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색깔의 시절이 있었다
강병철
나쁜 사람이 될 수 없어서
그대들이 심약한 생명만 골라 손가락 총 쏘면서
신새벽 초인종 소리로 마루창 뛰어오르던
구두 발자국 소리 한 방에 사립문 뻥 뚫리면서
장판 밑바닥 훌러덩 뒤집더니 보시횻, 먼지 알갱이
똑똑히 보이지요 죄악의 실체
바싹 얼어붙은 새 둥지 하나
호주머니 털고 또 깃털 하나까지 뒤집어 털면서
피붙이 살붙이 묶어 알몸의 빨간 페인트 뿌리며
흔적이 나올 때까지 흔들고 또 흔들어도
절대로 나쁜 사람이 될 수 없어서
눈 쌓인 산맥과 승냥이 울음 토하던 들길 지나
집채만 한 파도 허우적허우적 건너 언덕에 올랐다가
끝이 보이지 않던 망망 사막도 당연히 지나야 하던
그 깊은 터널 하염없이 기어가다가
어느 날 구들장에 등허리 눕혀 딱 한 번 지지다가
따뜻해요, 아들 낳고 딸 키우며
경운기 엔진 같던 심장박동이 또 느슨해지면서
세월이 빛의 속도로 흘러, 흐르다가
거북목에 등허리 굽고 이빨 틈새 멀어지다가
5번 등뼈가 굳어 키가 2센티 줄어들면서
남한의 자본주의 약진에 화들짝 놀랐다가
마침내 초로가 되어 지하철도 공짜로 타고
마른 비듬 털면서 지난 평생 더듬기도 하는 것이다
요즘은 아아, 하면서 굽은 등 펴다가
우두둑 소리에 화들짝 놀라기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