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본문내용
|
다음검색
신안의 영화촬영지 -신도, 증도, 가거도, 사치도, 도초도와 자은도 가보고 싶은 섬을 꼽으라면 영화나 드라마 속 촬영지가 아닐까? 스크린을 꽉 채운 아름다운 영상미를 찾아서 ‘섬 투어’를 한 번쯤 도전해볼 필요도 있다. 몇 년이 지났지만, 케이블 채널에서 방송된 ‘삼시세끼’ 가운데 신안 만재도 편은 폭발적인 시청률을 보였다. 차승원과 유해진의 케미가 돋보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만재도라는 섬의 자연미를 빼놓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실미도’를 촬영됐던 무의도는 서울에서 비교적 가깝기에 많은 이들이 찾는다. 하루에 두 번, 바닷길이 열릴 때마다 걸어서 갈 수 있어서 관광객들은 영화 속의 장면들을 떠올리며 그곳을 직접 보고 싶어 한다. 이처럼 경기도와 인천에 속한 섬은 서남해에 비해 그 숫자는 많지 않으나, 인지도는 높은 편이다. 서울에서 보면 오지일지라도 신안에서도 몇 편의 영화가 촬영되었다. 하의면에 속한 신도에서는 ‘서울이 보이냐’를, 슬로시티 증도에서는 ‘내가 죽던 날’을, 흑산면 가거도에서는 ‘극락도 살인사건’을, 안좌면 사치도에서는 ‘섬개구리 만세’를, 도초도와 자은도에서는 ‘자산어보’를 찍었다. 이 가운데 비교적 최근에 찍은 자산어보만 흑백 영화이다. 신도, 서울이 보이냐 면적 1.68㎢, 해안선 길이 14km의 신도(薪島)는 2개의 자연부락으로 형성된 작은 섬이다. 국토교통부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해수욕장 15선에 뽑힐 만큼 멋진 해변을 갖추었다. 신도의 행정명은 하의면 능산3구 마을이다. 섬 전체에 섶(땔감나무)이 많이 있어 섶섬이라 불렀으며 지금은 섶 신(薪)자를 써서 신도라 부르게 되었다. 이 섬에 가려면 고 김대중 대통령의 고향인 하의도를 거쳐야만 한다. 목포항을 출발한 배는 바다를 미끄러지듯 내달려 하의도의 관문인 웅곡선착장에 닿는다. 목포에서 일을 보고 들어오는 손님들을 위하여 하의도 부속섬들로 가는 배가 대기해 있다가 조양페리호에서 환승하는 승객을 태우자마자 출발한다. 이 배는 하의도 웅곡에서 장병도, 문병도, 개도, 대야도를 거쳐 신도에는 10시 30분 무렵에 닿는다. 신도에는 2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젊은이들이 섬을 대거 빠져나가면서 주민들이 얼마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문명의 때가 묻지 않아 청정한 이곳에 슬픈 역사가 하나 있다. 괴질이 유행하여 사람들의 목숨과 소들의 생명을 앗아간 일이 전국 신문에 대서특필된 적이 있다. 1986년 11월부터 88년 6월까지 15명의 환자가 발생하여 주민 80명 중 10명이 생을 달리한 사건이다. 마을 표지석 주변의 오르막길에 하의북초등학교 신도분교장이 있었다. 담장이 없는 이 학교는 1956년 3월 개교했다가 2000년도에 폐교되었다. 1973년도에는 전교생이 63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주민들이 하나둘씩 육지로 빠져나가면서 학생수가 줄기 시작하여 마지막 한 학생이 졸업하자 신입생이 없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렇게 조용한 여기에서 ‘서울이 보이냐’라는 영화가 촬영되었다. 1970년대 낙도에 부임한 초임 여교사가 겪는 좌절과 환희 그리고 서울로 수학여행을 추진하면서 빚어지는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스승과 제자들의 사랑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의 배경인 당시 분위기를 잘 나타내면서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자연친화적인 곳을 찾기 위해 영화사 측에서는 로케이션 작업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섬이란 섬을 다 뒤져 마침내 찾아낸 곳이 바로 신도였다.