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목사의 안식 피정 이야기 6: 우크라이나 르비브 이야기 2 ◈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잘 먹는 내가 터키에서부터 음식으로 고생했다. 아니 고생했다기보다는 음식을 통한 포만감이 없었다는 말이 어울릴 것 같다. 향신료에 대한 반응도 그렇지만, 간이 없는 음식들은 음식이 주는 행복을 앗아가기에 충분했다. 그러다가 조지아에서부터 만난 퓨전 중국 음식으로 입맛을 어느 정도 되찾았다. 중국음식은 돈에 비해 일단 양이 푸짐하다. 게다가 간까지 더해졌으니 왜 아니 그렇겠는가. 아내는 옆에서 “전천후 입맛이라더니...”하면서 아무거나 잘도 먹는다.^^ 그래도 우크라이나 음식은 터키나 조지아보다 훌륭했다. 아마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있는 곳인데다가 유명 관광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에서 음식은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음식을 가리는 사람과 식사를 한 경험이 있다면 피부적으로 이해할 것이라 본다. 요즘 우크라이나 음식의 대세는 ‘르비브 크로아상’이라는 프랜차이즈 음식이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빵인 크로아상의 배를 갈라 그곳에 샌드위치나 햄버거처럼 구미에 맞는 각종 토핑을 넣어 먹을 수 있게 한 아이템 음식이다. 르리브에서부터 시작되어 우크라이나 전역을 휩쓸고 있다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효림이 말에 의하면, 지금 우크라이나는 차별화된 특징을 장착한 아이템만 있으면 돈을 삼태기로 긁을 수 있다고 한다.^^ 르비브 크로아상도 여기에 속한다고 하겠다. 크로아상 베이스는 빵에 기본인 초코나 크림을 넣는다면, 우리 돈 2,000원으로 커피 한 잔을 곁들여 한 끼 식사로 대신할 수 있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물론 조금 더 고급지게 먹으려면 채소, 치즈, 햄, 계란 등을 추가해 먹으면 된다. 서너 평의 작은 매장에 앉아 커피 한 잔과 먹는 크로아상은 나름 괜찮았다. 아이템! 이는 그 어느 자본 보다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좋은 생각이 결단력과 어울리면 돈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또 한 곳, 도시를 둘러싸고 있던 성벽을 개조해 아주 멋진 장작불 갈비 전문점으로의 변신한 식당을 찾았다. 전날 가보고 싶었지만 차가운 날씨 속에서도 길게 줄지어 서있는 사람들을 보고는 “줄서서 먹고 싶지는 않네!” 하고는 다른 음식점을 찾았었는데, 가보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거라는 아들의 말에 이끌려 다시 찾은 식당! 성벽을 변경해 식당으로 꾸민 것부터가 독특했지만, 엄청난 실내 공간은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가득한 사람들, 우리로선 상상이 가지 않는 저렴한 가격(립 전체 한 판이 1인분, 약 3,500원)에 입이 벌어지고, 장작으로 구운 립을 손도끼로 즉석에서 잘라주는 서비스, 테이블에 켄트지 한 장을 깔고 종업원이 직접 매직으로 접시, 포크, 칼을 그려주는 퍼포먼스, 질 높은 수제맥주의 품격까지 더해져서 아들의 말을 듣기 잘 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난 내 아내가 고기를 그렇게 잘 먹는 걸 처음 봤다. 손으로 잡고 쭉쭉 당기는 하얀님의 스킬은 가히 고기 좀 먹어본 사람의 향기가 묻어났다. 2인분 더! 란 말은 그렇게 아내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6인분을 먹고도 맥주 값 포함 3만 원 이하의 가격, 한국에서 먹었다면 10만원은 훌쩍 넘었을 것이다. 배가 차니 그곳에 온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참 다양하다, 게다가 대각선 방향으로 동양인 여자 두 명이 보였다. 한국 사람들이었다. 손가락으로 깨작거리는 모습, 선을 보러 나온 여인처럼 입을 꽉 닫고 정말 맛없게도 먹는다. 자기네들끼리도 말이 없다. 손을 가슴 높이로 들어 몇 번 털더니 살이 가득 붙은 갈비를 남겨두고 나간다. 바다와 하늘이라도 갖다 주고 싶은 충동을 맥주 거품으로 눌렀다. 여지없이 들꽃 식구들이 생각났다. 이정도 질(質)에 그 돈이라면 우리 식구들이 배터지게 먹게끔 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런데 문제는 비행기 삯이 아니던가! 아니 항상 바쁘다는 것이겠지.^^
고기를 먹었으니 진한 에스프레소는 당연 코스! 곳곳마다 환한 얼굴을 한 사람들로 넘쳐난다. 해는 졌지만 해보다 더 밝은 가로등이 밤이 아니라 낮이라고 속삭이는 거리다.
어슬렁거리는데 맑은 예배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아르메니안 교회! 역사만큼 두꺼운 문을 열고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실내는 밀납초 불빛이 한껏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몇 사람은 의자에 앉아 묵상을 하고, 서넛은 서서 기도를 올린다. 제단 중앙에는 검은 옷을 입은 사제가 예배 찬양을 아카펠라로 올리고 있었고, 예배당의 ‘이콘’ 안에서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께서 부드럽게 웃고 계셨다.
