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대통령은 요즘 빤스만 보면 경기를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작년에 잘했다고 생각했던 미국 순방이 자신의 인사 1호이자, 청와대의 입이었던 윤창중이
호텔에서 빤스만 입은채 인턴 여직원을 성추행 했다가, 거짓변명까지 겹쳐 국민의 공분을 사서
오랫동안 대한민국이 시끌시끌하고, 방미성과가 땅속으로 묻혀버린 일이 있었죠(성과가 진짜 있었는지는 논외로 치고요)
그때 얼마나 성질이 머리끝까지 솟구쳤겠습니까?
그런데 올해 4월16일 세월호사건때 많은 국민을 분노케 한것은 TV뉴스에서 자꾸 비춰 주었던
승객들은 내팽개친채 자신만 살겠다고 승무원복도 입지 않고 빤스바람으로 해경 구명보트에 올라타고 있는
이준석선장의 모습이었습니다.(구명보트는 9명까지 탈수 있는 보트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길)
지금 많은 진실들이 철창에 갇혀 있어서 밖으로까지 새나가지 않아서 그렇치 이선장도 할말은 많을꺼라
추측은 해봅니다 마는,,,,
얼마전 신문에서 여시인이 쓴 칼럼에 비겁에는 능동적비겁과 소극적비겁이 있다는 구절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서 제가 예로든 윤창중과 이준석은 능동적인 비겁에 속하겠죠. 그런데 이번 세월호사건에서 많은 국민들이
우리도 이런 이기적인 생각과 생명보다 돈을 우선시 하는 사회 분위기에 침묵하고 방치했다는 죄책감이 가슴을
꾸역꾸역 조여와서 우울로 샤워를 하고, 눈물이 혈관을 흐르는 기분을 느꼈던거 같습니다.
하지만 가끔씩은 이준석의 비겁을 선명하게 보면서, 그를 통해 자신의 극단적인 비겁도 지켜보는 것 같아 불편해지고
극기야는 우리의 뇌속에서 민낯이 들통나지 않아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방어기제가 작동하여
더 죽일놈 나쁜놈 하는 것은 아닌가 자문해보기도 합니다. 마치 겁이 많은 강아지가 더 크게 짖듯이
그래도
선량한 일반국민들은 세월호사건에 직접적인 당사자는 아니기에 소극적비겁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박근혜대통령처럼 총체적인 책임은 자신에게 있지만 사건현장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기에
엄벌을 받아야 하고 불이익을 받을 사람은 바로 자신의 밑 총리부터라고 생각하는 비겁은 어디다 끼워줘야 할지,,,,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비겁의 역사가 면면히 흘러서 이제 유전자로 자리잡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하도 많아 여기서 다 소개할순 없고
대표적으로 생각나는게 임진왜란때 전란이 위급해지자 평안북도 의주까지 도망간 선조임금과
6.25전쟁때 전쟁이 발발하면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겠다며 호언했지만 수도 서울이 함락 위기에
처하자 제일 먼저 새벽3시에 서울을 탈출하여 대구까지 줄행락을 쳤다가 , 그래도 너무 많이 내려왔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대전으로 가서 서울 중앙방송을 전화로 연결해 "국민들은 안심하라"고 방송하며 마치 서울에 있는것처럼 위장한 이승만대통령, 여순사건때 남로당 우두머리인게 발각되 위기에 처하자 자신의 부하들 이름을 다까발겨 죽음에 이르게 하고 자신만 살아남은
박정희대통령이 있겠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비겁을 남한테 뒤집어 씌워 처형해 버리는 무자비함을 보인다는 것이다.
선조는 왜구가 물러난 후 한양에 돌아와 제일 처음 한일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걸고 싸웠던 의병장 김덕령, 곽재우를
처형하여 , 민심이 그쪽으로 쏠리는 것을 막는 것이었고,
이승만은 자신들이 한강다리를 막지난후 한강다리를 폭파해라고 명령한후 그 명령을 충실히 이행한
다리폭파 현장책임자 29살의 젊은대령 최창식을 희생양 삼아 사형시켰다.
박정희는 다 알다시피 군사군테타에 성공하자 마자 자신의 정적들을 다 공산당 빨갱이로 몰아 사형시키거나,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 친척까지 연좌제의 사슬로 묶어 핍박하였으니, 어쩌면 이렇게 비겁자들의 DNA 성향이
비슷한지 모르겠다.
저는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말에 크게 성질을 내거나 죽자살자 덤비는 사람이 있으면, 아~저사람 뭔가 찔리는게
있구나 하는 의심병이 생겼다. 그런데 그럴리는 없겠지만 진짜, 자유민주주의국가 요즘 세상에 그럴리는 없겠지만
박근혜가 대통령당선되고 국민들과 야당이 "부정선거의혹" 부짜만 나와도 부들부들 떨었던 권력중심층들을 보면
이-거 이거? 하게 된다.
