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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의지력 테스트
‘작심3일’ 아내가 내게 주는 핀잔이었다. 젊은 시절, 내겐 많은 유혹이 왔다. 어학, 태권도, 등산, 만돌린, 기타, 서예, 한학, 등등. 맘먹고 시작한 지 3일 만에 많은 걸 작파했다.
지난 6월말, 전남대학교국민체육센터가 운영하는 헬스장이 1개월 보수기간을 고지했다. 다니고 있던 헬스장이 갑자기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우리 회원들은 모두 긴장하고 걱정이 컸다. 한 달 동안 어떻게 몸을 풀 것인가. 조깅, 전남대운동장 걷기, 자전거 타기, 가벼운 등산, 다른 헬스장 이용하기 등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아침 5시 30분, 집을 나서서 6시부터 1시간 몸 움직이기(헬스), 샤워 후 귀가. 아침 일과였다. 7월 한 달, 나는 가벼운 등산을 택했고, 아내는 월 수 금 계속 운영되는 요가와 빈 날은 농장에 전념키로. 문제는 내 자신에게 묻는 거다. 한 달 동안 가벼운 등산이라도 가능한가? 글쎄. 3일 동안 다녀 본 후 결정할까? 가벼운 등산이니 이건 의지력의 문제다.
내가 사는 두암동은 바로 군왕봉 자락이다. 군왕봉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명산이다. 입지는 그만이다. 의지력 문제다. 의지력이 문제이기는 하나 나이 든 사람이 건강 챙기느라 날마다 산을 오르는 모습이 동네분들 눈에는 좀 그렇기도 하다. 친구들과 가끔 올랐던 문흥동 삼각산이 떠올라, 작심 3일이라도 좋으니 7월 1일엔 삼각산행으로 결론이 났다.
나의 등산 경력은 30년 이쪽저쪽인데 본격적인 등산은 2008년 5월 장원산악회를 따라 여행 겸 산행 길, 중국 황산을 종주하는 데서 시작 되었다. 그 후 정년이 되어 매월 2회 산행에 빠짐없이 참가했으니 24회×10(년)이면 240회나 참가했다. 그럭저럭 나이가 들어 산악회에 참가하게 되면 원로가 되고, 가끔 건배를 제의하기도 하고, 회원들이 주는 배려를 과분하게 받게 되어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그래. 이젠 단체 산행은 그만 두자! 해서 그만 둔 지 어언 2년째다. 대접을 후히 받아서라기보다도 이젠 신체적인 나이가 많아서 다리 근육이 많이 노화된 탓이다. 아내와 함께 인근의 산을 천천히 산책하는 것으로 대체했더니 그런대로 무릎관절은 잘 유지 되고 있다.
작심3일. 삼각산에 올랐다. 하루, 이틀, 사흘. 아내가 묻는다. 내일도 산행 하나요? 당연히 하죠. 삼각산이 내겐 맘에 딱 맞는 산행코스다. 우선 길이 잘 정비되어 넘어질 염려가 없고, 완급이 적당히 혼합되어 별로 힘들이지 않고도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여름에 극성인 풀벌레도 거의 없어 청정하고, 등성이마다 불어오는 아침의 싱그러운 바람향기가 그윽하다. 게다가 중턱에 오를 때 떠오르는 무등산 아침 해는 하루를 행복으로 일깨운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삼각산이다.
일주일이 지난 날, 아내가 또 묻는다. 작심 1주일? 무슨 소리, 다음 주도 그 다음 주도 삼각산이야. 과연 가능한 일인가. 내 의지로 3일 넘기면 싫증을 냈던 경험이 있는 사람. 1주일도, 그 다음 일주일도? 내겐 77내공이 깃들어 작심 30일일세.
삼각산 등산로는 참 잘 정비되어 있다. 정상에 오르는 길은 크게 두 갈래다. 직진 코스(주도라고 해 두자), 시민의 솟음 길 코스(부도라고 해 두자). 주도는 직선으로 오르는 코스인데 군데군데 쉼터와 놀이기구가 배치되었다. 첫 쉼터는 커피향이 그윽했던 사라진 다방 쉼터. 여기에서 우리들(우남회원9명)은 냉커피와 온생강차를 즐겼다. 운동기구에서 가볍게 몸도 풀고 천막 안에서 자잘한 농담도 나누면서 웃었다. 길 왼편으로는 육군신병교육대가 보인다. 출입 통제판이 세 군데나 붙었다. 정상에 오르는 길은 완만할 뿐만 아니라 내리막도 있어서 숨이 차가다가도 풀어지는 길이다. 한참 이야기하다가 걷다보면 그새 제2 쉼터다. 여기는 본격적으로 아침마다 집담회가 열리는 곳. 남녀 가리지 않고 십여 명이 운동기구에 매달리고, 남정네들은 시사문제를 놓고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오지랖이 넓은 분은 모닝커피를 준비하여 나누기도 하고. 나는 신참이라 합류하지는 않고 그 옆을 지나면서 좋은 분위기에 만족한다. 거기서 두어 걸음 더 나아가면 드디어 삼각산 정상이다. 정상에는 커다란 정각이 놓이고 주변엔 쉼터와 작은 운동구도 놓였다. 봉우리에 오르면 시내가 한 눈에 조망된다. 여기는 천국이다. 맑은 공기를 마실 뿐만 아니라 호연지기를 누리는 곳이기도 하다. 해발 276m.
