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 환란 속에도 한편으로는 너무 부끄럽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게 아주 좋은 기회가 되어서 우리의 어떤 우리를 볼 수 있는 거울 역할을 하잖아요. 정말 기적과도 같은 우리들의 지난 시간들을 굉장히 자랑스러워했고 또 많은 사람들이 참 너희들 놀랍구나 라는 이야기들을 밖에서 많이 들을 수 있었던 시간들이 있었었어요. 그러나 또 우리에게 아직 어떤 의미에서는 해결되지 않고 또 과제로 남아 있었던 어떤 것들이 이번 일을 통해서 우리와 모두에게 드러났고 이것을 또 계기로 해서 많은 사람들이 또 깨어나지 않을까 해봅니다. 그래도 큰 도움을 받아서 정말 너무나도 기적과도 같은 우연들이 모아져서 그것들이 극단으로 가지 않고 그래도 실마리들을 찾을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서 너무나도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의 이 자리가 어려울 수도 있었어요. 어려울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의 일상을 여전히 유지할 수 있게 된 데 대해서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렇게 말은 하지만 아침에 제가 늦잠을 자 가지고 일어났는데 그럴 리가 없는데 굉장히 서둘러서 와야 되는 상황이었어요. 그래가지고 오면서 계속 시간을 봐야, 그랬답니다. 아무튼 방학 잘 보내셨나요?
그래서 저에게 시 하나가 떠오르네요. 박노해 시인, 또 시인이라고만 말하기가 소개하기가 송구하긴 한데 아무튼 박노해 시인의 돌의 독백이라고 하는 시가 근래에 제 옆에서 계속 끌림을 주는 것 같아서요. 그걸 같이 한번 공유하면서 숨을 고르고 우리 이야기를 시작할까 합니다. 제목은 돌의 독백이고요.
아이들을 만나러 가거나 하는 시간이 있을 때에는 가급적이면 한번 이 시를 마음에 새겨봅니다. 네 좋습니다. 우리 일어서서 이렇게 둘러서 볼까요?
<움직이는 활동>
[학습장애의 원인 ; 체질적 측면과 구조적 측면]
제가 오늘 이제 방학 지내고 나서 이제 첫 일종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자리에서 어떤 이야기부터 시작하면 좋을까라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동안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이제 하루 만에 정리할 수는 없지만 약간 돌아보고 약간 정리하는 그런 어떤 이야기들이 필요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 이야기 중에서 오늘은 인간의 아이들만이 아니라 인간의 학습 능력에 방해가 되는 요소 학습 장애의 원인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여러 가지 것들이 학습에 장애를 가져다주는 원인으로서 작용을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하는 학습 장애의 원인은 굉장히 아주 보편적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그 이야기들을 조금 돌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크게는, 학습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은 크게 두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체질적인 측면에서 하나는 구조적인 측면에서 살필 수 있는데 이게 용어가 생소한데 한마디로 체질적인 측면은 매우 개인적인 측면이에요. 그다음에 구조적 측면이라고 제가 말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공통이에요. 그러니까 그 원인 되는 바가 개별이 가지고 있는 아주 독특한 그 특별한 개인성들이 포함되어 있는 요인에 의해서 나오는 것들이 체질적 측면이라고 제가 표현을 하고 있고 개별이 아무리 다르다 하더라도 사람인 한에 있어서는 공통적인 거, 거기 그와 같은 데로부터 어떤 문제의 원인이 되어서 학습에 어려움을 갖게 되는 것들로 살펴볼 수 있어요.이 용어는 그렇게 중요한 용어는 아니에요. 내용이 중요한 것이겠죠.
그래서 오늘 칠판이 있으니까 우리 아이들의 학습을 방해하는 요인으로서 체질적 측면과 구조적 측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일종의 학습 장애의 원인으로서 체질적 측면과 구조적 측면으로 볼 수 있어요.
- 체질적 측면
이 체질적 측면에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 체질적 측면 ; 1. 소화
체질적 측면에 있어서 제일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게 소화입니다. 사람이 음식물을 섭취해서 어떻게 소화하느냐. 어떤 특정의 경험을 특정의 수업과, 나한테 오게 되는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그 어떤 일종의 경험은 우리가 마치 음식을 내 안에 경험해서 끌어들이는 것하고 똑같아요. 그래서 내가 물리적인 일종의 음식을 가져다가 어떤 식으로 소화를 하는가. 내가 일종의 문화적이고 일상의 삶에서의 그 경험들이 내 정신의 뱃속으로 들어가는데 거기서 나는 어떤 식으로 소화를 하지라고 하는 문제가 매우 개개인들이 달라요.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개개인이 어떻게 다르냐 이 문제는 워낙 실은 비밀스러운 거여서 접근하기도 쉽지 않아요.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소화가 잘 되는지 안 되는지. 그 개인의 이유가 굉장히 다양한 차원에서 존재하는데 우리가 그냥 외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 저 사람은 저건 잘 소화가 안 되네. 저건 개워버리네. 그리고 소화가 안 된 상태로 그냥 나와버리네. 이런 것들은 사후에 그 일이 벌어지고 한참 진행되고 나서 그 소화된 것들에 대한 징후로서 우리가 알 수 있어요. 수업을 했어요. 특정의 교과와 관련해서 특정의 어떤 것과 관련해서 같이 공부를 했는데 그 수업이 끝나고 얼마 뒤에 그것들이 어느 정도 이해됐는가라고 하는 것들이 연동되는 수업을 할 때 교사가 알죠. 이 아이는 아직 이해가 안 됐네, 또 어떤 아이는 이해가 어느 정도 수준에서 지금 되고 있네라고 하는 것을 그냥 알 수 있죠. 소화가 안 되는 거, 소화와 관련한 거예요. 어떤 의미에서는 소화를 한다라고 하는 것은 들어온 것을 파괴할 수 있어야 돼요. 들어온 것을 그대로만 가지고 있으면 그건 소화가 아니에요. 내 몸으로 실질적인 섭취할 수 있는 구조로 바꾸질 못해. 그러면 (소화할 수 없어요). 우리는 들어온 것을 일종의 변화시켜서 내가 흡수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고 있느냐? 그렇지 않아요. 그렇지 않고 굉장히 새로운 형태로, 흡수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나한테 필요한 형식으로 화학적 변화를 일으켜요. 이 과정이 되어야 돼요. 그 과정이 다 되고 나면 그것을 거기로부터 얻게 된 그 어떤 양분들을 내지는 에너지들을 뭐를 통해서 보냅니까? 이제 몸으로 보내야 될 거 아니에요? 혈액. 매우 중요한 요소라, 이 혈액은 운반자예요. 소화된, 정신적으로든 아니면 생리적 차원에서든 간에 물리적 차원에서든 간에 소화된 것을 내 존재 전체에게 계속해서 공급하는 일을 실은 혈액이 하고 있죠.
그렇죠 어쨌든 그다음에.
- 체질적 측면 ; 2. 잠, 깨어있음 : 리듬
원래 주제로 하자면 여기가 소화고 여기가 잠이에요.
그런데 제가 따로 잠을 잘 잔다는 말은 잘 깨어 있다는 것과 어때요? 마주하고 있어요. 깨어 있음이 없는데 잠을 잘 잔다라고 하는 것은 실은 자고 있는 게 아니죠. 그냥 맹한 상태인거에요. 잠은 놀라운 과정이에요. 정신적으로는 완전히 깨어 있는 시간이에요.완전히 깨어 있는 시간인 우리의 지금 이 의식은 마치 잠들어 있는 것 같지만 잠은 완전히 생생하게 깨어 있어요. 우리가 하루의 일상생활을 어때요? 좀 더 잘 깨워서 진행을 해야 거기로부터 뭔가가 나에게 그 경험들이 좀 더 풍부하게 일종의 초점을 가지고서 경험이 진행될 거 아니에요. 그런데 이 경험을 맹한 상태로 하루를 보낸다고 했을 때 그 사람이에게 들어간 것들은 그 상태를 벗어날 수는 없잖아요.잠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깊은 숙면을 한다라고 하는 것은 잠의 세계에서 놓고 보면 온전히 깨어 있다입니다.그런데 숙면을 하지 못하고 일종의 가수면의 상태로 계속 있어요. 그러면 우리가 일상으로 놓고 보면 낮 시간을 놓고 보면 맹한 상태로 하루를 보낸다. 이것하고 그냥 동의어예요. 그런데 이와 같은 잠 다시 말해서 우리가 경험한 것들을 이제 정신적으로 소화하는 그 시간이 잠이라고 하는 것을 아이들과 성인들은 다르게 잡니다. 무슨 말이냐면 어린아이들은 이 잠을 성인과는 다르게 숙면을 하지 못하는 거, 그러니까 자신이 했던 경험을 실제로 완전히 깨어 있는 상태로 잠의 시간 동안에 가져가지 못한다 그 말이에요. 그걸 그럴 수 있도록 배우는 시간이 큰 틀에서는 9살까지예요. 잠을 온전히 성인에 가깝게 잘 수 있도록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숙면이 가능하도록 하는 거. 무슨 이야기냐면 아이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봐보면 가수면의 상태예요. 깊은 잠을 사실은 잘 수 없어요. 그러니까 아무래도 가수면의 상태이기 때문에 자주 깨죠. 더 어린 아이일수록 그래요. 그러나 점점 수면의 깊이가 조금씩 조금씩 만들어져요. 이 과정이 그래서 제대로 자지 못하는 문제로부터 생기는 학습장애에요.
