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마드(nomad)’는 유목민이라고 번역할 수 있지만, 들뢰즈라는 사상가에 의해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창조적으로 변화하며 살아가는 형식’으로 규정되기도 했다. 처음 책의 제목만을 보았을 때, 들뢰즈의 개념이 떠올라 철학적인 내용을 다룬 것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이 책은 용어 그대로 집이 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삶을 르포 형식으로 소개하는 내용이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미국의 금융기관들이 주택담보 대출을 일컫는 ‘모기지론(mortgage loan)’을 공격적으로 확대하면서,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으로 대출을 확대하면서 ‘비우량주택 담보대출’이라는 뜻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Subprime Mortgage Crisis)’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그로 인해 발생한 거품이 꺼지면서 대량의 연체와 금융회사의 파산이 이어지면서, 이른바 ‘리먼 사태’가 터지고 그로 인해 대출로 집을 장만했던 수많은 이들이 결국 살던 집에서 쫓겨나는 사태가 발생했던 것이다.
이 책은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집을 잃고, 차를 사거나 빌려 떠도는 이들의 삶을 일컬어 ‘노마드’라고 지칭한다. 아울러 그것이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그렇게 살고 있는 이들을 삶을 추적하면서 ‘유목민 세상’이 이제는 특별한 모습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이미 영화로도 제작되었다고 하나, 아직 영화는 보지 못하고 책으로만 접할 수 있었다. 이른바 ‘노마드’들을 취재하기 위해 저자 자신이 그들과 같은 삶을 직접 체험하면서 공감한 내용들이 소개되고 있다. 세상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삶을 살고 있지만, 그들은 커뮤니티를 만들어 정보를 공유하고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마련하기도 한다. 한시적 일자리를 찾아서 집단적으로 이동하고, 한 곳에 모여 자신들만의 축제를 전개하기도 하며 삶의 방식을 공유하고 우정을 쌓아간다.
저자는 다양한 노마드들의 삶을 소개하고 있으며, 주요 취재 대상은 ‘린다 메이’라는 사람이다. 낡은 차량을 사서 떠도는 삶을 살고 있지만, 린다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신만의 땅을 사서 정착해서 사는 것이다. 흔히 깡통이나 유리병 같은 버려진 물질을 이용해 만든 수동형 태양열 주택을 어스십(Earth-ship)이라고 일컫는데, 린다는 바로 이러한 집을 짓고 떠도는 삶을 청산하는 것을 꿈꾸고 있다. 모든 것을 경제적인 가치와 비용으로 추산하는 경제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노마드들은 ‘그럭저럭 살아나가기 위한 한 방편으로 집세와 주택 융자금의 속박에서 자신들을 해방시켰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린다의 삶을 추적하면서, 노마드로 살아가는 이들의 다양한 상황을 목도하고 개별적인 상황을 소개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노마드들에게 오랫동안 안전하게 정착할 수 있는 공감이 허락되지 않기에, 그들은 끊임없이 장소를 옮겨 가며 살아야만 한다.
연말에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터넷 쇼핑으로 인해 아마존에서 상품을 분류하고 발송하는 일을 담당하는 직원을 한시적으로 채용하는데, 많은 노마드들은 힘들지만 그 일을 하면서 돈을 벌기도 한다. 혹은 일시적으로 다양한 일거리를 찾아서 이동을 하고, 일이 끝나면 또 다시 어디론가 옮겨가야만 하는 삶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것이 저자가 바라보는 현대판 유목민의 삶이고, 그들은 자신들을 ‘홈리스(homeless)’가 아닌 ‘하우스리스(houseless)’일 뿐이라고 규정한다. 최근 한국에서도 금리가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대툴을 받아 집을 산 이들의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한국에서도 언젠가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그로 인한 혼란이 초래할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한다. 아직은 우리와는 조금 먼 상황처럼 느껴지지만, 이 책의 내용이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언젠가 닥칠 암울한 미래처럼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하겠다.(차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