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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艮上巽下 山風蠱
第十八卦 |
| 艮上巽下 山風蠱(正:守常 中:權度, 剛:剛建 柔:柔順, 比:親比 應:相應) |
卦辭 | 蠱(壞亂之有事:欝而不發者謂之蠱), (治蠱에) 元亨(之德:極弊則將復興)이니, 利涉大川(不可靜俟)하니라. 先甲(辛者新意:先於此究其所以然也:知救之之道:前弊可革)으로 三日하고 後甲(丁者丁寧:後於此處其將然也:知備之之方:後利可久)으로 三日할지니라. 天干: 甲, 乙, 丙, 丁, 戊, 己, 庚, 辛, 壬, 癸. | |
彖曰 | 蠱는 剛上而柔下(上下不交)니, 巽而止(有二之義)함이 (治或成)蠱(以在上之剛止損,以巽順之道治蠱)이니라. (治)蠱는 元亨(之德)에 而天下가 治也오, 利涉大川은 往有事也오, 先甲三日後甲三日은 終則有始(亂之終卽治之始)가 天行也라. *以卦之象言之 所以成蠱也, 以卦之才言之 所以治蠱也 | |
象曰 | 山下有風이 蠱니, 君子 以하야 振(作)民(治人新民之事:巽風之鼔:為人)하고 育(養)德(治己明德之事:艮山之養:為己)하나니라. | |
初六 | 爻辭 | 幹父之蠱(柔而居剛)니, 有子(巽順至誠之正)이어야 考가 无咎이고, 厲이라야 終吉하니라. *巽順至誠 事親之本也 |
象曰 | 幹父之蠱에 意(柔)가 承考也라. *强(體,位,應)以立事為幹 | |
九二 | 爻辭 | 幹母之蠱(剛而居柔)니, 不可貞(剛直之道:固執之貞)이니라(巽以入之也). |
象曰 | 幹母之蠱에 (剛)得中道也라. *子幹父母之蠱 惟剛柔相濟者為善 | |
九三 | 爻辭 | 幹父之蠱니, 小有悔(剛之過:非善事親也)나 无大咎(巽體之得正:順)니라. |
象曰 | 幹父之蠱에 (諍父之子이나) 終无咎也라(不失正而有順故不陷君父於不義:由凶而趨吉也). *非剛過之才 不能以濟也 | |
六四 | 爻辭 | 裕父之蠱(不能有爲而蠱將日深)는 往에 見吝하리라. |
象曰 | 裕父之蠱(過於柔者)는 往엔 未得也라(由吉而趨凶也). | |
六五 | 爻辭 | 幹父之蠱(繼世之君)에 用譽(由能任剛賢)이니라. |
象曰 | 幹父用譽는 承以(九二剛中之)德也라. | |
上九 | 爻辭 | 不事王侯(以義不合而不偶於時)에 高尙(上九之象)其(高潔自守之)事로다. |
象曰 | 不事王侯(无位之地)는 志(剛)가 可히 則也라. |
【傳】蠱, 序卦, 以喜隨人者, 必有事, 故受之以蠱, 承二卦之義, 以爲次也, 夫喜悅以隨於人者, 必有事也, 无事則何喜何隨, 蠱所以次隨也, 蠱, 事也, 蠱非訓事, 蠱乃有事也, 爲卦, 山下有風, 風在山下, 遇山而回則物亂, 是爲蠱象, 蠱之義, 壞亂也, 在文, 爲蟲皿, 皿之有蟲, 蠱壞之義, 左氏傳, 云風落山, 女惑男, 以長女, 下於少男, 亂其情也, 風遇山而回, 物皆撓亂, 是爲有事之象, 故云蠱者事也, 旣蠱而治之亦事也, 以卦之象言之, 所以成蠱也, 以卦之才言之, 所以治蠱也.
