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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배움은 새식구모심 강연으로 갈음했습니다. 이번 강연은 녹취록으로 올립니다. 다만 소제목으로 내용의 구분만 했습니다.
20241102 새식구모심 조정신선생님 강연
- ‘이몸이 새라면’ 노래 함께 부르기, 돌림노래로 부르기
“이 몸이 새라면 이 몸이 새라면 날아가리 저건너 보이는 저건너 보이는 작은 섬까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웃음) 한번해봐요. [노래] 약간 만들어지고 있어요. 둘이 만나서 여기에(두 소리의 사이, 가운데) 새로운 소리가 만들어지고 있어요. 다시 한번 해봐요. [노래]
내가 잘 몰라도, 내가 언제 가야 할지 앞선 노래가 이끌어주는 것 같아서 아주 고마워요. 이번에는 우리가 앞서볼게요. (순서를 바꾸어) [노래] 좋습니다. 이 노래만 종일 해보고 싶지만 (웃음) 이야기를 해야하니까. 좋아요.
<배움을 위해 필요한 것, 네가지>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우리는 이제 입학을 앞둔 아이들을 어찌보면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영혼이 이 지구에 와서 7년간의 준비를 마치고 이제 새로운 배움의 길로 발걸음을 내딛으려고 하려고 있습니다. 이 영혼이 이제 배움이라고 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몇가지가 있을텐데, 그 중에서 제가 교사들에게 지금까지 아이들을 만나본 교사들에게 제가 물었어요. 선생님, 아이들이 배움을 위해서는 어떤 것이 ,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어떤 것이 필요한 것 같나요. 하고 물었어요. 이 선생님이 이렇게 대답하고, 저 선생님이 또 저렇게 대답했어요.
- 첫번째, 의자에 앉아있을 수 있는 능력
그런데 제가 굉장히 많은 사람들에게 몇년에 걸쳐서 어찌보면 25년에 걸쳐서 물었는데 그 이야기들은 어떻게 모아졌나면 1차적으로 배움이 가능하려면 첫번째가 의자에 앉아있을 수 있어야 된다. 의자에 자신을 균형잡게 주의하고 집중해서 앉아 있을 수 있어야 배움은 가능할 수 있다.가 첫번째였어요.
- 두번째,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주의집중해서 듣는 능력
그리고 두번째는 이제 그 앉은 상태에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가 였어요. 그 영혼에게 여러 소리가 들려오지만 지금 이 시간에는 저 사람의 말에 내가 주의와 집중을 가지고서 들을 수 있어야 되는거죠. 근데 거기에는 그냥 청력으로서의 듣기만이 아니라 그 말한 내용을 내 안에서 그릴 수도 있어야 되요. 잘 들을 수 있어야 배울 수 있어요. 듣지 못한다면 상당부분 배움이라고 하는 것을 하는데 어려움이 생길 수 밖에 없겠지요.
- 세번째, 다른 사람의 모습을 주의집중해서 보는 능력
그다음 세번째는 같은 내용이라 볼 수 있지만 앞에서 무언가를 함께 바라보자고 하는 그 선생님의 제스처와 선생님의 동작과 하는 일들을 잘 주의해서 볼 수 있어야 해요. 그 영혼의 눈에는 실은 굉장히 많은 것들이 앞의 눈에 보이고 있죠. 그런데 그런 것들 중에서 저게 의미있는거야, 저게 내가 집중해야될 거야 라고 하는 눈마주침을 시선적으로 할 수 있는가. 이것이 배우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이야기를 하셨어요.