- 체질적 측면 ; 3. 호흡
그다음이 호흡이에요. 뇌는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어떻게 형성될까요? 각 개인의 뇌 신경 감각 기능이라고 하는 인간의 아주 독특한 일종의 능력을 갖게 만들어 주는 그 신경 감각 기관이 가장 많이 모여져 있는 뇌. 이 뇌는 어떤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질까요? 뇌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몇 개의 작용하는 요소들이 있는데요. 그중에 가장 강력한 요소는 호흡입니다. 우리는 들숨을 쉴 때, 뇌수. 다시 말해서 뇌가, 이렇게 일종의 뇌를 떠받치고 있다고 해야 될까요? 뇌를 안정적으로 이렇게 유지시키고 있는 뇌수가 위로 뛰어오릅니다. 위로요. 뇌가 있으면 3분의 1 정도가 잠겨 있고 3분의 2는 뇌수가 없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이 뇌수가 지속적으로 얘(뇌)를 적시지 않으면 어떻게 돼요? 우리는 완전히 어떤 기능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돼버려요. 그러니까 어떻게 비유해 볼 수 있냐면 가뭄이 져가지고 논바닥이 쫙쫙 갈라지는.. 계속해서 이 뇌수가 적셔줘야 돼요, 그 3분의 2를.. 3분의 1은 계속 거기에 잠겨 있으니까요. 이것은 그 3분의 1이 담당하는 영역들이 우리가 보통은 무의식의 영역이라고 되어 있는 것과 깊은 상관이 있지만 아무튼. 지속적으로 올라가서 이렇게 적셔요. 우리는 지금 만들어진 뇌가, 어느 정도 형성된 뇌가 뇌수에 의해서 적셔지는 것을 이야기했는데. 이 뇌가 만들어지고 있는 시기, 넓게 보면 태어나서 3세까지의 과정. 그 과정은 만들어진 것이 제대로 기능을 하는 데에 호흡이 영향을 미치는 것만이 아니라 아예 만드는 것에 영향을 미쳤어요. 어떤 호흡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러니까 이제 아이가 우리 교실에 와 있어요. 내가 만나는 아이가 숨을 어떻게 쉬지 이걸 교사가 알아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호흡은 그의 신경 감각 기능을 일종의 사용하는 데 있는 특징을 상당 부분 드러내고 있을 거니까. 그것과 숨 쉬는 것과 무관하게 이 아이의 일종의 신경 감각 기능이 벌어지는 게 아니에요.
호흡의 문제로부터? 두 번째로는 잠을 잘 자고 있나? 세 번째로는 숨을 잘 쉬고 있나? 그러려고 하면 이 자체에 대한 그림이 조금 있어야겠죠. 지금은 큰 틀에서 그냥 돌아보는 시간이니까 세부적으로는 이야기하지 않겠어요. 이 이야기가 끝나고 난 다음에 이 세부적인 이야기들은 조금 해요. 그다음에 이것들(체질적 측면) 개인들이 굉장히 매우 다르다고 했어요.
- 구조적 측면
이 구조적 측면은 크게 봐보면 골격 뼈 근육이 신경으로 되어 있는 것들이에요. 이 세 가지가 어떻게 작동이 되어지느냐에 따라서 일종의 배우는 데 있어서의 기능이 원활한지 그렇지 않은지가 영향을 받아요. 그러니까 내가 주의집중할 수 있는 힘, 경청해서 들을 수 있고. 주의 집중할 수 있는 힘. 이 힘들은 어디에 의해서 형성되죠? 내가 책상에 앉아서 특정의 위치를 놓고서 나를 안정적으로 계속 유지한 상태로 어떤 일종의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이것들, 이 내적인 균형은 뭘 통해서 연습이 되죠? 예를 들면 이걸(구조적 측면) 통해서 연습되고 있어요. 지금은 큰 틀에서만 소개를 해요. 그래서 저쪽 측면(체질적 측면)을 쳐다보는 사람은 이제 아이를 처음에는 이 측면(체질적 측면)을 봐요. 아이가 어떤 식의 일종의 소화와 관련해서 어떤 걸 보이는지, 그다음에 잠과 호흡에 대해서 관찰을 해요. 근데 그다음에 하나 더 관찰하는 것은 이걸(구조적 측면) 관찰하는데 이것은 이걸 관찰한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면 목하고 몸통이 분리돼 있는가, 왼쪽과 오른쪽이 저 아이는 정확히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나, 그다음에 어떤 것을 할 때 신체가 자기도 모르게 가장 효율적인 배분 관계로 주로 쓰는 어떤 신체와 그것을 보조하는 신체가 적절하게 관계를 하고 있나 이런 것들을 봐요. 왜냐. 그런 것들이 학습에 있어서 결정적이니까요. 그런 걸 통해서 학습을 가능케 하는 일종의 정신적인 능력들이 그걸 기반으로 해서 앉아 있으니까요. 그렇게 볼 수 있어요. 그래서 그것을 쟤는 이렇게 말하지 않고 구체적인 예로부터 가져와서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그동안에 조금씩. 그런게 이런 이야기였던 거예요.
지난 우리 모임들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들 중에 혹시 지금 떠오르는 낱말이 있나요? 경계. 경계가 떠오르시고요. 리듬. 리듬이라는 낱말이 떠올라요. 경계. 리듬. 중심. 고요함. 리듬은 말 그대로 호흡, 잠,장 또 소화. 이것들에 모두 영향을 미치는 요소예요. 또한 이 리듬은 나중에 구조적 측면들을 조직하는 데 있어서도 아주 좋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들이죠. 이 모두가 다 어쨌든 이름은 뭐든 간에 우리 아이들의 학습과 상당히 상관관계가 있는 거다라고 하는 우리 틀을 이제 어느 정도 가져놓고 그 다음으로 이야기를 진행해 볼게요.
<활동>
아이들의 학습 능력은 배움에 관한 능력은, 여기서 학습 배움이라고 하는 것들은 그냥 학교의 교육 과정 안에서 벌어지는 그 어떤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인생 학교를 말하는 거예요. 삶이라고 하는 것. 그것들은 자신에게 있어서 배움의 어떤 과정으로 계속 연결되어 있는 것들 모두를 포함하고 있어요. 그것들에 대한 준비 작업을 진행을 하는데 그 준비 작업들이 1차적으로 어디에 일종의 준비 과정, 결과물들이 새겨지냐 하면 신체에 새겨져요. 우리는 신체를 매개하지 않고 그 어떤 정신적 심리적 능력을 발휘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신체와 완전히 무관되게 정신적 어떤 것을 발휘한다라고 하는 것은 최소한 지구에서는 불가능해요. 다른 차원으로 가면 그 상황이 달라요. 그러나 최소한 우리가 몸을 입고 있는 인간의 신체를 지니고 있는 동안에 있어서는 그건 피할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아주 먼 일종의 별이라고 표현하든 그 어떤 배로부터 이 지구로 이제 내려와요. 그럼 지구로 내려올 때 그 존재가 어디에 무엇을 매개로 해서 자신의 존재가 드디어 밖으로 외적으로 드러나냐면 그의 신체의 정신이 깃들면서예요. 신체와 정신은 전혀 같을 수 없죠. 그러나 신체와 정신을 뗄 수 없는 것은 이 정신이 유일하게 이 물질적 신체를 매개로 해서만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면서 아이들의 건강한 신체의 발달을 바라본다라고, 제대로 바라본다는 것은 아이들의 건강한 정신 발달을 바라본다는 것과 같은 말이에요. 그 상호 관계들을 면밀하게 우리가 살펴볼 수 있다면 말이죠. 그래서 이제 그와 같은 철학적인 이야기를 좀 더 구체적인 교육학적인 이야기로 우리가 조금씩 해 나가고 있는 거예요.
- 구조적 측면 ; 1. 신체지도, 신체도식
그러면 우리는 신체의 다양한 인간이 배우는 과정에서 삶의 과정에서 필요로 한 것들을 신체를 통해서 새겨 넣었는데 그리고 이제 그것이 자신의 능력이 되어서 외부적으로 드러나게 돼 있는데 가장 첫 번째로 살펴볼 수 있는 것들은 자신이 자신의 몸을 편하고 효율적으로 잘 다룰 수 있는가라고 하는 말인데. 이 말을 용어는 조금 생각을 해봐야 되겠는데 번역이 그렇게밖에는 아직은 안 돼 있어요. 신체 지도. 신체 도식이라고 번역은 되어 있어요. 내용적으로 가보면 아이가, 한 사람이 자신의 신체를 얼마나 효율적이고 능숙하게 사용할 줄 아는가예요. 여기서 효율적이고 능숙하다라고 하는 것에 거의 대부분은 무의식적으로. 그래서 아이가 만드는 숙제를 해요. 그리고 집에서 진행되어지는 가사 일을 도와요. 그런데 그런 것들을 하는 데 있어서 그 아이 연령대에서 해내는, 편안하게 자신의 몸들을 다루어서 그게 가능한지. 그렇지 않으면 실제 이상의 에너지를 써야만 되는지. 이런 것들을 여러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가장 첫 번째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연필을 어떻게 쥐는지예요.
- 신체지도 : 연필 쥐는 법
아무래도 학생이니까 그럴 텐데 이건 이제 소근육과도 깊은 관련이 있어요. 연필을 쥘 때 이 연필의 쥐는 힘, 압이 실제로 적정한지. 그 누구도 적정한지 아닌지를 무슨 계량화 할 수는 없죠. 그러나 확실한 것은 불필요하게 많은 힘을 주고 있는 아이는 쓴다라고 하는 작업이 매우 힘들어요. 글씨체에도 영향을 미치죠. 실은 에너지 자체가 너무 들어요. 그런데 거기에서 그치지 않아요. 왜 이 몸은 그걸 적정하게 못 잡을까요? 왜 이 손이, 손가락이 이렇게 못 잡을까요? 연필은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이 중지가 받치는 역할을 하고, 그렇죠 그다음에 엄지와 검지가 이렇게 마치 감싸듯이 중심을 향해서 잡게 되어 있어요.그런데 이것을 이렇게 잡아요. 아주 특이한 자세들이 많아요. 왜 그럴까요? 그렇게 처음부터 이건 이렇게 잡는 거야 이렇게 가르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가르쳐줘도 이게 안 돼요. 왜 그럴까요? 여기 손목이 여기(팔꿈치와 어깨)와의 협업 과정에서 효율적인(자세가 있어요). 이것을 이 아이는 지금 이렇게(다른 자세) 되어야만 나는 편한 거예요. 그 아이에게는 그런데 실은 이걸 이렇게(바르게) 할 수 있어야 돼요. 연필은 이렇게 잡아야만 돼요라고 저는 지금 말하고 있어요. 놀라운 이야기잖아요. 선생님 연필은 어떻게든 잡아도 되는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연필은 꼭 이렇게 잡아야 돼요. 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고요.
