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는 말
가르치는 일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랫동안 이어져 온 전통입니다. 그런데 최근 교사의 가르침이 새로운 특이점을 맞이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인간처럼 가르칠 수 있는 인공지능의 발달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가르치는 일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활동이라고 믿었으나,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인공지능 교사가 그 역할을 상당 부분 대신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이런 낯선 변화 속에서 우리는 ‘가르치는 일이 무엇인가?’라는 다소 원론적인 질문을 다시 묻게 됩니다. 이 글에서는 가르치는 일의 속성과 관련하여 인공지능 교사로 대체될 수 없는 인간 교사의 고유함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에 관해 제 생각을 말씀드려 보고자 합니다*.
|| 교사 정체성의 흔들림: ‘아는 존재’만으로 충분한가?
가르치는 일을 하는 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는 것’이었습니다. 학생에게 가치 있는 무엇인가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아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니까요. 오랜 기간 교사는 ‘아는 존재’로서의 정체성을 견고하게 유지해 왔습니다. 그런데 ‘아는 것’과 관련하여 인간 교사를 능가하는 인공지능 교사가 등장하면서 교사의 역할과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주지하다시피 더 빨리, 더 정확하게, 더 효율적으로 아는 능력과 관련하여서는 인간이 인공지능을 따라잡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최근 개발된 지능형 튜터링 시스템(Intelligent Tutoring System)은 교과 내용 지식뿐만 아니라 교수학습방법 및 개별 학생의 특징에 관한 지식도 충분히 갖춘 모델로 개발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Holmes et al., 2019). 말하자면, 인공지능 교사는 이미 수학, 과학, 사회 등 다양한 교과 지식을 방대한 데이터로 축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효과적인 교수학습과 관련하여서도 학생들에게 적절한 난이도의 문제를 제공함으로써 동기를 유발하는 능력을 습득하고, 형성적 피드백 이론을 통해 개별화된 피드백을 줄 수 있는 단계에 와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인공지능 교사는 학생의 상호작용, 학생의 오개념, 문제를 푸는 동안 나타난 학생의 감정 상태 등 학생에 관한 다양한 지식을 빅데이터로 가지고 있어서 개별 맞춤형 지도가 가능한 수준에까지 와 있습니다.
|| 인공지능 교사의 앎은 완벽한가?: 평균화와 동질화의 한계
그야말로 인공지능 교사는 아는 것, 곧 지식과 관련하여서는 인간 교사를 훨씬 능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점만 놓고 보면 이미 가르치는 일은 곧 인공지능 교사에 의해 대체되어도 하등 이상하지 않다는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진 인공지능 교사도 한계는 있어 보입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그 앎의 속성이 평균으로 수렴시키는 경향성이 강하다는 점에서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 교사는 학생이나 교수학습방법에 관해서 많이 알고 있어서 이를 토대로 개별 맞춤형 학습을 제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앎의 근거가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알고리즘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인공지능 교사가 실천하는 가르침은 결과적으로 집단적이고 평균적인 교육 목적을 달성하는 방향을 지향하게 되는 한계를 갖는다는 점입니다(Holmes et al., 2019). 지능형 튜터링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개별 학생들이 비슷하다는 가정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해보면, 특정 수업 방법의 처치가 평균적으로 효과가 있더라도 그 방법이 일부 학생에게는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 교사에게 개인 간의 미묘한 차이는 무시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셈이지요. 인공지능 교사에게 그것은 소음이자 오류로 처리될 뿐입니다(Mubeen 2018). 말하자면, 인공지능 교사가 제공할 수 있는 개인 맞춤형 교육은 평균을 향한 ‘거시적인 동질화 과정’ 내에서 이루어지는 ‘미시적인 개별화 학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인공지능 교사와는 다른 인간 교사의 가르침의 고유성: ‘모르는 존재’ 되기
