호삼성(胡三省)은 이 책을 이렇게 평가했다. “임금(황제)이 되어 <자치통감>을 모르면 정치를 잘 하려 해도 잘 다스릴 수 있는 근원을 알지 못하게 되며, 혼란스러움을 싫어하면서도 그런 혼란을 막는 방법을 알지 못할 것이다. 또한 신하된 자가 자치통감을 알지 못하면 위로는 임금(황제)을 섬길 줄 모르고 아래로는 백성(신민)을 다스릴 수 없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위정자들에게 <자치통감>을 필독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그 방대한 분량 때문에 전체 내용을 독파한 사람은 매우 드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위정자들도 <자치통감>의 독서 필요성은 느끼고 있었지만, 방대한 규모로 출판할 수 없다는 등의 어려움으로 인해 그 요약본에 해당하는 <자치통감강목> 등의 내용만 접해 읽었다고 한다. 하지만 원본이 지닌 내용을 아무리 잘 요약한다고 해도 그 의미를 온전히 담아낼 수 없음은 물론이다. 예컨대 대하소설이 아닌, 그 요약본을 읽고 작품 전체를 읽었다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자치통감>을 번역하는 작업 역시 만만치 않는 시간과 공력을 필요로 할 터인데, 비록 완역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역자가 이를 착수하여 그 성과물의 일부를 출간한 일 자체로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고 하겠다. 또한 어려운 용어를 그대로 노출하지 않고, 친절한 풀이를 덧붙여 주석을 최소화한 형태라 더욱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역자는 완역을 하지 못하고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데, 결국 역자의 <자치통감> 번역은 미완으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 지침이 되거나 자극을 주어, 새로운 번역으로 이끌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원문과 번역을 함께 제시하여 84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1권은 ‘전국시대’와 ‘초한시대’ 그리고 ‘전한시대’의 일부까지로 구성되어 있다. 그동안 <맹자>나 사마천의 <사기>를 통해서 알았던 내용들이 적지 않아, 읽는데 큰 어려움은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편년체로 기록된 내용을 통해서 당시 역사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하겠다. 아울러 대체로 집권자의 입장에서 서술된 역사를 통해서 ‘권력의 유한함’ 혹은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등 역사의 격언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하겠다.
예컨대 다양한 세력이 맞설 때에 어떻게 생존할 것인지의 문제를 제기했던 전국시대의 ‘합종론’이나 ‘연횡론’이 진나라가 통일했을 때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고,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 자신했던 진시황의 거대한 포부나 영원한 삶을 추구하고자 불사약을 탐했던 시도도 물거품이 되었다는 것은 너무도 명백하다. 오히려 자신과 주위에서 일어난 불의와 부패로 인해 나라가 망하는 허망한 결과만을 도출하게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서초패왕 항우와 맞서며 생존하기에 힘썼던 섰던 한고제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지마자,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자신을 보필했던 장수들을 권력을 지키기 위해 하나씩 제거했던 것도 비정한 권력의 속성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권력에 도취되는 위정자들의 행태는 결코 좋은 결과로 귀결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야만 할 것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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