왜 그러느냐. 엄지가 하는 일과 검지가 하는 일, 중지가 하는 일 이 각각의 일들은 다 다릅니다. 여러분 누군가의 방향을 가르킬 때, 어딘가의 방향을 가르킬 때 이렇게(약지를 들어서) 가르키는 사람 봤습니까? (웃음) 봤냐고요? 아니면 방향을 가리킬 때 이렇게 가르치는 사람을 봤나? 왜 모두가 이걸 쓰죠 약속했나요? 우리 이걸 이거 안 쓰면 반칙이야 이건 안 돼 이러기로 했나요? 왜 모든 60억의 인구는 다 합의해 버렸을까. 이론도 없는데. 그다음에 뭔가가 야 참 너 괜찮은 일을 했군 만족스러워할 때 이렇게(약지를 들어서) 하지 않죠. 이렇게(엄지를 들어서) 하죠. 다 그래요. 어디에도 그런 이론이 없는데 그렇죠 왜 그런 거예요? 각각의 정신이 들어 있다는 거예요. 신체에는 그 신체가 해내는 일들이 있어요. 그 일의 정신성에 해당되는 것들이 들어 있다. 그러니까 그 일을 할 때는 그렇게 쓰는 게 그냥 자연스러운 거예요. 이론이 없어 그렇죠. 그 말은 무슨 말이냐. 신체는 각각으로 하는 일이라고 하는 성질들이 보편적으로 주어져 있다. 그러니까 철수는 이렇게 쓰고, 그 신체를 엄지를 쓸 때 영희는 다르게 쓰는 게 아니라 엄지손가락이라고 하는 것은 영희 철수할 것 없이 보편적으로 다 하는 일이 있다. 검지와 중지에 비해서 그죠? 개별적으로 다루지 않고 보편적으로 누구나 그런 거예요. 이 신체 구조와 관련되어 있는 것들은 이제 연필을 어떻게 쥐지라고 하는 것으로 굉장히 많은 걸 알아볼 수 있어요. 그 아이의 신체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고 있는지라고 하는 것들에 굉장히 많은 부분을 연필을 어떻게 쥐고 있는가를 통해서 알 수 있고 지속적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돼요? 다 자기 편한 대로 쓰면 돼. 노(NO).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그 신체 구조가 하는 일에 어울리게 쥘 수 있어야 돼 하고 가르쳐야 돼요. 그것을 해내게 되는 순간에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하면 이것을 이렇게 잡고 쓸 때 하고 이렇게 잡고 쓸 때 하고 이 손목이 돌아가는 게 완전히 바뀌어버리고요. 그다음에 이쪽에 관계된 근육들이 하는 일이 바뀌어버려요. 우리는 여기에서 이렇게 해갖고 모양을 만들어내는 것이 글씨라고 생각하지만 전혀 아니에요. 이게 이렇게 되는 순간 여기의 상황은 완전히 바뀌어요. 거기다가 더 중요한 것은 얘가 이렇게 몰려 있었을 때 이렇게 몰려 있는 아이는 결국 엄지는 지금 실제 세상을 딱 하고 있지 못하죠. 이렇게(연필을 쥘 때 엄지를 안으로 감싸쥐는) 쥐는 아이한테 깨어 있으라고 하는 것만큼 힘든 일이 없어요. 얘는 맹해요. 어떤 측면에서 이렇게 되어 있지 않다고요. 엄지가 해내는 명료함, 나의 현재 있음 이런 것들을 가져다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딱 떠받쳐서 중심으로 탁 향하게 해 주는 그런데 그게 엉- 걸려 있어요. 엉- 걸려 있다고요.
- 신체지도 : 주먹을 쥐는 법
주먹을 아이들이 어떻게 쥡니까? 주먹은 이렇게 쥐어야 되지(엄지가 네 손가락의 앞에 위치하도록) 이렇게 저는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주먹은 이렇게 쥐어야 정상입니다 라고 그런데 이걸 이렇게(엄지가 네손가락의 옆에 위치) 쥐어요. 심지어는 이렇게(엄지가 네 손가락 안으로 감싸쥔). 이것은 초기에 신체 지도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다양하게 이렇게 이런 동작들이 나와요.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이렇게 질 수 있어야 돼요. 왜 이 각각이 이렇게 쥐었다는 것은 각각에 맞게 그렇죠. 정신적인 그 힘들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인 거예요. 주먹 이렇게 쥐는 아이들의 특징 꼭 관찰해 보세요. 아직 그다음에 그것이 잘못됐다고 이야기할 필요는 없어요. 그러나 이렇게도 할 수 있겠니 라고 자꾸 해서 이것에 대한 어떤 삶과 경험들이 필요로 해요.
그래서 제가 신체 지도, 신체 도식이라고 하는 말은 이 손만이겠어요? 오른쪽과 왼쪽을 오른발을 쓸 때 왼발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오른손을 할 때 어떻게 하고 있는지 다 주손과 보조손이 아주 기가 막히게 그 순간순간마다에는 전혀 의식하지 않거든요. 무의식적이에요. 그런데 알고서 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 보편성에서 벗어난 상태로 하고 있는지는 이 아이가 자신이 원래 해낼 수 있는 일종의 인식적 힘을 신체의 매개에서 투사하고 그 신체의 그 매개의 ,그 신체 부위가 가지고 있는 정신적 힘들이 그 아이에게 이제 능력으로 나오는데 이 투사가 안 돼버리니까. 즉 다시 말해서 나는 신체는 가지고 있는데 특정의 신체를 통해서 전해지는 정신적 여러 능력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게 신체를 통과해서 내 것으로 되지 않으면 아직 씨앗으로 남은 상태로 있다. 그래서 왼손과 오른손이 왼쪽과 오른쪽이 완전히 통합되지 않고. 자유롭게 (되지못해요) 우리는 제일 먼저 와 가지고 하는 일은 어떤 거예요? 내가 이 세상에 왔잖아요. 어떤 의미에서는 신체라는 세상 속으로 들어간 거예요. 그 세상에서 내가 이 세상을 장악해야 돼, 그 신체를 장악해야 된다. 그럼 가장 먼저 해야 되는 것은 그 공간이잖아요. 그 공간에는 크게 3개의 측면이 있어요. 위아래가 있고 앞 뒤가 있고 좌우가 있어요. 거기다 더하면 이 대칭의 것까지 있는데 기본적으로 그 방향에 대한 감각을 신체를 매개로 해가지고 연습받아요. 이것이 학습능력으로 드러나는 거고요.
하나의 예일 뿐이에요. 5학년 때 도형을 시작을 해요. 수학과의 도형은 이야기합니다. 보이지 않는 점선을 갖다가 딱 찍어놓고요. 그 점선을 뒤집어서 이제는 내가 그걸 떠올려야 돼요. 그런데 이게 안 되는 아이들이 있어요. 선으로 그어놓은 것까지는 내가 되는데 그 뒤로 뒤집었다고 생각해 봐 점선이야 이게 잘 안 되네. 왜 그러죠? 얘는 공간이 뒤집히면 익숙지 않아. 그러면 그런 아이들이 기본적으로 먼저 살펴야 될 것은 이 아이 실제로 왼쪽과 오른쪽 확실히 구분되나? 생각으로 너 왼쪽 어디야 오른쪽 어디야 해서 대답하나 이런 게 아니라 공을 탁 던져줬을 때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오른쪽으로 왔을 때에는 그 오른쪽에 해당되는 방식으로 몸을 탁 쓰고 왼쪽으로 탁 던져주면 그렇게 하는지. 그렇지 않으면 오른쪽으로 오고 있는데도 이렇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걸 보면 그 뒤집기가 안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네. 콩주머니 던지기를 훨씬 더 많이 해야 되네. 그 도형을 하려면 그렇게 그러니까 상하 통합, 좌우 통합 앞뒤 통합이죠. 그러면 이제 앞과 뒤를 놓고 보면 위가 하는 일이 있고 아래가 하는 일이 있죠. 근데 앞에 하는 일이 있고 뒤가 하는 일이 있어요. 제가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시간의 개념으로 보면 시간의 개념으로 보면 앞은 지나왔던 시간이다. 뒤는 앞으로 다가올 시간이다. 그래서 앞으로 걷기는 참 잘 돼요. 그런데 뒤로 걷기는 안 되네. 그런 학생도 있어요. 왜 많아요? 그런 사람이 구구단을 외면서 앞으로 가고 있어요. 그런데 구구단을 소리 내면서 뒤로 가라고 하면 구구단이 깨져버리거나 걸음걸이가 깨져버려요. 이게 왜 이런 거죠? 앞으로 내가 이렇게 걸어갈 수 있고 앞으로 뭘 할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은 지난 것으로부터 현재까지의 그 어떤 과정에 대한 관심과 이해와 어떤 가능성이에요. 그러나 앞으로 다가오게 될 아직 열리지 않은 그 미래의 어떤 시간에 대한 감각, 그것까지를 고려하는 것 그래서 제가 어떻게 표현하는 뒤쪽은 영적 감각입니다. 앞쪽은 물리적이고 감각적 감각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은 앞에 대한 감각만큼이나 뒤에 대한 감각이 즉 앞뒤의 감각이 생겨야 돼. 이것들이 굳이 생길 필요가 없는 시기는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놓고 보면 회화에서 원근법을 쓰기 시작하는 거 원근법을 써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것은 아주 놀라운 시점이에요. 우연히 그 사람이 그런 게 아니에요. 인류 안에 새로운 능력이 하나 생긴 거예요. 실은 어떤 것이 사라지면서 원근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라고 하는 것은 한편에 있어서는 굉장한 능력의 성취이지만 한편에 있어서는 이쪽에 대한 것들을 점점 잃어간다라고 하는 신호이기도 해요. 거기까지도 이야기할 필요는 없지만 아무튼 앞과 뒤가 좌우도 또 달라요. 그래서 위아래로 놓고 보면 아이가 고개를 숙여서 이 여기가 단전 있는 데가 일종의 기준점인데 신체로 보면 이 고개를 이렇게 숙여서 이렇게 하는 작업들이 어지럽지 않게 되고 무난하게 수행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공을 굴려보자 이렇게(다리를 벌리고 허리를 숙여서 다리사이로) 공을 굴려줘요. 그러면 이 아이는 이 상태가 여기를 버티고 있는 상태가 유지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에요. 나도 모르게 앉아버려요. 특이한 형태로 바꿔버려요. 왜 그러지? 그냥 엉덩이 들고가 매우 힘들어요.
