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국 하와이는 어떻게 미국 영토가 되었을까?
오늘은 독립국이었던 하와이가 어떻게 미국 영토가 됐는지에 대해 알아볼까요?
미국의 50번째 주 하와이. 성조기의 50번 째 별 하와이. 미국 본토와 약 3,200km나 떨어져 있는 독립국 하와이 왕국은 왜 미국의 50번째 주가 된 것일까요? 그러니까 왕이 통치하는 군주제로 평화롭게 살던 나라를 왜 미국에 빼앗겨 버린 걸까요?
북태평양의 낙원 하와이는 5세기경 폴리네시아계 민족이 정착하기 시작했습니다. 폴리네시아는 오세아니아의 한 분류이며, 뉴질랜드, 하와이 제도와 "라파 누이," 즉 이스터 섬을 잇는 삼각형 안의 피지섬 등 1,000개 이상 섬들의 집단을 말합니다.
하와이는 1778년 영국탐험가인 제임스 쿡에 의해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서양인으로는 그가 처음 발견한 것이죠. 그는 자신의 탐험활동에 돈을 대고 후원하던 존 샌드위치公의 이름을 따 샌드위치제도라 명했죠. (샌드위치 빵으로 유명한 그 사람입니다.) 당시 문명 고립상태인 하와이에는 각 섬 지역을 이끌던 추장이 여럿 있었는데 이 추장들 중 한 명이던 ‘카메하메하’는 제임스 쿡과 그의 선원들이 전해주는 영국식 문화에 크게 놀랐습니다.
제임스 쿡 선장 (Captain James Cook, 1728~1779)
수백 년간 외부와의 교류 없이 거의 원시 세계에 살던 이들에게 집채보다 큰 서양의 배, 먼 곳을 볼 수 있는 망원경, 특히 칼이나 화살이 아닌 불을 뿜는 총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따라서 카메하메하왕은 문명이 발달한 다른 나라와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우리도 문명에 눈을 떠야겠다는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게 됩니다.
이후 카메하메하는 영국과의 교류를 지속하며 다양한 문물을 받아들였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무기를 들여오는데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영국으로부터 사들인 현대식 무기를 이용해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있던 하와이의 다른 부족들을 차례로 정복하며 통일 하와이왕국을 세웠습니다.
1810년 하와이제도가 하와이 왕국으로 통일을 이룬 이후 하와이 왕국은 서구화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1840년에는 서양식으로 헌법을 만들고 영국을 모방한 입헌군주제를 채택할 정도였죠.
이렇게 하와이가 서구문물 수입에 적극적이자 하와이를 찾는 서양인들의 발길도 급격하게 늘어났습니다. 특히 많은 무역선과 고래잡이배들은 하와이에 머물며 이곳을 고래잡이 항구이자 태평양을 지나가는 배의 정박지로 활용했습니다. 이후에는 일본인을 포함해 하와이에 아예 눌러 앉으려 하는 사람들도 늘어났죠. 그런데 이렇게 빠른 속도로 진행되던 서구화는 하와이왕국에 예상치 못한 불행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통일 하와이의 초대 군주 카메하메아 1세 / Kamehameha I (c1758-1819)
수백 년간 고립지대로 있던 하와이가 국제사회에 모습을 드러내자 가장 큰 관심을 보인 것은 미국이었습니다. 하와이는 그 당시 매우 가치가 높은 작물인 사탕수수 대농장을 건설하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1875년 미국은 하와이에 외교제안을 합니다. '미국으로 수출하는 사탕수수에 관세를 매기지 않을 테니 우리하고만 외교를 맺자'는 제안이 그것이죠. 하와이의 국왕은 관세 면제라는데 귀가 솔깃해 이 제안을 수락했는데 이것이 결국 왕국을 몰락시킨 시발점이 됩니다.
양순한 하와이 원주민보다 돈도 많고 계산도 빨랐던 미국인들은 이후 하와이 곳곳에 사탕수수농장을 건설하며 하와이 경제를 조금씩 장악해 나갔지만 정작 하와이 원주민들은 확산되는 미국의 경제권에 밀려 생계유지에 급급할 정도였습니다.
