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목사의 인식 피정 이야기 2: 조지아와의 만남 ◈
입국심사대에 올려 진 와인 한 병! 난 그 속에서 조지아 사람들의 자존심을 만날 수 있었다. 조지아는 자기들만의 고유 언어를 가진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이다. 수많은 언어를 보았으나 조지아 언어는 무척 생경했다. 그곳에 있는 동안 단 한 글자도 읽을 수 없었을 정도로 독특하기도 했다. 글씨라기보다는 그림에 가까울 정도로 원(圓)과 원의 연결, 곡선과 곡선의 연결처럼 보였고, 그림이라기에는 도형 같고 도형이라고 하기에는 글자 같은 느낌이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하여튼 새벽 4시쯤에 도착한 조지아 공항, 갑자기 환성 소리와 꽃가루가 난무했다. 족히 십여 명은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남녀 한 쌍을 향해 박수를 치고 꽃을 던지고 끌어안고 야단법석이다.
아~ 신혼여행을 다녀오는 친구를 마중하러 나온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 이른 새벽에...?
친구란 어느 나라 사람이건 참 살갑다. 그래도 새벽을 마다하고 공항까지 나와 축하를 하는 친구들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우리야 신혼여행을 갈 때는 그리 한다지만 돌아오는 때, 그것도 이른 새벽시간에까지 기다려 영접하지는 않지 않는가. 그렇게 조지아는 우리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온 것은 사실이었다.
아들이 예약해둔 호텔, 겉은 낡은 건물이었으나 안은 반전의 모습을 주었다. 편백나무 향이 솔솔 풍기는 건 덤일 뿐이었다.(우리가 출국하기 전날에도 다시 이 호텔을 찾았을 정도로...)
5만원이 채 되지 않는 가격에 놀라운 가성비, 우리나라 숙박시설과 비교하면 분명 별 다섯 개 특급호텔임이 분명하고, 1인 약 3-4천원으로 조식의 풍미까지 더하면 입이 벌어질 지경이었다. 새벽, 아니 아침에 잠들었다 해도 난 늘 일어나는 시간에 눈을 떴다. 아내와 아들의 잠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혼자 조지아의 아침 속으로 들어갔다. 건물들은 백 년도 훨씬 넘어보였고 거리와 집 마당에 심겨진 포도나무를 통해 이들이 왜 와인에 대한 자부심이 깊은지에 대해서도 엿볼 수 있었다.
아침이지만 분주하다. 영화 속에서 본 러시아풍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비닐봉지에 빵을 담아 집으로 가는 노인들이 정겹다. 이 저곳을 기웃거리는 동양인이 이들에게도 구경거리였음은 분명했을 것이다. 살짝 웃고 손을 가만히 들어 인사한다. 빵가게에 들러 빵을 사고, 사과 몇 개를 봉지에 담았다. 우유도... 그런데 갑자기 한 여인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건넨다. 이놈의 인기는...^^ 하지만 착각이었다. 경찰복을 입은 여인, 그녀가 내게 패스포트를 요구했다. 순간 당황했지만 친절, 아주 상냥한 얼굴로 아침 인사를 건네고 패스포트를 주었더니 휙 훑어보고는 웃으며 좋은 여행이 되라고 한다. 물론 나도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했다.
첫 번째 불심검문!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기분 상할 정도는 아니었다. 왜? 난 그들에게 특별한 남자니까^^(호텔로 돌아가서 약간의 풍미, 쉬운 말로는 뻥을 더해 아내에게 이야기 했다^^)
호텔에 짐을 맡기고 거리로 나왔다. 점심 후 차를 빌려 다음 숙박 장소인 아파트로 갔다. 아들과 아내는 차를 빌리는 것을 조심스러워했지만 조지아 곳곳을 돌아보려면 빠른 발이 필요했고, 후에 모자는 희희낙락거리며 차를 빌리길 참 잘했다고 염장을 질렀다.
여기서 외국여행 시 숙박에 관해 알아보자.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외국여행 시 가장 많이 들어가는 경비는 비행기 요금이다. 먹고 자는 건 자유여행일 경우 얼마 들지 않는다. 아주 저렴한 가격에 좋은 숙소를 얻을 수 있다. 출발 전 예약도 필요하겠지만 첫날 정도만 예약을 하고 현지조달을 하면 경비를 엄청 절약할 수 있다. 포털 사이트를 이용할 때 나가는 수수료 20~25%를 절약하는 센스!
