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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방송작가로 활동하는 저자가 그동안 방송이 되었던 대본을 토대로 엮은 책이라고 한다. 보통 방송 대본은 듣는 순간 청취자들의 반응에 좌우되기 때문에, 감성적인 내용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짧은 순간 지나가버리기 때문에, 대부분의 방송 내용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머무르는 경우가 많지 않다. 아마도 저자가 이 원고에 대한 출판 제의와 교정 과정에서 여러 번 망설였던 이유가 바로 방송 대본의 이러한 특성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여겨진다. 그러나 적어도 청취자가 아닌, 독자로서 이 책의 내용이 나름대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는 말을 건네고 싶다.
물론 어떤 글들은 내용은 물론 저자의 감성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내용들은 저자가 소개하는 글감들이 생소하거나,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금까지 방송 대본을 작성해보지는 않았지만, 일단 작가로서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아마도 작가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성을 그 내용에 담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그 이후에 청취자들의 반응을 생각해서, 보다 이해하기 쉬운 표현이나 문체를 통해서 전달할 수 있어야만 한다. 아울러 그 글을 소개하는 진행자의 언어습관이나 어투도 시청자와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청취자의 성향이 너무도 다양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저자처럼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만 한다. 그래서 작가들은 보다 대중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글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나는 책을 읽으면서 어떤 글들에 등장하는 ‘그녀’가 저자 자신은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실제 경험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책이나 다른 사람들의 말을 통해서 가져오는 내용에 저자 자신의 마음을 이입시켰을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1주일에 3꼭지 씩 만들어내는 방송 대본 일은 결코 만만한 작업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축적된 글들을 모두 4개의 항목에 나누어 배열하여 이 책 속에 수록되어 있다. 그래서 각각의 항목에 제시된 내용을 통해서 저자의 삶에 대한 태도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첫 번째 항목의 제목은 ‘느리게, 그러나 차곡차곡’으로, 여기에는 모두 20꼭지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가 소개한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소개한 내용을 읽으면서, 나로서는 가장 공감이 되었던 것 같다. 아마 2~30대 쯤 이 시를 읽으면서, 대부분의 독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을 염두에 두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나의 선택에 의해서 마련된 지금의 삶에 대해서 더 애착을 가지고 있고,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살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저자 역시 ‘하나의 선택에 의해서 인생 전체가 달라지니 갈림길 앞에 설 때마다 우리는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불안해하게’ 되는 현실을 전제한다. 하지만 ‘고민할 시간에 오히려 아무 쪽이나 가보는 게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가지 않은 길’에 대해서 아무리 생각한다고 할지라도, 다시 되돌아 갈 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어쩌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자신의 현재 상황을 만족스럽게 여기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실상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한다고 해서, 미래에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과거의 내 선택이 현재의 나를 이끌었고, 지금의 삶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태도는 내 개인적인 것으로써, 누구에게도 강요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항상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고, 그 선택에 의해 항상 ‘가지 않은 길’은 미련으로 남겨질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지 않은 길’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두 번째 항목은 ‘내가, 사랑한’이라는 제목으로 모두 20개 꼭지가 수록되어 있다. 사람들의 일상에서 펼쳐질 수 있는 잔잔한 사연들을 소개하면서,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우치는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세 번째 ‘너의 북소리를 들어라’라는 항목에서는 역시 20꼭지의 글을 통해서, 사람들 사이의 소통과 공감의 중요성에 대해서 설파하고 있다. 특히 ‘소원을 이루는 법’이라는 글의 내용에 공감하는 바가 컸다. 취준생 시절 항상 부러워하던 사람들의 사원증을 건 모습이 막상 취업이 되어 나의 현실이 되자, 과거의 부러움이 실상을 모르는 것이었다는 깨달음으로 변했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사람 심리란 게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것도 얻고 나면 얼마 안 가서 그 간절함을 잊은 채 또 다시 갖지 못한 것 없는 것에 마음을 돌리는’ 현실에 대해서 성찰해보기도 한다. 흠히 사람들이 ‘초심(初心)을 잊지 말자’는 생각을 하는 것처럼, 저자는 그래서 ‘간절한 소원을 이루는 법 중의 하나는 이미 이루어진 소원을 되돌아보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마지막 네 번째 항목은 ‘무적(霧笛) 소리를 따라’라는 제목 아래, 모두 20꼭지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처음 이 제목만을 보았을 때, ‘무적’이라는 표현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무적이란 ‘바다에 안개가 심할 때 배들끼리 충돌하는 것을 막기 위해 등대에서 울리는 고동 소리’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일상의 고단함에 처했을 때 단지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하지만 다시 일상으로 귀환하면, 그러한 상황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부딪혀야만 하는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 한 길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에서 혹시 나에게 들려올 지도 모를 ‘무적(霧笛)’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그리 어렵지 않은 내용과 문체로 독자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는 것이 이 책이 지닌 미덕이라고 생각된다. 나 역시 저자의 글들을 통해서 공감하는 바가 적지 않았음을 강조하고자 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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