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격(독후감)( Yunn)
일이 너무 하기 싫을 때엔 청소를 하거나 독후감을 쓰는 게 최고다. (이럴 때 책을 읽으면 98퍼센트의 확률로 잠이 든다.) 그래서 밀린 독후감 두 개를 쓴다. 최근에 독후감을 수기로 적기 시작했다. 100권 독후감 다이어리를 제작 중이고 펀딩 준비까지 하느라 굉장히 바쁘지만, 이럴수록 정말 중요한 것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무조건 2시간 독서를 한다. 물론 중간에 잠이 들기도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책을 읽지 않기 때문에... 쨌든, 또 다른 인생 책을 만났다.
뇌가 한쪽으로만 크게 하지 않기 위해 여러 가지 장르의 책을 읽는데, 이번에는 인문학 계열의 책을 읽었다. 사실 책이 두껍기도 하고 아직 나에겐 어렵기도 해서 (독후감을 쓰진 않았지만 올해만 50권이 넘는 책을 읽었는데 그럼에도 문해력이 딸린다. 다 sns 때문인 듯) 보통 길어도 3일이면 한 권을 다 읽는데 이건 거의 5일이 걸린 것 같다. 그리고 중간에 졸기도 많이 졸았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이 생각할 거리를 마음껏 던져준 이 책의 느낀 점을 써내려가보려 한다.
밀라 논나의 추천도서로 알려진 이 책은 나에게 충분한 읽을 동기가 되었다. 내 롤 모델이 밀라논나님이기 때문에.. (그러나 소비습관은 그렇지 못한.)
이 책은 존엄성에 관한 책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자존감, 자존심의 이야기가 아닌 "존엄성". 우리는 누구나 이걸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 중요히 여기지만 과연 내 존엄성과 다른 사람의 존엄성을 올바르게 지키고 살아가나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해준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인간이란 무엇에 끌려가는 것처럼 앞만 보고 나아가는 것이 아닌 자신에 대해 의구심을 품어보며 자문하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도 아닌 계획을 갖고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존재 자체로 목적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여러 가지 사례를 가지고 망가진 존엄성을 보여준다. 읽어보는 것을 추천하며 다 나열하기엔 너무 많은 사례들이라 적기 귀찮아서(...) 적진 않겠지만 그중 한 사례만 요약을 하자면, 영업직으로 평생을 바친 한 회사에서 나이가 들며 부진해지자 연봉이 점점 깎이고 결국엔 해고까지 당하는 상황이 있다.
이때, 해고를 당한 사람의 이름이 로먼인데 로먼은 사장에게 연봉을 합의를 한다. 우리나라 돈으로 쉽게 표현하자면 "그래도 연봉 3000만 원으로 안되겠나?", "그렇다면 2500은?","2300... 그 이하로는 안되네."
평생을 바쳐서 일한 곳에서 연봉을 깎으며 구걸하는 꼴이 되어버린 로먼. 우리는 그냥 이걸 보며 안됐다, 자존심이 참 상하셨겠다. 생각할 수 있으나 실은 존엄성이 파괴되어 버린다. 특히 일과 하나로 살아온 사람들은 더 그렇다. 우리는 이렇게 쉽게 존엄성이 무너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물론 저런 상황에서 스스로 객관적인 판단을 하여 더 영업을 잘할 방도를 찾는다거나, 다른 직장을 찾는다거나 하면 좋겠지만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몸이 움직여주지 않음을 모두가 알 것이다. 그래서 노년기에 더 어려움이 찾아오기 십상이다.
사람의 존엄성은, 내면의 독립성이라는 것이 모래성처럼 깨어지기 쉬운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있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내가 있었고 가족들이 있었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묵묵히 도와주고 남편의 그런 상실감을 어쩌면 모른 척도 해줬다. 그게 로먼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만약 아내가 바가지를 긁었다면 로먼은 더더욱 가지고 있던 존엄성을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책은 여러 가지 상황에서의 존엄성을 설명하는데 귀결되는 것이 하나다. 나의 존엄성을 지키듯 다른 사람의 존엄성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존엄을 지켜주고 싶다면 고정된 기대 안에 그를 가두지 말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욕망을 채워주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목적이 되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지고 싶어 하므로 이것은 당연한 권리다.