- 네번째, 보고 들은 것을 따라하는 능력
그리고 네번째는 그렇게서 듣고 보고 한 것을 내가 직접 따라할 수 있는가예요. 보고 들은 것을 내가 따라할 수 있는가. 이것이 배우는데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이것들의 아주 기본적인 소양 정도가 갖춰졌다 하면 이제 학교를 갈 수 있다고 보는 거죠. 그리고 실은 학교에 와서 그것을 더 엄밀하고 더 수준높게 갈고 닦는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이 네가지는 배움을 위한 굉장히 기본적인 조건이기도 하지만 이 자체를 배우는지도 몰라요. 이 자체를. 그래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도 이 능력들을 더 섬세하게 길러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튼 초등학교에서 초등부의 아이들을 만나는 교사이든 아니면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교사이든 고등부에서 만나는 교사이든 심지어는 대학에서 대학생들을 만나는 교수에 이르기까지도 공통적으로 배움이 가능하기 위해서 필요로 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제가 종합해보건대는 이 네가지를 이야기 했어요. 그러고 난 다음에, 좋아요. 그러한 것들이 얼마간 나에게 준비됐어요.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가, 네가지>
이제는 나는 배움의 공간으로 그 배움의 시간으로 이제 발을 딛기 시작할거에요. 거기에서 우리는 뭘 배울까요. 우리는 무얼 배워야 할까요. 여러가지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지요. 우리가 그전에 우리가 배웠던 것들을 기초로 해서도 생각볼 것이고 또한 그렇게 출발하지 않고 내가 그냥 살아가면서 나에게서 깨달음이 있었던, 알게된, 인식하게된 것들로부터 출발해서 교육의 내용, 배움의 내용들을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요. 역시나 저는 같은 교사들은 아니지만 그 질문과 더불어서, 실은 연결해서 질문을 했습니다. “우리는 무얼 배우는걸까요?” 라고 말이지요. 여러 이야기들이 있었어요. 그것들을 제 식으로 모아봤어요. 그랬더니 네가지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것만이 다는 아니겠지만 우리가 배움이라고 하는 것 학교에서 아니면 학교가 아닌 어떤 공간이던 간에 삶 안에서 배워야 되는 것들 중에 이 요소가 상당히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중요하다고 이야기되어지고 있구나. 고 생각합니다.
- 첫번째, 내가 원하는 것을 아는 것
그 첫번째는 내가 무얼 원하는지를 아는 겁니다. 그 안다는 것을 저는 배움이라고 하는 것으로 연결했어요. ‘그건 내가 그냥 아는거지 배우는게 아닌데?’ 그것 역시 어떻든 그 선생님들은 배워야 되는 걸로, 내 안에 있는 것이긴 하지만 그것 역시도 배워야만 알 수 있는 걸로 생각하시나봐요. 내가 무얼 원하는지.
그래서 어떤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들을 나름대로 정리해봤어요. 그것을 버킷리스트라고 해가지고 14개를 쭉 정리를 했더니 그중에 하나가 뭐가 있었냐 하냐면요. 세계일주가 있어요. 나의 버킷리스트, 내가 원하는것, 내가 해보고 싶은 것에 버킷리스트로 세계일주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의 실질적인 속사정을 잘 살펴봤더니 그 사람은 세계여행을 할만한 돈도 없고, 그것들을 위한 준비를 위해서는 어떤 것도 특별하게 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하고 싶대요. 그래서 아마도 세계일주를 해보고 싶다라고 하는 버킷리스트를 가진 오백명을 만약에 추적해서 확인해본다면 그 중에 3명이 그것을 실현했어요. 그리고 497명은 “아씨, 하고 싶었는데 이번 삶에서는 안됐구만.” 이렇게 했어요. 그렇게 했더니 그걸 추적한 사람이 어렇게 말했어요. “세사람은 진짜로 원했고요, 497명은 진짜로 원한다고 착각했어요.” 이렇게 말했어요. “자신이 그것을 그렇게 강렬하게 원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원한다고 잘못 알고 있었어요.”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는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엄밀하게 정말로 깊이 알고 있는가? 그걸 알아가는 것은 실은 매우 비밀스러운 탐구의 과정이자 배움의 과정이죠. 나를 진짜 알아나가는 과정, 그 안에서 들리는 소리를 알아나가는 과정. 그렇죠? 그 과정들을 이끌어가는 것. 이것이 교육일 것이고 삶일 것이다. 거기에 방점을 두고, 거기에 목표지점을 두고 함께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곳. 그곳이 교육하는 공간일 것이다.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를 알아간다고 하는 것들에 답이 나온 건 아니에요. 그러나 그 알아간다라고 하는 과제가 삶의 과제이자, 교육의 과제고, 배움의 과제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 학교가, 내가 발디뎌야하는 학교가 거기에 대한 질문이 있고 거기에 대한 물음점이 있는가. 그것을 나아가기 위한 고투가 있는가를 살펴보실 수 있다면 첫번째를 확인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 두번째 감사할 줄 아는 것
두번째는 이겁니다. 감사를 할 줄 알아야 되는 것. 그것을, 감사를 배워야 되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무슨 이야기지? 하고 처음에는 정리가 안됐어요. ‘아,어떤 태도를 말하는가봐.’ 이렇게 말해요. 그래서 삶에 대한 감사를 많이 이야기하고 그런 어떤 것들을 하면 길러지는 어떤 것의 측면으로 생각을 했더니 ‘이걸 교육이라고 해야될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공부를 해가면서 ‘아차, 내가 이걸 잇고 있지 못했었구나.’ 라고 하는 거였는데.
