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샤깔라(김 웅)님의 교우단상 : 짠돌이의 죄충우돌 네팔 여행기 5- 히말라야 인연 ◈
산새가 험하기로 악명 높은 ‘히말라야 호텔-데우랄리’ 구간을 난 겁 없이, 그것도 반팔 차림으로 오르고 있었다.(땀이 잘 나는 탓에 이 구간 전까진 반팔과 반바지 입고 산행했음...ㅎㅎ)
해발 3,000m의 이곳을 지날 때 비로소 사계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짙은 녹음의 숲을 시작으로, 오르면 오를수록 옅어지다 못해 떨어지는 나뭇잎과 녹지 않고 쌓인 눈의 자연사(自然史)를 통해 인간사 이전에 하나님의 사(史)와 예수님의 사(死)가 떠오르기도 했다.
자연의 색채, 상쾌한 공기의 내음, 따스한 햇볕의 촉감, 버석거리는 낙엽 소리에 더해 잠깐 배낭을 내려놓고 음미한 믹스 커피 한 잔이 나의 오감을 만족시켜주었다.
숨을 고르고 있는 찰나에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고 서로 인사를 했다. “나마스떼!”
훤칠한 키에 선글라스를 끼고 있고, 둔근이 발달되어 애플히프를 소유하고 있는 한 남성분의 “한국인이세요?”라는 말에 난 이분과 인연이 될 것이라는 육감이 찾아들었다. 그리고 이어진 악수와 그의 말에서 나의 직관이 빗나가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난 설악산 산악 구조대 대장이고 밑에서 우리 팀원들이 올라오고 있어. 우린 오늘 MBC에서 숙박하고 내일 ABC 찍고 바로 하산할거야. 나랑 같이 움직이자” 롯지에 도착하니 밑에서 그의 팀원들도 속속들이 올라왔다. 한 분씩 인사를 드리고 다 같이 식당에서 라면을 먹었다.
설악산 산악 구조대장 안명득 삼촌과, 전 대전 산악 구조대장이자 현 완주 산내들희망캠프 협동조합 대표이신 이기열 삼촌 등 두 분이 건네주시는 명함에 이어, 영어를 잘 구사하시는 맡 형님인 삼촌 두 분, 카리스마가 넘치면서도 구수한 사투리가 정겨운 삼촌 두 분, 항상 웃음꽃이 피는 네팔 현지인 모녀, 한국말을 잘하는 현지 가이드 한 분과 산더미 같은 짐을 곧잘 들쳐 메는 현지인 짐꾼 등의 소개가 이어졌다. 완주와 효자동, 정읍으로 삼촌들과 나의 연고지가 겹친다는 것에 깜짝 놀라기도 했으며, 이분들 전부 이전에 히말라야 등반을 하셨던 분들이자 해외 오지 봉사 및 산 탐험 등의 내력을 갖고 계셨다. 이분들과의 동행으로 변경된 나의 오늘 목적지는 ‘MBC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 3,200m인 데우랄리와는 달리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의 고도는 3,700m에 달했다. 등산화의 끈을 다시 조이고 출정 준비를 하는 동안 오늘 이 만남을 시작으로 마치 내가 영화 속 영웅들과 만나 함께 여정을 떠나는 것만 같았다. 어마어마한 기암괴석의 협곡 사이를 뚫고 전진해나가는 열 명의 산악구조대 삼촌들과, 그들 사이에 끼어 산을 헤쳐 나가는 내가 만들어졌다. 빙판의 내리막길을 만났을 때 미끄러워 꾸물거리던 내 모습에 삼촌들은 땅에 박힌 조그만 돌을 찾아 밟고 지나가는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등산의 ‘등’자도 몰랐던 나는 히말라야를 오르며 등산 장비의 중요성을 체득하기도 했다.
군함을 떠올리게 하는 등산화는 그것의 견고함이 주는 안전감에 더할 나위 없었고, 돛을 연상케 하는 배낭의 허리벨트 착용은 배낭의 흔들림을 방지하고 무게 중심을 체간으로 모이게 하여 어깨가 덜 아프게 해주었다. 약간의 팔 힘을 더하여 다리가 네 개인 듯한 효과를 내는 등산용 스틱의 지원 병력이 있어 장시간 동안 비교적 피로하지 않게 산행할 수 있었다.
목사님께서 모악산 등산 중 장비의 효과에 대한 이야기가 그제야 무릎을 탁치며 지나갔다.
레이어링 시스템(여러 겹의 옷을 겹쳐 입기)이 산행에 주는 효과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급격히 낮아지는 산의 기온에 더해 땀의 증발로 체온을 더 잃을 수 있기 때문에 투습성이 좋은 소재의 복장을 갖춰, 산행 중 더워서 땀이 나기 전에 옷을 벗었다가 추위를 느끼기 전 다시 옷을 입어 보온을 유지하는 방식인 이 용어는 열과 땀의 효율적인 관리를 의미한다. 평소에 스포츠용 기능성 옷을 입지 않고 오직 면 소재 옷만 입었던 나는 산 위에서 레이어링 시스템을 수행하면서 체온을 효율적으로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투습성 덕에 땀이 나도 금방 말라 감탄하기도 했다.(반팔과 반바지 차림은 정말로 내게 쾌적함을 선물해줌ㅎㅎ)
‘천천히’ 의미인 “비스따리”라는 큰 삼촌의 외침에 다들 길모퉁이에서 잠깐의 휴식을 가졌다. 산을 오르는 도중에 쉴 때는 옆 모퉁이에서 쉬어야 한다. 다른 여정자에 대한 배려도 있지만 특히 고용된 짐꾼이나 롯지에 필요한 물자를 이송하는 노동자를 위해서이다. 이들은 자기들의 키에 버금가는 짐들을 메고 히말라야를 오르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데우랄리 지역부터는 길 곳곳에 말똥이 보이지 않았는데 아마 고지대라서 그럴 것이다. 히말라야는 사람뿐 아니라 조랑말이 오르기도 하는데, 이들은 조련사의 채찍질에 등에 무거운 짐을 한가득 싣고 가파른 경사를 힘겹게 올라 각 롯지로 향한다. 인간은 배부름이라는 행복을 느끼고 이에 대한 증표로 똥을 눈다. 반면 히말라야의 조랑말이 싸는 한 바가지의 똥은 등에 지고 있는 억압된 짐의 무게만큼 고통이 더해져 있음에 대한 반응인지 모른다.
