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報恩)
손녀 하나만 바라보고 그녀를 양육하며 일생을 살아온 90세의 미국 인 할아버지의 이야기 이다.
아들과 며느리는 이혼 하고 아들과 손녀 셋이서 단란하게 살았는데 아들이 먼저하늘 나라로 가면서 어린 손녀를 할아버지 혼자 양육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늘 건강하시던 할아버지가 최근들어 옆구리를 잡고 힘들어 하시는 모습을 보며 왜 그러시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할아버지가 20대에 6.25 한국 전쟁에 파병이 되어 중공군과 싸우다가 옆구리에 총을 맞아서 당시 의술로는 그냥 총알을 몸에 지닌채로 사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의사의 권유로 지금까지 그냥 지내 오셨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이가 들고 면연력이 약해지니 그로 인한 여러가지 몸의 상태가 안 좋으시다는 말씀을 들은 손녀는 수술을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미국 병원비는 아마 집한채 값을 들여야 할 것 같아마음 뿐이었지 어찌 할 수가 없었 습니다.
한국은 의술도 좋고 병원비가 저렴하다는 소문을들은 손녀는 할아버지가 평생 자신을 위해 희생하신 것에 보답하기 위해서 치료를 해 드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할아버지를 모시고 한국으로 왔습니다.
병원에 입원하고 모든 검사를 마친 후 담당 의사는 "몸에 총알을 담고 어찌 지금까지 사셨습니까?"하고 이유를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참전 용사로 중공군과 싸울 때 얻은 훈장이라고 설명을 하자 담당 의사가,
"저희 할아버지도 6.25참전 용사셨는데 총을 맞고 후송이 되었지만 결국 열악한 의료시설과 낙후한 의술 때문에 돌아가셨고, 아버지가 의사가 되시려고 생각 하셨지만 가난한 살림으로 의학공부를 할 수 없어서 아들인 제가 의사가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염증이 생겨 그냥 두면 안되는 상황인데 잘 오셨다."고말하며 "저희 할아버지와 같은 참전 용사를 수술할 수 있게 되어 영광"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수술이 순조롭게 끝 나고 회복한 후에 건강한 모습으로 완쾌 되어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퇴원을 위해 수속을 준비하면서 그 손녀는 치료비가 어마어마 하게 많이 나왔을 것이라 예상을 했습니다.
두려운 마음으로 계산을 하러 창구로 갔는데 수납 창구에서 봉투 하나를 내어 주었습니다.
"얼마일까?." 하며 봉투 를 열어보니 계산서엔 "진료비 0원"에 미화 $1,000이 들어 있었습니다.
동봉한 작은 쪽지에는 "당신이 흘린 피로 지켜진 우리나라의 자유는 영원할 것 입니다.
귀국하시거든 여생을 편안하게 오래 오래 사십시요." 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이게 무슨일이냐?."고 물으니 병원측과 담당 의사가 치료비를 모두 부담 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깜작 놀란 손녀는 집도의사를 찾았지만 의사는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퇴원하여 미국으로 귀국길에 할아버지는, "전쟁 당시에도 한국 군인들은 듬직하였고 정이 많은 병사들이 었다.
한국이 놀랍도록 발전 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 정도로 발전 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산(山)은 붉은 흙과 돌들 뿐이었고 참으로 가난한 나라였었는데, 울창한 산림과 빌딩 숲을보니 내가 한국의 자유를 위해 싸운 보람이 있다."고 말씀을 하시며 기쁜 마음으로 미국으로 돌아 가셨다고 합니다.
국격을 높인 젊은의사!. 그에게 박수를 보냅 니다.
얼굴도 모르고 어디에 붙었는지도 모르는 우리나라를 위해 15만 여명의 연합군이 죽거나 다치거나 또 실종되었습니다.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나라의 평화가 있었을까요?.
미국의 수도 워싱턴 의사당앞 한국공원엔 한국전에서 전사한 50,000명의 미군들 명단이 공원 바닥에 쓰여 있어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문구,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 다.)" 를 볼 때마다 부끄러운 마음입니다.
= 받은글 편집 =
漢陽 Jun.
|
첫댓글 봄비가 내리는 가운데 월요일날을 잘 보내셨는지요 음악소리와.
좋은글을 읽으면서 머물다 갑니다 오늘의 날씨는 전국적으로 봄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싸늘한 봄 날씨에 감기조심하시고 나들이 빗길도 안전운전 하시고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내세요..
한양어르신
언제나 감동적인 글
세례하여 행복합니다 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