어떤 생각을 제가 하게 되었냐면요, 우리가 일상에서 어떤 순간에 감사하게 되지요? 나는, 우리는 어떨 때 감사하다는 생각을 품게 되죠? 여러가지가 있을거예요, 사람마다 매우 다양한. 그러나 공통적인 것은 그냥 얻어지는 것에는, 그렇죠? 만약에 그것이 그냥 얻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감사하지, 그 정도만큼 감사하지 않는다. 그것이 얼마나 많은 수고와 얼마나 많은 기다림과 얼마나 많은 애씀과 얼마나 많은 마음이 모여서 나에게 온 것인가에 대한 그 인식이 있었을 때 그 감사가 온다. 그런데 그것은 일차적으로 내가 그렇게 애써보고, 기다려보고, 그걸 위해서 마음을 모아본 사람만이 그것을 알아본다. 배고파본 사람만이 내 앞에 있는 한끼 식사에 감사하는 마음이 그정도만큼에서는 보태질 수 있겠지요. 그런 것처럼 내가 어떤 것들이 쉬이 이루어지지 않고 매우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를 기다리고 인내하고 그것을 위해서 고투했던 그 시간만큼의 그것이 얻어졌을 때 감사가 있겠지요. 우리는 한 영혼에게 감사를 가르쳐야 되고 배워야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부족한, 기다리고 애쓰고 힘들여서 그 어떤 과정을 거쳐야되는 그 과정을 경험해야 하는 거 아닌가? 교육은 애쓰는거 아닌가? 그걸 배우는거 아닌가? 잘 안되는 것, 내가 잘 안되는 것, 익숙지 않은 것, 이것 자체를 경험해야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계속 해나가다보니 어느날 나도 못지 않게 되어짐을 알게함으로부터, 감사에 대한 일종의 기초를 쌓는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다주는 특정의 힘들이 있습니다. 그 특정의 힘들을 인간 영혼에게 연결시켜주는 그 어떤 것들이 있다고 보지요. 그것을 실은 우리는 여기 모임에서가 아니라 그 전에 있었던 우리 공부모임들에서 특정의 감각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생명감각이 얼마만큼 발달되느냐, 깨어나느냐 라고하는 것은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느냐에 실질적으로는 신체적 기초다 라는 이야기를 했고 그와 같은 것들이 점점 더 성숙되어지느냐 하는 이야기들을 해가고 있는 걸로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두번째였어요.
- 세번째, (실제의) 삶을 꾸려나가는 것
그리고 세번째는 처음에 할 때의 이야기와도 실은 비슷한데요. 제가 7일 전에 오늘이 일요일이니까 지난주 일요일인거죠 (토요일이예요) 아 토요일, 그러면 6일 전이예요. 6일 전에 전화한통을 받았습니다. 24살 먹은 청년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어떤 이야기를 하냐면, 이제 새로운 공간에 가 가지고 자신의 생활을 새롭게 꾸려야 해요. 아주 다 익숙지 않은 공간에 가서요. 먹을 것부터 시작해서 입고자고 뭐하는 것들을 다 새롭게 해서 공간을 해야되는 조건에 놓였어요. 그래서 이제 그 청년이 자신의 이불을 하나를 구했는데 그 커버를 하나 예쁜 걸로 딱 싸고 싶은거예요. 그런데 커버를 찾는데 마음에 드는 커버가 좀처럼 안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그래도 내 마음에 드는 걸로 고르겠어. 그러면서 살짝하는 이야기가 “다 기성제품으로 나오는 것이어서 거의 비슷비슷해.” 이 이야기를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게들을 찾아다니면서 찾았어요. “야, 진짜 마음에 든다. 근데 사이즈가 안 맞네. 사이즈가 안맞아. 아 (그냥) 가야하나. 근데 저거 없는데, 다른데는.” 그래서 눈 딱 감고 나는 저 마음에드는걸로 할래. 좀 크더라도. 그래서 와가지고 씌워봤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컸어요. 두배나 컸어. 한사람이 덮어야 될 이불이 아니라 두사람이 덮어야 될 이불의 크기였어요. 그런데도 일단 씌웠어. 마음에 드니까. 한 3일써보니까 어때요. 이게 안에서 놀아. 아주 너무 불편해. 고민을 하다가 생각했어요. 에잇, 가위로 잘라. 가위로 잘라서 박음질을 했어요. 그래가지고 이틀째 딱 썼어요. 그러고 났더니 내가 너무 자랑스러운 거야. 너무 좋기도 하고 내가 “아 안맞아? 그럼 내가 맞게 하지.” 하고 잘라가지고 바느질도 꽤 잘되어서 본인이야기로는. 제가 확인은 못해봤어요. 아주 꽤 잘 됐대요. 아주 멋지게 딱 되가지고 지금 내가 그 이불을 덮고 자고 있어. 그러다가 생각해봤어요. ‘아 내가 진짜 괜찮은 사람이네.’ 이렇게 생각을 했어요. 그랬는데 그 뒤로 딱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대요. 그런데 내가 이런걸 어떻게해서 할 수 있게 되었지? 했더니, 아 우리 빛담학교 선생님들이 이걸 나를 가르쳤네. 이걸 인제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밤 9시에 감사의 인사의 전화를 했어요. 그게 내가 그냥 한 줄 알았더니, 그게 선생님들한테 배웠군요. 그때는 실은 내가 엄청 투덜투덜하고 이런걸 왜해라고 실은 생각을 했었어요 선생님. 그런데 꽤 멋진 사람이 내가 되어있네요.