더 큰 문제는 1890년에 터졌죠. 관세 면제로 싼 값으로 들어오는 하와이 산 사탕수수 때문에 가격이 높은 미국 사탕수수 농가들의 피해가 커지자 농장주들은 생계를 보장하라며 정부에 항의합니다. 그러자 미국은 일방적으로 하와이 왕국과의 약속을 깨고 하와이산 사탕수수에 다시 관세를 매기게 되고, 가격경쟁력을 잃은 하와이산 사탕수수의 미국 수출량이 크게 둔화되었습니다.
늘어만 가는 백인들의 힘에 두려움을 느낀 왕들은 영국이나 일본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 때마다 눈을 부라리며 협박을 하는 미국 때문에 외교문제로 확대될까 섣불리 나설 수도 없었습니다.
상황 더욱 심각하게 흐르자 1893년 하와이의 마지막 왕 릴리우오칼라니(Liliuokalani, Lydia Kamekeha) 여왕은 더 이상 하와이 경제가 미국에 휘둘리는 걸 막기 위한 새 헌법을 공표해 '외국인 농장의 국유화'라는 초강경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유색인종인 원주민들을 무시하며 왕보다 더 힘이 강해진 미국인 농장자본들이 가만있을 리가 없죠. 여왕은 영국에 긴급 도움을 요청했지만 농장자본들은 무장한 150명의 미국 수병과 함께 왕실을 공격하는 쿠데타를 일으켜 여왕에게 퇴위서에 서명할 것을 강요함으로써 여왕은 실각하고 하와이 왕국은 멸망하고 맙니다.
하와이의 마지막 군주 릴리우오칼라니(Liliuokalani, Lydia Kamekeha)여왕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을 추방하고 하와이를 접수한 자들은 하와이의 미국 편입을 요청합니다. 하지만 당시 대통령이 반제국주의자였던 그로버 클리블랜드(미국의 제22대, 제24대 대통령. Stephen Grover Cleveland)였기 때문에 이 편입은 보류되었습니다. 클리블랜드 미 대통령은 미국인들에 의해 실각한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이 접수한 왕권의 회복요청에 대해 그녀의 왕권을 회복해 주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이 쿠테타를 주도하고 임시대통령으로 취임한 농장주 대표이자 선교당(Missionary Party) 샌포드 돌은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우리가 접수한 하와이의 왕권복구를 명령하느냐"며 대통령의 명령을 무시합니다. 그리고 다음 대통령 및 본국과의 각본에 의해 그는 미국에 하와이 편입을 요청하고 미국은 1898년 이를 승인합니다.
이후 하와이는 미국의 준 주(州)로서 미국 영토로 있다가 1959년 8월 태평양 전체를 아우르는 미국의 군사적 요충지로 인정받아 정식 주로 편입되기에 이릅니다. 하와이라는 전진기지가 없었으면 미국의 태평양 지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죠. 지상 낙원으로 불리는 하와이는 매년 13조원의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습니다.
1900년 하와이가 미국에 편입된 후 미국의 성장에 가장 큰 기여를 한 분야는 바로 군사 분야입니다. 1941년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자 미국은 곧바로 참전에 나서는데 이 전쟁에서 하와이는 태평양 전쟁이 벌어진 아시아와 가까워 항공모함과 전투기가 뜨는 미국의 전진 기지로서 역할을 수행했죠. 하와이가 미국으로 편입되고 진주만에 있던 미 태평양함대 해군기지가 일본의 공격을 받는 바람에 아무 죄도 없는 많은 원주민들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과거 미국의 하와이 접수에 대해 합법적이지 않았다며 그들에게 끼친 만행을 공식 사과했지만 사과만으로 끝났을 뿐 하와이를 원주민들에게 돌려거나 배상하지 않았습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땅을 빼앗고 살육당한 원주민들의 피 위에 미국을 건설했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사과만 했을 뿐 인디언들을 위해 한 일은 거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약소국의 고통으로 나라를 살찌우는 제국주의로 부흥한 나라 미국은 그렇게 국력을 늘려갔고, 다른 나라들은 미국에게 밉보여 피해를 볼까 아무 말도 못 하는 비겁함으로 일관했습니다.