위 아래가 그런 과정들이 이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 그 경로를 타고 영향을 미치는 거 이게 자아입니다. 밑에서 위로 이렇게 올라가는 거, 이것은 일종의 감정체라고 하는 아스트랄적인 거예요. 이 두 개가 이렇게(배에서) 만나요. 이 만나는 시기가 3학년 때라고 그랬어요. 그래서 이때 장 꼬인다고 그런 이야기했어요. 아무튼 이 두 개는 서로가 서로에게 투과되게 돼 있어요. 이때 감정에 대해서 정신이 알아보기 시작해요. 알아보기 시작한다고요. 그래서 그 시기 때 만 9세가 되는 시기에 엄마가 진짜 나를 사랑하는지. 엄마는, 실은 나는 누군지인데 내가 진짜 엄마의 아들이고 딸인지 나의 근본적인 정체성에 관해서 고민을 해 왜 고민을 하냐면 드디어 처음으로 감정이 보이기 시작한 거죠. 감정이 자아가 감정을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아스트랄이라고 하는 이 감정체를. 그러니까 내 감정을 알아보는 것 이전에 제일 먼저 보이는 게 사람들의 감정인데 그중에 제일 관심이 많은 사람이 엄마거든, 엄마의 감정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느껴지기 시작해요. 그전에는 몰랐어요. 감정을 몰랐다는 말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볼 수 없어서 나는 매우 슬픈 상태고 화난 상태인데 엄마의 상태는 콧노래를 부르는 상태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돼. 그전에는 당연히 내가 이러고(슬픔) 있으니까 엄마도 그럴 거라고 그냥 아주 확신을 하고 의문도 갖지 않았는데 어느 날 보니까 와서는 위로한 척하며 가더니 콧노래를 부르면서 그런 게 이제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드디어 의식되기 시작했죠. 제가 이야기하는 자아라는 말을 그렇게 뭔가가 보이기 시작하고 이런 어떤 그림으로서 같이 그려보세요. 감정이 느껴지고 보이기 시작해요. 그 시점에서 그러니까 무슨 이야기냐면 위를 향해서 내가 이렇게 위치에 두고 이 위치에 둘 수 있으려면 어때요? 아래가 있어야 돼요. 아래가 나를 버티고 있어야 된다고요. 그리고 위를 향하는 나의 그 어떤 그 기운들이 있어야 내가 가라앉질 않아요. 땅에만 너무 의존하지 않게 된다고요. 우리는 실은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데 그냥 하늘과 땅 사이에 있기만 한 게 아니라 실은 하늘과 땅을 결정적으로 잇고 있어. 만약에 인간이 그 하늘을 쳐다보는 힘, 땅을 살피고 땅을 이해하고자 하는 이 두 힘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집니까? 하늘 쪽으로만 계속 가게 되면? 땅 쪽으로만 계속 가게 되면? 그렇죠 그래서 땅의 문제 땅과 관련된 것들을 상대적으로 주로 다룰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만약에 그 이야기만 계속한다고 했을 때. 주식 이야기만 계속 들어요. 어떤 사람이 그렇게 되면 저쪽을(하늘) 또 쳐다보면서 가져야 하는 시간들이 없이 계속 그것만 보게 되면 그 사람은 땅으로 계속 꺼져가고 있는 중이죠. 땅에 잡아 먹히고 있는 중이에요. 그다음 반대의 경우도 저쪽에 잡아 먹히는 경우죠. 딱 서서 땅에도 뭐랄까 지탱하는 뿌리를 내리는 힘과 하늘을 향하는 이 둘 사이에서 딱 서 있는 거. 그래서 그런 인간의 기본상.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그 상 이것들을 사람들이 그려보려고 굉장히 노력했어요. 그래서 레오나르 다빈치의 그 상들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의 거리가 되느냐 라고 하는 데 있어서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그 균형의 상태를 매우 의미 있게 포착했기 때문일거라고 봐요.아무튼 신체를 얼마나 잘 능숙하게 알고서가 아니라 그냥 무의식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되느냐 그의 정도치가 어떻게 되느냐를 알아보는 것으로서 연필을 쥐는, 그다음에 일상의 생활 과정에서 그런 것들을 그냥 원활하게 편하게 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것을이 잘 안 되는지 말이에요. 아이랑 같이 이불을 개는데 그 아이가 꼭짓점을 끝을 제대로 딱 잡고 있는지, 이 팽팽함을 가지고서 폈다가 이렇게(마주모으는) 하는지 이런 것들은 매우 중요한 문제잖아요. 그냥 대충 해서 엄마한테 시트를 주면 되는 게 아니잖아요. 엄마도 거기 깨어 있어서 그래 그 끝을 잡아 봐 당겨봐 응 팽팽하게 다 어떤 데 있어요? 여기(이불을 잡은 손)에 깨어나. 너 멍 때리지 마. 이 말이잖아요. 자연스럽게 아직은 그게 안 되니까 내가 어떤 어떤 부분에 명료하게 깨어나는 것, 그것을 어떻게 하냐면 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신 차려 깨어나 이렇게 안 된단 말이죠. 어디에 깨어나? 손가락에. 그래서 여기 이 부분에 이렇게 하면서 깨어난단 말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정신 차리라는 말을 그냥. 그렇게는 정신 안 차려지는 거예요. 어디에 무언가에 구체적으로. 딱 그렇게 깨어나는 거거든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 하나도 없이 그냥 이불 잘 개는지 어쩌는지 그럴 때 그것들을 다루는 것들을 봐보면 그 어색함들이 자주 다루게 되면서 늘겠죠. 그다음에 그것이 만약에 능숙하지 않고 힘들어 한다고 하면 그 원인을 그렇죠. 그것들이 준비되었을 시기의 원인을 찾아보는 것들이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겠죠. 첫 번째가 그렇게 신체 지도, 신체도식으로 표현되어 있는 그의 준비 정도를 봐보는 거 이걸 관찰할 수 있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 구조적 측면 ; 2. 정적 균형
그다음에 두번째가 나를 안정되게 중심이 잡힌 상태로 고요하게 놓아줄 수 있는 힘입니다. 이것을 정적 균형이라고 합니다. 나를 정말로 안정되게 그 공간 안에서 그 상황 안에서 나라고 하는 존재를 유지시킨 상태로 계속 존재할 수 있는가 아니면 나는 계속해서 흔들리면서 있는가 아니면 계속 돌아다녀야 되는가 아니면 계속 이렇게 끄달림으로 있는가 중심이 잡히지 않고 여기저기에 계속 끌려버리는 상태인가. 이와 같은 정적 균형, 내적 균형이라고도 말하는 이런 것들이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가. 그것들은 기본적으로 이제 우리 이야기에서 골반이 어떻게 준비되는가, 그다음에 등으로 자신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밑(하체)에 다 있어요. 그래서 누워가지고 손 들고 발 들어서 뭘 좀 해 봐 그랬을 때 옆으로 넘어지는 아이는 그 정도만큼에 있어서는 균형 잡기가 내적인 균형을 잡기가 힘들다는 걸 빨리 눈치 채셔야 된다. 그래서 등을 등을 바닥에다 대고 있었던 시기에 내 신체 안에 내적 균형 감각의 상당 부분을 그때 진행했어요. 그래서 왼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오른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처음에는 다 넘어졌어요. 처음에 그러던 것이 그게 가능해졌어요. 그게 가능해졌다는 것을 알게 됐단 말이에요. 그리고 그것을 유지할 코어의 힘과 그 관계된 근육의 것들이 만들어졌다는 거예요. 그게 알게 된 거예요. 근데 그것을 넘어지는 상태를 스스로가 해결하지 못하고 왔어요. 그것은 그때에 아주 중요하게 그 골반의 정렬과 등에서 있게 되어지는 고요함에 대한 것들이 만들어진다고 했어요. 이 내적이고 정적인 균형 상태를 아이가 신체를 매개로 해서 획득하고 얻게 되는데 그것들이 얻어진 정도치들을 보면서 개선해야 될 방향들을 삼아가는 것이겠죠. 그래서 첫 번째가 신체 도식이었고 두 번째가 정적 균형이었어요.
[질문] 지금 짚어주고 계신 첫 번째 신체 지도와 두 번째 정적 균형이라는 것이 그러니까 어떤 것의 요소 요인인지 요 위에가 지금 상위 잘 모르겠어서 앞서 이야기해 주셨던 것과 어떤 관계에서 지금 우리가 짚어보고 있는 중인지 같이 한번 설명해 주시면. 그러니까 세 가지 요소라고 지금 얘기해 주시면서 두 가지를 설명해 주셨잖아요. 이게 무엇의 세 가지 요소인 것인지?
구조적인 측면의. 구조적 측면이라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아이의 신체 중에서 아이의 골격이나 근육이나 신경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일들이 있어요. 그런 것들의 합일로 하는 일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신체 지도가 제대로 형성되어서 거기에 알맞게 이 뼈와 근육과 신경이 잘 협력을 하고 있는지 등이 구조적 신체를 매개로 해서 새겨지는 것들이에요.
