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글쓰기 27-45 <나의 세기> 복간이 절실하다!(2025.9.16)
귄터 그라스의 작품 <나의 세기>를 100일 동안 읽고, 쓰고, 그린, <그라스와 나의 세기> 자료집이 나왔다. 택배로 보내면 수요일에 받을 수 있는데 내가 원하는 시간에 받을 수 없을 것 같아 인쇄소에 가서 가져왔다. 생각보다 엄청 무겁다. 부랴부랴 열어서 한 권을 꺼내 훑어보았다. 그림이 있어서 균형을 맞추느라 그랬겠지만 글씨가 너무 연하게 나온 게 조금 아쉽다.
우리가 함께한 100일 동안의 시간이, 귄터 그라스와 함께한 100년 동안의 시간이, 아득하지만 선명하게 자료집에 담겨 있다. 후루룩 넘겨 보고 후기를 보는데 '숲'의 간결한 후기가 눈에 쏙 들어온다.
"구체적인 사건, 뜨거운 눈, 날카로운 풍자, 숨기지 못하는 유머 감각으로 기록한 100년. 읽는 것만으로도 인류애를 느낄 수 있다. 복간이 절실하다."(숲)
귄터 그라스는 <나의 세기>에 실린 100편의 단편소설을 통해 1900년부터 1999년까지의 100년 동안 있었던 중요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한다. 서술자는 그 사건의 중심에 또는 눈에 띄지 않게 어딘가에 있었던 사람들 중 한 명 '나(Ich)'이다. 서술 시점은 그 일이 있은 직후이기도 하지만 수 년 혹은 수십 년이 지난 후이기도 하다.
이 책은 단편소설 모음집이지만 그보다는 역사책이다. 있었는 지도 모르지만 분명 역사 속에 존재했던 보통 사람들이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자신의 생각대로 서술한 미시(微視) 역사책이다. 단편소설로 후루룩 읽으면 재미를 느끼기 힘들 뿐 아니라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도 힘들다. 그래서인지 출간된 1999년 당시 최신간이었던 이 책은 귄터 그라스의 노벨상 수상(그는 1999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덕분에 그해에 신속하게 번역되어 나왔고, 절판되었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독자들이 제대로 읽고 입소문을 내지 않는다면 절판되고 만다. 그나마 번역되었던 적이라도 있어서 중고책으로 구해 읽고 책을 못 구한 사람들은 본문 내용을 찍어 올려준 사진 자료를 보며 읽을 수 있었다. 귄터 그라스의 <나의 세기>에 중심이 되는 사건에 대해 알아보고 그해에 세상에는 우리나라에는 나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찾아보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읽었다. 그렇게 100일 동안 100년을 산 10명의 독자들의 생각은 '숲'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복간이 절실하다!"
복간은 힘들 것이라는 것도 안다. 이 책에 대한 평가와 접근 방식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복간이 된다해도 창고에 쌓여 있다 절판되는 수순을 반복할 테니 출판사에 복간해달라는 요청도 못하겠다. 그러나 아깝다. 이 책에서 서술하는 100년을 길잡이 삼아 우리의 100년을 돌아보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우리의 현재와 미래 중 꽤 많은 부분이 달라질 수 있을 텐데.
그러나 실망하진 않는다. 귄터 그라스 읽기는 이제 시작했을 뿐이니까. 지난 4월 12일부터 우리는, 아직 번역되지 않은 작품 <Schatten>과 언젠가 번역된 적이 있었으나 절판된 <나의 세기/민음사> <민중들 반란을 연습하다/서문당>를 찾아 읽었다. 11월 <민중들 반란을 연습하다> 낭독극 공연과 이승진 선생님의 강의 '귄터 그라스와 브레히트'를 듣고 난 다음부터 본격적인 귄터 그라스 읽기에 들어간다.
아직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귄터 그라스의 책은 많이 있다. 희망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