그리고 6일 전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몇달 전에 다른 청년한테서 다른 선생님이 전화를 받았어요. 그건 뭐였었나면, 그 청년 방에 제가 우연찮게 가본 적이 있어요. 그 청년 방에. 제가 이렇게( 설명) 다녔어요. 발 디딜데가 없어요. 옷이 뭐가 다 이렇게 되어있어서 말이지요. 물론 그런 것들을 걱정하는 그 부모님이 그런 이야기를 했을 때 제가 그랬어요. 놔 두시라고. 단 선생님이 사용하는 거실과 다른 공간이 잘 정리되어있기만 한다면 놔 두시라고. 저 동굴에서 나올 때가 있을 거라고. 그런데 나올 때는 달라져서 나올거라고. 어떻게 나올거냐는 거실로 나올 것이다. 거실의 상태. 그러니 저 방을 갖다 치워라 마라 할것 없이 아이고 방들어가도 못하겠다 정로도 하고 그걸 당장 치워라 하지 마십시오. 했어요. 그 청년이에요. 그 청년이 어떤 선생님한테 전화가 와가지고 그러는거예요. 새로운 공간에 가가지고 이제 룸메이트랑 공동의 일종의 싱크대를 놓고 사용하고 방은 각자지만 공동생활을 해야되는 거예요. 그렇게 해야 되니까 약간 내가 예전처럼 살 수는 없고 눈치는 있지, 정리도 하고 빨래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며칠을 그렇게 했어요. 그러면서 어땠냐면 첫번째 ‘내가 이런걸 꽤 잘 하네?’, 두번째 ‘원래의 대로 놔두는게 아니라 새롭게 만드는것이었네?’ 라고 하는 기분이 들었다는거예요. 그래서 기분도 매우 좋아졌고 내가 좀 으쓱해졌어. 그리고 생각해봤어. 이런걸 내가 어디서 배웠지? 내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내가 이 능력을 갖게 된거야? 어울리게 만들어서, 질서있게 만들어서, 그 다음에 새로운 새공기로 출발할 수 있도록 그 전의 문을 잘 닫고 새로운 문을 열고 그것을 다시 닫고 하면서 점점점점 나아갈 수 있는 기본적인 이 소양, 이 능력을 어떻게 배우게 된거야? 라고 봤더니 첫번째는 우리 집에서 그렇게 잘 정돈되게 엄마가, 그것을 나는 보았었고 그리고 학교에 가서 잘 정리해내는 선생님을 보았어요. 그래서는 전화했어요. 그 아이는 선생님이자 엄마인, 그 교사에게 전화한거예요. 고맙다고. 내가 그렇게 어지럽히는 것을 고치라고 하지 않고 가만히 놔둬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어떤 식이어야하는지를 계속 볼 수 있도록 깨끗한 거실을 보여줘서 고맙다고.
