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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낙동정맥 제20~21구간 (시티재~어림산~마치재~한무당재~관산~아화고개~효리고개~생식촌~사룡산~숲재까지)
<첫째 날> 제20구간 (시티재~어림산~마치재~한무당재까지))
...............언 제 ; 2015년 9월 18일 토요일 (22~25도 맑음)
...............누구와 : 박종관, 박찬익, 부길만, 이정일, 임순재, 황성자, @구본영
...............산행시간 ; 총 6시간 5분(휴식, 탐방, 식사시간 포함)
(05;30~06;00) 남부터미널~하남만남의 광장 출발
(09;00~09;40) 경북 칠곡군 왜관읍 삼청2리 333~8, ‘구미기사식당’에서 아침
(10;35) 시티재, 안강휴게소 도착
11;00 시티재 출발
11;19 이동통신 고경청정 기지국
11;33 호국봉(385m)/정상표시목;서래야
11;36~11;48 383.0봉/돌무더기 안에 삼각점/휴
11;59 이정표/논실 3.1km, 청정리 2.0km 지점
12;14 이정표/논실 2.4km, 청정리 2.8km 갈림길/우
12;20 안부사거리/성황당 흔적/황수탕 3.9km, 청정리 5.1km
12;43 이정표/논실 0.8km
12;46 논실 0.7km
13;10~13;30 무명봉에서 점심
13;51 송전탑(No.195)
14;18~14;46 어림산(510.2m)정상/삼각점/우측으로 벌목지대
15;10~15;29 마치재/904번 지방도
15;53 임도안부/좌
15;58~16;08 개간지 밭 좌측으로 올라 널은 솔숲에서 간식 및 휴식
16;30 경주시발점 0.1km, 용곡저수지 7.2km 이정표/우
16;18 남사봉(468m)
16;26 넓은 잔디밭이 있는 캠핑장 입구/시멘트임도
16;36 안부삼거리/경주시발점 방향으로 좌
16;52 안부
17;05 한무당재 도착/909번 지방도
(17;25~17;50) 택시(개인택시;김만호 010-5512-0044) 이용하여 시티재 도착
(18;00~18;30) 승합차로 아화시내 도착
(18;50~20;10) 경주 서면 아화1리 591~6 ‘아라쭈꾸미’(054-751-4664)식당에서 저녁
(20;30) 팡코르모탤 투숙
<산행기>........................................................
구름이 옅게 깔린 5시 30분에 남부터미널을 출발하여 6시에 하남 만남의 광장에 도착하니 팀원 모두가 반갑게 악수를 나눈다. 중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 거치고 중부내륙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문경휴게소에서 찬님과 운전을 교대고 성주, 칠곡을 거치면서 흥미진진하게 방담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연료부족으로 차가 나아가지 않는다며 노변 공간(졸음쉼터)에 정차시킨다.
아차, 한참만에 만나는 낯선 차량이다 보니 연료게이지의 눈금그래프를 좌우 착각한 탓이다. 8시 40분이다. 보험사 긴급A/S에게 연락을 취하고 20분 쯤 후에 연료공급 받고서야 ‘아, 참 세상은 편리하다,’라는 생각을 한다. 그것도 핸드폰의 위치추적으로 주소를 알아내어 서비스를 받는다니 文明의 利器에 고맙기는 하지만, 내가 세상에 가감 없이 노출되었다는 생각을 하면 한편으론 두렵기도 하다.
버럭도사와는 시티재 안강휴게소에서 10시 30분에 만나기로 했는데 막 전화가 걸려온다. 정각 9시이다. 어제 경남지구 출장으로 支社에 내려왔다가 1박을 하고, 곧바로 그곳으로 와서 합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랴부랴 IC를 빠져나와 왜관읍내에서 연료를 주입한 후 옆집 ‘구미기사식당’에서 돼지두루치기와 청국장 백반으로 조식을 한다. 9시 35분이 넘는다.
