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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우선 자료에 대한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으며, 개인의 역사관에 의해 사건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측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거대 담론에 기울기 마련인 국가 중심의 역사와는 또 다른 관점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이 저술한 역사서는 나름의 효용 가치가 분명히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조선 후기의 역사를 기록한 정교(1856~1925)의 <대한계년사>는 주목할 필요가 있는 문헌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은 고종 치세인 1864년(고종 1)부터 국권이 상실되던 1910년까지 47년에 이르는 기간의 역사를, 모두 9권으로 기록한 방대한 분량의 개인이 저술한 역사서이다.
일본을 비롯한 외세의 침략이 본격화되던 시기 이에 대한 저항과 민족의식이 강렬하게 드러나고 있으며, 연대별 나열의 편년체의 체제는 당대의 상황을 평면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저자인 정교는 독립협회의 핵심적인 인물로 활동했으며, 갑오경장 이후 궁내부에서 근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자신이 보고 경험했던 일들을 기초로, 당대의 관보나 신문 등 다양한 자료들을 활용하여 방대한 분량의 역사서를 편찬했던 것이다. 전체 9권 중 1권은 1863년 고종의 즉위로부터 1893년까지 30년 동안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데, 오랜 기간에 비해 다른 권들에 비해 그 내용이 다소 소략한 편이다. 국내 정치 상황은 주로 대원군의 정치적 부침 과정에 집중되어 있으며, 당시 발생했던 '임오군란'이나 '갑신정변' 등에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한문으로 된 문헌을 역자들이 2년 동안의 집중적인 작업을 통해서 전권을 번역하여, 조선 후기의 역사적 기록을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당대 지배 계층은 동학을 비판적으로 인식했는데, 이 책 역시 그러한 관점에서 동학을 바라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등 대원군의 척화정책과 대외 문호 개방을 둘러싼 갈등들도 기록하고 있다. 비록 이러한 사건들에 대해 역사적 평가는 내려져 있지만, 당대인의 시각에서 각종 기록과 함께 견해가 제시되어 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의를 획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장장 10권으로 출간된 <대한계년사>를 읽기 시작했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자 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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