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아 맑은 바닷물과 모래사장, 갯벌을 갖춘 천혜의 아름다운 촬영지인 신도! 아이들과 교사 은영의 주 무대인 학교까지 있어 마치 영화 ‘서울이 보이냐’를 위해 준비된 세트장 같았다고 한다. 실제로 영화 촬영 시, 사람이나 차를 통제할 필요도 없어 더욱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는 전언이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비경으로 가득한 신도는 이 영화를 촬영함으로써 그나마 세간에 섬의 자태를 내보이게 되었다. 이 영화는 온 가족이 다 함께 볼 수 있는 100% 유기농 영화이다. 처음에는 제목이 ‘우리 선생님’이었다가 ‘서울이 보이냐’로 바뀌기도 했다. 2008년에 개봉해 5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1976년, 전교생 12명의 신도분교 아이들은 서울의 과자공장에서 초대장을 받고서 들뜬다. 하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마을 사람들은 수학여행 이야기에 시큰둥하다. 심지어 괜히 아이들에게 헛바람만 넣는다고 선생님을 탐탁치 않게 여긴다. 선생님과 아이들은 바지락을 캐서 팔아 수학여행 비용을 마련한다. 드디어 수학여행길에 오른 선생님과 아이들. 그렇지만 회색빛 서울은 어색하기만 하다. 이 영화에는 유승호와 김유정이 오누이로 등장한다. 남대문시장에서 장사하는 엄마를 찾는 모습을 보노라면 그야말로 짠하다. 남산타워와 주변의 정자에서 사진을 찍고, 아이스크림을 먹기도 하며, 입술에 짜장면을 묻히면서 먹는 장면도 생생하게 드러난다. 한편, 이렇게 작은 섬인 신도에 해수욕장이 있다. 주변의 민가와 솔숲에서는 민박이나 야영이 가능하고 식수 사정 또한 좋은 편이다. 워낙 멀리 있다 보니 여름 외에는 외지인의 그림자도 볼 수 없다. 그래도 여름 한 철에는 피서객들이 제법 찾아온다. 수질뿐만 아니라 울창한 숲이 있기에 백사장 해변은 그윽한 숲향기가 물씬 풍겨 힐링하기 좋은 곳이다. 여름에는 1백여 명 정도 피서객이 찾아드는 아름다운 해수욕장이다. 30여 명이 사는 이곳에 100명이란 숫자는 어마어마하다. 증도, 내가 죽던 날 거친 파도와 가파른 절벽, 어둠이 내려앉은 숲길까지 영화 속의 다채로운 풍경을 자랑하는 이 영화는 인천 자월도, 충남 서산시 웅도, 증도(甑島)까지 3개의 섬에서 촬영되었다. ‘내가 죽던 날’은 유서 한 장만 남긴 채 절벽 끝으로 사라진 소녀와 삶의 벼랑 끝에서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내민 무언의 목격자까지 살아남기 위한 그들 각자의 선택을 그린 영화이다. 비교적 최근인 2020년에 개봉했으나 23만의 관객을 동원하는 것으로 그쳤다. 태풍이 몰아치던 밤, 외딴섬 절벽 끝에서 유서 한 장만을 남긴 채 소녀가 사라진다. 오랜 공백 이후 복직을 앞둔 형사 ‘현수’는 범죄 사건의 주요 증인이었던 소녀의 실종을 자살로 종결짓기 위해 그곳으로 향한다. 소녀의 보호를 담당하던 전직 형사, 연락이 두절된 가족, 그리고 소녀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마을 주민 ‘순천댁’을 만나 그녀의 행적을 추적해 나가던 ‘현수’는 소녀가 홀로 감내했을 고통에 가슴 아파한다. 이 영화는 추리물이라기보다 드라마에 속한다. 따라서 사건을 차근차근 풀어나가며 트라우마를 극복해 나가는 현수의 모습을 통해 따뜻한 위로와 치유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주연인 현수 역할은 김혜수가, 순천댁은 이정은 배우가 맡았다. 촬영지였던 섬의 맑은 자연과 지역 주민들의 넉넉한 인심도 큰 힘이 됐다. 주민들은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틈틈이 먹을 것을 가져다주고 배우들의 편의를 위해 자신의 집을 선뜻 내어주기도 했다. 