약속시간 10시 30분에서 7분이 지나고 37분에 안강휴게소에 도착하니 버럭도사는 아예 돗자리를 바닥에 깔고 보라는 듯이 늘어지게 자는 척 한다. 외출복에서 등산복으로 갈아입으면 누구나 저렇게 탕아(?)가 되는 걸까. 아니면 약속시간을 어겼다는 무언의 시위일까. 반갑게 악수를 하고는 지난달에 잊어버린 안경을 찾기 위해 카운터에 물어보았으나 습득한 안경이 없다고 한다.
시티재 정맥 출발지점은 이곳 4차선도로 맞은 편 路肩의 가파른 오르막이다. 도로를 무단으로 횡단하지 않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길을 돌아서 건너갈 수도 없는 위치이다. 일부는 아슬아슬한 중앙 분리대를 넘어야 하고, 일부는 돌아서 맞은 편 산으로 올라서야 하지만 어떻게 넘더라도 교통위반은 위반이다. 칡과 가시넝쿨이 이리저리 얽혀 있고, 풀 숲 위로는 햇볕이 뜨겁게 달아 오른 11시에 출발이다.
시티재 출발 19분 만에 ‘고경청정 기지국’을 지나고 33분에 385봉에 오른다. 돌무더기에 ‘護國峰’이라는 하얀 말뚝이 박힌 것을 보고서야 호국봉임을 아는데 생각했던 것보다는 더욱 초라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 봉우리의 산자락에는 6.25전쟁이나 베트남전에서 장렬히 산화한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국립영천호국원’이 있는 곳이다.
호국봉을 지나면서 곧 30~50센티미터 높이 정도의 둥근 돌탑무더기가 있고 그 중앙에 삼각점이 있다. 다른 곳에서는 전혀 보지 못했던 삼각점 위치가 돌무더기에 싸인 것이 궁금하기도 하고 특이하여 잠시 여기서 생각에 잠긴다.
6.25전쟁 당시에 치열했던 낙동강전투의 마지막 보루가 이곳 영천이었고, 영천을 사수함으로서 북진의 계기를 마련한 곳이었으니, 그들의 고귀한 희생이야말로 국토를 지킨 낸 영령들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 보지만 삼각점과는 관련이랴.
삼각점을 출발하여 10분도 되지 않아 우측으로 오래된 철망 울타리가 시작되고, 이어 논실 3.1km지점과 논실 2.4km으로 표기된 이정표를 차례로 지난다. 이어 안부 사거리에는 논실 2.0km로 표기되어 있고, 오른쪽으로는 철망 대문이 비스듬히 누워있다. 걷기에는 편안한 길이다. 연이어 논실 1.7km지점과 논실 0.8km지점, 논실 0.7km지점을 거친다.
그리고 움푹 내려간 안부 사거리에 도착하니 잔잔하고 까만 돌 맹이들이 흩어져 있고 기운은 음산하다. 이정표에는 황수탕 3.9km, 청정리 5.1km로 표시되었다. 옛날에는 이곳에 성황당이 있었던 기록도 있지만, 우리는 고도를 다시 높여 이름 모를 봉우리에 올라선다. 오후 1시, 배는 고파오고 온몸은 땀에 젖어 칙칙하지만 식사의 유혹은 견딜 수가 없다.
비아표 점심메뉴는 영양 잡곡밥에 갖가지 야채와 홍어무침이 주다. 엊저녁에는 간식과 반찬을 마련하느라고 잠도 제대로 못자고 장만했다는데 무뚝뚝한 남정네들은 칭찬에 인색하다. 그러나 비아는 다른 간식을 많이 먹었다며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커피를 권한다. 한 낮의 햇볕은 뜨겁게 내리 쬐고, 앞을 가로막는 어림산은 아득하기만 한데 어떻게 하려나.
오후 1시 50분, 하늘을 찌르는 195번 송전탑을 지나고, 어림산 가풀막을 치고 오르는데 여간 빡센 것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이정도의 고생으로는 ‘어림없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일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오후 2시 20분에 가쁜 숨을 깔딱이며 510.2m의 정상에 선다. 御臨山은 신라 때 왕이 둘러보고 갔던 산이라는 뜻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고 한다.