‘아는 존재’로서는 완벽해 보이더라도 인공지능 교사의 가르침 또한 ‘평균’과 ‘동일성’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는다는 측면에 주목해 보면, 여기서 인간 교사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가르침의 속성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필요에 따라서 인공지능 교사를 활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교사가 ‘아는 것’을 학생에게 전달하는 것만이 가르침의 전부가 아닌 이상, 인간 교사가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할 가르침의 속성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모르는 존재’ 되기라고 표현해 보고자 합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교사는 ‘아는 존재’가 아니라, ‘모르는 존재’가 될 때 인공지능 교사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교사가 이미 알고 있는 세계로 학생들을 동질화시키는 역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아직 모르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겸손함과 윤리적 자세가 요구되는 것이지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아래의 세 가지 측면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 ‘미지의 대화’에 참여하는 존재로서의 교사
첫 번째는 교사와 교과 내용의 관계에서 교사의 역할과 정체성에 관한 것입니다. 통념상 교사는 이미 대학의 교사양성 교육과정을 통해 자신의 전공 교과와 관련하여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필요한 지식을 모두 습득한 상태라고 간주하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교사가 이미 모든 것을 ‘아는 존재’라고 가정하고 가르친다면 그 교사의 가치는 더 이상 인정받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오래전에 배운 것을 계속 반복 재현하기만 하는 역할은 인공지능 교사가 훨씬 더 잘할 테니까요. 오히려 교과 내용을 ‘아는 존재’로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직까지 모르는 것이 남아 있는 ‘미지의 대화에 참여하는 존재’로서 가르칠 때 고유한 가치를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Standish, 2009). 이러한 교사는 이전에 이미 습득한 고정된 지식의 안락함 속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끝을 알 수 없는 교과의 대화에 노출되어 응답할 책임감 속에서 가르칠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 자신감과 충만감을 갖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음을 알고 더 나아가려고 하는 열정과 강렬함을 가진 존재에 가까울 것입니다.
2. 학생의 ‘알 수 없음’을 인정하는 교사
두 번째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서 교사의 태도와 자세에 관한 것입니다. 교사가 학생을 가르칠 때, 나의 경험에 비추어서 혹은 학생의 발달단계에 관한 많은 이론과 지식을 통해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비교육적인 것으로 귀결될 수 있습니다(우정길, 2009). 왜냐하면 그러한 접근 방식은 자신과 동일한 자아를 학생에게 확대하는 것이거나 혹은 특정 개념을 통해 학생의 존재를 포획하는 시선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학생을 ‘알 수 없는 존재’라고 인정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자세 그 자체야말로 인공지능 교사는 가질 수 없는 시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학생 한명 한명을 개별성을 갖는 존재로 보는 것, 궁극적으로 알 수 없거니와 우리의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다르고 낯선 존재들”이라고 인정하는 것, 교사를 비롯한 기성세대의 지식 체계로 유일무이한 학생 개인을 판단하기를 중단하는 것, 그리고 근원적으로 비교 불가능한 존재인 학생 개개인을 대상화하고 범주화하는 일을 멈추는 것 등이 인공지능 교사와는 차별화되는 인간 교사의 시선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3. ‘알 수 없는 세계’에 노출됨으로써 더 나은 존재가 되기를 열망하는 교사
세 번째는 교사가 교사 자신과 맺는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인공지능 교사로 대체될 수 없는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가르치는 과정에서 교사 자신이 이전의 자기 자신으로부터 달라져 가는 ‘변형’의 과정에 노출될 필요가 있습니다. 즉 교사는 이미 아는 존재로서 지금의 위치에 고정되어 학생들을 이곳으로 동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과 달리, 교사 스스로가 지금의 위치로부터 더 나은 존재가 되어가는 외부로 ‘노출’되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다소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교사가 가르치는 과정에서 학생에게 영감을 주는 일은 교사 자신이 영감을 받는 과정이 수반될 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Vansieleghem & Masschelein, 2012). 교사가 외부로부터 무엇인가를 자기 자신의 내부로 가져오는 것, 이것이 곧 영감을 받는 것(in-spired)입니다. 