蠱는 <序卦>에서‘喜로서 隨人하는 것에는 반드시 有事이니, 故로 蠱로서 受之한 것이다.’라 하였으니, 二卦之義(喜,隨)를 承하여 次를 삼은 것이다. 무릇 喜悅로서 人을 隨하는 것에는 반드시 有事이니, 无事일지면 則 무엇에 喜할 것이며 무엇에 隨할 것인가? 蠱가 隨에 次하게 된 까닭인 것이다. 蠱는 事이다. 蠱는 訓이 事는 아니지만, 蠱이면 이내 有事인 것이다. 卦됨이 山下에 有風이건대, 風이 山下에 在하여 遇山으로 回일지면 則 物이 亂인 것이니, 이렇게 蠱의 象이 되는 것이다. 蠱之義는 壞亂이다. 文으로 在함이 蟲과 皿이 되니, 皿에 有蟲인 것으로 蠱壞之義인 것이다. 左氏傳에 云하길‘風落山, 女惑男’이라 하였고, 長女로서 少男에 下하니, 그 情을 亂케 하는 것이다. 風이 遇山하여 回함에 物은 모두 撓亂인 것이니, 이렇게 有事之象이 되는 것이다. 고로 蠱라 云한 것은 事인 것이고, 이윽고 蠱됨에 治之하여야 하니 또한 事인 것이다. 卦의 象으로서 言之하면 蠱를 成하는 까닭인 것이고, 卦의 才로서 言之하면 蠱를 治하는 까닭인 것이다.
*東坡蘇氏曰: 東坡蘇氏曰器久不用則蠱生之謂蠱人久宴溺而疾生之謂蠱天下久安无爲而弊生之謂蠱
器를 久토록 不用일지면 則 蠱가 生함을 謂하여 蠱라 하고, 人이 久로 宴溺함에 疾이 生함을 謂하여 蠱라 하며, 天下가 久로 安하여 无爲함에 弊가 生함을 謂하여 蠱라 한다.
○建安丘氏曰六爻取家事為象上為父故本爻不稱父而他爻言父五為母故本爻不言母而他爻言母在下四爻則皆子也然子幹父母之蠱惟剛柔相濟者為善初爻柔位剛故无咎二爻剛位柔故得中三爻位俱剛過於剛者故小有悔四爻位俱柔過於柔者故徃未得此四位剛柔之異而得失之判也然上五二爻以家事言則上為父五為母衆爻為子以國事言則五為君下四爻為用事之臣上一爻為不事之臣故曰不事王侯高尚其事觀下五爻以幹父言則父之位存矣觀上一爻以王侯言則君之位存矣此易之道所以屢遷而不可為典要也
建安丘氏曰: 六爻를 家事로 取하여 象을 삼을지면 上은 父의 (본인)이 되기 때문에, 故로 本爻에서는 父라 稱하지 않고 他爻에서만 父라 言한 것이고, 五는 母가 되기 때문에 故로 本爻에서는 母라 言하지 않고 他爻에서만 母라 言한 것이다. 在下의 四爻에서는 則 모두 子인 것이다. 그러나 子의 幹父母之蠱는 오직 剛柔가 相濟인 것을 善으로 삼는다. 初는 爻는 柔이고 位는 剛인지라 故로 无咎인 것이고, 二는 爻가 剛이고 位는 柔인지라 故로 得中인 것이고, 三은 爻와 位가 俱로 剛이니 過於剛者인지라 故로 小有悔인 것이고, 四는 爻와 位가 俱로 柔이니 過於柔者인지라 故로 徃未得인 것이니, 此가 四位의 剛柔之異인 것이고 得失之判인 것이다. 그러나 上五 二爻만을 家事로서 言일지면, 則 上은 父가 되고 五는 母가 될지면 衆爻는 子가 되는 것이다. 國事로서 言일지면, 則 五는 君이되고 下의 四爻는 用事하는 臣이 되면, 上 一爻는 不事하는 臣이 되는지라 故로 曰하기를 ‘不事王侯 高尚其事’라 한 것이다. 下 五爻를 幹父로서 觀하여 言일지면 則 (下 五爻에) 父之位가 存인 것이고, 上 一爻를 王侯로서 觀하여 言일지면 則 (上 一爻에) 君之位가 存인 것이니, 此가 易之道가 屢遷하여서 典要로 삼아서는 不可한 所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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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坤上兌下 地澤臨
第十九卦 |
