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빛이 완만한 무등산 밑으로 쏟아져 ‘빛고을’이라 한다. 빛 광자를 써서 광주. 무등산은 우리나라 산중에 그래도 높은 축에 끼다 보니 겨우내 하얀 눈모자를 눌러쓰고 있다. 내란유랑단이 피 묻은 금남로에 쓰레기 같은 말들을 토하고 갔지만, 시민들이 토사물을 잘 쓸어 담았다. 무등산을 타고 내려오는 빛이라도 한 줌씩 가지고 가지, 버리기만 하고 가다니 몹쓸 인간들 같으니라고.
태초에 신이 권능으로 세상을 창조할 때 빛이 있으라 하셨다지. 빛은 태초부터 멸망까지 있고, 입학부터 졸업식 때까지 있다. 과거 이재무 시인의 산문집에서 읽은 아래의 얘기 끝자락에도 빛나는 졸업장이 등장한다. “레슬링의 영웅 김일의 박치기, 배삼룡의 코미디가 우리의 고달픈 하루를 위무해주던 그 시절 학교는 교과 이외의 과제물로 우리를 괴롭혔다. 꼴 베어오기, 송충이 잡아오기, 채변 봉투, 신작로에 자갈 붓기. 겨울 폭설이 내리면 눈을 치우면서도 우리는 즐거웠는데 그런 날은 마을 장정들이 산에 올라 덫에 걸린 토끼를 집어오기도 했다… (중략)… 어찌어찌해서 6년을 마치고 졸업을 하는 날,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로 시작되는 졸업가를 부를 때는 까닭없이 눈물이 나서 혼났다.” 아, 학교마다 빛나는 졸업장을 안기는 2월의 어느 날. 그러잖아도 최근 엄마를 잃은 고3짜리 조카가 이번에 졸업, 축하해 주었다. 호모 룩스(Homo Lux), ‘빛나는 인간, 빛을 밝히는 인간’이 되었구나. 성인이 된다는 건 빛난다는 것. 당신은 어떠한가. 별빛만큼 반짝이는가. 당신의 삶과 말이 세상을 진실하고 환하게 만들고 있는가. 마지막 인생의 졸업식 때, 그날에 우주의 빛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임의진 시인 20250220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