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이 활짝 열리고, 교정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날아든다. 퍼뜩 생각난 듯이 바람이 불고, 하얀 커튼이 거기에 맞춰 흔들린다. 여느 때와 똑같은 풍경 하지만 여느 때와는 무언가 다르다. 눈에 비치는 것 모두가 몰라볼 만큼 선명하고, 생생히 살아나듯 입자가 도드라져 있다. 사물의 모습이나 형태를 세세한 부분까지 또렷이 볼 수 있다. 조금만 손을 내밀면 실제로 만질 수도 있다. 있던 막을 힘차게 걷어낸 것처럼. 진짜 냄새다. 마음 먹은, 한 계절의 냄새다. 칠판지우개 냄새며, 청소세제 냄새며 교정 한구석의 소각장에서 낙엽을 태우는 냄새가 거기에 구분하기 어렵게 섞여 있다. 그 냄새를 폐 깊숙이 들이마시자, 마음이 넓고 깊게 펼쳐져가는 감촉이 느껴진다. 신체의 조성이 소리 없이 바뀌어간다. 심장의 고동이 단순한 고동 이상의 것이 된다. 아주 짧은 한순간, 시간의 문이 안쪽을 향해 열린다. 오래된 공기가 새로운 공기와 하나로 섞여든다. 이 빛과 이 공기다, 하고 덴고는 생각한다. 그걸로 모든 것이 납득된다. 거의 모든 것이. 이 냄새를 왜 지금까지 기억해내지 못했을까. 이렇게 간단한 일인데. 이렇게 있는 그대로의 세계인데.
언제 만든 것인지 짐작도 못 하겠지만, 어쨌거나 그것이 만들어졌을 때 이미 유행에 뒤떨어진 옷이었을 듯한 울 정장은 희미하게 방충제 냄새를 풍겼다. 색깔은 핑크색인데 어느 단계에선가 깜빡 잘못된 염료가 섞여들어간 것처럼 이상한 핑크색이었다. 아마도 기품 있고 차분한 색감을 지향했던 것이겠으나 핑크색은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주눅 들고, 감추고 싶고, 그만 체념하는 마음속에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덕분에 옷깃 사이로 내보이는 흰색 새 블라우스는 마치 초상집에 슬쩍 끼어든 불성실한 문상객처럼 보였다.
(무라카미 하루키, 「1Q84」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