| 坤上兌下 地澤臨(正:守常 中:權度, 剛:剛建 柔:柔順, 比:親比 應:相應) |
卦辭 | 臨(相臨之義), 元亨이나 利貞(利在貞正)이니, 至于八月( 遯,或觀)엔 有凶(經八月 剛柔皆變 臨盡消矣:警君子)하니라. | |
彖曰 | 臨(十二月之卦)은 剛浸(漸)而長(君子之朋來逼四陰:咸臨)하고 說而順(至臨)하며 剛中而應(知臨)하야(以此三者臨人臨事臨天下) 大亨以正(敦臨)이니, (合)天之道也(有成乾之勢)니라. 至于八月有凶은 消하야 不久也라(長有消之幾 來有去之幾). *剛貴乎長也 *彖惟取剛臨柔 爻則初二外 皆上臨下 | |
象曰 | 澤上有地가 臨이니, 君子 以하야 敎思(敎導之意思:兌之潤地之象也)无窮(至誠无斁也)하며 容保民(坤之容澤之象也)无疆(廣大无疆限也)하나니라. | |
初九 | 爻辭 | 咸으로 臨(感之義,或皆朋之義)이니, 貞(戒初之辭:初不當任而二當任)이라야 吉하니라. 1.음양의 感應으로 임함 2.양의 朋으로 함께 임함(從二) 3. 모든(徧,皆) 陰에 임함. |
象曰 | 咸臨貞吉은 志가 行正也라. | |
九二 | 爻辭 | 咸으로 臨이니, 吉하야 无不利(勉二之辭)이니라. 初二者 下臨上 剛臨柔也 |
象曰 | 咸臨吉无不利는 未順命也(以道事君而不茍於從上也,恐何未順命也)라. | |
六三 | 爻辭 | 甘(邪說)臨이니, 无攸利(以不中不正為甘)이나 旣憂之(說之反:勉人遷善)일지면 无咎( 泰:艱貞无咎)하리라(戒小人). *三四五上者 上臨下 柔臨剛也 |
象曰 | 甘臨은 位不當也(不中正而乘二陽)오, 旣憂之(持謙守正至誠以自處)에 咎는 不長也라. *於剛長 近者凶 遠者吉 | |
六四 | 爻辭 | 至臨(相臨之至)이니 无咎하니라. *地與澤相臨之至也 |
象曰 | 至臨无咎는 位當也(六四初九皆當位 誠意以相與 至臨也)라. | |
六五 | 爻辭 | 知臨이니, 大君之宜(其知大矣)인지라 吉하니라(不任已而任剛中之賢 所以為知 所以為大君之宜). *此帝舜能用禹臯陶而臨下以簡 |
象曰 | 大君之宜는 行中(德)之謂也니라. | |
上六 | 爻辭 | 敦(厚)臨(尊賢取善)이니 吉하야 无咎하니라(自是積累至極處). |
象曰 | 敦臨之吉(相與而厚於終者也)은 志在內也(應乎初與二也)라. |
【傳】臨, 序卦, 有事而後, 可大, 故受之以臨, 臨者, 大也, 蠱者, 事也, 有事則可大矣, 故受之以臨也, 韓康伯, 云可大之業, 由事而生, 二陽, 方長而盛大, 故爲臨也, 爲卦, 澤上有地, 澤上之地, 岸也, 與水相際, 臨近乎水, 故爲臨, 天下之物, 密近相臨者, 莫若地與水, 故地上有水則爲比, 澤上有地則爲臨也, 臨者, 臨民臨事凡所臨, 皆是, 在卦, 取自上臨下, 臨民之義.
臨은 <序卦>에‘有事 而後에 可히 大할 수 있나니, 故로 受之하기를 臨으로서 한 것이다.’라 하였다. 臨이라는 것은 大인 것이고 蠱라는 것은 事인 것이니, 有事에 則 可히 大할 수 있는 것이다. 故로 受之하기를 臨으로서 한 것이다. 韓康伯이 云하길‘可히 大할 수 있는 業은 事로 由하여 生하니, 二陽이 바야흐로 長함에 盛大인지라 故로 臨이 되는 것이다.’라 하였다. 卦됨이 澤上에 有地이니, 澤上之地는 岸인 것이다. 水와 더불어 相際하며 水에 臨近인지라, 故로 臨이 되는 것이다. 天下之物 중에 密近으로 相臨하는 것은 地와 水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故로 地上有水일지면 則 比卦가 되고, 澤上有地일지면 則 臨卦가 되는 것이다. 臨者에는 臨民, 臨事와 같이 무릇 臨하는 바가 모두 是인 것이나, 卦에 在해서는 上으로부터 下에 臨함을 取한 것이니, 臨民之義인 것이다.
