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마을 소재
“ 안정좌(安亭坐) 이야기”
( 거창군 스토리텔링 공모작)
제출인: 경남 거창군 위천면 황산1길
박동욱
황산마을의 안정좌(安亭坐)
거창군은 옛부터 골이 깊고 산이 높았던 탓인지 유난히 각 마을마다
수백년을 넘어서는 거목들이 많다
이런 거목들은 마을입구에 우뚝서서 때로는 마을의 안녕과 행복을
지키는 수문장 역활을 하고 있고 어떤 나무는 한고을의 역사를 지키며
군민들의 건강과 평화를 지켜주는 거목들도 있다
우리 조상들은 이런 거목들에게 감사함으로 해마다 기원제를 올리기도
하고 어떤 이는 가정의 평안과 무사고를 기원하기도 한다
특히 위천면 황산리 마을입구에는 구국정신에 효를 다 하지못한 한 청년의
애달픈 사연을 담고 있는 사연이 있어 찾는 이로 하여금 마음 저리게
만든다
지금도 가정에 우환이 있는 사람들이나 무속인들이 이곳을 찾아와 기원제를
올리고 있으며 수승대와 황산전통한옥 고가를 관광 온 분들에게 볼거리와
편안한 쉼터를 제공하고 있다
황산마을 안정좌(安亭坐)는 지금으로부터 약 700년전
1392년 태조대왕이 조선을 건국할 때 이야기이다
위천면 황산리마을은 거창신(愼)씨가 이곳에 집성촌을 이루기 훨신전
안씨, 조씨, 정씨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당시 이 마을에 살고 있던 안씨 성(性)을 가진 한 청년에 대한
전해오는 전설이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청년은 유난히 총명하고 지혜가 남달라
어려서부터 신동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나라 안팎으로 환란이 잦던 시기 어느날 고을 원님이 수승대를 지나치다가
이 청년에 대한 소문을 듣고 친히 불러 진이를 살피니 과연 청년의 지혜와 총기가
예사롭지 않는터라 즉시 한양으로 파발을 띄워 천거하기에 이른다
그길로 청년은 한양으로 먼길을 떠나게 되는데 거창에서 한양까지 그 길이
몇리던가?
남루한 옷차림으로 홀로 아들을 떠나 보내는 부모는 황산 뜰 길모퉁이로
돌아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황산 뜰은 그 옛날 하늘에서 커다란 학이 내려 앉아 알을 품고 앉았으니
원학골이라 부르게 되었고 지금의 북상면 월성계곡과 위천의 수승대
마리면까지 그 둘레가 30리길에 이른다고 한다
그중에서 학이 알을 품은 곳이 바로 황산마을 이다
그래서 그런지 유독 황산마을에는 옛부터 수많은 고관대작과 유명 인물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땅의 기운이 완성하여 지금까지 그 힘이 넘치니 오늘날 사람들은 훌륭한
자식을 얻고자 하면 이 마을 의 기(氣)를 이어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황산한옥 고가 주택에서는 이 “기(기)를 받아가기”를 마을 유형 행사로
펼쳐 나갈 예정이다
이제 한양으로 길 떠난 청년의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자
한양으로 올라간 아들이 입신양면하여 크게 출세 하였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막상 아들이 한번도 고향을 찾지 않는 터라
오매불망 부모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해 질녘이면 아들을 떠나보낸 자리에
나가 행여하는 마음으로 아들을 기다렸다고 한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어느날 황산개울 뻘밭(지금의 수승대 정문앞)에
작고 이쁜 나무 하나가 떠내려 오기에 나무를 줏어와 앉았던 자리에 심고
아들 보듯 나무에 정성을 다하여 돌 보니 무럭무럭 잘도 커 지금의
안정좌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살아 생전 아들 모습을 보지 못한 부모는 죽어서도 그 한 깊어 부모의
