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량동 이바구길을 걸으며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는 생각이 거듭 들었던 하루였습니다. 부산을 하루에 다녀올 수가 있었으니 말이지요. 아침에 고속열차를 타고 떠나니 오히려 여유 있는 시간, 모든 일정을 마치고 밤중에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가능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꿈도 못 꿀 일이라는 생각이 거듭 들었던 것이었지요.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싶은데 이내 부산이었습니다. 역을 빠져나오니 아는 이가 마중을 나와 있었는데, 마음으로만 가까운 줄 알았던 우리가 실제로도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음을 실감할 수가 있었습니다.
약속장소로 걸음을 옮기며 들으니 점심 메뉴가 정해져 있었는데, 부산의 명물이라는 밀면이었습니다. 격식을 차리는 대신 묻지도 않고 메뉴를 정한 흔쾌함과 가벼움이 오히려 좋았습니다. 전쟁 때 북쪽에서 피난을 온 이들이 고향 음식인 냉면을 먹고 싶은데 메밀은 없고 구할 수 있는 것이 밀가루,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밀면이라는 설명을 듣자 처음 대하는 밀면이 더욱 정겹게 여겨졌습니다.
과연 밀면은 부산의 명물, 초량동 초입의 밀면 집 앞에는 길게 줄이 늘어져 있었습니다. 택시를 타는 줄인가 싶었는데, 아니었습니다. 번호표 대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가 음식을 먹은 손님이 나오는 만큼씩 음식점으로 들어가는 방식이었는데, 그 모습이 재미있고 정겨웠습니다. 음식 한 그릇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던 피난민의 심정을 생각하니 밀면의 맛이 남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점심을 먹은 뒤 찾아 나선 곳은 장기려 박사 기념관이었습니다. 택시를 타고 어림짐작으로 내린 곳은 기념관이 있는 곳과 제법 멀리 떨어진 곳, 덕분에 우리는 초량동 일대의 골목길을 순례하는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길 이름도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며 걸으라는 뜻을 담았는지 ‘이바구길’이었는데 골목마다 재미난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까꼬막’ 등 언덕길엔 정겨운 이름이 붙여져 있어 마치 시간여행이라도 하는 듯 싶었습니다. ‘행복’이라는 시에 나오는 유치환의 우체통이 그곳에 있을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고요.
마침내 찾아낸 장기려 박사 기념관은 비탈진 언덕 아래에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그 분의 명성과는 다르게 조촐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니 버려져 있는 땅을 치워내고 구청에서 기념관을 세웠다고 했습니다. 그 분이 말년에 환자를 돌보던 곳이 내려다보이는 곳이라 했습니다.
마침 기념관을 찾은 다른 일행이 있어 같이 설명을 듣게 되었는데, 대학 교수인 그분들은 장기려 박사의 기념관이 너무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냈습니다. 한편 생각하니 장기려 박사의 생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이웃이 되어 그들을 돌보아주는 삶, 오히려 버려진 땅에 세워진 크지 않은 공간이 그분의 생애와 걸맞지 않은가 싶기도 했습니다. 공간은 좁았지만 그럴수록 그분의 삶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으니까요. 휘휘 둘러본 초량동 이바구길은 숨겨진 듯 조용히 자리를 잡아 자기만의 목소리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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