어림산은 북쪽 舞鶴山과 동쪽 金谷山으로 이어지는 데, 6·25전쟁 때는 경주 안강을 중심으로 하여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현장이기도 하다. 호국의 가치를 되돌아보고, 남쪽으로 가물거리는 南莎池와 來台池를 바라보면서 국토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 20분 가까이 시간을 보낸다.
오후 2시 46분에 오른쪽으로 시야가 탁 터인 벌목 쪽을 향하여 출발한다. 벌목한지가 오래되었는지 산딸기 가시넝쿨, 개복숭아나무 등이 서로 얽혀있어 머리 위까지 걸리적거리고, 길은 구분하기 조차 힘들다. 벌목지와 산길을 들락거리며 어림산 출발 25분후인 3시 10분에 마치재에 내려선다.
마치재는 영천시 고경면의 황수탕으로 유명한 덕정리 청석마을과 경주시 현곡면 남사리를 잇는 2차선 지방도이다, 남사고개라고도 하며, 지형이 말의 이빨을 닮았다고 하여 ‘馬齒재’ 또는 ‘말티재’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영천시 고경면에서는 덕정리로 넘어가는 길목에 서낭당이 있었다고 하여 서낭재, 당기미재 또는 馬峴이라고도 부른다.
오후 3시 30분에 마치재를 출발하여 평탄한 산길을 걷다가 임도 안부에서 좌측으로 튼다. 옛날에는 논으로 사용한 듯 한 農地였는데 지금은 사람 손길이 뜸하여 잡풀만 무성하다. 좌측 길을 따라 솔숲고개에 도착하니 먼저 온 찬님이 배낭을 멘 채 등산스틱을 거꾸로 잡고 드라이브 스윙연습에 한창이다. 깔끔씨가 코칭을 하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골프라며 푸념이다.
南莎峰을 오른다. 아침에 출발 할 때는 오늘 8~9시간쯤 걷고, 내일은 오전에 마무리한 뒤 관광이나 가자며 큰 소리 치더니만 이제 팀원들은 모두가 지쳐가고 있다. 10분 정도의 오르막에도 흑흑거리고 또 푸념이 많아지는 것을 보면 아화고개까지는 이미 틀렸고, 한무당재에 마음을 두면서 468m의 남사봉에 오른다.
남사봉은 이 봉우리 끝자락 남쪽에 南莎里라는 마을 이름에서 따 온 산 이름이지만, 御臨山과 人乃山이 병풍처럼 좌우로 둘러싸여 있고 산세가 수려하여 世居之地의 名所라는 이름도 얻은 곳이다. 그래서 일까, 東學의 교조 崔濟愚가 이곳 출신이고, 고 박정희 대통령도 퇴임 후에는 거처할 장소의 하나로 거론된 적이 있었다고도 한다.
이제 한무당재를 찾아가는 길이다. 안부 우측 넓은 잔디밭에 펜션 같은 집이 보이고 개가 사납게 짖어 댄다. 캠핑장이라고 하는데 잔디 운동장이 꾀나 넓다. 오후 4시 30분쯤이다. ‘경주 시발점’을 가리키는 이정표 따라 안부 사거리를 지나고, 오후 5시에 한무당재에 도착한다.
한무당재는 중국의 ‘한신장군’을 모신 사당이 있었다고 해서 ‘한무당재’라고도 하고, 무당 할미를 모셨던 서낭당이 있었다고 해서 한무당재 또는 할미당재라고도 부른다. 이곳 사람들은 옛날에 靑石과 산적이 많았다고 하여 청석골재이라고도 부르지만, 지금은 909번 도로를 확장하여 놓고 아스팔트 공사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비포장도로변의 수풀은 완전히 먼지투성이고 차량이 지날 때마다 먼지는 더욱 쌓여만 간다. 20여분 후에 호출한 개인택시 김만호 씨가 도착한다. 넉살을 널려놓는 기사님, 조수석에 앉은 버럭님은 덩치만 좋았지 아무리 보아도 산을 잘 탈것 같지 않다고 조크를 한다. 택시 안은 온통 웃음바다가 되고, 오후 5시 30분에 뿜어내는 뙤약볕 열기는 6명이 포개 앉은 좁은 공간에서 청량제가 된다.
