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래기 엮음歌
한데에 그대를 널자 생기가 사라졌다
묶이는 어떤 생은 갈피가 많다는 것
기어코 남은 향기는 허공에나 꽃피운다
혼이 나갔으니 날마다 환청인데
조이면 바스러질 목줄처럼 서걱대다
서러운 싸락눈에나 뺨을 내줄 뿐
몸을 부풀리던 기억의 습성은 남아
사막에 길을 터준 별빛에 기대어
시 한 편 물에 불리며 여물어 가겠네
제비꽃 물김치
제비꽃 물김치를 저녁상에 올린다
땅에 서린 기억을 몸으로 받을 줄 아는
햇살이 몰려가는 저쪽
문득 발이 저리다
흰 무명 덧대 기운 검정 고무신 깔고 앉아
넋 놓고 오수에 잠기는 꽃들의 시간
수저로 건져 올린다
어머니의 슬픈 밭둑
몇 꿈을 돌아와도 이랑은 너무 길어
꽃핀 저녁 밥상이 환해서 아픈 詩여
수면에 떠오르는 봄
경건히 받는다
우포 산책
햇살은 저 눈부신 함정을 모른다
투명하게 얼어 있는 이슬의 본질을
나무는 옹색한 변명을 환부처럼 매달고
누구는 용케도 비껴갔다 노래하고
누구는 덜컥 헛발질하다 걸려들고
돌아와 거울을 보니 머리가 하얗다
저 쓸모없는 것들의 고귀함
2003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손영희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세상의 두근거림은 다 어디로 갔을까』가 시인동네 시인선 224로 출간되었다. 손영희 시인은 쓸모와 효용성의 이데올로기가 주변화한 것들을 주목한다. 그동안 우리는 합리성과 이성의 잣대로 얼마나 많은 “세상의 두근거림”을 버렸는가. 하여, 손영희 시인은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 속에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는 “두근거림”의 기원과 힘을 찾는 일에 매진한다. 이 시집은 근대성이 버린, 쓸모없는 것들의 고귀한 목록을 보여준다. 거기에 근대 이후의 새로운 시적 이정표가 있다. - 시인동네 소개말
손영희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창신대 문예창작과, 고려대 인문정보대학원을 졸업했다. 2003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불룩한 의자』 『소금박물관』 현대시조 100인선 『지독한 안부』 등이 있다. 오늘의 시조시인상, 이영도시조문학상 신인상, 중앙시조대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