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은 아픈 사람을 싫어하실까? 아닐 것이다.
부처님은 의사 가운데도 유능한 의사(醫王)이시고 치료비조차 받지 않는 자비로운 의사이니까. 아픈 사람을 무조건 환영하실 것이다. 그래서인지 부처님이 계신 절, 부처님의 제자들이 사는 절에는 아픈 사람들이 넘친다. 아프다는 것은 너무도 다양해서 말기 암 환자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 버림받은 사람, 사업 실패, 가족의 불운, 외로운 사람, 삶이 무의미한 사람들과 같이 화려하고 다양하다.
그런 사람들 중에 보기 드물게 아프지 않은 사람처럼 보이는 이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분이 묘길수 보살님이다. 묘길수 보살님은 관세음보살 같은 미소를 보일 뿐 무엇을 걱정하거나 비난하는 이야기를 입 밖으로 흘려보내지 않는다. 항상 조용히 기도하고 법당주변을 청소하고 자신이 필요하다 싶으면 후원 일을 도울 뿐 사람들과 수다를 떠는 것도 꺼려한다.
그렇다고 보살님이 절에 가까이 사는 것도 아니다. 보살님의 집에서 절까지는 자동차로 1시간이나 소요되는데, 정덕거사님은 그 먼 거리를 귀찮아하지 않고 묵묵히 보살님을 절에 태워오고 데려가신다. 보살님과 정덕거사님은 항상 같이 절에 오는데 보살님은 법복을 멋지게 차려입고 거사님의 호위를 받으며 차에서 내린다. 혼자 산지 꽤 오래된 공양주보살님은 저렇게 금슬이 좋은 잉꼬부부는 처음 보았다며 부러워하곤 한다.
그 부부는 가끔 주지 방에서 차를 마시기도 하는데, 자신의 고민을 상담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절 살림을 꾸려나가는 주지를 위로하고, 옛날 큰스님들과의 인연을 이야기하고, 자신들이 기도하며 경험한 불보살님의 가피, 건강을 돕는 신체 단련법, 새롭게 알게 된 차(茶)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정도다.
그분들에게서는 인과역연(因果歷然), 일체유심조의 이치가 몸과 마음에 스며든 사람에게서 풍기는 고요함과 경건함이 묻어난다. 그러니 그분들이 우리 절에 다닌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고마움을 느끼는 것이다. 처음에‘귀사일기’를 쓰고자 할 때‘정덕’이라는 필명을 선뜻 빌려온 것도 그분들이 풍기는 덕의 향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분들이 애달픈 사연, 아픈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 거꾸로 내가 그분들에게 상담을 하게 된다. 불사자금이 부족해서 은행에 돈을 빌리러 갔지만 신용등급이 낮아 돈을 빌릴 수 없었다는 이야기, 관공서에 드나들며 느낀 공무원들의 권위적이고 불친절한 것에 대한 불만, 고양이가 새끼를 너무 많이 낳아서 처치곤란하다는 이야기, 텃밭을 새로 만들었는데 어떤 농사를 지으면 좋은가에 대한 조언 따위의 자잘한 이야기들을 그들 앞에 꺼내 내놓는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소연 하고 자신들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는 신도들만 만나오다가 오히려 내가 하소연을 할 수 있는 대상을 만난 것이다. 그렇게 몇 년을 같이 지냈는데도 그분들이 사는 집을 방문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 동안거 선방스님들과 그 분들의 집을 처음으로 방문하게 되었다.
절간보다 정갈한 아파트 현관에는 거사님이 채취하여 키우는 난 화분이 여러 개 늘어서 있었고 거실 한쪽에는 팔각형의 다판에 다기와 차들이 놓여 있었다. 거사님은 죽은 나무토막에 난을 접목시켜서 키우는 것을 좋아하고 그 난 화분 선물하기를 좋아한다. 근검절약이 몸에 밴 그 부부는 전기를 아끼느라 작은 기도 방을 제외하고 다른 방에는 난방을 하지 않고 지내고 있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한다는 핑계로 말을 많이 하는 나는 그분들이 침묵으로 보여주는 맑은 법문을 들으며 감로수를 마신 듯하였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오히려 침묵이 더 나을 때가 있고, 말없이 조용히 지켜봐주는 따뜻한 눈빛이 바로 사랑의 실천이라는 것을 그분들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이다.
(정덕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