○建安丘氏曰臨有凌逼之義以下之二陽而凌乎上之四陰也然二當任而初不當任故二為臨主是以在二曰咸臨吉无不利而初曰咸臨貞吉而已其上四陰則皆受陽之臨者而遠者吉近者凶三其最近者也故甘臨无攸利四五則漸遠矣故四至臨无咎五知臨吉也唯上去陽獨遠而志應乎内故有敦臨吉无咎之辭焉豈非臨之道利遠而不利近者乎
建安丘氏曰: 臨에는 凌逼之義가 有하니, 下之二陽으로하여 上之四陰을 凌인 것이다. 그러나 二는 當任이고 初는 不當任인지라 故로 二는 臨主가 되는 것이다. 是以로 二에 在해서는 ‘咸臨 吉无不利’라 曰하였으나, 初에서는 ‘咸臨 貞吉’이라 曰하였을 뿐인 것이다. 그 上 四陰에서는 則 모두 陽之臨을 受하는 者이나, 遠者는 吉하고 近者는 凶인 것이다. 三은 그 最近者인지라 故로 ‘甘臨无攸利’인 것이고, 四와 五에서는 則 漸遠인지라 故로 四는 ‘至臨无咎’인 것이고 五는 ‘知臨吉’인 것이다. 오직 上은 去陽이 獨遠이며 志가 應乎内인지라, 故로 ‘敦臨吉无咎’의 辭를 그곳에 有한 것이다. 어찌 臨之道가 遠함에 利이고 近함에 不利인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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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巽上坤下 風地觀
第二十卦 |
| 巽上坤下 風地觀(正:守常 中:權度, 剛:剛建 柔:柔順, 比:親比 應:相應) |
卦辭 | 觀(嚴敬之觀)에 盥(事之始)而不薦(求神精一之時)일지면(恭己无為), (天下가) 有孚로 顒(엄숙할옹,仰望)若하리라(於天下之觀 信而仰之:化). | |
彖曰 | 大觀在上(以位言)에 順而巽(以德言)하고 中正以觀天下하니라(兼有位與德). 觀 盥而不薦 有孚顒若함은 下觀(嚴敬)而化也(自然之感:天下之儀表)요, 觀天之神道而四時不忒하야 聖人以神道設敎컨대 而天下服矣(從而化)니라. *卦名之觀去聲(내려봄)而六爻之觀皆平聲(올려봄) | |
象曰 | 風行地上(周觀之象)이 觀(上觀而敎?)이니, 先王이 以하야 省方으로 觀民(觀示)하야(坤之象) 設敎(而觀瞻)하나니라(巽之象). | |
初六 | 爻辭 | 童觀(童蒙之觀)이니, 小人(下民之觀)은 无咎나 君子는 吝하니라. |
象曰 | 初六童觀은 小人道也라. *童者陽則男而陰則稚也 | |
六二 | 爻辭 | 窺觀(居内而觀乎外)이니, 利女貞(之順從:順從之貞而未感化)하니라. |
象曰 | 窺觀女貞은 亦可醜也(見者小而不見全體)라. *二位陰故為女 | |
六三 | 爻辭 | 觀我生(動作施爲)하야 進退(處上下之間)로다. *察己以從人 |
象曰 | 觀我生(之擇)으로 進退함은 未失道也라. *觀以遠近取義 | |
六四 | 爻辭 | 觀國之光(國之盛德)이니, 利用賓于王(人君賓禮之而以行其道)하니라. |
象曰 | 觀國之光은 尙賓也(願慕賓于王朝)라. | |
九五 | 爻辭 | 觀我生(位與德稱)이니, (천하가) 君子(之善)이라야 无咎니라(將勢實漸危). *察人以修己 |
象曰 | 觀我生(之施)은 觀民也(以觀我之鑑爲察己之道)라. *民德之善否 生於我身之得失 | |
上九 | 爻辭 | 觀其生(德業行義 見於外者)하야 (在上之)君子라야 无咎니라. |
象曰 | 觀其生은 志를 未平也라. |
【傳】觀, 序卦, 臨者, 大也, 物大然後, 可觀, 故受之以觀, 觀所以次臨也, 凡觀, 視於物則爲觀, 爲觀於下則爲觀, 如樓觀, 謂之觀者, 爲觀於下也, 人君上觀天道, 下觀民俗則爲觀, 修德行政, 爲民瞻仰則爲觀, 風行地上, 徧觸萬類, 周觀之象也, 二陽在上, 四陰在下, 陽剛 居尊, 爲群下所觀, 仰觀之義也, 在諸爻則唯取觀見,隨時爲義也.