오후 5시 50분, 시티재에서 우리는 승합차로 환승하고 아화시내로 달린다. 아화에는 민박집이나 펜션이 전혀 없어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아라쭈꾸미’식당을 점찍는다. 8시 30분에 저녁식사를 마치고 일찌감치 모텔숙소에 들린 대원들은 샤워부터 끝내고 캔 맥주 하나씩을 집어 든다. TV 드라마 징비록도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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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제21구간 (한무당재~관산~아화고개~효리고개~사룡산~생식촌~숲재까지)
...............언 제 ; 2015년 9월 19일 토요일 (19~23도 낮에 살짝 비가 오다가 맑음)
...............누구와 : 박종관, 박찬익, 부길만, 이정일, 임순재, 황성자, @구본영
...............산행시간 ; 총 8시간 35분(휴식, 탐방, 식사시간 포함)
(04;30~05;50) 기상 및 준비
(06;00~06;15) '아라쭈꾸미‘에서 아침/소머리 곰탕
(06;18~06;50) 택시 이용하여 ‘한무당재’ 도착(개인 택시기사 김만호 010-5512-0044)
06;50 한무당재 출발
06;53 여강이씨 가족 묘(4기)
08;02 아곡재(?)안부/희미한 사거리 같은데 돌무더기가 있음
08;37~08;55 관산(393.6봉)정상/묘1기에 삼각점/휴식
08;37 묘등 고개/비포장임도따름 가축 농장 마지막까지 직진/분뇨 냄새
09;50 농장 마지막 두 번째 도로에서 우측
09;50 영축산/천년란 입간판 정문에서 내리막 시멘트 도로
10;00 애기재 삼거리/직진하여 산길로
10;10 만불산/사리탑
10;30 창고(?) 아니면 폐 공장(?)
10;38 아화고개/지하도 통과 우측-철로횡단-저온창고-아화마을 시멘트 길-송전탑 방향
10;58~11;15 두 번째 송전탑 앞 숲속에서 간식
11;19 임도
11;23 송전탑 No.5
11;25~11;27 복숭아 밭 통과/알바주의
11;38 경부고속도로 지하터널 통과
11;40 앞 송전탑 3개중 중앙 탑 보고 시멘트도로 이용
11;43 저수지/가옥 한 채
12;53~13;08 사룡산 정상 4km, 효리 1.0km 이정표에서 휴식
12;13 No.14 송전탑
12;15 No.15 송전탑
12;30~12;36 효리고개/외딴(조남지농원)주택/조남저수지 우측으로
13;17 사룡산 정상 3.4km, 천촌리 0.6km 이정표
13;27 사룡산 정상 2.8km, 효리 2.0km 이정표
14;14~14;19 용계리 3.1km, 사룡산 정상 1.1km 이정표
14;25~14;30 우측 삼각점봉/여기서부터 절경
14;35~14;55 656봉/밀양기맥(비슬지맥)분기점/사룡산 600m/휴식
15;04~15;18 생식촌 통과
15;25 숲 재 도착
(15;40~16;05) 택시 이용하여 ‘아라쭈꾸미’식당 도착
(16;30~18;00) ‘조남지 농원’(경주 서면 서오리 산7. 054-751-1313. 010-5765-4100)/김정숙/토종 닭 백숙 및 옻닭/깔끔,맛집/오디 술
(18;00~22;45) ‘조남지 농원’을 출발하여~하남만남 광장~서울 남부터미널 도착
<산행기>..........................................................