등장인물의 ‘고독’을 극대화하기 위해 외딴 섬이라는 장소를 선택했지만, 배우와 스탭들에게는 오히려 더 끈끈한 유대 관계를 맺게 하는 공간이 됐다. 주지하다시피 슬로시티 증도는 ‘보물섬’이다. 1975년 방축리에 속한 도덕도 앞 해상에서 두 명의 어부가 어로 작업을 하다가 그물에 걸려 인양된 도자기를 신고함으로써 발굴이 시작되었다. 이 배는 1323년 중국 닝보에서 일본 교토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 긴급 피란하던 중 침몰했던 것으로 보인다. 유물 발굴 이래 증도를 보물섬이라 부르니, 말이 곧 현실이 된다고 했던가. 실제로 증도는 2007년 ‘슬로시티’라는 국제적 공식명칭 인증을 받았다. 이제 생태체험지로 떠오른 증도는 해저유물 발굴지, 짱뚱어다리, 우전해수욕장, 엘도라도 리조트, 태평염전, 소금박물관 등으로 인해 현실의 보물섬으로 바뀌었고, 연륙이 됨으로써 ‘떠오르는 보물섬’이 된 것이다. 여기에 가려면, 네 개의 다리를 건너야 한다. 먼저 무안군 해제에서 지도로 가는 다리를 건너면 지도읍, 그리고 지도에서 다시 다리를 지나가면 수산물 어판장이 있는 송도, 송도에서 다리를 건너면 사옥도, 마지막으로 사옥도에서 증도로 건너가는 증도대교를 통과해야 한다. 증도를 말할 때 부속섬인 화도(花島)를 빠트리면, ‘팥소 없는 찐빵’이나 다름없다. 물이 빠지면 걸어서 그리고 차를 타고 건너갈 수 있다. 증도 본섬에서 1.2km의 긴 노두로 이어진 화도는 그리 크지 않다. 만조가 되면 섬의 모양이 꽃봉오리처럼 아름답고, 마을에 해당화가 많아 꽃섬이라고 부르다가 1963년에 화도로 이름을 바꿨다. 증도와는 달리, 화도에는 이렇다 할 절경이나 명소가 많지 않다. 섬 입구에서 조금 들어가면 드라마 ‘고맙습니다’의 주요 세트장으로 활용됐던 민가가 아직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화도에 오는 관광객들은 꼭 이곳을 찾는다. 이 집 뒤로 해안이 있고 언덕에는 소나무들이 있다. 가거도, 극락도 살인사건 가거도(可居島)의 섬등반도는 ‘극락도 살인사건’의 촬영지이다. 섬등반도는 향리 마을에 있으며 바다를 향해 길게 돌출되어 있는 형태이다. 전두환 정권 말기 무렵인 1986년, 섬에 고립되어 스스로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하고자 분투하는 시골 주민들의 진지하고 무서우면서도, 남들이 보기엔 다소 웃길 수밖에 없는, 며칠간의 사연이 담긴 영화다. 2007년 4월에 개봉해 207만의 관객을 동원했다. 최주봉, 김인문과 같은 연기파 배우들은 5개월 정도의 촬영 기간 동안 갇혀 있는 섬 생활을 통해 돈독한 우정과 신뢰를 쌓으며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주요 촬영지인 가거도가 목포항에서 4시간 반 이상 걸리는데다 이틀에 한번 배가 드나들기 때문에 모두가 일심동체로 움직여야 했고, 변덕스런 섬 기후로 인해 촬영을 할 수 없는 날도 허다했다는 것이다. 김한민 감독은 토종 미스터리 추리극임을 표방했다. ‘고립된 섬에서 17명이 사라졌다’라는 섬뜩한 설명이 가미된 이 영화에는 사건 해결에 앞장서는 보건소장 박해일, 사건의 열쇠를 쥐게 되는 최후의 생존자 박솔미, 학교 소사인 성지루가 등장한다. 이 섬의 절경은 항리의 섬등반도다. 마을 초입의 섬등반도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서면 그 감동적인 풍경 앞에 넋을 잃을 정도다. 달력에 나올 법한 비경이 두 눈으로 쑥 들어온다. 항리 마을의 집들은 대부분 비탈에 위태롭게 붙어 있다. 섬등반도는 이 영화와 예능 프로그램인 ‘1박2일’로 유명해졌는데 오르는 능선에 데크가 깔린 것이 조금 아쉬울 뿐 원형은 잘 보존돼 있다. 한없이 바다를 향해 나아갈 것처럼 섬등반도는 역동적이다. 가거도는 서해안 어업전진기지로서 매우 중요한 섬이다. 한중일 어선들의 각축장이 되어 있는 황금어장으로서, 동지나해는 가거도에서 불과 160여 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태풍이나 뜻밖의 사고가 발생했을 때, 특히 겨울철이면 외국선박들이 많이 몰려든다. 