특히 유명한 노래 알로하 오에 (Aloha 'Oe)는 하와이어로 '안녕 그대여' 라는 뜻으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의 마음을 노래한 하와이 민요입니다. 일찍이 신식교육을 받고 미국인과 결혼해 미국에서 살며 사교계에서 유명인사가 된 왕의 여동생 릴리우오칼라니가 남편 사망 후 다시 하와이로 돌아온 이후 오빠이자 왕인 칼라카우아의 사망으로 왕위를 물려받기 이전 왕녀시절(1878)에 작사 작곡한 노래입니다. 여왕의 독일인 음악교사 헨리 바거가 편곡해 하와이의 미국 귀속과 함께 이 노래도 미국과 세계에 널리 퍼졌습니다.
이상으로 하와이가 어떻게 미국에 영토를 빼앗기게 됐는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미국은 과연 정의로운 나라일까요?
첫댓글 가슴아픈 하와이의 역사에 눈물이 납니다
우리나라도 식민지의 역사 뼈아픈 과거가 있었는데
과거를 잊지말고 다시는 그런일이 없도록
힘있는 나라로 성장하기를 기원합니다
세계를 정복하고 싶은 미국은 언제나 남의 나라를 탐하죠.
일본과 가까운 괌도 싸이판도 미국령입니다. 과연 합법적이었을까요?ㅎ
힘 있는 나라로 성장하려면 투표부터 잘 해야 하겠죠.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는데 역사에서 많이 배워야 하겠습니다.^^
아하 ! 그렇군요 역시 ! 세상을 넓게 보게 하심에 감사드려요
세상은 넓고 알아야 할 것은 많습니다.ㅋㅋ
우리 서로 조금씩 알아가면서 지성의 창고를 풍요롭게 했으면 하네요.
황시인님의 공감의 말씀 늘 감사합니다.^^
마지막 말씀 관연 미국은 정의로운 나라이냐는 질문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21세기 대명천지에도 힘이 정의이고 역사는 강자에 의해 기록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무 중에 나무로 기리는 소나무도 영토전쟁에서는 가혹하여 그 그늘에서는 아무 것도 자랄 수 없습니다.
내가 과연 정의로운 사람일까 옷깃을 여의며 대표님의 글을 잘 읽었습니다.
엊그제 야당 대표라는 자가 죽어도 북한에 못 간다며 얼마나 더 속아야 그들을 알겠냐고 하더군요.
그 수준하고는 참.. 미국이 북한을 숱하게 속여먹은 사례를 그는 단 한 건이라도 댈 수 있을까요?
또 북한 핵무장의 원인제공자가 미국이라는 사실을 세계는 다 아는데 한국 극우들만 부정하고 있죠.
저는 반미주의자가 아니지만 미국이 형님이자 정의로운 국가라 믿는 숭미주의자들을 경멸합니다.ㅎ
어느 나라나 사대주의자들은 있게 마련이지만 우리는 정도나 숫자가 좀 심한 것 같군요.
선생님께서 주시는 말씀은 늘 제 잔이 아닌 항아리를 넘치게 하십니다.^^
알로하오에의 노래가 상징하는 하와이 역사 비극적 침통함에 과연 미국은 어떻게 참회를 할까요
사탕수수에서 부터 시작된 운명으로 나라가 없어지고,마지막 희망으로 고유의 전통 풍습이 소실되지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가을 햇볕 좋은 날 역사공부 자료를 올려주신 최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카페가 인문학을 나누는 카페라는 사실이 저는 참 좋습니다.
먹고 마시고 낄낄대며 Y담으로 도배를 하는 카페도 많은데 우리는 그렇지 않아 다행입니다.
역사방에 글을 올리는 분들은 누구나 누굴 가르치고자 하시는 게 아닌
다양한 지식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분들이죠.
재미도 없는 이런 걸 알아서 돈이 나오느냐는 분들에게는 할 말 없지만
육체의 배는 고픈걸 알면서도 지식의 배는 채울줄 모르니 머리는 가볍습니다.
우리 카페를 통해 저마다의 지식창고와 인성이 풍성해진다면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카페 회원들을 위한 카페지기님의 수고와 정성에 늘 감사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