아침 6시에 아침식사를 예약하여 놓고 시간에 맞춰 '아라쭈꾸미'식당에 도착하니 우리가 첫 손님이다. 소머리곰탕에 백반인데, 모든 반찬들이 깔끔하고 맛있어 금방 한 그릇을 뚝딱 비운다. 마침 공사장 일꾼들이 6시 30분이면 식사하러 오는데, 우린 이 들에 끼어 먼저 식사를 하게 되는 행운을 얻은 셈이다. 이곳 시골에는 아침식사 하는 곳이 없어서 하마터면 굶고 갈 뻔했기 때문이다.
어제 이용했던 개인택시 김만호씨를 호출하여 6시 30분에 한무당재로 달린다. 그는 73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10년은 더 젊게 보이며, 심덕도 무척 좋아 보인다. 喪妻 한지가 오래되고 지금은 나이 들어 고향을 지키면서 消日거리로 운전을 하지만, 農家와 텃밭 600여 평 은 직접 관리하기가 벅차서 賣買로 내 놓았다고 한다.
아침 6시 50분에 한무당재를 출발한다. 오늘 전체 산행시간이 많은 관계로 서둘러 선두에 서는 것은 늦어도 11시대에는 아화고개에 도착하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해야만 숲재까지 무난히 끊고, 오후에 여유가 생길 것 같기 때문이다. 출발하자마자 여강이씨 가족묘 4기를 지난 다음, 상큼하고 산책로 같은 코스를 순탄하게 이어간다.
출발 1시간 15분 후인 8시 5분경에 아곡재(?)를 지나면서 가파른 오르막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관산은 400m에도 미치지 못하는 393.5m이지만, 벼슬하는 사람들의 冠처럼 생겨서 일까, 뾰족이 솟은 가풀막을 오르는 데는 숨이 막히고 온 몸은 온통 땀범벅이 된다. 출발하여 2시간 가까이 되도록 한 번도 쉬지 않고 진행하다 보니 후미에서는 원망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직벽같은 오르막을 헉헉거리며 8시 40분에 정상에 올라선다.
기대를 하고 冠山에 올라왔으나 눈에 띠는 정상석도 없고, 묘지 한 기만 덩그렇게 누워있다. 그리고 묘지 옆 참나무에 ‘관산’이라은 간판은 ‘대구백운회’에서 표지한 것이고, 더욱 특이한 것은 묘지 봉우리 옆구리에 삼각점이 박혀 있는 것이다. 왜 남의 묘지에 삼각점을 박아 놓았을까. 20분 넘게 휴식을 취한다.
관산 정상을 중심으로 양쪽은 급경사이다. 8시 55분에 관산을 출발하여 10분후에 또 다른 삼각점을 지나고, 9시 37분에 묘등 고개가 있는 비포장 임도를 따른다. 산중에 분뇨냄새가 코를 찌르는 양계축산 농가 마지막 길에서, 다시 우측으로 길을 튼다. 닭똥 냄새가 진동을 하는 비포장도로를 150m쯤 빠지나오니 ‘영축산/천년란’이란 입석 간판 정문을 만난다. 9시 50분이다.
지금부터는 꼬불꼬불한 내리막 시멘트포장도로이다. 건너편 萬弗山에서는 ‘아미타영천대불상’이 서방정토를 내려다보면서 묵상에 잠겨 있고, 햇볕은 금빛 불상에 부딪혀 반사한다. 10시에 T자 도로인 ‘애기재’에 내려서게 되고, 297m의 만불산은 10여분 후인 10시 10분에 오르게 된다. 약사여래상과 사리탑이 있고, 주위는 넓은 공터인데 손길이 가지 않아 잡풀이 무성하다. 영천 만불산의 만불사는 신라 불교문화의 중심이었다고 들었는데 우리는 능선만을 고집하다 보니 萬弗寺를 탐방하지 못하고 그냥 지난다.
이제부터 알바 조심지역이다. 잡풀 숲을 간신히 빠져나와 동네 밭과 밭 사이를 용케도 찾아 내려와서 4차선 국도 지하도를 정확히 통과한다. 지하도를 지나면 아화고개의 애기지휴게소가 있고, 여기서 우측으로 구 도로를 따른다. 열을 받아 화끈거리는 아스팔트길로 200m쯤 올라오니 좌측에 시그널이 걸려있고, 이 길은 철도를 건너게 되어있어 무척 위험하다.
