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계의 거성, 조순 전 경제부총리 별세. 향년 94세.
23일 오전에 돌아가신 조순 할아버지는 나의 9촌 증조부이시고, 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시중 언론에 나와 있지 않는 내용을 독자들에게 전해보고자 한다. 고인이 된 조순 할아버지와 같은 집안인 필자는 집안의 증손주로서 조순 할아버지의 일생을 오비추어리 기사 형식으로 작성하려 한다. 고인이 된 할아버지의 명복을 빌며 할아버지의 일생을 풀어나가려 한다. [편집자 주]
23일 오전 한국 정치, 경제계의 큰 별이었던 조순 증조부님이 노환으로 작고했다. 항년 94세. 서울 아산병원에서 노환으로 치료를 받던 조순 증조부님은 가족들이 임종을 지킨 가운데 생을 마감했다.
1928년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풍양조씨 평장사공파 집성촌)에서 태어난 조순 증조부님은 학창 시절부터 영단어를 외우기 위해 영어사전 속 단어를 외운 후 해당 페이지를 찢어 삼켜 드실 정도로 학구열이 남달랐다.
증조부님의 아버지인 조정재 고조부님은 한학자셨다. 중학 시절, 증조부님은 어려운 집안 환경 탓에 숙부님께 유학을 갔었다. 고조부님은 자식의 공부가 얼마나 무르익었는지를 보기 위해 한문 편지를 보냈다. 이를 잘 해석해야 집으로 올 수 있다는 엄명에 보낸 편지를 해독하기가 어려웠던 증조부님은 수많은 한학자들을 백방으로 찾아다녀 겨우 그 뜻을 해석하고 나서야 집으로 갈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교육열이 남달랐던 가정환경의 영향을 받아 경기고, 서울대를 졸업한 증조부님은 6.25 당시 육군 통역 장교와 육군사관학교 교관 등으로 군에 복무했다. 전역 후 30세의 나이로 미국으로 유학하여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교에서 경제학 석.박사를 마친 후 1988년까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부임해 재직했다.
‘조순 학파’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경제학계의 유명한 제자가 상당하다. 1974년, 제자 정운찬과 공저로 쓴 <경제학원론>은 경제학과 최고 인기 교과서로 ‘경제학계의 바이블’로 불린다.
육군사관학교 영어 교관 시절 노태우 대통령을 가르친 인연으로 1988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을 지냈다. 1992년에는 한국은행 총재를 역임했다.
대한민국 사상 두 번째 민선 서울특별시장을 지냈고, 1995년 헌법 개정 후 첫 민선 시장을 지냈다. 1997년에는 제 15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며, 서울 시장직을 물러났다. 필자의 아버지는 서울시장직을 계속하셨으면 오히려 국민으로부터 더 사랑받아 자연스레 대권주자로 추대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갖고 계신다.
1998년 강원도 강릉시 재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민주국민당을 창당했으나, 당이 실패하면서 정계를 은퇴했다.
이후, 특별한 건강 이상 없이 지내오셨고, 23일 오전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한 시대를 풍미하시며, 많은 후학을 길러내시고, 모든 이의 귀감이 되셨던 증조부님께서 영면하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살아생전 쓰신 문집을 어루만져 봅니다. 앞으로 제가 살아가는 인생길에 길잡이가 되어줄 것입니다. 늘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통해 더 나은 사회인으로 거듭나도록 정진하겠습니다. 세상사 많은 근심과 걱정을 내려놓으시고 편히 잠드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