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구름 잡는 간호사 처우 개선안
단체·현장·학계, 비판 목소리 높아
현실에 맞는 추가 대책 내놔야
정부가 20일 발표한 ‘간호사 근무환경 및 처우 개선 대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한간호협회(대간협)와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보건의료노조)는 이날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며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일선 간호사들과 간호학계도 실효성 의문을 제기하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보건복지부 대책에 따르면 간호사 근무환경과 대우를 개선하기 위해 건강보험 추가수익금을 투입하고 태움(간호사 간 가혹행위)을 근절하기 위해 처분규정을 마련한다. 인력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간호대 입학정원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경력단절 간호사 재취업을 지원한다. 신규 간호사 교육·관리체계를 개발하고 야간수당도 확대한다.
관련단체들 “정책 전면적으로 손질해야”
대간협과 보건의료노조는 성명을 통해 복지부 대책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대간협은 “입학정원 확대는 간호교육의 질을 떨어뜨리고 간호사 이직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야간근무수당 추가 지급도 중요하지만 의료기관들이 먼저 근로기준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의료기관의 86%가 간호사 인력기준을 위반하고 있는데 개선책이 없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특히 “간호사 저임금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노동에 합당한 임금수준을 설정하는 간호사표준임금체계를 도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시간제 간호사 활성화는 노동 강도를 높이거나 저임금 일자리를 양산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현장 간호사들 “인력부족·추가근무 심각한 수준”
일선 간호사들도 복지부 대책을 성토했다. 수도권 한 병원에서 3년째 근무하고 있는 간호사 A씨는 “지금도 정해진 추가근무 시간을 초과할 경우 추가 수당을 못 받고 일하고 있다”며 “정부 대책에 개선책이 들어 있지 않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또 “근무환경이 열악해 신규 간호사가 들어와도 금방 그만둬 3년째 막내다”며 인력부족 문제의 심각성을 토로했다. 도내 한 병원 1년차 간호사인 B씨도 “하루에 돌봐야 할 환자 수가 15명을 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병원간호사회 실태조사에 따르면 신규 간호사 이직률은 2016년 기준 38%에 달했다. 간호사 10명 중 4명은 한 병원에서 1년 이상 근무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환자 수도 19.5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가장 많았다. 추가근무 시간이 과다하다는 현장의 비명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발표된 근로시간 한도를 줄이는 법안에서 간호사 등 보건업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한국 간호사 급여 미국의 절반도 안 돼
도내 모 대학 간호학과의 한 교수는 “간호사 면허증을 취득하고도 간호사로 근무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이들을 현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처우 개선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간호사 급여는 미국의 절반 수준도 안 된다”며 간호사표준임금체계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미국 간호사 연봉은 2016년 기준 6만8천450달러(한화 약 7천400만 원)인 반면 한국 평균은 3천176만원에 불과했다.
지난달 28일 과도한 업무와 교육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간호사를 기리는 추모집회에서도 간호사 처우 개선 문제가 제기됐다. 집회에 나온 시민들은 “(간호사에게 과중한 업무가 부과되는) 병원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외쳤다. 국민 건강을 제일선에서 지키는 간호사들이 휴식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정부의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재빈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