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요일이 어머님의생신이라 시댁을 다녀왔다.
후손이많다하나 모두 제살기바쁘다고나타나지않으니,
큰아주버님내외, 고등학생인막내손녀, 그리고 우리내외등
다섯명만참석했으니 쓸쓸하였다.
도리어어머님께서 이렇게어둡고비가쏫아지는밤에 와주어서
고맙지만 걱정도된다고 하시니 부끄러웠다.
연세가 여든두살이되신 어머님은 아직도 영어학교를다니신다.
9월부터 다음해 6월까지매일 버스를 타고 가시는데, 몇년전 교통사고
이후로부터는 눈이오거나 땅이 얼면 눈물을 먹음고 결석을하신다.
2004년10월말에 길을건너시다가 차에 치시어 양다리가 부러지고
오른쪽어께도 다치시어 두달간 입원후 퇴원하시고휠체어를 타셨다.
얼마나 열심히 재활운동을 하셨는지2005년도 여름즈음에는
목발로 졸업(?)하셨다. (의사들이 연세도있고 중상이라 못걸을수도---)
아마 오매불망 잊지못하는 영어학교덕분이었지 않았을까 싶다.
어머님께서는 국민학교를 다니셨다고 하시는데, 졸업은 안하신것같으나
죄송스러워 몇년이나 다니셨냐고 여쭈어 보지를 않았다.
한글쓰기도 서투르신 어머님께선 ABC부터 시작하신후 20년이 넘도록
영어공부를 하시는데, 병원에 계실동안 늦배운 영어가 효자노릇을
하였기때문에, 그 고마움을 뼈저리게 느끼셨다.
씨에틀에 살던우리는 먼곳에산다는 핑계로 가끔 주말에만 들여다보고,
밴쿠버에 사시던큰댁은 가게문을닫아야 병원으로 들릴수있으니,
어머님께서 영어로 간단한통화가 안되었으면어찌하였을까?
눈앞이 캄캄하다.
(일제시대때 대학을 다니신 아버님께서는보청기를 끼시고도 한국말도 겨우 들으실수있으니,
영어는 더구나 포기하셔서 지금도 은행업무등에는 어머님을 앞장세우신다.)
영어를 읽고, 쓰시는 연습을 항상하시는 어머님은 며느리나 손자,손녀가
방문하면 언제나 학교 과제물부터 꺼내어오시고, 가끔은전화로도질문을하신다.
매일 학교를 가시기전후에는 텃밭에 심으신 채소를 가꾸시며 수확하시면 항상자녀들과 이웃에게
아낌없이 나누어주시고 사고전에는 어머님이 직접 쑤신메주로 담근 된장,간장,
고추장을 4남매에게 공급하셨다.
살림사시고, 공부하시고, 농사에다 장까지– 1인4역을 하셨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그런열성이있었다면 한인물(?)이 되었을텐데…..
나처럼 둔한사람은 끈기까지 없어일찍감치 포기해버리고
우리아들들처럼 머리가좀 똑똑하다싶으면 제머리만믿고서게으름을
피운다. 나도 어머님의 열성을 반의반만이라도 본받아 지금부터라도 모든
일을 열심히 해야겠다 - 더 늦기전에.......
첫댓글 이분은 미국에 사시는 분이시군요.
미국에 사셔도 82살이신 시어머님
뵈러 가는 일은 쉽지는 않을거예요.
제 친정어머니께서 82살이실땐 참 정정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올해 만 96세(1930년 7월생)이신 친정어머니께서
얼마전 집안에서 넘어 지셔서,요즘은 침대에서만 생활을 하십니다.
이층침실 한벽면에 티비가 있고 맞은편에 어머니침대가 있어서
티비보실때 침대에 앉아서 보시곤 했는데,요즘은 옆으로 누우셔서 보시는것 같아요.
제가 제친정어머니 82세땐 뉴져지에서 살았는데,저도 자주 버지니아로 내려가 뵙질 못했어요.
1918년 뉴져지에서 버지니아로 이사왔지만 여전히 친정에 한달에 한번 찾아 갑니다.
저희집에서 40분 운전거리인데도 자주 찾아 뵙지는 못합니다.
글을 쓰신분은 효녀시네요 시어머니께 죄송스러워 하시니요.
며느리입장하고 딸입장이 다른것인지...저는 그렇게까지 죄송스러워 하지 않아요.
요즘 어머니께서 편찮으시니 자주 가는편입니다.
같이사는 여동생이 힘들어하니 격려차원에서 들르지요.
이글은 퍼온글이라 제 댓글은 청이님께서 읽으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