사실 이 글을 쓰게된 진짜 이유는
5월17일 광주 금남로에서 있었던 광주항쟁 34주년 전야제때의 작은사건이 오래동안 내머리속을 맴돌았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작가들의 술자리에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다가는 일찍 뻗어버리겠다는 걱정과
전야제를 체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겹쳐서 행사장으로 갔었다.
여러순서가 지나가고 광주의 고등학생들 노래가 끝난 후, 남녀 학생대표 2명이 광주항쟁과 세월호 사건을 잊지 않겠다는
우리의 다짐을 읽고 있을 때였다.
내가 서있던 바로 앞에 40대 초반정도로 보이는 선그라스를 낀 남자가 자꾸 큰소리로
"학생들 과거는 잊고 , 이제 미래로 가야지 미래로~" 하는 것이었다. 무대 바로 앞이었기에 학생들도 다 들릴 수 있는 거리여서 ,
나는 신경이 매우 쓰였다. 한마디 할까,,,한마디 할까,,,
내가 계속 망설이고 있을 때 , 50대 후반쯤 되는 아저씨께서 "당신 조용히 안해!! 학생들 한테 그 말이 할소리야" "당신이 말한 미래는 뭐야?" 하고 따졌다. 몇차례 실랑이가 있은후 아무 대꾸를 못하던 선그라스남은 반복적으로 "이 아저씨 술취했구만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아저씨는 "너 일베지 일베지" 하는 것이었고
근본적인 문제는 행사를 방해하고 학생들에게 과거를 잊어라고 하는 이유에 대한 갑론을박이 되어야 할터인데
싸움은 "당신 술먹었지"와 "너 일베지"만 남았고, 그 시간 현장에선 아무도 아저씨를 돕지 않았고 그 아무도에는 나도 끼어있었다.
그때 선그라스 남자의 지인이 그의 팔짱을 끼고 어디론가 사라졌고,
나는 용감히 나서지 못한 양심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부끄러워 했다.
다른지역이면 몰라도 광주에서 만큼은 그런 싸가지 없는 놈에게 용감히 한마디를 해서 그를 행사장 바깥으로 내쫒았다면
주변에서 많이 응원해줬을텐데 그정도도 못하고,,, 하는 자책감이 자꾸 들었다.
진정 용기있는 자는 제일 처음 부르짖고 나서는 사람이 아닐까,,,,
내 정신적인 힘이 육체적인 강함 앞에 무릎을 꿇은 느낌 이랄까,,, 영 찝찝했다.
80년후반 대학다닐 때 잠실야구장을 갔을때였다.
어떤 건장한 남자들 둘이 술에 취해 소리를 지르고 치어리더들 춤추는 곳에서 난장 춤을 출때 많은 사람이 시야의 불편함을
겪고 경기에 집중을 못하면서 불편한 마음을 참고 있을 때, 키도 작고 많이 마른 어떤 아저씨가 그들을 물리치고 뒤엉켜 싸워
물리쳤던 적이 있었다. 그때도 나는 10여분을 가서 한방 날릴까 하며 속으로만 숱한 고민을 하다가 만 적이 있었다.
그때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온다면 꼭 행동하리라 다짐했던 트라우마가 있어서인지,
광주항쟁 전야제 때의 일은 "넌 비겁했어"라고 자꾸 광주영령들이 속삭이는거 같았다.
다음날 광주 망월동 묘지엔
80년 오월, 군인들의 총칼 앞에서도 불의에 온몸으로 저항하다 목숨을 잃고 누워있는 열사들과
그 분들의 뜻을 계승하기 위해 나중에 용감하게 싸우다 최루탄에 쓰러진 꽃다운 청춘들과
자신의 몸에 불을질러 자신의 신념을 활활 태워 정의를 세우고자 했던 순수한 영혼을 가진사람들이
한평 무덤속에 갇혀 가만히 누워 있었다. 가만히 있지 말라고 풀잎처럼 속삭이면서......
<이 글은 집에 혼자 있을 때, 위에는 난닝구와 밑에는 트렁크 빤스만 입고 썻다. 아주 편안한 차림으로~
박근혜가 이 모습을 본다면 얼마나 놀랄까 ㅎㅎ 카~악 빤쓰다아~!>
첫댓글 스스로를 성찰하고 반성하는 자는 이미 행동하는 자다..어느 유우명한 성현이 이런 말을 분명히 했을 꺼다..
거기서 쪼금 더 나아가서 진짜로 행동하는, 생각을 참진실로 만드는 사람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