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는 스스로 자란다 / 류인혜
사람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다면 언젠가는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그 언제인가가 문제인데, 어떤 소망이든 그것이 가장 필요하고 적당한 때에 이루어지면 좋겠다. 그렇게 편한 마음으로 기다리기 전에는 소유하고 싶은 본능과 현실의 부조화로 마음 상한 적이 많았다. 몇 차례 그런 갈등이 지나가자 포기해야 될 것에 대해 크게 연연하지 않아도 되었다. 욕심도 나이를 먹어 지치는 것이다.
마음으로 원하던 것 중의 하나가 나무를 많이 심은 정원을 가지고 싶다는 소망이었다. 구체적으로 심고 싶은 나무의 이름까지 적어두었다. 나무를 심어 가꾸는 것은 노동이다. 원하는 대로의 정원을 가꿀 수 있는 노동을 감당하기에 이미 늦었다는 어느 시점을 지나고, 그 꿈이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현실을 깨닫자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집착을 오래가지고 있으면 마음이 상한다. 이루지 못하는 것에 대한 열등감이 생겨 만사가 자신 없어지게 될 지경에 이르기 전에 수습을 한 것이다.
나무가 많은 곳을 찾아다니는 것과 나무를 대신할 것들을 가까이 두는 일이다. 두 가지다 간단히 해결책이 되었다.
고맙게도 나무들은 곳곳에 서 있다. 이리저리 자신의 자리를 옮기는 게 아니라서 만나서 반가운 나무에게는 일단 눈 맞춤만 하여도 마음이 놓였다. 나중에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남기는 것이다. 무심코 지나쳐온 나무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전보다 훨씬 더 늠름한 모습으로 자라나 있어 마음 뿌듯한 적도 많았다. 내 나무라고 고집하지 않아도 세상의 나무들이 저절로 친구가 되었다.
넓은 마당 곳곳에 큰 나무와 함께 심고 싶던 온갖 꽃에 대한 기대는 아직도 꿈이다. 백반을 넣어서 찧은 꽃잎을 손톱에 올려 긴 잎으로 감싸 봉숭아꽃물을 들이면서 잠을 설치거나, 저녁 맘이면 꽃송이를 벌이던 분꽃의 향기를 맡으며 어스름의 쓸쓸함에 잠기고 싶다. 우물가의 토란이나 창포, 꽃밭 가장자리에서 몸을 낮추며 피어나던 채송화에 대한 그리움도 짙다.
그 화초들을 대신하여 집안에서도 쉽게 돌볼 수 있는 식물이 많다. 땅의 것들은 스스로 자라지만 집안의 화초는 손이 많이 간다. 돌보기가 즐거울 정도로만 화분의 수를 제한하고 있다. 그 작은 생명들의 번식의 과정을 지켜보는 신비로움이 크다. 지극히 평범하여 남이 보기에는 별 것도 아닌 것에 마음을 보내고 있다고 해도 그것으로 인한 출렁거림은 설명하기 어려운 행복이다.
나무는 직접 돌보지 않아도 잘 자란다. 지나가는 바람에 잎을 흔들면서 깊은 뿌리에서 영양분을 건지고, 물을 올린다. 사람에게도 사소하게 흔들리는 것들이 없다면 날마다 필요한 생기를 충족하기 어렵다.
벤자민 일곱 뿌리
그저 벤자민이라고 알았던 나무의 정식이름이 '벤자민 고무나무'이다.
이 식물도 공기정화에 탁월하다고 집안에서 키우는 식물로 선호하는 종류이다. 특히 사무실의 기기에서 발생하기 쉬운 나쁜 성분을 잘 잡아들인다고 한다. 고무나무의 종류가 많은데 뽕나무 과에 속해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 화분을 돌보다가 잎을 뜯어보면 흰색의 진액이 나오는데 그 성분으로 인해 고무나무로 분류되는 것이라 여긴다.
화원에서 기른 대부분의 벤자민들은 시원스럽게 올라간 긴 줄기 끝에 형성된 가지와 잎의 모양이 보기가 좋았다. 나무 윗부분에 잔가지의 무리지음이 둥글어 수관이 수줍은 듯 아름답다. 가지가 자라나면서 끝을 밑으로 내려 무성하게 잎을 피우는 것이다. 중심 줄기가 튼튼하여 둥근 윗부분을 지탱하여 주니 화초를 보는 사람도 즐거워진다. 화초도 대가를 지불하면 그렇게 전문가가 키운, 모양이 좋은 것으로 쉽게 살 수 있다.