아니나 다를까, 아화마을 입구에 들어서려는데 汽笛이 요란하게 울린다. 사진을 찍으며 여유를 부리던 후미의 비아와 길님이 떠올라 응급 결에 뒤를 돌아본다. 두 사람이 막 철길을 건너서려는 순간 요란한 기적을 지르며 달려오는 열차에 기절초풍 했단다. 놀란 것은 그들뿐이 아니다. 모두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동네 아스팔트길을 유유히 따른다.
아화마을의 阿火는 넓은 벌판과 언덕을 끼고 형성된 마을로서 원래는 ‘阿弗, 阿鬱, 아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지역은 水利施設이 좋지 않아 여름이면 가뭄으로 초목이 고사될 정도이고, 불이 나면 불을 끄지 못하고 계속 탄다는 뜻이지만, 지금은 넓은 들판에 각종 과수원이 풍요롭게 펼쳐 있고, 저수지도 많아 전경도 좋다.
11시이다. 두 번째 송전탑 못 미친 솔숲에서 잠시 휴식과 간식을 취하고, 임도에 내려서니 송전탑(No.5) 한 기가 하늘을 찌른다. 여기에서도 알바를 조심해야 한다. 임도를 계속 따르다보면 자칫 알바하기 딱 좋다. 임도 중간쯤에서 좌측 복숭아밭 둑을 따라 경부고속도로를 바라보고 진행하여야 한다. 붉은 복숭아가 주렁주렁 탐스럽게 유혹한다.
경부고속도로에 내려서 둑을 따라 좌측으로 진행하다가 지하터널을 통과할 때가 11시 38분, 시멘트 농로길을 따라 산능성이로 펼쳐진 송전탑 3개중 중앙 것을 보고 진행을 하는데 저수지 한 편에 자리 잡은 집 한 채가 사람손길이 가지 않은 듯 초라하다. 정상 우측의 넓은 초원에는 옥수수를 심었는데, 손질을 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한 걸 보면 아마 가축 사료용으로 심은 것일까.
12시 30분에 효리고개 앞 조남지농원(외딴가옥)에 내려선다. 앞마당 백일홍울타리 넘어서 조남지저수지가 한가로이 펼쳐지고, 그 뒤편으로는 五峰이 하늘과 맛 닿는다. 풍수를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집터 하나는 괜찮아 보인다. 조상에게 물려받은 土地에 새로 집을 지어 25년째 살고 있다는 주인은 인심도 무척 좋아 보인다. 이곳의 정맥 길이 분명하지 않은데 주인께서 시그널을 달아주고 길을 이집 앞으로 유인하면 장사도 더 잘 될 것이라며 귀 띰 하고는 우린 우리 갈 길을 재촉한다.
조남지를 바라보고 오른쪽 능선을 따라 사룡산 3.4km이정표 앞에서 잠시 쉬면서 에너지를 축적한다. 사룡산을 정복하기 위한 워밍업(warming-up)인 샘이다. 정상 2.8km남은 지점을 지난다. 고통은 지금부터이다. 한 봉우리를 오르고 또 한 봉우리를 올라도 또 한보우리가 앞에 놓인다. 오르고 또 오르고 너 댓 번을 속고 나니 기진맥진, 다리는 후들후들, 땀은 줄줄, 더위, 갈증, 오기와 부딪치며 1시간여 만에 우측 봉 삼각점에 오른다.
사람의 뇌세포는 단순한 것으로 포장된 것일까. 경치 하나에 지금까지의 고통은 바람처럼 사라지고 성취와 환희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죽을(死)힘까지 용을 써야 오른다고 死用山을 사용했나, 오후 2시 35분에 656봉에 선다. 그러나 용 네 마리가 등천하였다는 683m의 四龍山 정상은 아직 600m의 거리에 있다. 오죽 힘들면 병자호란 때도 적군이 이곳을 넘지 못해서 戰防山이라고도 불렀을까. 다행이 정맥길은 사룡산 정상을 살짝 비켜 왼쪽 편 하산 길로 내려간다. 그러나 이곳 또한 비슬지맥 분기점이란 의미도 남다르고, 목적지도 얼마 남지 않아 20분간을 대자연과 호흡하며 자유를 느낀다.