최근에 대학교 때 친구랑 깊이 대화를 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그 친구는 자기가 잘못하고 있는 게 있으면 말해달라고 했다. 그냥 식사 자리였기에 정말 하나도 그럴만한 이야기가 없었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 되묻자 자기는 늘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기로 있지 못하는 것 같다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오늘 대화에서도 자기가 실수한 부분이 있으면 말해달라고 했다.
나는 이 친구가 얼마나 여리고 착하며 남들의 존엄성을 면밀히 살피는 사람인지 알고 있다. 그래서 너는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사람이라고 말해줬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였다. 우리는 눈물의 대화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했다. 모든 관계의 틀어짐과 또 다른 연대감은 이 존엄성이 파괴되거나 또는 지켜졌을 때 생겨나는 게 아닐까? 하며.
관대함은 오직 자아 성찰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관계에 몰입했던 과거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 이를테면 자신의 잘못을 바로 보고 나태함과 모짐과 부당함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전에는 그런 적도 있었다. 어떻게 하다가 A라는 친구가 실수를 하게 됐고 B라는 친구가 마음이 상했었다. 그러나 3자의 입장에서는 A의 실수가 큰 실수라고 여겨지지 않아 뭐라고 하는 B 친구에게 A 친구를 감싸는 발언을 하게 됐다. 후에 B 친구는 나에게 크게 화를 냈다. 당시에는 내가 왜 저런 소리를 들어야 하지?라고 생각을 했으나 나는 A 친구의 존엄성만 (물론 이 일로 존엄성이 상할 만큼 큰 사건은 아니었으나) 생각했고 민망해질 B 친구의 상황을 고려하지 못했다. B 친구는 그 상황에 자신의 감정이 존중받지 못한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좀 더 이런 것들을 예민하려면 많은 훈련이 필요하겠다고 생각이 든다. 쉽게 관대한 판단을 하기 쉽지 않다. 나는 신이 아니기에 내가 엮여있는 모든 사람의 존엄성을 지킬 수 없다. 그러나 자아성찰을 통해 스스로 지킬 수 있는 부분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인간의 존엄은 자신의 사적 공간의 한계를 인식하고 사고와 감정의 가장 깊숙한 영역을 아무에게나 경솔하게 내보이지 않는 자세에 크게 좌우된다.
저자는 모든 사람에게 방 한 칸 정도의 사적인 공간이 있다고 한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고 알리지 않을 개인의 영역 말이다. 그러나 이걸 누군가 들쑤시거나 반대로 스스로 우연찮게 드러낼 경우 존엄성에 큰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 나는 이 들추어짐을 당한 적도 스스로 들추어진 적도 그리고 누군가를 들추었던 적이 몇 번 있다. 내 딴에는 건드리지 않으려 했지만 실수로 그렇게 됐거나, 사실은 아주 못됐게 일부러 누군가의 사적 영역을 들춘 적도 있는 것 같다. 물론 그 결과는 관계의 파멸이었다. 변명을 하자면 내가 들추었던 상대가 먼저 나의 존엄성을 박살 냈던 경험을 줬기 때문이긴 하지만 이 부분은 아주 관계에 있어서 예민함을 알고 있다.
존엄성은 결국 주체를 가진다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자신의 행위를 자신에게만이 아니라 타인들에게도 이해시킬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자아존중으로서의 존엄성이 아주 중요함을 강조한다.
자아상은 내가 나 자신을 어떤 모습으로 보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현재의 모습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또는 되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포함된다.
다른 사람의 존엄성을 해치면 자신의 존엄성도 따라서 해를 입는다.
이 두 문장이 이 책의 핵심인 것 같았다.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하여 많은 행동들을 한다. 이게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행동인 줄도 모르고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도 많다. 그러나 이것이 나에게서만 머물게 된다면 나는 쉽게 나의 존엄성을 파괴함을 알아야 한다. 나를 사랑하듯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결국 돌아서 다시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책이 쉬운 편은 아니라서, 꼭 2-3번은 더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 차분해지며 생각을 깊게 할 수 있는 (긍정적으로) 좋은 책이라 꼭 추천하는 책이다.
[출처] 32번째 책: 삶의 격|작성자 Yu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