잘 자란 남의 집 벤자민을 부러워하다가 그 나무를 크게 키우고 있는 이웃에게서 줄기 몇 개 얻어왔다. 물에 꽂아두면 뿌리를 내린다기에 생수통을 잘라서 담가놓고 물을 자주 갈아주었다. 그렇게 새로 뿌리 내린 벤자민이 일곱 그루였다. 손에 닿는 대로 잘라주는 것을 들고 왔기에 어린 나무의 모양이 제각기다.
화분으로 옮겨 심어 한 번도 겨울을 지나보지 않은 것이 염려가 되었지만 첫해 겨울동안 베란다에 그대로 두었다. 어릴 적부터 모진 환경에서 키우려는 속셈이다. 추운 곳에 내버려 두었다고 성이 난듯 꼼짝 않고 있다가 봄볕이 부드럽자 마음이 풀어졌는지 새 잎의 기미를 보인다. 아직은 곧고 늘씬한 줄기를 예상하기 어렵지만 밑 부분의 잎을 따주고 중간 중간에 있는 매듭을 손으로 자주 만져주었다.
잘라온 가지로 직접 뿌리를 내리게 하고 화분으로 옮겨 자라는 것을 관섭하고 있으려니 아이를 낳아 키울 때의 그 조바심이 되살아났다. 하루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도록 변화무상하던 육아의 수고를 다시 하는 듯, 수시로 화분 곁에 쪼그리고 앉아있다.
얼마 후 가지가 생긴 대로 한 방향으로 기울어져 나무젓가락으로 지주를 세워 묶었다. 며칠이 지나자 잡아준 대로 줄기가 곧게 자라나는 시늉을 한다. 그런데 지난해의 잎을 전부 따버렸더니 새로 난 잎만으로는 나무의 모양이 부실하기 짝이 없다.
당나라 시대의 대문장가인 유종원이 지은 종수곽탁타전(種樹郭?駝傳)을 읽어보면 나무 가꾸기를 자식 키우기에 비유했다. 처음에는 자식처럼 돌보지만 나무의 본성대로 뿌리를 잘 내리도록 심어준 후에는 내버린 듯해야 본성이 보전되어 잘 자라고, 열매를 많이 맺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나무의 본성이란 뿌리를 바르게 뻗길 좋아한다는 것인데 그 뿌리가 잘 뻗도록 흙을 평평하게 하고 뿌리사이로 흙을 다져주는 일이 나무를 잘 키우는 것이다. 자식을 키울 때도 무조건 관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자리를 잡고 나면 개인이 지닌 성품대로 커나가도록 기다려야 된다는 뜻이다.
나무를 제자리를 찾아 심어놓은 후에는 내버려 두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벤자민을 괴롭혔다. 일곱 개의 화분을 때도 없이 수시로 분갈이를 해주었다가, 잎을 따주며 간섭을 하니 자라는 것도, 모양도 제각기다.
게다가 벤자민 뿌리를 잘 내리게 했다고 옆에서 칭찬을 하니 마음이 높아져서 어린 나무를 어서 자라라고 닦달을 한다. 결국 한 놈이 시들어 버리고, 집안의 다른 일로 물주기를 게을리 했더니 얼마 후에는 다시 한 나무가 말랐다.
어느 날은 잎에 얼룩이 생겨 손으로 닦아보니 심하게 끈적거린다. 돋보기를 쓰고 무슨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줄기 부분에 돌기처럼 생긴 것이 보여 손가락으로 밀어내자 쉽게 떨어진다. 그 놈들은 잊어버릴 만하면 다시 생겨 가지에 붙어 있다. 수시로 잡아내다가 알아보았더니 벤자민에 잘 생기는 벌레다. 자식처럼 돌본다는 것이 나무를 괴롭히기만 했나보다. 독한 약을 뿌리기에는 아직 나무가 어리다. 손으로 일일이 잡아내고 잎을 샤워시키듯 물을 흠뻑 뿌렸다.
이제 다섯 개의 벤자민 화분이 남았다. 그중 옹기에 심어 놓아 성장이 늦지만 가지가 사방으로 골고루 펴져나간 것을 이웃에게 갈라 주었다. 가끔 만나면 나누어준 식물이 화제가 된다. 하찮은 식물이라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여 잘 자라고 있다는 안부를 들으니 마음이 즐거워진다. 더구나 벤자민은 성질이 예민하여 자리를 옮기면 몸살을 한다지 않던가.
