窮則通(궁하면 통한다)(김동호)
‘궁하면 통하는 법이다’는 말은 조폭들이나 군대와 같이 서열문화가 강한 집단에서 흔하게 사용되던 말로 기억합니다. 이 말을 전혀 새롭게 인식하게 된 계기는 중국 철학사를 배울 때였지요.
대학원 3차 학기가 되면서 선수과목 수강을 위해 학부과정 수업인 중국철학사를 들어야 했습니다. 중국철학사의 천롱푸어(陳榮坡) 교수는 다섯 명 정도의 이름만 희미하게 떠오르는데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분입니다.
천(陳) 교수는 역경을 강의하면서 주역이 중국철학의 뿌리이며, 공자가 죽을 때까지도 붙들고 있었던 책이라고 하더군요. 강의 내용이 이해가 안 되었지만, 난해한 주역의 전체를 흐르는 핵심은 ‘궁즉통(窮則通)’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너무도 잘 아는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주역을 대표하는 줄 몰랐습니다.
어떤 일이나 처한 상황이 궁극(막바지, 가장 끝)에 이르면 변(變)하고(窮則變,궁즉변), 상황이 변하면 길이 열리며(變則通,변즉통), 그렇게 통하면 오래 간다(通則久,통즉구)는 설명이었습니다. ‘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이 아홉 글자는 저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살다 보면 100% 확신이 들었는데 생각지 못한 암초에 부딪히기도 하고, 반대로 어렵던 일이 수월하게 풀리기도 합니다. 비록 수월한 일이라 해도 매일 매일은 긴장과 고난의 여정이지요.
궁즉통을 통해서 내가 꿈을 꾸면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업이나 변화를 모색할 때 주저함이 없게 하였지요. 어려움을 만나면 오히려 기대가 높아지고, 반대로 너무 수월하게 진행이 되면 무슨 마가 기다리나 조심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길을 간다는 것은 밤길을 나서는 것과 같습니다. 요행히 빛이 인도할 수도 있지만, 칠흑에 폭풍우를 만나는 일이 많지요. 경험을 통해 어둠이 깊고 폭풍우가 거셀수록 태양은 더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것을 압니다. 깊은 어둠속에서 궁즉변(窮則變)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시간입니다. 변화가 나타날 때까지 견디고 기다릴 수 있어야 비로소 통(通)을 이룰 수 있으니까요.
이미 공부에 대한 흥미도 떨어지고, 경제적인 도움도 어려워지면서 새로운 길을 나서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그리고 매일 꿈을 꾸었지요. 내가 꿀 수 있는 꿈은 지난 경험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젊어서 산행을 좋아해 지리산을 혼자서 몇 번이나 종주를 했고, 대만에 와서도 3,400미터가 넘는 허환산(合歡山)에 혼자 텐트를 짊어지고 올라가 야영을 하면서 느낀 점은 대만의 등산장비가 한국에 비해 많이 뒤진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경험이 꿈의 소재가 되면서, ‘대만 전체를 내가 한국텐트로 모조리 덮어볼까?’ 상상을 하면 밤이 그냥 지나갔습니다. 강의도 안 듣고, 매일 아침 5시 반에 나가던 운동도 멈추고 인간이 꾀죄죄하게 변해갔습니다. 무슨 고민을 심각하게 했던 것도 아니고, 인생의 기로에 서서 슬픔을 곱씹은 것도 아니고, 그냥 혼자 킬킬거리고 상상 속에서 텐트도 만들고 배낭, 코펠도 만들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지요.
유일하게 내세울 건 꾸준함 하나뿐인 제가 강의실은 열심히 지켰는데, 갑자기 나타나지 않자 소문이 돌고 더 부풀어졌나 봅니다.
밤새 뒤척이다 새벽녘에 설핏 잠든 어느 날, 기숙사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크게 들리고, “진똥하오! 진똥하오!” 부르는 낯선 소리가 들렸습니다. 눈을 떠보니 아직 어두컴컴한 이른 아침이고, 평소 한국인 유학생 외에는 제 방을 찾아올 대만인이 없어 의아한 생각에 부스스 일어나 문을 열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천롱푸어(陳榮坡) 교수가 방으로 들어오더군요. 제가 학교를 그만둘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지금은 이런 결정을 하지만 나중에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세월이 지나 30대 40대에 다시 공부할 수도 있다면서, 그때 대학원에 들어와도 선수과목은 또 해야 한다. 학교 교칙에 사정이 있어 학기 중에 그만두는 경우 중간고사를 보면 학점 이수를 인정하는 제도가 있으니, 며칠 안 남은 시험을 보면 학점을 주겠다고 합니다. 얼떨결에 쑥대머리로 이불 속에서 나와 죄송함과 감동으로 알겠다고 대답하였더니 안쓰러운 표정을 뒤로하고 나가시더군요.