觀은 <序卦>에‘臨者는 大이니, 物이 大한 然後에 可히 觀함인 것이니, 故로 觀으로서 受之한 것이다.’라 하였으니, 觀이 臨에 次하게 된 所以인 것이다. 무릇 觀은 物에 視함도 則 觀이 되고, 下에게 觀함이 되어도 則 觀이 되니, 마치 樓를 觀함도 觀이라 謂之할 수 있는 것은 下에서 觀함이 되기 때문이다. 人君이 上으로 天道를 觀하고 下로 民俗을 觀함도 則 觀이 되고, 修德으로 行政하여 民의 瞻仰함이 되어도 則 觀함이 된다. 風이 地上에 行하여 徧으로 萬類를 觸하니, 周觀의 象인 것이다. 二陽이 在上함에 四陰이 在下하고, 陽剛이 居尊함에 群下가 觀하는 바가 되니, 仰觀의 義인 것이다. 諸爻에 在해서는 則 오직 觀見과 隨時를 取하여 義로 삼은 것이다.
○建安丘氏曰觀有觀示之義以上二陽而示乎下四陰也然九五得位而上九不得位故五為觀主是以在五曰觀我生而上曰觀其生而已其下四陰則皆以陽為觀者而近者吉遠者凶初其最逺者也故曰童觀君子吝二三則漸近矣故二曰闚觀女貞三曰觀我生進退也惟四去陽獨近盡所觀之美故有觀光賓王之象焉豈非觀之道利近而不利遠者乎
建安丘氏曰: 觀에는 觀示之義가 有이니, 上의 二陽으로 下의 四陰에 示인 것이다. 그러나 九五는 得位이고 上九는 不得位인 것이다. 故로 五는 觀의 主가 되니 是以로 在五에서는 ‘觀我生’이라 曰하였으나, 上에서는 ‘觀其生’이라 曰하였을 뿐인 것이다. 그 下 四陰에서는 則 모두 陽으로서 觀者로 삼음에 近者는 吉이고 遠者는 凶인 것이다. 初는 그 最逺者이니 또한 故로 ‘童觀 君子吝’이라 曰한 것이고, 二三에서는 則 漸近인지라 故로 二에서는 ‘闚觀女貞’이라 曰한 것이며, 三에서는 ‘觀我生 進退也’라 曰한 것이다. 오직 四만은 陽과의 去가 獨으로 近하여 觀하는 바의 美를 盡인지라 故로 그곳에 觀光賓王之象이 有인 것이니, 어찌 觀之道가 近함에 利롭고 遠者에 不利함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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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離上震下 火雷噬嗑
第二十一卦 |
| 離上震下 火雷噬嗑(正:守常 中:權度, 外剛:剛建 內柔:柔順, 比:親比 應:相應) |
卦辭 | 噬嗑(齧合以去間之)은 亨(噬而後嗑 嗑而後亨)하니, 利用獄(察獄之義:噬嗑之道)하니라(威與明而得其中以爲貴). *獄者所以治間而求其情也 刑者所以有罪而求其正也 *噬嗑者治天下之大用也 | |