교우들에게 선물할 십자가 몇 개를 샀다. 그러자 찬양을 마친 사제가 곁으로 다가와 관심을 보였다. 그렇지! 우린 동양인이니까... 현지어를 능숙하게 하는 아들에게 사제는 아주 밝게 웃으며 먼 나라 사람이 자기네 나라 말을 하는 것에 대해 감사를 전하면서 다음 날 있을 예배에 참석 할 것을 권했다. 우린 다음 날 그 예배에 참여해 성결한 예배를 드렸고, 들꽃 식구들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보는 기쁨도 누렸다. 그들의 예배는 화려하거나 어수선하지도 않고 말도 많지 않았다. 앉고 서기를 반복하며 예배 음악과 기도를 통한 30여분 동안의 정결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예배였다. 개신교 목사로서 배우고 느낀 것이 많은 시간이었음을 밝힌다. 두꺼운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성(聖)과 속(俗) 아니, 묵상(默想)과 삶이 구분되어져 있었다.
가는 곳마다 역사와 이야기가 있는 도시, 바로 르비브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소득에 반도 되지 않는 경제를 지니고 있지만, 그들의 삶 안에는 돈 말고 다른 것들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목이라고 불리는 산등성에 올라가 르비브 전체를 조망도 하고, 민속박물관, 시청 전망대에 올라 수백 년 된 건물들의 정수리를 내려다보기도 했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수십 개의 다양한 박물관들이 소리도 지르지 않고 자리하는 곳, 웅장한 건물 전체가 커피에 관한 모든 것으로 사용되고 있는 커피 공장, 초콜릿만 만들고 판매하는 공장, 수십 개의 예배당이 각각의 정체성과 특징을 가지고 존재하는 도시, 더불어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호흡하며 살아가는 것도 르비브가 갖는 매력이지 아닐까 싶다.
며칠 동안 하루 2만보 가깝게 걸으며 여기저기를 돌아보았다. 발은 고단했지만 피곤함은 들지 않았다. 저녁 시간을 이용해 아들의 친구들과 이야기도 하고, 우쿨렐레를 연주하는 친구와 old pop song을 부르는 재미도 느끼고, 젊은이들이 무얼 생각하며 사는 지에 관해서도 알게 되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갓 구운 따뜻한 빵을 잘 먹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오븐에서 막 나온 빵을 달라고 했더니 고개를 갸웃한다. 식힌 빵이 더 바삭거리기 때문이라는데 우리와 다른 식문화여서 재밌었다. 천 원짜리 한 장이면 정말 맛있는 빵(대포 같은)을 사서 길거리를 걸으며 조금씩 떼어먹는 기분은 잊을 수 없다. 조각을 새에게 던져주고, 다가오는 개에게도 인심을 쓰는 느긋한 행복은 또 다른 만족감이었다.
우리나라 마을버스만한 차에 가득 승객들을 태우고 달리는 버스는 족히 30년은 넘어 보였다. 모두 현금을 내고 승차를 하는데, 버스비는 우리 돈 120~30원 정도로 저렴했다. 더욱 놀라운 건 운전기사가 차비까지 받고 거슬러주는 일을 동시에 한다는 것이었다. 앞뒷문으로 타고 내리면서도 단 한 사람도 차비를 내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뒷문으로 탔어도 차비를 앞 사람에게 주면 릴레이식으로 기사에게까지 전달하고, 거스름돈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전달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 같으면 난리도 아닐 텐데 하는 괜한 걱정까지 했다. 이런 모습이 재밌어서 난 버스를 일부러 뒷문으로 타고 괜히 큰돈을 앞 사람의 어개를 툭 치며 주었더니, 정확하게 거스름돈은 다시 내게 돌아오는 것이었다.^^
뭔가 혼잡하고 불편한 것 같으면서도 그곳 사람들은 나름 자기들만의 방식을 고집하며 아름답고도 조화롭게 살고 있었다. 물론 답답하고 합리적이지 않은 것들도 많았다. 그러나 길게 보면 모든 것이 다 똑같아진다는 관점에 의하면 나쁜 것도 아니었다.
르비브에는 후배 목사가 선교사로 있다. 우리교회에도 여러 차례 다녀갔으니 모두들 잘 아실 것이다. 통 연락이 되지 않다가 뒤늦게 연락이 되어 좋은 만남을 가졌다. 아들은 학교 일로 바쁜 탓에 선교사님이 새로 준비한 ‘보아스 농장’ 방문차 10시간 열차를 타고 카르파티 아 산맥(알프스-히말라야 조산대의 일부이며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에서 폴란드 남동부와 우크라이나 남서부까지, 남동쪽으로는 루마니아 동부에서 세르비아 남동부까지 계속 뻗어있는 산맥)을 넘어 슬로바키아와 헝가리 국경지대인 ‘우즈호로드’ ‘무카체보’ ‘베레호뵈’ ‘초마’로의 일정을 시작했다.
그렇게 열차는 카르파티아 산맥을 힘겹지만 끈기 있게 넘어가고, 난 눈꽃 서리꽃에 파묻혀 산맥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