목적한 곳에 도착했다. 3,700m의 ‘MBC,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인 이곳에선 사방에서 설산을 볼 수 있었고 산의 일몰은 다가올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내기도 했다. 식당에 모두 모였는데,
“그래 맞아, 웅이처럼 청년들이 산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가 돕고 베풀 의무가 있어”
자~ 이제 행복한 저녁 만찬의 결과로 생길 똥을 싸기 전에 나의 실력 발휘를 할 차례가 되었다. 삼촌들이 제공해주시는 식사에 나의 유흥거리 재능을 선보이면 오늘 밤의 기쁨이 배가 될 것임을 확신했기 때문!
식사 후 이어지는 나의 막춤으로 분위기를 띄우고자 같이 여정 온 팀원 현지인의 딸과 열심을 다했다! (이런 것은 당연 막내들이 담당ㅎㅎ, 딸은 나보다 한 살 많은 누나)
한국 여행을 오고 싶어 하는 현지인 모녀에게 난 아리랑을 부르며 민요를 알려주기도 했고, 답가로 네팔의 민요도 배울 수 있었는데, 사실 후렴구가 인상적이라 이것만 기억난다.
“삐리리~♬ 렛삼 삐리리~♪” 뽕잎이 바람에 날려 멀리 언덕과 고개를 넘어 날아가는 모습의 의성어로, 산행의 고됨을 이겨내기 위해 부른다고 한다.
피곤이 누적된 삼촌들은 한 사람 두 사람씩 방으로 들어가셨지만, 나의 피는 이곳 영하의 날씨에도 끓고 있었으니 끝장을 봐야 시원하게 똥도 쌀 수 있지 않겠는감ㅋㅋㅋ 가쥬아~!
큰 삼촌 두 분, 모녀와 나는 영어로 대화하며 네팔어를 배우기도 했다.(다 까먹었지만..ㅠ) 삼촌의 하품이 나올 무렵 난 드디어 인정을 받았다.
“이야~ 웅이 끝까지 살아남았네? 진짜 대단한 놈이야 하하하”
때 마침 나의 배에서 오는 신호는 내가 지금 기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기도 했다. 재래식 화장실로 달려가 볼 일을 본 후 방에 들어와 행복한 산행 3일차의 커튼을 닫았다. 핫팩을 챙겨온 나의 생존 전략은 대성공이었는데, 침낭 안에 보온병은 기본이고 핫팩 두 개를 넣고 잤더니 밖의 영하 온도에도 새벽에 더위를 느껴 입고 있는 패딩을 벗고 자기도 했다.
산행 4일 차, 지도 상 ‘마차푸츠레B.C.’에서 ‘안나 푸르나 B.C.’까지가 이곳의 마지막 코스이다.
카트만두에서 한국인에게 선물 받은 아이젠을 내 함대인 등산화에 힘겹게 장착하고 영웅들의 뒤를 따라나섰다. 안나푸르나 함대의 학익진 전술이 곧 나의 숨통을 조여 올 것이지만 난 심호흡을 하며 차분히 받아들일 것이다. 진두지휘하는 삼촌들에 게 힘을 더해주기 위해 어제 배운 민요와 막간의 포토 타임으로 사기를 올려 결국엔 등산로마다 쌓 인 눈을 돌파하고 최종 목적지인 4,130m의 ABC 에 올랐다. 하지만 아쉽게도 열명의원정대의 단체 사진을 찍어드릴 때 난 마지막 웃음을 선사하며 작별했다. “자 하나, 둘 세고, 삐리리~ 레쌈 삐리리~ 부르고 찍을게요! 찰칵!” (삼촌~ 열 분의단체 사진과 저랑 찍은 사진은 안 보내주셨어요)
난 여기에 남아 크리스마스이브를 즐기고 내일 성 탄절 아침 일출을 보고 하산을 할 계획이었다. 일몰을 본 후 저녁식사를 하기 전쯤 나의 육감이 다시 발휘 되었다. 산행 2일차에 촘롱에서 본 한 국인 일행과 분명 오늘 함께 할 수 있을 거란 기 대를 했기 때문이다. 한편 롯지에서 다른 외국인 에게 산소 포화도 측정기를 빌려 나의 산소 상태 를 측정해본 결과 75%가 나왔다. 내 몸은 지금 산소가 부족하여 고산병이 올 상태이다. 임상에선 80%이하이면 초응급 상태인데...불안으로 맥박이 더 뛰고 호흡량이 증가하여 악순환의 고리를 이루기도 했다. 과연.. 난 숨이 조여지는 상황에서도 안나푸르나산군의 포위에 버틸 수 있을 것인가..? (다음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