국토의 최서남단에 있기에 지리적, 외교적으로 간과해서는 안 될 곳이다. 대한민국과 중국 대륙 사이에 위치한 가거도에서 목포까지 직선거리의 두 배 정도 가면 중국에 닿는다. 그래서 ‘중국의 닭 우는 소리가 들리는 곳’이라는 말도 있다. 가거도 해변에 밀려오는 쓰레기가 대부분 중국 것임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향리는 가거도 서북쪽 해안에 위치한 마을로, 섬등반도가 이곳에 있다. 총길이 1km쯤 되는 작은 반도로, 문화재청은 최근 이곳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17호로 지정했다. 향리 마을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늦게 지는 해넘이와 저녁노을을 감상할 수 있다. 오메가(Ω) 형상을 한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자취를 감춘 뒤에도 서쪽 하늘에는 태양보다 더 붉고 아름다운 노을이 오래도록 스러지지 않는다. 안좌 사치도, 섬개구리 만세 사치도(沙雉島)는 목포에서 서쪽으로 23km 떨어진 곳에 있다. 정기 여객선이 하루에 딱 한 번 있어서 교통이 불편한 곳이다. 목포에서 출발하는 배가 안좌 읍동을 지나 사치도에 들른 다음에 비금도로 간다. 하지만 어미섬 안좌도에서 가깝기 때문에 한운리 북지 선착장에서 하루에 다섯 번 도선이 운항된다. 여기서 사치도까지는 7분 정도 걸린다. 면적 2.22㎢, 해안선 길이 6.2km에 불과한 작은 섬 사치도는 섬 주변에 모래가 많고 섬의 모양이 꿩과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여느 섬과 마찬가지로 분교가 있었지만 폐교가 되었고, 지금은 경로당으로 활용된다. 1970년대 당시 한 부부교사에 의해 시작된 농구가 1972년 제1회 전국소년체전에 전남대표로 뽑혀 결승전까지 올라가는 기적을 낳았던 일이 있다. 선수들에게 붙여진 이름이 ‘섬개구리’였는데, 전국대회 농구 준우승이라는 화제의 돌풍이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다. 사치분교 팀이 기라성 같은 대도시 팀들을 연파하고 은메달을 딴 것은 화제가 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당시 서울 계성국민학교에게 86:57로 졌지만, 사치분교 아이들의 준우승은 전국에 울려퍼진 감동 그 자체였다. 정진우 감독이 제작하고 신일룡과 김영애가 주연한 ‘섬개구리 만세’는 선수들을 대역으로 쓰지 않고, 실제 선수들이 출연했다. 그 덕분에 여러 학교에서 농구부를 만드는 등 농구 붐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이를 지켜본 육영수 여사는 친히 사치분교 아이들을 격려하며 TV, 농구공, 학용품 등을 선물로 전달했다고 전한다. 얼마 후에는 박정희 대통령 지시로 동네 어귀에 선착장이 들어서고 어미섬 안좌도와 이어지도록 도선도 건조해 주었다. 사치도는 위에서 공을 차면 바다로 떨어질 정도로 작은 섬이다. 이렇듯 조그마한 섬에서 그런 신화가 창출되었다니 믿기가 힘들 따름이었다. 당시 섬개구리들인 농구부 12명은 졸업 후 전원 사치도의 어미섬인 안좌중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나 2학년이 되면서 농구부가 해체되어 4명만 광주의 충장중으로 전학 가서 농구를 계속 하였다. 그 결과 어떤 이는 체육교사가 되었고, 농구 코치 생활도 했다. 섬개구리 만세는 국도극장에서 개봉된 영화이다. 6,187명의 관객이 이 영화를 봤다. 부부교사인 갑윤(신일룡 분)과 선희(김영애 분)가 여기에 도착했을 때 섬은 선착장도 없는 낙도였다. 교사 둘은 학부모과 주민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아이들을 학교로 불러 모아 협동정신이 요구되는 농구부를 개설하여 연습시킨다. 