[질문] 연필 쥐기를 할 때 아이들이 손끝으로 잡고 손의 나머지 부분을 들고(바닥에 대지않고) 그런 아이들은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까요?
촉각적 이슈에요. (그러면 까치발은 드는 것과도 비슷한가요?) 완벽히.
까치발을 든다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를 나타내고 있는데 그냥 아주 일반적으로만 보자면 내가 이 발 전체로 세상을 만날 수가 없어요. 이런 이야기에요. 나는 아주 제한적으로만 만나고 있어요. 거기에는 대부분은 특정의 불편들이 굉장히 많이 자리를 하고 있어요. 하나 이제 그런 촉감적 이슈에 의한 것도 있지만 만약에 그것이 까치발로 연결돼 있다면 그러니까 훨씬 구조적인 데도 살펴봐야 될거에요. 그 아이 볼 수 있을 거예요.
[지룬] 왼손을 자기가 선택해서 이제 왼손을 쓰면 왼손이나 왼발을 이렇게 더 자주 사용하면 저희가 흔히 말하는 오른쪽 쓰는 거를 완벽히 구현해야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건가요? (다시 한 번만 왼손을 뜰 때 오른손이 협력을 잘 해줘야 이런 의미인가요?) 예를들어 연필을 쥐는 것으로 보면 오른손으로 연필을 쥐는 자세가 있잖아요. 그러면 이 왼손잡이, 왼손을 쓰는 아이는 이 왼손으로 오른손이 하는 모양이라든지 기능을 똑같이 같이 구현을 해야 이게 제대로 사용을 하는건지? (왼손이 왼손이니까 오른손이 잡는 법과 다르지 않아요. 똑같아요.) 되게 불편하게 왼손으로 그러니까 분명히 제가 어떤 요구하지 않았는데 본인이 왼손을 선택했고 그다음에 왼손을 더 많이 사용하고 이쪽도 하는 거예요.
(지금 몇 살이죠? 6살이요.) 지속적으로 오른쪽을 권하세요. 아이는 그냥 이쪽저쪽 써보는 거예요. 오른쪽을 권하세요. 그럼 오른쪽을 그렇게 쓸 때만이 아니라 자꾸 옷을 입힐 때에도 신발을 신길 때에도 계속 오른쪽을 먼저 하세요. 오른 신발 신고 왼팔 끼고 계속 오른쪽을 연결해서 왼쪽 왼손 왼발잡이가 된다라고 하는 것이 크게 문제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른손 잡이에 비하면 매우 불리한 것은 맞습니다. 불편해 매우 불리한 것은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걸 강제로 어떻게 할 수는 없으나 우리는 지속적으로 제가 이야기했잖아요. 구조적 신체는 보편성을 받는다. 개념이 다 달라가지고 다른거예요. 그래서 오른손 잡이를 권하는 거야. 그러나 그것은 자연스럽게 그냥 어렸을 때 유도하는 식으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계속 왼쪽을 쓰면 어쩔 수 없지만, 오른손 쓰듯이 왼손도 똑같이.
또 혹시 질문 있을까요?
[질문] 배운 것에 대한 질문인지는 모르겠고 교실에서 그 운동 신경도 아주 뛰어나고 머리도 총명한데 거의 이렇게 듣기에 집중하고 그런 게 안 되거든요. 자기 중심적으로 사고하고 어른 얘기든 아니면 또래 같은 교실에 있는 것이든 집중한다고 해야 되나 그거는 전혀 안 되는 동무가 아무튼 있는데요. 그 동무은 이렇게 아무튼 신체적인 거나 이런 걸로 보일 때는 오히려 다른 동무들보다 더 앞선 것처럼 보이는데 학습적인 면에서는 일단은 집중을 전혀 못하고 있으니까 그런 부분에서 좀 일단은 말이 잘 이렇게 들어가지는 않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랄까 그런 게 있을까요?
그러니까 이제 그 정도의 이야기로 아이의 상황을 제가 이렇게 나름대로 예상해 보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보통 우리가 움직임을 잘 하는 아이처럼 보이는 일종의 운동 신경이 꽤 잘 발달돼서 그러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 중에 이 정적인 균형 감각의 측면에서는 그것이 어려워서 그걸 하고 있는 경우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빠르게 움직이고 아주 잽싸게 해야 되는 성질의 것들에는 반응을 보이고 어떤 성취도를 보이는 것 같은데 천천히 그리고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 뭘 하는 거 이런 것들에는 매우 취약한 성질을 볼 수 있어요. 그것은 실은 움직임 감각 중에서 그렇게 내적이고 고요한 움직임에 대한 감각이 뭐랄까 어려움이 있는 거예요. 아마 그것이 듣기를 어렵게 만들 거예요. 듣기를 아까 정적 균형 감각을 이야기를 할 때 누워 있을 때 등을 대고 있을 때라고 했죠. 그럼 아이들은 등만 대고 있는 게 아니라 그때 눈도 살아있고 귀도 살아 있는데, 그럼 나를 가만히 놔두지 못한다고 했을 때 제일 먼저 살펴봐야 되는 것들은 그 아이의 눈입니다. 눈이 초점을 안정적으로 맞출 수 있는가 그다음 눈의 초점이 아니라 귀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가라고 하는 것이겠죠. 눈은 전에도 소개했듯이 두 개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직 인간만이 이 눈을 정말 독특하게 쓰는데 인간은 이 세상이 하나로 보입니다. 그 말은 다른 인간이 아닌 눈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은 하나로 안 보입니다. 2개, 3개 심지어는 36개로까지 보입니다. 36개가 보인다는 말이 아니라 36개가 완벽한 독립적 세상을 가지고 있어요. 이 둘은 연결되지 않아요. 그들은 절대 진리를 말할 수가 없어요. 왜? 진리가 두군데 세군데 네군데 세상이 각각으로 완전히(존재하죠). 말에게 물어봐요. 말은 완전히 다른 눈의 세계에서 보면 두 개를 봐요. 여기하고 여기 사이에 무슨 우리가 이 연결을 볼 수(없어요). 완전히 다른 세상이야. 내가 이쪽으로 주목을 하면 이쪽 세상이고 이쪽으로 주목하면 이쪽 세상이고 이게 동시에 다 보여 버려요. 벌은 36개가 보이죠. 그러니까 벌의 눈을 이렇게 찍어보면 우리가 화면 모니터가 36개가 이렇게 있는 거예요. 완전히 독립되어 있는 세상이. 그런데 사람은 어떻게 하냐면요. 두개가 있는데 처음에는 이 두 개로 두 개를 봐요. 처음에 이 세상에 와가지고 실은 3개 4개로 겹쳐 보이기도 해. 이 증상이 여전히 나이가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사람도 있어요. 그래서 사람의 얼굴이 6겹 5겹으로 이렇게 겹쳐 보여요. 흐리게. 굉장히 그 사람이 힘들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와가지고 주로는 누워 있는 시기에 눈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연습을 끝냅니다. 대부분 그것을 하는 과정이자 어느 정도 진행이 됐다라고 하는 것이 뭐냐하면 손을 잡는 거예요. 물건을 쥔다라고 하는 것은 드디어 물건이 하나로 보이기 시작했고 그다음에 이 손이 왜 이렇게 움직였을까요? 처음에 그렇게 보여서 각각으로 그런데 그것이 하나로 이렇게 되면서 이렇게 모아졌어요. 드디어 이렇게 해서 모아졌어요. 그러면 이 눈이 그걸 하기 시작했단 말이에요. 오른쪽이 우세가 되어서 그다음에 뒤쪽이 받쳐주는 식으로 사용을 했든 왼쪽이 우세가 되어서 이것을 사용을 했든 간에 이게 이루어졌다는 말이야. 그것을 누워 있는 상태에서 해 제가 누워 있는 상태에서 정적 균형의 상당 부분이 준비된다라고 했는데 눈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고요함을, 그다음에 내가 응집된 자아의 초점을 만드는 데 전제 조건이(됩니다). 그런데 눈의 초점이 아직 아예 안 만들어진 것도 아닌데 중간중간에 튀어 흐려져, 그래서 초점을 못 맞춰. 그래서 그와 같은 아이들에 있어서는 안 보는 건 아닌데 생각을 해 봐. 저 아이의 내가 눈빛을 본 적 있나? 교묘하게 다른 대로 시선을 피해. 초점이 있는 눈들이 나한테 오나? 아무튼 그러고 있죠. 그러면 눈만 그러고 있느냐 아니죠 하나 더 있어요. 귀가 그렇게 하고 있어요. 귀도 실은 초점을 맞추는 거예요. 이것들이 들어와서 어떤 초점을 맞추는 거 우리가 경청한다 했을 때의 것들은 온전히 그 어떤 것에 초점을 맞춰주는 거죠. 그렇지 않으면 내가 각 소리들에 반응을 해버려. 각 소리들에 그러면은 책을 읽어주거나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했을 때 그 이야기를 이렇게 주의 깊게 들을 수 있게 된다라고 하는 것은 어때요? 매우 높은 능력의 어떤 것을 이 아이가 이미 성취한 거야. 그걸 그럴 수 있도록 우리는 지속적으로 관찰하면서 도와야 돼요. 그래서 이야기를 주의 기울여서 듣는 시간이 짧거나, 그다음에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실은 어떤 이야기가 진행됐는지에 대해서 구성을 못하거나 그러니까 외적으로 보이는 그냥 태도만으로가 아니라 이 아이가 이럴 수 있거든요. (눈을 앞으로 보고 있는 듯 한 자세로) 제가 수학 시간에 정말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이해는 안 되는데 선생님한테 제가 성의는 다 했어요. 수학 시간에 정말 저는 정말 성실한 학생이었어요. 그런데 하나도 이해를 못하는 때가 너무 많았어요. 정말로 그래서 나중 되면 막 잠이 막 미칠 듯이 오는 거예요. 이해가 안 되는 걸 이해해 보려고 하니까. 무슨 말이냐면 이제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서 이렇게 대화하는 형식으로 하게 될 때야 이제 금방금방 이제 알게 되지만 그냥 외적으로 보이는 것 말고 그것들이 실제로 들려서 그것들 안에서의 일종의 이미지를 만들었고 그 이미지에 의한 것들을 특정의 그림으로써 이렇게 체계화시킬 수 있는가라고 하는 것들이 다 듣기에 해당되어지는 것을 출발점으로 하잖아요. 그런 것들을 살펴 봐야 돼. 그래서 우선은 아까 그 이야기했을 때 눈이 어떤지 보셔야 돼요. 눈이 그다음 귀가 어쩐지, 그러면 귀가 어떤지를 보려고 하면 우선은 오른쪽 귀와 왼쪽 귀가 들리는 게 좀 다를 수 있어요. 눈은 오른쪽 우세일까요? 왼쪽 우세일까요? 그러면 귀가 어떨까요? 귀도 우세가 있어요. 내가 귀 기울일 때 이렇게(오른쪽으로 기울이는) 하는 사람이 있고요. 이렇게(왼쪽으로 기울이는)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래서 내가 귀 기울인다고 했을 때 이렇게 한다고 하면은 이게 좀 편한데 나는 이렇게 한다고 하면 약간 좀 뭔가 어색하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이게 익숙함으로 있는 거예요. 이걸 우세해서 쓰고 있는 거예요. 놓고 보면요. 그래서 이제 아이 뒤에 가서 (오른쪽 왼쪽에 각각 핑거스냅으로 소리내어주며) 그래서 그 소리가 나는 대로 손을 들어보라 해요. 그래서 이제 됐어요. 어느 쪽을 들을까요? (저 왼쪽인 것 같아서 (손) 들었어요. 오케이 좋아요.) 그렇게 해서 우선은 살펴봐야 돼요. 아예 그 상황을. 거기에 실마리들이 도울 수 있는 실마리들이 아마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가 지금 몰라보는 거지 아이들은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어요. 이걸 좀 봐봐 봐 이걸 계속 안 보면서 나를 이해를 못하네. 이걸 보면 나를 이해할 텐데(하면서). 그러면 뭘 도와야 되고 없애야 될지를 알 텐데 그러고 있었구나라고 하는 걸 나중에 약간 이해하게 되었을 때 생각하는 경우들이 참 많았던 것 같아요.
