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윤리
“덥다, 더버.” 대구의 낮 최고 기온이 연일 35도를 넘기고 있다. 언론은 무더운 날씨를 강조하느라 ‘폭염, 열대야, 불볕더위, 찜질방더위’ 등 온갖 말로 요란을 떤다. 배롱나무 꽃잎의 요염한 홍색도 지쳐 보인다. 숨차게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에서도 열기가 전해 온다. 그런데 갑자기 오래전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유년시절 여름 내내 개울에서 친구와 멱감고 놀았던 일을 떠올리니 엷은 웃음이 번졌다. 어느 집 문간방에서 자취하던 중·고등학교 시절의 여름은 어떠했던가? 시멘트 블록 벽과 콘크리트 슬래브 지붕이 내뿜는 열기는 밤잠을 앗아갔다. 하지만 촌놈이 도시에 나와 유학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이다. 그날을 견디었기에 오늘이 있지 않은가.
어제가 있었기에 오늘이 있고, 과거를 기억함으로써 오늘은 더욱 두꺼워진다. 시인 롬펠로는 “죽은 과거는 묻어 버려라. 그리고 살아 있는 현재에 행동하라.”고 했다. 현재의 중요성을 말하려고 과거는 죽었다고 했을 것이다. 지난날의 달콤하고 감상적인 추억에 빠져 현재를 회피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리라. 옛날의 상처를 괜스레 긁어 덧나게 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과거는 죽지 않으며, 현재 살아 있는 나의 표현이다. 과거를 오늘의 삶에 살아 숨 쉬도록 하는 것이 기억이다. 기억의 증언이 쌓여 오늘의 실존이 되고, 현재 삶의 넓이와 깊이가 된다. 기억은 아직 지워지지 않은 과거의 껍질이 아니라, 오늘에 의해 재구성되고 해석된 것이다. 따라서 기억하는 것은 살아 있음의 실체다.
우리는 모든 과거를 다 기억할 수 없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다. 대부분의 과거는 세월 속에 묻혀 잊힌다. 인간은 모든 것을 기억하며 살아갈 수 없다고 한다. 정신분석학자에 의하면 사람은 자신의 과거 중에서 참을 수 없는 것,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 자기 양심에 어긋나는 것 등 못 받아들이는 것은 의식 밖으로 밀어낸다고 한다. 이러한 망각의 작용으로 고통과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치유된다. 이는 분명히 망각의 긍정적인 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망각에도 현재의 욕구와 관심이 투여된다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습관만으로 이해할 수 없다. 망각도 기억과 마찬가지로 한 존재의 실존을 규정하는 요소다. 그래서 망각에도 개인의 책임과 인격이 따른다.
오늘은 68주년을 맞는 광복절이다. 그날은 꼭 기억해야 할 우리의 역사다. 오늘도 우리에게 여전히 깊은 의미로 작동하는 현재의 시간이다. 그 기억이 36년 동안 식민지 지배를 받은 데 대한 통한을 잊을 수 없다는 감정의 기억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집집이 태극기를 달고 광복절 기념식을 한다고 그날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원인은 무엇이며, 그로 말미암아 무엇을 잃었는지, 그때 우리를 지배하면서 만행을 저질렀던 일본이 지금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직시해야 한다. 욱일기를 쳐들고 야스쿠니 신사를 찾는 일본 정치인들의 의도를 마음에 새겨야 한다. 이것이 역사의식이다. 역사의식은 과거를 기억하여 현재를 냉철하게 인식하는 힘이다.
우리는 모두 지난날을 너무 쉽게 잊고 사는 것 같다. 상처로 아파하고 배고팠던 시절을 애써 기억할 필요가 없을는지 모르지만, 문제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특히, 물질과 권력을 좇아 오래되지도 않은 어제를 쉽게 잊어버리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국정원의 댓글 조작도 그 하나의 예다. 정권에 대한 약간의 충성심으로 한 일을 두고 그 많은 사람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오는 것은 과잉반응이 아니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삼십 년 전 민주화를 위해 온 국민이 하나가 되고 목숨까지 희생하는 사람이 있었던 그때를 기억한다면,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아닌가.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현재의 가치이고 윤리다. 현재 내 삶은 어제의 기억을 버리고는 품격을 유지할 수 없다.
오늘, 부채 하나로 더위를 이겼던 그 옛날을 기억해 본다.
첫댓글 맞습니다. 잊어선 안 되는 일을 잊는다는 사실이 슬프지요.
유대인처럼 자손만대까지 전할 수는 없다하더라도 말입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서로 사슬고리가 아니던가요?
갑자기 학교 다니던 내내 볼 수 있었던 구호들이 떠오릅니다.
'잊지말자 육이오, 상기하자 육이오'
너무 그래서 그런지 오히려 더 잊고 사는 현실인 것 같아요.
그런데 기억의 왜곡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듯...
올케 한 분이 늙으면 추억으로 산다고 자주 되뇌이던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저의 젊은 시절, 그 시절의 기억에는 구멍이 참 많이 나 있어서....
잊어서는 안 될 일도 많고 잊고 싶은 일도 많지요. 더구나 종교단체가
청치에 적극 참여하는 일은 어서 잊고 싶은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기억에도 윤리가 존재할 수 있겠습니다. '잊어야 할 것' 도 있겠고 '잊지 말아야 할 것'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요즘 과거, 현재, 미래, 그 사슬고리가 자주 끊어집니다. 이래서야 사람의 품격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윤리 너머에 건망증이 있었군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