일을 마친 뒤 술과 노름으로 세월을 보내던 섬사람들은 농구는 공부가 아니라면서 농구장 시설을 부수기도 했다. 드디어 사치분교 농구팀은 제1회 전국 스포츠 소년대회 전남 예선에서 우승을 하고, 서울 대회까지 진출한다. 승승장구하던 사치분교의 승리 소식에 마을 사람들은 열광한다. 결승전에서 패배한 농구팀은 잠시 좌절감을 맛보지만, 대통령의 초청장을 받고 기뻐하며 섬개구리들은 희망을 찾게 된다. 지금은 하사치도에만 30여 가구의 주민이 살고 있다. 바로 옆의 상사치도와는 시멘트 노두로 연결됐으며, 약간의 논밭에서 농사를, 그리고 새우 양식을 하고 있다. 수백 년 된 소나무와 정자는 사치도의 명물로 자리잡았다. 도초도와 자은도, 자산어보 도초도(都草島)와 바로 옆의 비금도는 쌍둥이와 같다. 섬 넓이도 도초도 42.34 ㎢, 비금도 44.13 ㎢로 비슷하다. 1996년에 937m의 서남문대교가 두 섬을 연결한 이후에는 하나의 섬이나 마찬가지이다. 도초도는 섬 모습이 정사각형처럼 생겼고, 비금도는 길쭉한 모습으로 해안선이 좀 복잡하다. 도초도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투쟁에 앞장선 것으로 유명하다. 일제강점기 때 역사적 장소라 할 수 있는 고란들을 배경으로 하의도, 암태도 사람들과 함께 항일투쟁에 앞장섰다. 당시 옥에 갇히거나, 심지어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소작료 착취의 부당함에 맞서 싸웠던 것으로 잘 알려졌다. 소작쟁의(小作爭議)의 사전적 정의는 소작인이 소작조건 개선을 위하여 지주를 상대로 전개한 농민운동이다. 1925년부터 1926년 동아일보는 도초도 소작쟁의 기사를 20번 이상 기사화할 정도로 그 당시 치열한 투쟁을 생생히 보도했다.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은 지금까지도 섬마을 사람들에게 큰 자부심을 주고 있으며, 도초도 주민들이 힘들 때마다 든든한 버팀목과 용기를 주고 있다. 이 섬에서 요즘 뜨는 여행지를 꼽자면 단연 영화 ‘자산어보’ 촬영지다. 흑산도로 유배된 ‘천주쟁이’ 정약전이 유교적 출세를 꿈꾸는 섬 청년 창대와 티격태격 우정을 쌓아가며 ‘자산어보’를 저술하는 과정을 그린 수작이다. 두 채의 초가로 구성된 자산어보 촬영 세트는 섬의 북서쪽,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그림처럼 앉아 있다. 특히 안방과 건넌방 사이 통마루는 양쪽으로 탁 트여 있어 바다 풍경이 액자처럼 걸린다. 여행객이라면 빠짐없이 마루에 걸터앉아 사진을 찍는 포토존이다. 영화를 찍은 이준익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선명성을 강조하기 위해’ 흑백 영화로 연출했다고 했다. 현란한 색을 배제하면 사물이나 인물의 본질이 더욱 뚜렷하게 전달될 거라는 의도다. 달리 해석하면 이곳 풍광이 스토리를 압도할 정도로 매력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자산어보의 자산(玆山)은 흑산도를 의미한다. 도초도를 주 무대로 영화를 찍은 건 흑산도보다 접근이 쉽기 때문이다. 도초도에 딸린 섬 우이도는 흑산도 귀양길에 정약전이 거쳐간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의 주 무대였던 가거댁(이정은)의 초가집은 발매리 서쪽 끄트머리의 언덕에 있다. 너른 대청마루를 둔 안채와 부엌, 돌담과 우물·평상·아궁이 등 영화 속 소품도 그대로다. 대청마루가 바다를 향해 훤히 뚫려 있는 구조인데, 그곳에서 영화에서처럼 광활한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자은도 소한운과 외기 해변 예부터 자은도(慈恩島)는 남도에서 퍽 이름난 휴양지였다. 백길·분계·외기 등 9개의 해수욕장이 섬을 감싸고 있어서이다. 정약전이 첫발을 들였던 해안, 어시장 풍경 등 흑산도 어촌 풍경 대부분은 자은도 한운 해변에서 촬영했다. 엄밀하게 따지면, 작은 한운이라 불리는 소한운(小閑雲)이다. 해변은 자갈 굴러가는 소리가 아름답지만, 경사가 다소 급한 게 단점이다. 