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재미있는 사실은,
이제는 누구라도
클릭한번이면 모든 지식을 가져다 쓸 수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은 곧 피곤한 삶을 의미한다.
선조님들은 골치가 아픔 긴 이야기를 말로 압축해
자손들에게 전달을 한다.
지식을 많이 갖춘 후손들이 나올 때 까지다.
“아는 것은 힘이다, 배워야 산다.”
그러나 진정한 앎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삶의 이치를 깨닫는 일이다.
그분들이
모든 것을 알았다면 이미 다 풀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분들도 들은 것만 전했기에,
결국 지식을 넘어 진리를 풀어야 할 숙제는 우리에게 남았다.
그 숙제를 받은 이들이 바로 오늘날 아날로그세대다.
신라 헌강왕 시대,
용왕의 아들이 인간 세상에 와서 살던 이야기 처용가는 그 상징이다.
처용은 아름다운 아내와 살았지만,
어느 날 돌아오니 낯선 인연이 그의 집에 있었다.
놀랍게도 아내와 함께 있던 존재는 귀신이었다.
이야기를 나누고 이해를 시키니
귀신은 욕심을 부리지않고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나타나지않는다는 맹세를 한다
그말이 왜곡되는
“당신의 얼굴이 그려진 곳에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겠다로
변질이되고,
그로 인해 백성들은 부적을 붙이게 되었다.
이것이 오늘날 부적의 기원이다.
처용은
상대를 꾸짖거나 벌하지 않았다.
대신 스스로 부끄러움을 깨닫게 했다.
그리하여 같은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한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지혜의 힘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SNS나 사진 한 장으로 오해가 생기고, 감정이 요동친다.
그럴 때 우리는 처용처럼 차분히 지켜볼 수 있는가?
지식으로 판단하기보다,
정리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가?
환경이 정리된 뒤 가족이 모여 대화하고 풀어갈 수 있다면,
그때 비로소 우리의 신뢰의 깊이가 드러난다.
지식은
과거로부터 출발하고,
진리는 오늘을 풀어내는 힘이다.
본 것은 과거일 뿐,
지금 이 순간을 사는 힘은
눈앞의 인연을 소중히 대하는 데 있다.
사람과 더불어 살아온 세상이다.
돈과 경제도 결국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
사람과 멀어지면,
더 멀어진 신을 찾아 빌게 된다.
그러나 신은 다시 사람 인연만 보내주신다.
부적은
남을 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해와 배려의 상징일 때 비로소 효력이 있다.
그것이 인공지능 시대에도 변치 않는
사람의 도리다.
한번 연구해 보아야 한다.
2025년 10월 16일
사회연구원 김 수길
오래전 한 광고가 생각이 난다.
흔들리지않는 편안함
듣고 지나가면 아무일도 생길수가 없다.
반응하면서 일어나는 현상들이다.
어제일을 정리하면
오늘 오는 일들의 이치를 알게되고
그렇게 매일이 일상이 된다.
멀어진만큼 죽을만큼 더 뛰어야 앞이 보인다.
나이가 들어 공부를 안하면
밤에 잠이 오질 않는다 .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정법강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