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노이아(paranoia)란 편집증을 말한다. 편집증은 문자 그대로 어느 한 가지 문제에 과도하게 집착해 망상으로까지 발달하는 경우이다. 편집 망상과 더불어 남들이 자기 이야기를 수군거린다는 관계사고, 사회적 고립, 은둔, 괴벽, 의심, 증오, 폭력행사 등을 수반한다. 잘 알려진 편집증으로는 의처증이나 의부증을 들 수 있는데, 그밖에도 색정 편집증(erotic paranoia), 과대 편집증(grandiose paranoia), 피해 편집증(persecutory paranoia), 소송 편집증(litigious paranoia)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이 병은 질서 있고 명료한 사고를 하면서도 확고부동한 망상이 계속되는 것이 본질적인 양상인데, 일상 생활 면에서는 다른 정상인들과 별 차이를 느낄 수 없다. 그러나 편집증 환자들이 망상을 못 견뎌 이따금씩 저지르는 폭력은 정도를 넘어서는 잔인하고 끔찍한 행동들이 많다. 그들이 그러한 것은 상대방에게 깊이 사로잡히면서 나와 상대방을 분간하지 못해, 상대방의 사정이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이코 스릴러들 중에는 편집증을 다룬 영화가 많다. 그들은 겉보기에 멀쩡하다가 예기치 않은 잔인성을 보이기에 영화의 소재로는 딱 좋은 것이다. '미저리'.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 '위험한 정사' 등이 그 예이다.
그런데 요즘 환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현대 사회에 이 무서운 편집증이 늘어나고 있지 않나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여자가 자기를 배신했다고 직장도 때려치우고 여자를 잡으러 다니며 붙들면 꼭 죽여 버리겠다고 벼르는 남자, 아무래도 여자가 바람피우는 것 같다고 시시각각 여자의 얼굴과 몸에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 남자를 사랑하는데 그 남자가 그 남자가 다른 여자를 좋아한다고 그 남자를 죽이는 여자 등 현대인의 편집장애는 자꾸 늘어나는 것 같다.
그렇다면 현대에 들어와서 편집증은 왜 늘어나고 있고, 어떤 사람들이 특히 편집증에 잘 사로잡히는 걸까? 그건 아무래도 현대의 불신 사회 풍조를 들지 않을 수 없다. 믿을 놈 하나도 없다는 말도 있듯이 현대 사회는 인간 상호간에 대한 불신이 뿌리 깊게 깔려 있다. 이는 아마도 인정이나 함께 나누는 사랑, 인간 사이의 신뢰보다는 돈을 최우선 가치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삭막함이 빚어 낸 결과일 것이다.
편집장애의 본질적인 양상은 근거 없는 의심이므로 현대 사회는 편집장애를 키우기에는 아주 비옥한 토양이다. 또 현대는 도시화의 발달로 인간 사이의 거리가 워낙 좁혀져서 서로 충돌하고 부대끼는 일이 많아졌다. 이는 사람들 내부에 경계와 적개심도 높여 놨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 눈이 맞고 사랑하고 인연짓는 기회도 많아졌다. 그래서 아무리 내 애인, 내 남편, 내 마누라라고 해도 방심할 수가 없는 것이 현대 사회이다. 이 불신 사회에서 저 사람이 언제 다른 사람과 눈이 맞아서 나를 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결혼해서도 외도로 이혼하는 게 다반사인데, 처녀 총각들의 경우는 특히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현대인들이 모두 편집증에 취약한 것은 아니다. 편집증에 특히 잘 빠져드는 사람은 아무래도 성장 과정에서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신뢰를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임상적 관찰에 의하면 편집장애자들은 어렸을 때 부모와의 따뜻하고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대개 단속을 지나치게 하고 유혹적이면서도 거절적이고, 아버지는 쌀쌀하고 융통성이 없고 가학적이거나 또는 허약하고 무능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한 상황에서 성장하면 결국 주위 환경은 항상 자기에게 적이라는 태도를 발달시키게 되어 인간 관계에서 믿음이 없어지게 된다. 그들의 이러한 성향을 강화시켜 편집증으로 빠뜨리는 상황은 그들 스스로 자신감이 떨어질 때이다. 남자들은 대개 나이가 들어 성욕이 떨어질 때 의처증이 많이 발달하고, 여자들은 폐경기 때 의부증이 많이 생긴다.
또 어떤 남자는 자식도 부인도 다 버리고 우여곡절 끝에 첫눈에 반해 버린 여인과 결혼했는데, 그 여인에 대한 의심과 구타가 끊이지 않았다. 자기의 모든 것을 투자해서 자기는 이제 남은 것이 없는데, 행여 달아나기라도 하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대의 불신 사회에서 편집증에 걸리지 않는 길은, 자기 스스로의 자신감을 지켜 주는 자아 정체감(identity)을 잘 지키고 자기 길을 열심히 가는 것이다.
한 여자는 굉장한 미인인데다 학벌도 좋아 항상 도도하게 자랐는데, 어느 날 한 남자에게 깊이 빠졌다. 그는 그렇게 학벌이 좋은 것도 집안이 좋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녀는 순수한 열정으로 그에게 자기의 모든 것을 쏟아 부으며 사랑했다. 이상하게 그 남자에게만은 도도할 수가 없다는 것이 그녀가 그에게 빠진 이유였다. 그 남자도 처음에는 그녀 못지 않게 열성을 쏟았으나 점점 그녀가 권태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그녀를 멀리하다가 급기야는 헤어지자고 선언했다.
이때 그녀가 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밖에 없다. 하나는 그를 죽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를 죽이는 것이다. 전자는 편집증의 분노 폭발이고, 후자는 우울증의 자기 혐오이다. 그녀를 이렇게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간 것은 그녀가 자기 주체성을 버리고 모든 것을 그에게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면 자기의 모든 것을 다 주어야 하고, 상대는 그 여인을 일생 동안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먹고 살기가 힘들었던 옛날 이야기이다. 현대는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내 주체성까지 모조리 상대에게 쏟아 주어서는 안 된다. 현대는 이미 생존을 넘어서 자기 삶의 실현은 위한 시대이다. 그러므로 내가 아닌 상대방이 내 인생을 실현시켜 줄 수도 없고, 내 존재의 가치를 채워 줄 수도 없기 때문이다. 현대에서 자기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 구시대적인 맹목적인 사랑은 언제 스스로 자신감을 상실하면서 우울증이나 편집증에 빠질지 모른다.
따라서 연인을 항상 의심하며 자기 곁에만 꼭 붙들어 두려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주체성이 강하고 자기 길을 열심히 가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감이 있어서 상대가 아무리 성공하거나 다른 이성을 기웃거려도 초조해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지가 가봐야 어딜 가! 대한민국에서 나만한 여자가 있는 줄 알아!'
이것이 아마 건강한 현대 여성의 사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