얼굴이 길 떠난 아들을 기리는 모습으로 나무에 그 모습을 나타내니
보는 이로 하여 더욱 마음 저리게 만든다
아들은 나라에 크게 쓰임을 받다가 사신행렬로 당나라에 갔다가
당나라황제 앞에서 당나라를 대국이라고 부르지 않고 오히려 조선을
대조선국이라 칭한다고 하여 죽임을 당하였다고 한다
태조대왕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칭송을 하면서도 당황제의 눈치를 보느라
상금과 벼슬을 내리지 않고 죽임을 부모에게도 알리지도 않았다고 한다
아들을 한번도 보지 못하고 부모는 세상을 떠나셨고 자식은 나라를 위해
죽임을 당했으니 범(虎)으로 환생하여 고향으로 내려와 보니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못다한 효에 설움을 참지 못하고 마을 뒷동산에 올라
밤낮으로 울부짖으니 마을 사람들은 이름하여 이 산을 호음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황산마을의 안정좌는
지금까지 안씨성을 가진 사람이 이 나무를 심었다하여 얼마전 군청에서
나무곁에 지어준 조그만 정자 이름을 안정좌라고 명명하였다
이곳은 철마다 수승대와 황산 한옥고가 체험을 오시는 관광객들에게
편안한 쉼터를 제공하고 있으며 외지로 나간 자식들이 행여나 올세라
정자에 둘러 앉은 마을 어르신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작년 군청 문화관광과에서는 안정좌 느티나무의 기원에 효험을 인정하고
나무주위를 재정비하여 각종 우환을 막아달라는 기원제를 올리는
사람들에게 보다 정감이 가고 쾌척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 감사한
마음뿐이다
-끝-
참고문헌: 거창누정문화 2010.12 박기용,정주환, 거창군 도서출판
명승 수승대 2010.12 오필제 거창문화원
거창민담 2012. 9 박동섭 (사)향토민속보존협의회
길을두고 뫼로가다 2013.11 거창군청 문화관광과
도움 주신분: 신용백(79세)/전대 이장, 신용범(83세),신종범(83세) 외
황산1구, 황산2구 주민
제출자: 경남 거창군 위천면 황산1길
박동욱
전력: 전 거창문인협회 회원
월간지외 다수 게재
2015년 3월 거창 재래시장 사진전 대상 수상
전직: 농사 외 황산1구 이장
첫댓글 이슬 이장님 황산리 마을 전설 이야기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언젠가 수승대와 안정좌에 걸음하여 쉼 가지며 오랜 세월을 지나온 그들의 얘기 들어보고 싶어요.^^
고맙읍니다 미소로님^^
언제던 스치는 길
연락 주십시요
차 라도 한잔 대접하겠읍니다^^
이슬님
전설이야기 애잔하네요
감사합니다
고맙읍니다 정이님^^
힘든 귀농정착의 길
한때는 엄청 힘들었지요^^
훌륭합니다
초심자들도 자세히 자상하게 설명까지 곁들어주시니
동네에서 보기드문 인재라 아니할수 없겠습니다 ㅎㅎ
상머슴이 되는것도 쉬운일이 아닙니다
태어나고 자란곳이 아니기에
공부할것도 많고
몸도 마음도 무척 바쁘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
동네가 훌륭하네요
역사도 자세히 설명해주시는 법우님도 더 훌륭합니다
감사합니다길상화님^^
글 읽으면서
저곳을 봤나? 아리송하네요.
역사가 깊은 동네네요.
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수승대 정문 맞은편 황산전통 고가마을이라고
표지판이 붙어 있지요
거창신(愼)씨의 집성촌 이기도 합니다
안정좌
전설속의 깊은 역사를 지닌 황산마을 수성대 꽃피는 봄이 오면 꼭 한번 ~~
마을이 봉황의 알을 품은 곳이라 그런지 평화롭고 아늑해 보여요
700년 넘은 안정좌 세월의 무게 만큼이나 웅장하고 아름답네요
전설속의 황산마을 고맙습니다 덕분에 행복합니다 ()
감사합니다
^*^
예나 지금이나 어찌 눈치들만 보시던지~
감사합니다
감사하빈다 성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