호텔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편안한 아파트 렌트는 스스로 음식을 해먹을 수 있고, 입출입이 자유롭고 저렴한 비용으로 인해 만족도가 높다. 난 아파트를 빌려 사용하면서 국내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부동산 임대사업을 통해 부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좁은 땅에서 복달복달 사느니 눈을 조금만 밖으로 돌려도 훨씬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환경이 있음을 접하게 된 것도 여행 중 얻은 지혜였다.(물론 우크라이나도 마찬가지였다)
차를 빌린 동안에는 조지아의 외곽도시를 여행하기로 했다. 러시아 소치(동계올림픽 개최 장소)까지 불과 10여km 떨어진 곳에 자리한 만년설산 ‘카즈베기 산’(5033m)의 중턱에 자리한 수도원은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고스란히 드러내고도 남았다. 카즈베기 산이 마주보이는 곳에서의 1박, 내 생애 가장 높은 고산 도시에서의 하룻밤으로 기억될 것이다.
아침 해가 설산 뒤에서부터 은근한 황금빛을 뿜으며 물을 들였다. 흰 눈과 아침 태양빛이 그리도 멋지게 조화를 이룬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아침 해는 겨울산과 만날 때 장엄하다. 산꼭대기에 햇살이 머무는 그 찰나의 주변은 세상의 모든 언어가 동원된다 해도 표현하기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되었다. 엊저녁에 먹고 남은 빵, 햄과 치즈와 우유, 그리고 커피 한 잔이면 충분하다. 걸어서 수도원까지 오르면 좋으련만 여건이 좋지 않았다. 4륜구동 차를 불러 눈길을 곡예 하듯 올랐다. 산에서 보는 세상과 세상에서 보는 산은 그 느낌부터가 다르다. 우린 산 아랫사람이기에 참 큰 것을 놓치고 살고 있는 셈이다. 올려다보면 또 더 높은 산이지만 거기에 서있기만 해도 벌써 많은 것을 알고 배운 느낌이 훅하고 들어왔다.
다시 산 아래로, 아래로...맘씨 좋은 기사에게 좋은 식당을 물었더니 금방 가르쳐준다. 들어선 식당엔 아무도 없었다. 다만 벽 가득히 세계 각 나라의 돈들이 도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맛집이 분명했다. 세계 사람들이 다녀가고 기념으로 벽에 붙여놓은 지폐, 그 중에 우리 돈 5만 원 권도 있었다. 재벌이 다녀갔을까, 아니면 그것밖에 없었을까? 조지아 사람들이 그 돈의 가치를 안다면 분명 가만두지 않을 것인데...^^
온 길을 되짚어 트빌리시로 돌아가는 길, 그런데 내가 어제 차를 몰고 온 곳이 이리도 험하고 아슬아슬한 눈길, 계곡 길이었다니... 온 세상이 온통 눈으로 덮였다. 난 앞차 뒷 꽁무니만 보고 달렸는데 낮에 보니 아찔한 운행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수천 미터 높이의 산을 몇 개나 넘은 건지, 그리도 좁은 길을 어찌 그렇게 빨리 달린 건지...^^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눈에 조지아의 구석구석을 찬찬히 담았다. 길가에 누워 잠든 거리의 개들을 쓰다듬기도 하고, 홍차와 커피 한 모금으로 한껏 여유를 부려보았다. 가는 곳마다 수백년 교회들이 저마다 역사를 품고 서있다. 마른 포도나무 잎사귀에서 지난여름 찬란한 햇살의 이야기들을 조금이나마 들을 수 있었다. 굽이쳐 흐른 강물 위로 반짝이는 물결은 삶의 순리를 말하는 것 같았고, 빵 한 조각만 가지고도 만족해하는 사람들의 얼굴위로 편안함이 앉아있었다. 급한 건 나뿐이라는 사실조차 내려놓게 되는 조지아의 갓길 풍광들이었다.
다음 날엔 정반대 길로 접어들었다. 와인루트를 따라 ‘시그나기’로 향하는 길!
고개를 돌리면 모든 것이 포도밭인데 겨울의 포도밭은 쓸쓸하다. 포도가 영글고 잎이 바람에 뒤척이는 계절에 다시 한 번 오고 싶다는 마음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래도 길가 좌판에서 단순한 무언가를 파는 여인들의 모습이 위로가 되었다. 차를 세우고 다가가니 포도송이가 있었다. 알이 아주 작은 포도, 조금 마른 듯 했으나 겨울까지 보관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그 당도가 느껴지는 것 같아서 우리 돈 천원 남짓으로 포도 서너 송이를 샀다. 포도가 아니라 포도사탕이었다. 게다가 홍차와 포도가 그리도 잘 어울린다는 것을 안 것은 축복이었다. 오르고 올라 도착한 ‘시그나기’는 마을전체가 성벽으로 둘러쳐있고, 아랫마을과 고립된 섬 같은 마을, 평생을 그곳에서 살았다는 사람들이 관광으로 살아가는 동네에서 내가 제일 먼저 한 것은 눈밭에 놓인 좌판에서 석류즙 한 잔을 마시는 것이었다. 석류즙이 한 방울 눈밭에 떨어졌다. 핏방울처럼 붉게 ‘시그나기’의 전설이 그렇게 번져가고 있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