말하자면, 교사의 가르침이 학생에게 진정성 있게 가닿기 위해서는 교사가 자신의 세계에 갇혀 있지 않고 외부 세계로 열려 있으며, 미지의 세계에 노출되는 과정을 통해 기존의 자신으로부터 다른 존재로 변화해감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곧 인공지능 교사와는 차별화되는 가르침의 조건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 디지털 전환 시대, 교사의 역할 재정립의 방향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전환 시대, 분명 교사의 역할에 변화가 요구되는 시기입니다. ‘아는 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은 인공지능 교사가 훨씬 더 잘하게 된 이상 인간 교사가 더욱 주의를 기울이고 힘을 쏟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혹자는 인공지능 교사의 등장으로 인해 교사의 역할을 지식을 가르치는 전통적인 역할 대신 학생의 정서적 영역에서의 보살핌 혹은 학생의 진로지도 및 상담과 같은 새로운 역할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해야 함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미 전통적으로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것들, 이를테면 감성이나 도덕성 등도 이미 디지털 기계에 의해 구현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이중원, 2017). 실제로 로봇 사피엔스의 인격성과 도덕성 문제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인공지능 교사가 학생이 정서와 감정에 반응하고 교류하는 것도 그리 머지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디지털 전환 시대에 우리가 다시 새겨보아야 할 가르치는 일의 의미는 아주 새로운 것이라기보다는 오랫동안 인간의 삶 속에 켜켜이 새겨져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가르침의 일상 속에서 망각되기 쉬운 가르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곧 현재 내가 아는 것, 전공 교과 지식이든, 학생에 관한 이론이든, 더 나아가 나 자신에 관한 것이든 이미 잘 안다는 전제하에 그 대상을 고정시키지 말고, 모른다는 자세로 비우는 것이, 모순적으로 들리겠지만, 인공지능 시대 인간 교사의 가르침의 가치를 높이는 일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점이 인공지능 교사가 할 수 없는 ‘윤리적 가르침’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 저자는 교사가 가르치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가르치는 일의 원초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시 일깨워 주고, 교사들이 미지의 세계를 모험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일이 우선될 필요가 있다는 말씀을 드리며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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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서 밝힌 저자의 의견은 「인공지능 시대, 가르치는 일의 의미 재탐색: 레비나스의 철학을 바탕으로」 (이상은, 2021) 논문의 내용 중 일부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음.
<참고문헌>
우정길(2009). 타자의 타자성과 교육학 지식: 레비나스의 타자성 철학에 대한 교육학적 소고. 교육철학연구, 45, 151-174.
이상은(2021). 인공지능 시대, 가르치는 일의 의미 재탐색: 레비나스 철학을 바탕으로. 교육철학연구, 43(1), 97-120.
이중원(2017). 다가올 로보 사피엔스의 철학적 문제들. 일송기념사업회(편). 디지털 시대 인문학의 미래(pp. 9-39). 서울: 푸른역사.
Holmes, W., Bialik, M. and Fadel, C.(2019). Artificial Intelligence in Education: Promises and Implications for Teaching & Learning. Center for Curriculum Redesign.
Mubeen, J.(2018). “When ‘personalised learning’ forgets to be ‘personalised.’” https://fjmubeen.medium.com/when-personalised-learning-forgets-to-be-personalised-48c3558e7425 (검색일: 2023. 3. 30)
Standish, P.(2009). Levinas and the Language of the Curriculum. D. Egéa-Kuehne(Ed.). Levinas and Education: At the Intersection of Faith and Reason (pp. 56-66). New York and London: Routledge.
Vansieleghem, N. & Masschelein, J.(2012). Education as Invitation to Speak: On the Teacher Who Does Not Speak. Journal of Philosophy of Education 46(1). 85-99.
이상은 교수는 서울대학교대학원(교육과정 전공) 박사를 졸업하고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을 거쳐 현재 안동대학교 사범대학 교육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인공지능 시대, 가르치는 일의 의미 재탐색」(2021), 「학생 주체성 담론의 이론적 지평 및 쟁점 탐색」(2022), 「OECD 교육과정 개혁 담론에 나타난 새로운 언어의 해석에 관한 일고」(2022), 「교육과정에서 구현되는 ‘학생의 자유’에 대한 철학적 고찰」(2023) 등이 있다. 최근에는 미래교육 담론을 현대 철학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주제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