자 무슨 이야기냐, 어떤 재능이고 어떤 힘이고 무엇을 배워야 되느냐 하는데 있어서는 삶 자체를 새롭게 꾸리고 개조하고 변화시키는데 있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일종의 재능이 필요한거예요. 그 재능은 특별한 어떤게 아니에요. 굉장히 일상적이고 소소한 것들이예요. 우리 학교에 수공예 시간이 집중적으로 해내는 일중에 하나가 그거예요. 삶을 진정으로 꾸려가는 것, 삶을 새롭게 개조해나가서 나의 필요와 쓰임에 맞게 고치기도 하고 창조하기도 하는. 그것들을 누가 해? 내가 해. 어떤 세상에서? 대부분 다 물건으로 상품으로 나와버리고 있는 세상에서. 그러다보니까 그럴 기회를 그전에 비해서 갖지 못하는 이 아이들에 그 기회는 교육적으로는 결코 놓쳐서는 안될 기회라고 생각하는 어떤 교육 공간에서 그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죠. 그게 아주 커다란 배움이다. 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에 그냥 하면 좋지가 아니라 몸이 되어버려야 되요. 그냥 되어버려야 돼. 그런 것을 다룰 수 있어야 되요. 그렇죠? 실제로 그래서 어떤 것이 더 조화로울지에 대한 감각에서부터, 그럴 때 어떤 식으로 손을 놀려야 될지, 왼손을 어떻게 받쳐야 할지, 오른손이 두손이 어떻게 관계해야 될지 이런 것들을 그와같은 과정을 통해서 습득하고 배워야 해요. 인간의 몸이, 인간의 신체가 이 세상을 얼마나 멋지게 만들 수 있는지를 나로부터 증명해야 된다고. 그 과정을 실제로 교육과정에서 익히고 배워야 되요. 그것이 진짜 배워야 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구나.
- 네번째, 내적 확신과 신념을 기르는 것
마지막으로 생각해보면요. 내가 어떤 것들에 대해서 알게되었어요. 인식하게 되었어요. 느끼게 되었어요. 내가 갖게 된 그 인식과 느낌이 진짜 맞는건가요? 진짜 맞는지, 아니면 내가 착각하고 있는지 이걸 누가 알까요? 누가 말해줄까요? 내 인식이 내 판단이 나의 저에 대한 어떤 느낌이 옳은건지 맞은건지 아니면 지금 잘못 느끼고 판단하는 건지를, 누가 진짠지 아닌지를 이 사람에게 누가 알려주냐고요. 누구도 알려줄 수 없어요. 이 안(손으로 가슴을 가리키면서)에서예요. 안에서. 이것을 제가 약간 다른 용어를 써볼게요. 어떤 사람이 자신의 삶 안에서 얻게된 어떤 인식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어느정도의 내적 확신을 가지고 있는가는 다른 사람이 말해주는게 아니에요. 그 사람 스스로가 감지하는거예요. 스스로가. 자신 스스로가 자신의 인식과 판단과 느낌에 대해서 균형잡히게 감지할 수 있는 힘. 이 힘이 인류에게 있어서 정말로 고귀한 힘이라 해서 여러 힘들 중에서 믿음의 힘을 강조했다. 저는 그렇게 보는거예요. 그 힘은 밖에서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니까 믿는게 아니라 누가 뭐라해도 내 안에서, 내 고요 속에서, 내 평정심 속에서 확실하다고 느끼는 이 균형 감각으로, 내적 균형감각으로부터 나오는 이 확신감. 이 능력을 길러야 된다. 이걸 배워야 되고 익혀서 내 능력으로 치환해 가야 한다. 그럴려면 어때요. 무어가 필요한지 어떤 것들이 그 한 영혼에게 그런 내적 확신과 믿음의 힘을 길러주는 것인지에 대해서 교육은 도울려고 하는 시선을 가지고 있어야 된다. 믿음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라 그 믿음의 원초인 그 감각 자체를 믿음의 감각 자체를 길러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 그것들이 익히고 배워야 되는 정말로 가치있는 그 어떤 것들 중에 하나이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무엇을 배워야하는가에 대한 고민과 방향을 가진 사랑어린학교>
제가 이런 고민들을 한참 하면서 아, 이제 사랑어린 학교에 입학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한번 들으러 오신 분들과 이런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앞으로의 교육은, 미래의 교육은 실은 뭘 배워야 되는지에 대한 이런 관점에서의 어떤 이야기들도 얼마간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나서 우리 사랑어린학교에서 만든 동영상을, 저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구나하고 딱 정리를 했는데 그 뒤에 동영상이 하나 저한테 왔어요. 그리고는 그 짧은 동영상을 보게되었어요. 그러고는 제가 어땠냐면 아주 들뜬 마음이 되면서 아주 기쁜 마음이 되면서 ‘아, 이걸 여기서 다 하고 계시네.’ 어디를 바라보아야 되는지 무엇을 통해서 해야 되는지에 대한 배움에 대한 기본적인 그 어떤 것들이 내가 가졌던 지금까지 과정에서 가졌던 그 어떤 것과 같은 시선에서 그것을 이미 실제의 실현과정으로 이분들이 하고 계시네. 라고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주 강하게 제 인상에 남는 여러 장면들 중에서 아이들이 매일 걷는다는, 아마 그것 때문에 그 노랫말에 있어서도 저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고 생각하는데요. 매일 걷는다. 매일 길을 걷는다, 실은 매일 찾는다 일 수도 있고요 매일 나를 만난다 일수도 있고요. 그 과정들이 물론 그걸 실제로 해나가고 있는 과정의 아이는 그것들이 쌓이고 쌓이고 쌓여서 점점 그 근육들이 단련되었을 때 자각하는 힘으로까지 나중에 올라오겠지만 이미 그것을 방향으로 꿰뚫어서 보고있는 교사들 입장에서는 이것이 얼마나 귀한 삶의 토대이자 원천인, 원천적 힘이 될 것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아주 깊은 시선이 있구나. 라는 생각을 그래서 이런 학교라면 이런 쳐다봄이라면 우리가 귀하게 생각해볼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답니다.