약속대로 중간고사는 열심히 준비했고, 학부생들 한, 두 쪽도 못 쓰고 내는 답안지를 전 거의 마칠 시간까지 3쪽을 빽빽하게 적어 냈습니다. 참고로 중국어 작문을 도와주신 당시 중문과 대학원 선배 김종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의사소통이란 과정에 먼저 송신자와 수신자가 있고, 메시지가 있다. 이 둘 사이에 송신자의 부호화와 보냄, 수신자의 받음과 해호화라는 상호작용이 있는 것이다. 보낸 메시지와 받은 메시지가 서로 비슷하거나 같으면 '소통'(疏通)이라 하고, 다르거나 비슷하지도 않으면 '불통'(不通)이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송'신'자/발'신'자, 수'신'자란 말에서 우리는 왜 '信'(신)이란 글자를 쓰는 것일까. '信'(신) 자의 뜻에는 믿다, 믿음, 밝히다, 신부(信符), 맡기다, 도장[印(인)] 등의 뜻이 있다. 信符(신부)는 옛날 궁궐이나 군영(軍營) 등의 출입문을 통과할 때 사용하던 '신분증'이다. 같은 뜻의 말에 부계(符契)가 있다. 또 다른 뜻은 조선시대 각 관청의 공문서에 계인(契印)을 찍던 제도다. 도장은 성명 뒤에 한 글자를 덧붙인다. 보통 인(印)이나 장(章) 자를 쓴다. 그 대신으로 신(信) 자를 쓰기도 한다. 신표(信標)란 말도 있다. 뒷날에 보고 증거로 삼기 위해 서로 주고받는 물건을 가리킨다. 신물(信物)이라 하기도 한다. 대체로 믿음이란 뜻에서 파생된 말들이다.
그 까닭을 찾기란 쉽지 않지만, 하나의 실례가 있다. "communication"이란 영단어를 심리학 등에서는 [의사]소통으로 옮기는 것과 달리, 통신공학에서는 통신(通信)이라 옮긴다. 소통(疏通)에서 소(疏) 자를 버리고 그 대신에 통(通) 자를 앞세운 다음 '信'(신) 자를 덧붙인 말인 것이다. 통신에서 '신'(信)은 신호(信號 signal)의 줄임말이다. 소음/잡음(騷音/雜音 noise)이 상대어다. 통신공학에서 신호는 통해야 하는 것, 잡음은 통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청각 자극 중에서 집중해야 하는 것을 신호, 무시해야 하는 것을 소음이라 한다. 시각 자극 중에서 집중해야 하는 것은 도형(figure)이라 하고, 무시해야 하는 것은 배경([back]ground)이라고 한다. 그러니 통신이란 말은 신호의 '전달'이요 신호의 '통함'이다. 이렇게 통신이라 쓰는데는 그 나름의 근거가 있는 것이다. 여하튼 통신이든 소통이든, '트임'이요, '통(通)함'이요, '집중'이다. 믿음으로 '트임'이요, 믿음의 '통함'이요. 믿음에 대한 '집중'이다.
"窮則變(궁즉변), 變則通(변즉통), 通則久(통즉구)."란 말이 있다. ”극에 이르면 바뀌고, 바뀌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 ≪주역≫ <계사전>에 있는 말이다. 또, 이런 말도 있다. "通卽不痛(통즉불통), 不通卽痛(불통즉통)."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 나오는 말이다. 동양 최고의 철학서, 우리 의서의 이 말을 조금 달리 풀면, 퍽 의미 있는 말이 된다. 내가 변하면 남과 통할 수 있고, 그 관계가 오래 간다는 뜻, 남과의 관계가 통하여 오래 가려면 내가 변해야 한다는 뜻일 수도 있는 것이다. 소통되면 아프지 않고, 불통되면 아프다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다. 좀 더 찾아보아야 하겠다.
첫댓글 단순하게 생각해서 소통되면 아프지않고 불통되면 아프다...로 해석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