- 각자 꾸준히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나눔
혹시 지금까지 우리가 이렇게 만나는 과정에서 제가 제안드렸었던 것들이 있었어요. 그리고 집에서 아이랑 좀 꾸준히 하면 좋지 않을까라고 하는 제안들을 이렇게 중간중간에 드렸었는데 혹시 그걸 제한적으로나마 해보고 이는 분 있나요? 선생님은 뭘?
A: 등을 만지고 있습니다. 자기 전에. (몇 살이죠? 아이가)10살 9살 연년생입니다. (저녁에 자기 전에 이제 아이들은 그 시간을 나름대로 좋은 느낌으로 갖고 있나요?) 네. 원래 그전에는 이제 다리만 했었거든요. 선생님 수업 듣기 전에는. 이제 등을 해볼까 하고 했더니 아이들이 좋아해서 했더니 그 시간이 좋다고 들었습니다. (아이들의 어떤 것들은 정확히 실은 우리가 알 수는 없지만 대체적으로 그래도 수용을 하는 편이고 그걸 선생님이 하시나요? (네) 그럼 선생님이 그걸 할 때 어때요?) 할 때 저도 이렇게 편안한 마음, 부드러운 마음. 그런 느낌이 같이 그런 게 손에서 나오고 있는 그런 느낌도 들고.
좋아요. 그래서 어떤 때에는 우리가 내 마음을 느껴보는 때도 있지만 그렇죠. 그런데 상당수의 많은 부분은 내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내 몸이 느끼고 있는 것을 가져다가 마음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고 하는 것들도 많아요. 그러니까 저는 기왕에 이제 아주 좋아요. 내 손이 하는 말 내 손이 갖게 되는 느낌 그게 아마도 굉장히 여러 측면에서 좋은 느낌들을 갖게 될 거예요. 그런데 항시 할 때마다 그러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그런 느낌으로 치환되는 그 시점이 있어요. 하다 보면.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하셔야 돼요. 처음에는 이게 생소하니까 이러다가 이게 뇌 자체 이 손에서 느껴지는 뇌의 일종의 자체, 손이 굉장히 뭔가 편안하고 따뜻하고 부드럽고 포근하고 그 어떤 느낌을 받네 라고 하는 그 단계는 이미 이제 진입에 들어간 거예요. 그러면 아이는 그때 그 깨어 있는 손, 해 주는 사람의 깨어 있는 손의 도움을 크게 받습니다. 그러니까 그때 같이 깨어납니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렇잖아요. 그래서 아무튼 세상을 살피는 데 그리고 세상에 뭔가 내 좋은 마음을 보태는 데 또 어떤 의미에서는 세상을 어루만지는 데에 아주 자연스럽게 그럴 수 있는 힘들이 길러지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기적은 거기가 기적입니다. 나중에 이 아이들이 나중에 삶으로 보여지는 것은 그 결과물일 뿐이에요. 이제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정기적으로 그런 쓸어짐을 받아들이고 그것 앞에, 그것도 엄마가 그 깨어 있는 손으로 행복감을 느끼면서 그 따뜻함과 편안함과 그거는 어떤 언어로 참 말하기 쉽지 않은 어떤 대목 대목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을 그럴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은 그 자체가 기적이에요. 지속적으로 해보길 아주 고맙습니다.
B: 외나무 다리 걷듯이 오는 길에 그런 길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쭉 걸어서 오고 학교 도착하면은 철봉 매달리는 것을 꾸준히 하고 있어요. (지금 학년이?) (1,2,3학년)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선생님이예요. 철봉에 매달려서 아이들이 정기적으로 놀게 할 생각을 하는 선생님이. 아이들이 다 해내버릴 거예요. 그것이 그냥 즐겁고 재미있는 그냥 우리의 일상으로 딱 주어져 있는 안정된 어떤 것이라고 하면 심지어는 그걸 하지 않고 구경하면서 있는 아이도 도움받아요. 그때는 그래요. 아직 배움의 촉수가 우리하고는 좀 달라서 우리는 상당 부분 직접성이 아니고서는 갇혀 있는 데 반해서 아이들은 간접적인 측면에 있어서 굉장히 크게 영향을 받아 물론 직접 하려고 하는 경향 또한 우리보다 크지만 아주 좋습니다. 아무튼 제가 그 장면은 그 지지난 모임에 와가지고 저쪽에서 여자아이 2명이 철봉에서 놀고 있는데 진짜 기가 막혔어요. 좋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자아,자아 이야기하고 깨어남 깨어남 이야기하고 여러 가지 뭐 일종의 신체 지도와 관련된 정적 균형과 관련된 뭐 이런저런 이야기하지만 그런 것들이 굉장히 다양한 측면에서 자극하고 도움을 주는 활동 중에 하나예요. 특히나 그렇게 매달려 있다라고 하는 것은 내가 중력을 거슬러서 이걸 버티고 나를 신체를 펴낼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해요. 아이들에게는 그래서 학교에는 꼭 철봉이 있어야 돼 좋습니다.
C: 저희도 저녁에 자기 전에 등을 만져주는 몸을 쓸어주는 작업 하고 있어요. (지금 몇 살 몇 살이죠?) 9살 6살인데요. 9살 담당(자신) 6살 담당(옆사람)입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어때요? 그걸 해준다고 했을 때.) 6살은 잘 모르겠고 9살은 쉽지 않았어요. 험난했어요. 우선 여기서 어른들이 하는 걸 보고 가서 처음에 한 며칠은 해달라고 하고 그래서 그게 또 되게 즐겁고 했는데 사실 이 아이가 엎드리는 것 자체가 불편해서 엎드리고 싶어 하지 않아서 처음 한 달은 좀 많이 싸웠어요. 그래서 (억지로) 할거야, 뭐 이렇게도 하고 근데 이제 계속 울면서 하는 것이 맞나 이런 마음도 들고 막 그러면서 그다음 달에 아마 여쭤봤었을 거예요. 그래서 바로 누워서 하는 것으로 (바꾸어) 계속 이제 한동안 바로 누운 상태로 이제 팔과 다리를 만져주고 그러다가 한 4개월 3,4개월쯤 지났을 때 이제 그 사이에도 수시로 한 번씩 제안을 한 거죠. 엎드려 볼까? 이렇게 했는데 이제 계속 거절하다가 이제 엎드리는 게 가능해졌고 그 요새는 엎드려서 하고 있고요. 등을 만지는 것을 편해하지 않았어요. 팔다리만 가능하고 조금 주무르는 느낌으로 했었는데 그것도 2학기 (지나) 이제 크면서 이젠 등을 이렇게 쓸어주면 되게 좋아하고 그 느낌들을 조금 느껴보려고 하는 것들이 있는데 오늘 말씀 들으면서도 그렇고 확실히 아직 이게 완전히 이렇게 감각되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런 느낌들이 있고. 하나 이제 조금 고민되는 것은 이제 이게 엄청 편하고 즐거우니까 그리고 이게 하루의 마무리 시간이니까 만져주고 있을 때 계속 말을 하거든요. 그래서 저도 이제 응대를 하기는 하는데 이게 서로 이 감각에 집중되지 않는 느낌이 있는 거죠. 그래서 이것을 어디까지 이렇게 받아주고 이제 그만하지 집중해 보자고 해야 할지 이런 고민들이 좀 있고 다리에 통증을 되게 많이 느껴요. 긴장이 실제로 많기도 하고 다리 쪽을 이렇게 주물러주면 마무리할 때 특히 여기 햄스트링 쪽하고 종아리 쪽에 피부에도 긴장감이 있고 이렇게 조금만 이렇게 압력을 줘도 처음에는 간지럽다고 하고요. 근데 이제 이 간지러움이 조금 지나갔거든요. 예전에는 이렇게 손도 못 대게 하는 거였다면 이제는 조금 이렇게 압을 줄 수는 있는데 그러면 금방 아프다고 해요. 그래서 그러는 수순들을.
