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K 유럽 선교노회가 발족이 된다.
선교노회는 유럽에서 한인 목회를 하는 목사들의 필요에 의해 오래전부터 요청된 것이었는데,
이제서야 노회가 창립이 된다.
나는 크로아티아 타문화권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이 땅에 왔지만 동시에 현지에서 한인 목회도 한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현지에 대한 사역이 쉽지 않음을 느꼈다.
관계를 만드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또 열매도 더딘 현장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크로아티아 선교 상황 속에서는 난 선교적 한인교회가 미래 사역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것을 믿었다.
16년 전만 하더라도 크로아티아에 한인교회를 세울만한 이유가 없었는데, 그건 한인이 없어서였다.
한인이 없는데 한인교회가 있을리가 막무하고 또 개척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한인교회를 설립한 이유는,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요
그 다음은 장차 미래에 선교를 돕는 선교적 한인교회가 될 것임을 기대하며 믿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없이 시작된 교회였고, 또 사람에 매이지 않는 교회였다.
그러다 보니 교회는 더디게 자랐고, 미움도 받고, 오해도 받았으며, 영적인 음해도 강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는 자라면서 선교사와 선교지를 돕는 역할을 했다.
현지 교회와의 가교 역할을 하고, 현지 사역자들을 섬길 수 있었고, 선교사인 나를 지원하고, 주변 국가에 또 다른 한인 교회를 개척하는 일을 했다.
선교적 한인교회는 교회 존재와 목적이 '목양'이 아닌 '선교'에 있다.
교회와 성도는 선교를 위해서 쓰여지는 도구가 되는 곳이다.
그런면에서 목양을 원하는 한인교회와 선교를 위한 선교적 한인교회의 차이가 있다하겠다.
또한 선교적 한인교회는 목양적 한인교회와 다른 우선순위의 교회 형태이다.
목양적 한인교회의 대상은 대중이라면, 선교적 한인 교회의 대상은 제자다.
물론 목양적 한인교회가 선교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선교적 한인교회가 목양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둘의 주된 대상과 우선순위는 다르다.
지난 날 한인교회에 출석하는 이들 중에는 이를 깨닫지 못했기에
목양과 선교라는 이 둘의 긴장 가운데서 혼란스러운 기간이 있었고, 거부하기도 하고, 탈락하기도 했다.
유럽 선교노회가 설립되면서 나는 유럽에 있는 한인교회가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할지를 생각해 본다.
목양 중심의 교회가 된다면 '선교노회'라기보다 '해외노회'라는 의미에 더 가까울 것이다.
선교적 교회란,
선교지에 존재하며, 그곳에서 선교에 헌신하는 교회다.
영적 전쟁터인 선교현장 가장 프론터 라인에 있는 응급 수혈 같은 교회다.
그러므로 구성원들의 목양을 위해 교회의 역량을 다 사용하지 않고..
대신 구성원들이 현지의 동일한 선교사요, 동역자가 되어
교회의 역량을 선교 현지를 위해 대부분 사용하는 교회다.
난 선교적 교회를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
한국기독공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