彖曰 | 頤中有物을 曰噬嗑이라 하니, 噬嗑而(後)에 亨함이라. 剛柔의 分(均)함이(未噬之象) (剛在下)動(斷獄)而(柔在上)明(察獄)하고(噬之象), 雷電이 合而章(用獄之道)하며, 柔得中而上行(居尊位而得用獄之宜)하니, 雖不當(陽)位나 利用獄也(柔得中故也)니라. *動不如雷 不能斷獄 明不如電 不能察獄 | |
象曰 | 雷電이 噬嗑이니, 先王이 以하야 明罰(權)勅法(常)케 하니라. *明者辨别精審之意 勅者整飭嚴警之意 *天地必用雷電 聖人必用刑獄 | |
初九 | 爻辭 | 屨校(刑物)의 滅趾(小傷)이니(懲之於罪薄過小之初), 无咎(能改過以止惡於初)하니라. |
象曰 | 屨校滅趾는 不行也(不進於惡)라. *受刑之人 | |
六二 | 爻辭 | 噬膚(食物)의 滅鼻이니, 无咎(初之剛終可服也)하니라. |
象曰 | 膚滅鼻(得宜以深嚴治獄)는 乘剛也(不可輕用)라. *四爻皆用刑之人 | |
六三 | 爻辭 | 噬腊肉(不中正以噬堅靭之物)의 遇毒(人不服)이니, 小吝(不中正而反傷於口)이나 无咎(當噬嗑之時 於義爲无咎也)리라. *薄物為脯 小物全乾為腊 |
象曰 | 遇毒(不服難合之物)은 位不當也라. | |
九四 | 爻辭 | 噬乾胏(至堅難噬者)의 得金矢(得剛直之道與君臣之分)이니, 利艱貞(居柔則守不固故)이라야 吉하니라. *任除間之責者也 |
象曰 | 利艱貞吉은 未光(大)也라(不得中正故). *剛之威者獄之用(일선 책임자) | |
六五 | 爻辭 | 噬乾肉의 得黃金(君臣之分)이니, 貞厲라야 无咎니라. |
象曰 | 貞厲无咎는 得當也라. *柔之仁者獄之本(최고 책임자) | |
上九 | 爻辭 | 何(負)校(校加於首)의 滅耳(過而不改)이니, 凶(怙惡故)토다. |
象曰 | 何校滅耳는 聰不明也(不能如離之明也)라. *受刑之人 |
【傳】噬嗑, 序卦, 可觀而後, 有所合, 故受之以噬嗑, 嗑者, 合也, 旣有可觀然後, 有來合之者也, 噬嗑, 所以次觀也, 噬, 齧也, 嗑, 合也, 口中, 有物間之, 齧而後, 合之也, 卦, 上下二剛爻而中柔, 外剛中虛, 人頤口之象也, 中虛之中, 又一剛爻, 爲頤中, 有物之象, 口中, 有物則隔其上下, 不得嗑, 必齧之則得嗑, 故爲噬嗑, 聖人, 以卦之象, 推之於天下之事, 在口則爲有物, 隔而不得合, 在天下則爲强梗或讒邪, 間隔於其間, 故天下之事, 不得合也, 當用刑法, 小則懲戒, 大則誅戮, 以除去之然後, 天下之治, 得成矣, 凡天下, 至於一國, 一家, 至於萬事, 所以不和合者, 皆由有間也, 无間則合矣, 以至天地之生, 萬物之成, 皆合而後, 能遂, 凡未合者, 皆有間也, 若君臣父子親戚朋友之間, 有離貳怨隙者, 蓋讒邪, 間於其間也, 除去之則和合矣, 故間隔者, 天下之大害也, 聖人, 觀噬嗑之象, 推之於天下萬事, 皆使去其間隔而合之則无不和且治矣, 噬嗑者治天下之大用也, 去天下之間, 在任刑罰故, 卦取用刑爲義, 在二體, 明照而威震, 乃用刑之象也.