삼각산 초입 갈림길. 부도(필자의 명명)는 시민의 솟음 길이다. 표지판에 시민의 솟음 길 (8,1km) -‘전계엽 할아버지 구비길’이라 명명했다. 이 길은 빛고을 산들길 1구간에 해당된다. 전계엽 할아버지 77세 때 만든 구비길이다.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구비길을 만드느라 노심초사했단다. 심장병 치료를 받고 회복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아침이면 남몰래 등산로를 개척한 것이다. 지금은 시민의 솟음 길이라 명명되어 있지만 청년들이 이를 기리고자 ‘전계엽 할아버지 구비길’이라 명명하고 예쁜 글씨로 간판도 세웠다. 이런 분이 있기에 세상은 밝아지는 거다. 갈림길에서 한참 가다보면 또 시민의 솟음 길 (7,4km) 간판이 나타난다. 낮은 계단 두어 개를 오르면 ‘구비길 쉼터’다. 의자 3-4개가 놓였다. 바람이 시원하다. 아침 일찍 나선 노인네가 항상 자리하고 있다. 라디오에서는 시사뉴스가 한창이다. 노인들도 세상 돌아가는 걸 귀담아 듣는 모양이다. 앉을까 말까, 그냥 지나친다. 여기까지 오면 다리 근육이 정상으로 돌아온다. 샘터 체육공원에 이른다. 샘터가 있고 간단한 운동구가 놓였다. 어떤 이는 세수도 하고 운동기구에 몸을 기대기도 한다. 갈림길에서 1km를 걸으면 또 시민의 솟음 길 (7.1km) 표지가 나타난다. 조금 더 나아가면 ‘구비길 만남의 장소’다. 의자도 놓이고 담소할 수 있는 공간. 이른 아침이다 보니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약간의 오름. ‘삼각산 정상’을 지시하는 표지가 놓였다. 여기서 한 번 발걸음을 세어보자. 하나 둘 셋 넷, 원 투 쓰리 포. 무려 700보를 걸으면 정상에 이른다. 부도를 통해 정상에 오르는 길 구비 구비마다 주도로 이어지는 오름길이 열려 있다.
삼각산 정상. 정각, 자그만 운동기구, 평상과 의자들. 문흥골 사람들의 쉼터이다. 이곳에 삼삼오오 모여 담소하고 운동도 하고 큰 호흡도 하고, 웃고 떠들고, 때로는 노래도 하는 모양이다. 사람들마다 거의 mp3음악이나 유튜브를 듣고 다닌다. 흘러간 노래를 듣는 노인네는 꽤 소리가 크다. 젊은이들은 주로 팝이다. 내가 하산한 뒤에는 단골로 만나는 분들이 잘 어울릴 모양이다. 나는 절친한 친구와 가끔 만나 지난날의 이야기로 회포를 푼다.
하산은 주로 주도를 이용한다. 내림과 오름이 반복되어 기분이 좋아진다. 내림길에서는 의장대 사열식 걸음이다. 의젓하게 꼿꼿이 머리를 들고 가슴을 펴고 활개를 친다. 가파른 내리막에서는 작은 구보 걸음이다. 걸을 때마다 노래 곡조를 붙인다. ‘네박자’ 노래다. 니가 기쁠 때 내가 슬플 때/ 누구나 부르는 노래/ 내려 보는 사람도 위를 보는 사람도/ 어차피 쿵짝이라네. /쿵짝쿵짝 쿵짜자 쿵짝 네박자 속에/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네. /한 구절 한 고비 꺾어 넘을 때/ 우리네 사연을 담는 /울고 웃는 인생사 연극 같은 세상사/ 세상사 모두가 네박자 쿵짝. 가파른 계단을 내려오면서 내 인생의 내리막을 생각하기도 하고... 오름길은 다르다. 넓은 발걸음이다. 원 투 쓰리 포..., 한번 선행하기, 열 번 웃기, 백자 쓰기, 천자 읽기, 만보 걷기, 한번 선행하기, 열 번 웃기... 이제야 알았네. 세상이 아름다운 걸. 이제야 알았네. 우리 사는 곳이 수려하다는 걸. 이제야 알았네. 우리 삶이 사랑스럽다는 것을... 친구들 이름 하나 둘 떠 올리기... 어느 덧, 문흥골 산책로 초입 표지판에 이른다.
이러다간 7월이 지나고 8월이 되어도 삼각산 등산은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아니 시간을 내어 아내와 자주 오르는 산행이면 좋겠다. 7월 한 달의 의지력 테스트, 몇 점을 주어야 하나? (2019.8.1.) |
첫댓글 박수 박수!! 집을 나서 삼각산 입구까지는 평지로 꽤 멀지 않나? 멋져부러!!!누가 남곡을 작심3일이라고 했을까? 내가 아는 남곡은 그런 친구가 아닌데! 게으름 피우다(애들 왔다는 핑계로) 나도 오늘, 3일만에 아침 만보에 나섰지만---
제복 친구는 작심 산책 경력이 많아 추종 불허!
꾸준히 걸어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