저의 이야기는 이 정도에서 하고요. 혹시 질문을, 질문이 있다면 받아보겠습니다.
좋아요. 이야기의 내용이, 질문이 없다라고 하는 것은 질문을 할 수 없게 울림이 있었다. 라고 착각하면서. (박수) 그 울림이 아직까지 여진이 있을 때까지는 질문이 아직 안 생기는 게 아주 좋은 일이지요. 그리고 그것이 실은 우리가 꼭 획득해야 될 힘이예요. 질문보다도 더, 질문하기 전에 그 고요의 시간, 좋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찌보면 찾아나가고 있습니다. 완전히 찾은게 아니라 어떤 과정과 어떤 안내가 나를 볼 수 있게 하고 나를 알 수 있게 하고 나의 깊은 그 어마어마한 나와 만날 수 있도록 해줄 것인가. 그리고 세상이 가지고 있는 그 어떤 것 안에서 귀하고 감사할 것들이 많음에 대해서 내 스스로가 여러차원에서 감지해낼 수 있는 것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어떤 힘들이 그에게서 그러한 내적인 인식적인 힘들을 만들어내는지 그걸 찾아나가고 있고 그걸 찾아나간 것 안에서는 그걸 아이들에게 다리 놓아주려고 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여전히 질문들을 가지고서 어디를 바라봐야하는지 그곳으로 다가가기 위해서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느끼고 있는 사랑어린 학교 교사들에게서 느끼고 있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이 교사들은 안다고 하지 않습니다. 뭘 아는 것 같은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아요. “아 그래요?” 이러십니다. 진정한 인간이지요. 진정한 인간이죠. 그렇게 배움에 진정으로 나를, 그 전에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비워놓고 다른 새로운 것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공간을 내어줄 수 있는 이 힘, 이 힘은 실은 굉장한 근육을 단련했기 때문일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것이 워낙 많이 들어있어서 비워있질 않아요. 그럴 수 있도록 했던 어떠어떤 것들이 귀하게 그런 힘들로 드러나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런 어른과 유년의 과정을, 아동기의 과정을 함께 동반해 나갈 수 있는 것으로 얼마나 감사할 일인지 말이죠. 거기에다가 우리 학교가 “내가 봤을 때는 제일 좋은 학교야” 라고 너무 뻔뻔하게 이야기를 하는, 제가 깜짝 놀랐어요. 어떻게 저렇게 자기 인식이 안되나(웃음).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사람에게 있어서는 지금의 이 사랑어린학교에 아이들과 하는 삶의 과정들이 그에게 충분한 자긍심을 느낄만한 그 무언가가 들어차 있었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그것으로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말이지요. 그런 이야기를 한달에 한번씩 와서 약간 영혼의 양식처럼 저는 듣고 갑니다. 그래서 여기와서 제가 그런 양식을 먹고 한달동안 살다가 다시 와가지고 배고파지면 또 먹고 가는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질문은 한달 뒤에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저의 이야기는 이렇게 갈음하겠습니다.
첫댓글 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밖에서 안내중이라 강의내용이 궁금했는데 이렇게 선물이 딱! ♡♡♡♡
와.. 거의 채록이나 다름없네요. 수고많으셨어요. 늘 고맙습니다.💕
당신이 계셔 제가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랑어린 마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