서합(噬嗑)은 <序卦>에‘可히 觀한 而後에 合하는 바를 有할 수 있으니, 故로 噬嗑으로서 受之한 것이다.’라 하였다. 嗑者는 合이다. 이윽고 可히 觀함이 有한 然後에 來하여 그것에 合之함을 有할 수 있는 것이니, 噬嗑이 觀에 次하게 된 까닭인 것이다. 噬는 깨물 설(齧)이다. 嗑은 合이다. 口中에 物이 間之함이 有일지면, 齧한 而後에 合之인 것이다. 卦는 上下에 二剛의 爻이고 中은 柔함이니, 外剛中虛는 人의 頤口之象(턱이)인 것이다. 中虛之中에 또 一剛의 爻이니, 頤中에 物이 有한 象이 되는 것이다. 口中에 有物일지면 則 그 上下를 隔하여 嗑할 수 없는 것이니, 반드시 그것을 齧之라야 則 嗑을 得할 수 있는 것이다. 故로 噬嗑이 되는 것이다. 聖人께서 卦之象으로서 天下之事에다 推之하신 것이다. 口에 在하여서 則 物이 있게 되면 隔하여 不得合인 것이고, 天下에 在하여서는 則 强梗(가시나무경)과 或 讒邪가 그 間을 間隔함이 되는지라, 故로 天下之事가 合을 得할 수 없는 것이다. 當히 刑法을 用함에, 小에는 則 懲戒하고 大에는 則 誅戮함으로서 그것을 除去之한 然後에라야 天下之治를 成함으로 得할 수 있는 것이다. 무릇 天下에서 一國에 至하기까지, 一家에서 萬事에 至하기까지, 和合치 못하는 까닭인 것은 모두 間을 有함으로 말미암음이니, 无間이면 則 合인 것이다. 天地之生과 萬物之成에 至해서도 모두 合인 而後에 能히 遂할 수 있는 것이다. 무릇 未合인 것은 모두 有間이기 때문이니, 마치 君臣, 父子, 親戚, 朋友의 間과 같은 경우에도 離,貳,怨,隙이 有함인 것도 대개 讒邪가 그 間으로 間하기 때문이니, 그것을 除去之일지면 則 和合케할 수 있는 것이다. 故로 間隔者는 天下之大害인 것이다. 聖人께서 噬嗑之象을 觀하시고 天下萬事로 推之하신 것이니, 모두 그 間隔을 去하여 合之케 할지면 則 和하고 또 治하지 못함이 없는 것이다. 噬嗑者는 天下를 治하는 大用인 것이다. 天下之間을 去함은 刑罰로 任함에 在인지라, 故로 卦에서 用刑을 取하여 義로 삼은 것이다. 二體에 在해서는 明照하면서 威震인 것이니, 이내 用刑之象인 것이다.
○建安丘氏曰噬嗑去間之卦也故六爻皆言用獄之事初上无位為受刑之人初過小而在下為用獄之始故以屨校滅趾為象上惡極而怙終為用獄之終故以何校滅耳為象中四爻有位為治獄之人然卦才之剛柔不同故所噬之難易亦異六二以柔居柔純乎柔者故象為噬膚膚易噬之物也六五以柔居剛為剛柔得中於象為噬乾肉乾肉比膚則難矣六三柔中有剛故為噬腊肉腊則有骨矣比乾肉又難也九四剛中有柔故為噬乾胏胏則骨大於腊噬之最難者也然二噬膚滅鼻三噬腊遇毒四噬乾胏艱貞五噬乾肉貞厲者皆言治獄之道不可不謹也至于占辭三爻无咎四獨吉者則治獄又以剛為尚也柔豈去間之道哉
建安丘氏曰: 噬嗑은 間을 去하는 卦인지라, 또한 故로 六爻에서 모두 用獄之事로 言한 것이다. 初와 上은 无位인지라, 受刑之人이 되는 것이다. 初는 過가 小하고 在下인지라 用獄之始가 되니 故로 ‘屨校滅趾’로서 象을 삼은 것이고, 上은 惡極而怙終하여 用獄之終이 되니 故로 ‘何校滅耳’로서 象을 삼은 것이다. 中의 四爻는 有位이니 治獄之人이 되지만, 그러나 卦才之剛柔가 不同인지라 故로 噬하는 바의 難易가 또한 異인 것이다. 六二는 柔로서 居柔인지라 純乎柔者이니, 故로 象이 噬膚가 됨이며, 膚는 易噬의 物인 것이다. 六五는 柔로서 居剛인지라 剛柔得中함이 되니, 象에 있어서는 噬乾肉이 됨이며, 乾肉은 膚에 比하면 則 難인 것이다. 六三은 柔中에 有剛이니, 故로 噬腊肉이 됨이며, 腊은 則 有骨이니 乾肉에 比하면 또한 難인 것이다. 九四는 剛中에 有柔이니, 故로 噬乾胏가 됨이며, 胏는 則 骨이 腊보다 大인지라 噬의 最難者인 것이다. 그러나 二에서 噬膚滅鼻라 하고, 三에서 噬腊遇毒이라 하고, 四에서 噬乾胏 艱貞이라 하며, 五에서 噬乾肉貞厲이라 하였던 것은 모두 治獄之道에 不謹하여서는 不可함으로 言한 것이다. 占辭에 至해서는 三爻에서 无咎라 하고 四에서만 獨으로 吉이라 하였던 것은, 則 治獄에는 또한 剛으로서 尚함을 삼은 것이니, 또한 柔가 어찌 去間之道이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