아무튼 일종의 큰 계단 몇 개를 넘으셨군요. 아주 정말 박수 보내드리고. 아이가 아주 편한 건 아니지만 등을 약간이나마 내줄 수 있게 됐다라고 하는 것은 정말 큰 문으로 들어선 거예요. 천천히, 천천히, 그래서 그걸 할 때 아이가 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말하는 기간은 상당 기간은 필요해요. 필요해요. 그래서 그때 그냥 재잘대는, 별 이야기나 이렇게 했을 때 어느 정도는 같이, 그 이야기를 가지고 막 내가 계속 끌고 갈 수는 없지만. 단 아주 호의적으로 거기에 반응을 하되 어떠냐 하면 중간중간에 다시 내 등 뒤쪽의 상태에 의식이 돌아오도록. 그래서 거기까지만 딱 들어서 마무리를 지어놓고 그럼 여기는 지금 어디야 여기는 좀 느낌이 좀 어때 이런 식으로 다시 의식이 저쪽 어떤 이런 세계에 있다가 다시 여기로 돌아오고 이게 아주 중요해요. 그런데 이것을 계속 여기 여기 계속 이럴 수 없잖아요. 왔다 갔다 왔다 갔다 하는 건데 아이는 기본적으로 그와 같은 것들이 이 형성이 되면 그 속에 계속 있고 싶어 해요. 경향적으로. 그게 편하니까 그러나 내가 이 땅에 왔잖아요. 그러니까 이 땅에 대한 어떤 것들도 조금씩 조금씩 더 이렇게 그런 의미에서 그것을 도와주는 아주 좋은 게 들어옵니다. 그런 특정의 몸의 상태와 상황에 의식을 갖게 하는 거 그다음에 이제 머리 위에서 다리 쪽으로는 내려간다. 이게 생명의 힘은 이렇게 올라가지만 정신은있는 이렇게 내려간다. 그 말은 어떠냐면 이쪽에부터(머리) 점점 깨어 있어서 아래쪽으로 내려간다. 즉 아래쪽은 아이들의 의식이 상대적으로 나중에서야 미치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데가 지금 만지거나 이렇게 가볍고 그다음에 이런 데가 따뜻해지는 것이 이상하고 이런 것들은 지금 뚫고 지나가는 것들이 있었다면 상대적으로 잘 그렇지 않은 것들이에요. 지금 그 통로를 향해서 지금 내려가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해야 돼요. 그래서 그 쓸어줄 때 옆쪽으로 이렇게 쓱쓱 제가 했어요. 그거 다 지금 빛을 저는 생각을 하고 한 거예요. 그냥 이런 것도 아주 좋아요. 그렇지만 쓱쓱 해서 그 빛처럼 빛처럼 거기를 뚫어야 될 거예요. 그래서 이제 그러면 여기서 이렇게 쭉 내려오다가 1차적으로 교차를 하는 곳들이 있어요. 이쪽(목)에서 한번 해요. 이쪽에서 교차하기 전에 상태에서 얘들이 기침 감기 이 증상이 한 번 있고요. 그다음에 여기에서 이쪽으로 내려갈 때 제일 큰 데(배)가 여기예요. 그러니까 배가 찬 거, 그다음에 찬물 마시는 거 이런 거 아주 주의해야 돼요. 다 이렇게 못 내려가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렇게만 봐요. 자아는 일정 정도의 온기를 통해서 안내되는 그런데 냉기로 아니면 너무 뜨거운 열기로 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들어가기가 매우 힘들어. 누군가가 특정하게 막 화가 나 있는 상황 이것도 그 아이에게 자아가 깃드는데 매우 힘들어요. 누군가가 매우 슬퍼만 있어 거기도 내 자아가 들어가기 힘들어요. 즉 감정의 온도를 말하는 거잖아요. 실제 온도도 그렇고. 그러고 나서 여기가 계속 냉할 수 있으니까 이건 많이 생각해 봐야 돼요. 그게 지금 내려가게 하는 데 있어서 (막히게 하고) 내려가게 하는데. 그러게 되면 더 뻗고 싶고 더 이러고 싶은 게 생길 거예요. 그런 걸 자꾸 염두에 두셔야 돼요. 아주 좋아요.
네. 동생은 어떤가요?
D : 동생은 5살 때까지는 그냥 편하게 앞으로 했었고요. 6살 되면서 이제 한번 등 해볼까 해서 이제 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이제 저희가 넷이 같이 자면서 할 때는 언니가 하면 자기도 좋아서 같이 자고 했는데 (이제) 언니가 떨어져서 자거든요. 그러면서 요즘에는 이제 둘이서 이제 아빠랑 둘이서만 방에 들어가서 이제 하려고 하면 조금 하기 싫다는 반응을 많이 좀 보이고 있고 그러면서 이제 말 그대로 그러면 잠깐만 등만이라도 잠깐 만지고 자자 해가지고 진짜 여기다 요즘에는 조금 짧게 등만 살짝 살짝 만져주는 정도 보니까.
그때 동생은 그냥 우리가 이렇게 토닥여주고 또 안아주고 이런 정도로도 충분할 것 같아요. 위에 아이는 그렇게 아예 딱 시간 잡아서 하나의 루틴으로서. 계단 몇 개 안 남았어요. 천천히 천천히. 진짜 여유를 가지면서 꾸준히 등을 열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아주 좋아요. 나중에 그 활동들을 한 번 더 해봐야 될 것 같아요.
- 구조적 측면 ; 3.자아의 방향성
이 신체의 구조적 측면이 어느 정도나 준비가 됐나라고 하는 걸 살피는 데 있어서 신체 지도는 신체를 얼마나 무의식적으로 효율적으로 쓰는지를 알아보는 이야기입니다. 또 두번째로는 그 아이가 내적으로 얼마나 고요한 상태 균형이 잡힌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가라고 하는거 차원에서 알아봤는데 그 어떤 기본 시기는 등을 바닥에 대고 고개를 들어올리고 손을 들어올리고 발을 들어올리면서 좌우 앞뒤가 다 생겼어요. 지금 그때 그 신체를 균형을 잡는다. 연습을 통해서이고 그때 실은 눈의 균형과 귀의 균형이 다 지금 한꺼번에 지금 벌어지고 있어요. 그것들이 다 연동해서 그 작업들이 벌어졌어요. 근육은 근육대로 일하고 얘는 얘대로 일하는 게 아니라 실은 다 항시 동시적으로 하고 있어요. 그래서 엄마가 하는 것을 봐보려고 하면서 뭘 하고 거기에 귀를 기울여 보려고 하면서 뭘 하고. 움직임이라는 게 다 함께 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거기에다가 아이들이 이제 어떠냐면 공간에 대해서 제대로 된 방향을 갖고 있는가. 즉 다시 말해서 신체 안에 있는 존재가 내 신체 공간에 대한 제대로 된 방향 의식을 갖고 있는가가 내 외부 세계에 존재하는 것에 대한 방향 의식을 갖고 있는가와 그냥 같은 말이에요. 외부에 공간에 대한 방향 의식이 약함 내지는 어떤 특정의 어떤 어려움이 있는 아이는 자신의 몸에 대해서도 똑같이 그래요. 몸은 되는데 외부는 안 되고 외부는 되는데 몸은 안 되는 이런 경우는 없어요. 몸이 곧 외부 세상의 첫 바로미터니까요. 그래서 이 공간과 관련해서 우선 보아볼 수 있는 것은 뭐냐 하면 글을 일종의 필기를 할 때 이 아이가 자세가 이렇게 앉아서 지금 쓰고 있는지, 이렇게 쓰는지, 이걸 이렇게 틀어가지고 왜 이 아이는 지금 이렇게 쓸까요? 뭔가 이렇게 쓰는데는 이 근육들이 뭔가 불편하고 뭐 이런 것도 있겠죠. 그러나 이 아이가 가지고 있는 방향에 대한 생각해 봐야 돼요. 그러게 되면 정방향을 갖게 되어지면 공간은 이어집니다. 처음으로 내가 정방향을 얻게 되어 지는 정도만큼 공간은 이어집니다. 그런데 정방향을 갖고 있지 못하면 그 정도만큼 공간은 분리돼 있다. 제가 담양에서 차를 타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 공간을 어떻게 이었(연결했)을까요? 그건 제가 가지고 있는 공간 감각의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게 부분부분 끊겨요. 심지어는 그래도 연속성은 있는데 이렇게 끊기는 것은 그런데 완전히 따로예요. 그것은 그때, 그때 내가 공간적으로 실은 틀어져 있었던 거예요. 내 의식이 지금, 가지고 있는 내가 차를 타고 가면서 내가 이렇게 걸어가면서 이렇게 보고 있고 일고 있는 것들이 이렇게 연결이 되고 있지 않았어요. 심지어는 어때요? 그것과 아무 상관없이 다른 세계에 이렇게. (맞아요. 제가 그래요. 네, 저도 많이 그래요.) 그렇게 그러니까 무슨 얘기냐 선생님이 앞에서 설명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나는 놀랍게도 다른 생각을 할 능력이 있어요. 그런데 정방향성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그러려면 매우 노력을 해야 돼요. 딴 생각을 한다는 거 매우 힘든 일이야. 그런데 나는 그게 아주 자연스럽게 돼. 이걸 능력이라고 해야 될지 어째야 될지 모르나 어쨌든 연결이 안 되고 다른 세상을 이렇게 막 구축을 해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계속 저기가 앞이고 저기가 뒤로 위고 아래고 좌고 우고 하는 데 있어서의 그 정방향성들과 관련한 것들을 자꾸 봐야 되고 특히나 그걸 하는 데 있어서는 뒤로 걷기를 많이 해야 되요. 뒤로 걷기. 그러니까 뒤로 걷기만 막 계속 할 필요는 없어요. 그냥 앞으로 갔다가 또 그만큼 왔다가 그런데 이것을 어떠냐면 특정의 사고를 하면서 그걸 하면 더 좋아요. 사고를 한다라고 하는 것은 내가 앞으로 걸어가면서 작년에 있었던 어떤 일을 사고한다는 뜻이 아니라 이 걸음과 관련해서 수를 새거나, 이 행동과 관련된 사고 이걸 숫자적으로 사고를 하든 아니면 리듬으로 사고를 하든. 그 행동과 관련한 어떤 것들을 여기서 같이 하면서 그래서 앞으로 걷고 뒤로 걷고 이런 것들은 기억을 강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만 실은 기억해내는 능력조차도 공간 즉 어디 공간에 있는지 꺼내는 것과 같은 것인데 아무튼 기본적으로 앞 뒤로 앞뒤로 그러면 공간적으로 이렇게 앞으로 뒤로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냥 그 자체의 배열에서 앞뒤로 가는 거 구구단을 거꾸로 외운다. 이건 거꾸로 얘기해. 이런 걸 완전히 몸에 배게 해줘야 돼요. 그래서 예를 들어서 구구단을 다 이럴 필요는 없잖아요. 그래서 이제 4로 가보면 36 32 28 24 20 뭐 그렇게 그렇게 내려가겠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하는 것은 금방 할 수 있어요. 그것을 실제로 걸으면서 숫자로 해요. 그다음에 뭘 하면서 해요 똑같이(뒤로 걸으면서)? 그러면 이제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요. 지금 무슨 이야기냐. 무의식 안에다가 완전히 딱 넣고서 자동으로 되게 하는 것과 그걸 다 그 안정된 기반에서 사고할 수 있도록 이거. 안 되는 것도 그러면 그 영향이 많이 그게 되어야 돼요. 그리고 모두가 처음부터 되는 건 아니니까 당연히 그것을 계속적으로 연습해서 그게 된다는 것은 그의 사고와 그의 배움의 방식이 그 정도만큼 바뀌어 버렸다는 이런 거든요. 아주 중요해요. 그래서 언어는 사고를 드러내는 어떤 것을 그러니까 언어와 동작을 동시에 맞추어서 함께 하는 것들은 나중에 필요한 동작은 동작대로 연습해 놓고 언어는 언어대로 연습해 놨다가 이 두 개를 연결시키는, 그래서 그런 것들이 그런 어떤 힘들을 강화시켜줄 거예요.