옛날부터 자식을 나누어 사돈을 맺은 인연을 귀히 여겼다. 우리 집으로 와서 새로운 문화에 적응 하려고 애쓰는 며느리를 보면 그 심성이 귀하게 생각된다. 잘 키워서 보낸 분들께 감사의 마음이 크다.
고무나무의 수난
고무나무는 잘 자라난다. 보통 키우고 싶은 식물의 종류에 고무나무도 포함시킨다. 식물 가꾸기에 상식이 없는 사람도 성질이 까다롭지 않아 관리하기가 편하다. 더구나 넓은 잎은 집안에 푸른 기운을 더하게 하고, 나쁜 기운을 빨아들인다.
이사를 하여 새로 화초를 하나 둘씩 모우기 시작하자 먼저 고무나무 생각이 났다. 생각속의 고무나무는 튼튼한 가지에 붙은 잎사귀가 크고 반짝이며, 화초의 대장답게 늠름한 모양이었다. 그 나무를 사려고 마음먹은 때에 아파트단지로 들어온 화초장수에게는 모양이 좋은 고무나무 화분이 없었다. 망설이다가 옆가지 하나가 붙은 작은 고무나무를 데리고 왔다.
오래전의 일이라서 이제는 옆에 붙은 가지가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고무나무는 해마다 봄이 되면 몇 개씩 커다란 잎만 달아내어 몇 년 만에 중심 기둥만 크게 자랐다. 화분을 들어 올릴 때마다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니 거두기가 어려워졌다. 가지치기를 망설이기만 하며 다시 두어 해를 보냈다.
지난봄 이른 때에 일을 저질렀다. 가지의 잎을 때어 내고 잘 드는 가위로 중간부분을 잘라버린 것이다. 화분에 마른 막대기만 하나 꽂아 놓은 형상이 되었다. 나이든 고무나무답게 흰색의 진액이 많다. 나무도 제 몸이 상한 아픔을 알아 피를 철철 흘리는 것이다. 이미 독하게 결심을 한터라 무심한 듯 젖은 휴지로 닦아 내어 다른 조처도 없이 베란다 구석에 방치해 두었다.
나무가 어렸을 적에 모양을 잘 잡아 주며 관리를 해두었더라면 고무나무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 집안의 어른나무가 된 때에 저렇게 험한 꼴을 보지 않았을 터이다. 오랜 세월동안 눈을 맞추며 지낸 사이라서 그런지 미안하기 짝이 없다.
생기를 잃고 말라버린 가지를 볼 때마다 지하철역을 지나치다 만난 노숙자가 생각난다. 아무것도 없이 빈 가지처럼 된 자신의 처지를 잊으려는 듯 몸도 가누지 못하도록 술에 취해서, 곁을 지나는 아무나 붙잡고 구걸을 하고 있었다. 무서워서 그를 피하여 저쪽으로 멀찍이 돌아갔다. 길을 걷다가 넘어진 자리에서 누가 바라보며 비웃던지 마음을 모질게 먹고 털고 일어났다면 무슨 일을 못했을까. 한순간에 닥친 불행으로 인하여 마음을 내버리고, 가정을 외면하여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고무나무의 잘라 낸 맨 윗부분과 따로 떼어낸 여러 개의 잎사귀를 혹시나 기대를 하며 물에 담아 두었다. 몇 달이 지난 후에 잎사귀 몇 개가 가지에 달린 쪽에서 뿌리를 내려는지 흰 부분이 보인다.
화분에 있는 막대기 같은 줄기에도 뿔 모양으로 둥글게 움이 돋는다.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순은 손에 잡히는 감촉대로 밀어 버리고 윗부분의 싹만 남겨두었다. 그런데 성장하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 미안한 마음에 돌봐주면 버릇이 될까봐 모른 척 했더니 서서히 잎의 모양이 갖추어지고 그 잎의 줄기 부분이 굵어지며 다른 잎을 피운다. 태초에 세상을 만드신 분께서는 모든 생명이 스스로 자신을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장치를 해두신 것이다.
식물도 이렇게 스스로를 회생시키는 방법이 있는데, 길에서 떠돌고 있는 자들은 언제 생기를 되찾을 수 있을지 답답하다.
첫댓글 화초 특히 벤자민고무나무, 고무나무를 키우면서 느끼는 여러가지 미묘한 감정을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