비슬지맥(琵瑟枝脈)이란 이곳 656봉에서 서쪽으로 분기하여 四龍山을 거치고, 금호강의 남쪽 울타리와 밀양강의 서쪽 울타리 역할을 자진하면서 밀양시 상남면 외산리 오우진 나루터에서 그 맥을 다한다. 오우진 나루터는 밀양강과 낙동강이 합수하는 지점이다. 도상거리 146.5km이고, 최고봉인 1083.6m의 琵瑟山 이름을 딴 지맥이다. 동쪽 밀양강을 건너면 낙동정맥에서 분기한 영축지맥의 종착지가 되고, 남쪽 낙동강 건너로는 낙남정맥에서 분기한 무척지맥의 종착지이기도 하다.
656봉에서 7~8분정도 내려오니 산을 둘러싼 위장마을 같은 왕국(?)이 나타난다. 사이비 종교집단?, 위압감을 주는 여러 개의 높은 대문, 하늘을 찌르는 원통기둥, 큰 동상, 태극기, 경고문, 위장된 전시마을, 이상한 집 들, 수상한 글자, 붉은 깃발, 계시록,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은 텅 빈 집들, 일반 사회와는 또 다른 별개의 나라 같다. 알고 보니 생식마을, 또는 생식촌이다.
생식마을은 1960년대 초 정평화(작고)씨 부부가 당국의 화전민 철거 정책에 밀려 이곳에 정착하면서 부터이다. 충북 단양면 소백산 곤로봉 부근에 살다가 친인척 몇 사람이 공동으로 구입한 8만여 평의 임야를 구입하여 이곳에서 생식을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은 뜻을 같이하는 30여 가구에 100명도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화식은 절대 금물이고, 풀만 먹고 산다고 한다. 더구나 고기나 생선은 거들 떠 보지도 않고, 무농약 재배에 이름 모를 각종 약초와 풀들, 쌀도 밥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생쌀을 먹는다고 한다.
사람마다 편견은 있기 마련이다. 조금 전 무턱대고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은 들여다보지 못하고 겉만 보고 사이비 종교집단으로만 생각했던 편견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모른다. 어떻게 보면 복잡다난하고 거미줄처럼 얽힌 인간관계의 고단한 삶보다는 이들의 사는 방식이 無慾無心으로 사는 것은 아닐까.
자연의 섭리에 따른 있는 그대로의 삶이 얼마나 더 의미 있고, 홀가분하며 고귀한 삶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에서이다. 順天者는 存하고 逆天者는 亡한다는 글귀가 생각난다. 이 마을이 ‘우라리생식마을’로서 마을입구를 빠져 나오니 오후 3시 25분, 오늘의 목적지 숲재에 도착한다.
효리고개의 조남지농원에 전화를 하여 닭백숙과 옻닭을 주문하고, 김만호 씨 택시에 오른다. 아라쭈꾸미식당에서 승합차로 갈아탄 후 조남지농원에 내리서니 토종닭백숙 냄새가 침샘을 자극한다. 음식은 정성이다. 깔끔하고 정갈스런 반찬에 후한 인심이면 錦上添花이다. 식곤증이 나도록 배를 불리고 난 후 약초 술이 있기에 맛보기를 청하니 10년이 넘었다는 37도의 오디술을 내 놓는다.
이런 식당이 서울근교에 있으면 매일 출근하겠다는 버럭님, 혹시 딴 마음 가진 것은 아닐까. 이래저래 오후 6시를 채운다. 고속도로휴게소 두서너 군데를 거치고 운전을 서로 교대하면서 곤지암, 하남 만남의 광장을 거친 다음 남부터미널을 10시 45분에 도착하여 전부 해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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