[질문 ] 이 활동의 목적이 이것이 자동적으로 되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요? 그러니까 저 같은 경우는 두 발과 팔이 되거든요. 되는데 인식을 하면 헷갈려요. 이제 손에 박자를 세려고 한다(하면 헷갈려요). 아예 생각을 안 해버리면 그냥 되는데 이제 다시 좀 정신을 차리고 수를, 이렇게 박자를 세볼까라고 하면 이제 흐트러지거든요. 발하고 팔하고 다르게 하는 활동이요. 발은 세 박자고 팔은 손은 네 박자잖아요. 이것을 그냥 두면 돼요. 근데 너무 이렇게 내가 넋을 놓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럼 이제 손을 박자를 한번 세볼까 하면 이제 흐트러지는 거에요.
그래요. 그건 아직 안 되고 있는 상태예요. 그러니까 손의 박은 하나 둘 셋, 넷, 둘, 둘 셋 넷이 손의 박은 계속 의식이 되어야 돼요. 그런데 이게 왜 내려갈까? 왜 이게 탁 꺾여버릴까? 의식이 아래로 내려갔을 때 이건(아래, 다리의 움직임) 잊어야 되는데 내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 이놈이 제대로 하고 있나 그러는 순간에. 그러니까 얘를 완전히 무의식의 상태로까지 익숙하게 만들어 놓는 거, 이게 한쪽에서는 필요하고 그다음에 그 위에서 의식하는 상태로 움직임을 하는 거. 즉 무의식과 의식의 상태가 같이 작업을 할 수 있는 거 이건 아주 중요한 연습이에요.
(그러면 일종의 수세기는 이 손의 수세기를 놓치지 않고 있어야 되는 거네요?)
네 그렇죠. 그래서 이제 예를 들면 그런 거예요. 콩주머니를 가지고 콩주머니를 가지고 27 24 21 하고 위에서 내려왔어요. 그래서 3의 배수로 내려왔어요. 그럴 때 소리를 언제 낼지, 그래서 27 할지(던질 때 말하기) 아니면 27 할지(받을때 말할지) 이렇게 맞춰 나가요. 수는 수대로 그다음에 움직임은 움직임대로이잖아요. 이때 어떤 게 무의식이 되어야 돼요? 움직임은 무의식이 되어야 돼요. 그건 생각할 것 말 것도 없어. 나는 수만 생각해. 움직임은 그냥 자동으로 되는 거야. 그게 중요해. 움직임을 의식하면 사고할 수 없어요. 누구도 처음에 배우고 익힐 때 거기에 그걸 의식하죠. 그러나 익숙해지고 나면 더 이상 의식하지 않아요. 그 단계까지 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래놓고 거기에다가 사고를 얹어요. 좋은 방법이에요.
[질문] 선생님 저 질문이 있는데요. 지금 아까 활동도 그렇고 지금 말씀도 이 무의식적인 행위와 또 의식적인 행위에 결합해서 이렇게 동시에 하는 거 그런 게 우리 삶에 어떤 도움이 되나요? 뭐가 유익한 건가요? 사실 왜 해야 되나 그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일상을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런거에요. 선생님이 대화를 해요. 누군가와 인사를 해요. 누군가와 만나서 어떤 일을 해요. 그때 계속 그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무의식과 의식이 움직이고 있어요. 그걸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어요. 우리의 삶을. 제가 이 걸어갈 때 이 보폭에 대해서 이 각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속도로 갈지를 제가 의식합니까? 의식하면 저는 환자 돼버려요. 전혀 제가 하던 움직임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돼버려요. 그렇죠? 매우 사소한 거예요. 매우 사소한 거, 그때 해내는 그 근육의 경련과 어떤 이런 것들이 그냥 우연히 벌어지는 일입니까? 안에서는 매우 바쁩니다. 우리가 의식하지 않아서 그럴 뿐이지. 그런데 그것이 적절한가, 그런 몸들이 준비되어 있는가가 결국 그것 안에서 그 정도만큼 (무의식적으로 되는만큼) 내가 사고를 쓸 수 있다. 그런데 몸이 그걸 잘못해내면 엄청난 능력이 있다고 하는 것을 온통 거기에다 다 쓴다. 학습 능력이 뛰어난 아이, 학습 능력이 상대적으로 뒤처진 아이가 있는 게 아니다. 그 능력의 상당 부분을 어디에서 써버렸냐, 나를 유지시키는데 제대로 하는 그 몸의 작동에 그건 이미 다 돼 있어 가지고 몸에 이미 다 기억돼 가지고(있어요). 어떤 수치로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자동으로 되는 거야. 그 정도에는 그 정도의 보폭과 그 정도의 속도와 그 정도의 강도와 그 정도의 밀도를 가지고서 말하고 행동하고 움직인다라고 하는 게 이렇게 다 여기에 (신체에) 저장이 저한테 돼 있는 거예요. 그 저장은 어떻게 돼요? 수없는 연습을 통해서. 그래놓고 나서 ‘나 뭐 해야지?’ 사고하는 어떤 것들을 그 위에 태워가지고 가는 거잖아요. 이 사고를 안정적으로 끌고 가는 안전한 수레, 이게 바로 그 무의식에 의해서 진행되는 움직임들이잖아요. 이 움직임이 흔들려버리면 뿌리째 흔들려버린다고요. 그렇게 머리 좋은 사람도 이 삼박에다가 헷갈리는 순간 완전히 이상해져 버린다고 해요. 저 사람이 능력이 없어서 그러는 게 전혀 아니라고. 그래서 우리는 지금 몸이 해내는 움직임이 어떻다 사람마다 다 다르다가 아니라고 했잖아요. 그럼 보편적인,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그 성질에 대한 것들을 잘 수행할 수 있는 몸을 만들어 내줘야만 그 기반 위에서 다채로운 인식 활동 사유 활동, 감성 활동 등이 벌어진다. 그렇지 않으면 우선 직접적 생존의 가장 큰 틀을 유지시키는 데 모든 힘을 다 쓴다. 그 사람한테 공부하라는 소리를 할 수가 없다. 나는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걸어가는데 에너지를 다 써버리는, 그러고도 다 사람들이 제대로 못 걷는다고 하는데 그 사람이 최선을 다해서 잘하고 있는 거예요. 당신도 저 사람 상태가 되어봐. 저 사람보다 더 못할 걸? 우리는 그걸 몸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해줄 수 있도록 돕고 싶은 거예요. 그게 학습 능력의 결정, 그런 연동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해해 보려고 하는 거예요. 내가 그 동작들에서 이 동작을 해내는 것에 값어치도 있지만 이게 어떤 일종의 원리를 가지고 있는가. 이게 교육과정에서 나의 경험들이 아이들이 능숙하게 움직임들을 해낼 수 있는 단계로 능숙하지 않던 것이 그 단계로 진입되어지는 순간 그 정도만큼 아이한테 어떤 게 지금 새겨지고 있는가를 알아보는 눈을 가지려고 하는 거예요.
방학하고 첫 문을 여는 날 우리가 이 자리에 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의 인사로 시작해서 지난 과정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약간 다른 각도의 틀에서 한번 지켜봤어요. 다음에도 돌아보는 시간은 조금 더 가져볼 생각이에요. 그렇게 해서 구체적으로 아이들에 관한 질문들이 거기 안에 조금 들어올 수 있다면 단순히 돌아보는 역할만이 아니라 지금의 어떤 것들에 대해서도 조금 더 같이 이야기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첫댓글 정말 고맙습니다. ^^
문자의 힘, 상당합니다. 같은 수업을 두 세번 다시 들은 것 같은 느낌이에요. 마리아~ 최고!^^
우와.고맙습니다!이걸로 요코에게도 들려 줄수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