자은도의 외기 해변에서 찍은 장면도 인상적이다. 약전이 ‘자산어보’를 집필하기로 마음먹고 창대가 있는 바닷가로 달려가는 장면인데, 카메라는 이 순간을 멀찌감치 떨어져 가만히 바라본다. 바다와 섬에 완전히 녹아든 약전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외기 해변은 인적이 드물기에 바다를 독차지한 기분을 누릴 수 있다는 장점이 크다. 자은도의 특산물로는 대파와 마늘, 땅콩 등이 있다. 특히 대파는 이웃 섬인 임자도와 함께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미네랄과 유기물이 풍부한 갯벌과 질 좋은 사질토에서 자라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풍부한 일조량과 해풍을 맞고 자란 덕분에 대파의 줄기가 굵고 식이섬유 함량이 높은 특징이 있다. 예전에 대파는 음식을 만들 때 감칠맛을 내기 위한 부재료로 많이 쓰였으나 요즘 대파를 주재료로 이용해 건강식으로 먹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한겨울에 눈 덮인 밭에서도 잘 자라 강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신성리의 광활한 대파 밭에 가보면, 노동력 부족에 따라 베트남 등에서 온 계절근로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최근 자은도 양산 해변 부근에 고둥박물관을 비롯하여 수석미술관, 바다 해양숲 공원, 해송숲 오토캠핑장 등이 있는 ‘뮤지엄 파크’가 문을 열었다. 주변에는 깨끗한 바다와 드넓은 백사장이 자리해 인기 만점이다. 또한 ‘여인송’과 ‘무한의 다리’ 그리고 백길 해수욕장도 있기에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 자은도이다. 또 다른 촬영 예정지 70여 개의 유인도와 1천여 개의 무인도로 구성된 천사섬 신안은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 한둘이 아니다. 즉 영화촬영지로 적합한 곳이 위의 다섯 군데 외에 더 있다는 뜻이다. 그 중 하나가 위에서 잠시 언급한 자은도의 뮤지엄파크이다. 여기에는 수석박물관, 야외정원, 난 전시관 등이 모여 있지만, 주변의 경관이 더 아름답다. 양산 해변과 인근의 모래언덕인 사구(沙丘)와 도보 숲 등을 카메라에 담는다면, 우리나라에서 저렇게 아름다운 곳이 아직도 존재함을 오롯이 느낄 수 있으리라. 한 군데 더 있다. 요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퍼플섬인데, 이는 안좌면의 부속섬인 박지도와 반월도를 말한다. 해외에도 소개돼 해외의 BTS 팬들까지 찾아와 인증샷을 남기는 곳이다. 섬과 섬을 이어주는 다리의 색깔은 당연히 보라이고, 사는 집의 지붕 색깔 또한 보라색이다. 심지어 개집도 보라색이다. 보랏빛을 표방한 조형물도 다양하다. 퍼플섬에는 입장료가 있지만, 착용한 옷의 색깔 또는 양산과 배낭이 보라색이라면 무료이다. 섬이 크지 않기에 자전거나 카트를 이용해 한 바퀴를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런데 늦가을이나 겨울에 이곳을 찾는다면 옷차림을 따뜻하게 해야 한다. 바닷바람이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거리가 멀고, 아직은 편의시설이 다소 부족하지만, 퍼플섬의 인기는 폭발적이다. 2020년 8월 정식 개장 이후 50만 명 정도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았다. 요즘도 주말이면 2천여 명이 이곳을 찾는다. 사진1) 증도 짱뚱어다리 사진2) 화도 팻말 사진3) 도초도 촬영지 사진4) 자은도 백길해수욕장 사진5) 퍼플섬 로고 |
|
첫댓글 신생님 사진이 안떠요
사진 다시 올려주세요
@최홍길
@최홍길
@최홍길
@최홍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