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사람들에게 소나 말은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다. 지금은 가축이라고 해 봤자 슈퍼나 마트에 가 사먹는 육류 음식으로 가축이 우리 머리 속을 온통 지배하지만, 과거의 가축은 없어서는 안되는 인생의 동반자이자 가정의 큰 일꾼이었다. 소는 농사를 짓는데 꼭 필요했다. 밭과 논을 일구고, 종자를 심고, 거두고, 무거운 짐을 싣고 옮기는데 있어 소만큼 충직하고 성실한 일꾼을 없다. 말은 또 어떠랴? 기껏 사람이 걸어 갈 수 있는 거리가 시간당 10리(4킬로) 밖에 안 되는데, 말을 타면 백리, 천리까지 갈 수가 있다. 그것도 힘들이지 않고 편안하게,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경치까지 구경하고 가니 말처럼 좋은 교통 운송 수단이 어디에 있겠는가? 가축에게서 얻는 식용의 음식, 낙농제품 우유, 치즈, 고기, 등은 제쳐두고서라도 가축이란 삶에 있어 가장 소중한 가족이었다.
그래서 가축을 키우는 것이 마치 자식 키우듯 했다. 소가 아프면 농사도 중단되거나 더뎌진다. 말이 병들면 이웃 마을이나 먼 길을 떠나는 계획이 무산된다. 그래서 집에서 키우는 가축을 사람처럼 여겨졌고, 아프며 치료하고, 막내가 데리고 놀아주고, 대화하며, 동고동락하는 소중한 식구요 재산이었다.
지금은 농사에 경운기나 트랙터, 이앙기, 콤바인 등을 사용한다. 사실 이 모든 농기계가 소가 하는 일을 대체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타고 '쌩쌩' 달리는 자동차는 말의 일이다. 자동차가 말을 대체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삶에 필수적인 기계는 소와 말처럼 식구이자 재산이다. 농사짓는 농부들에게 농업용 기계는 소이며, 길을 떠나야 하는 가족에게 자동차는 그때의 말이다.
그래서인지 나도 일찌감치 차에 대해서 이름을 붙여줬다. 기계이고 무생물이지만, 의미를 부여해서 '복음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처음 우리 집에 온 '복음이'는 나이가 많은 말(12살)이었는데,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난 기아품종이었다. 복음이는 3년동안 우리를 위해 충성되이 살다가 심장 마비(엔진)로 그만 우리 곁은 떠나고 말았다. 복음이는 등이 넓어서 우리 식구 다섯을 넉넉히 품어줬다. 특히 가솔린만 먹지 않고 엘피지도 먹었다. 편식이 없어 비싼 가솔린보다 값싼 사료인 엘피지를 늘 먹였는데도 투정부리는 일이 없었다. 지금 도로에선 복음이 같은 종류의 말을 찾아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가장 많이 기억에 남는 말이다.
그 후 우리는 두번째 말을 데리고 왔다. 그 말은 사랑하는 이들의 헌금으로 산 말이다. 말을 고를 때 얼마나 고민하고 기도했는지? 모른다. 갓 태어난 새 말을 사는 것은 우리 형편상 어려웠기에 적어도 5살 된 말을 사고 싶었다. 그렇게 산 말은 폴란드에서 태어난 오펠품종이었다. 적게 먹어도 멀리 잘 달리는 디젤체질의 말이었다. 그 말에게 나는 첫번째 말의 이름을 다시 붙여줬다. 대신 두번째라고 '복음이2'라고 말이다. 제임스 2세, 헨리 2세라고 하듯이 복음이도 2세다.
복음이 2세는 우리 집에 오자마자 적응을 못해서 한동안 우리를 염려케 했다. 이전 주인이 잘 다루지 못한 탓인지.. 아픈 곳도 많고 치료해야 할 때도 많았다. 과거 옛 어른들이 가난한 살림살이에 소나 말까지 아프면, 그 가축을 치료하려고 얼마나 애를 썼을까?.. 식구가 먹던 것을 줄여서라도 소를 먹이고 말을 고치고 했다. 그렇게 같이 살아가듯 우리도 그랬다. 복음이2는 그후 10년이란 세월을 지내며 우리 발이 되어 주었다. 몇 해 전에 심장마비를 일으켜서 중공업실에서 심장판막(개스킷)을 교체해야 하는 대수술을 받을 때에는 정말 이젠 떠나 보낼 때가 되었나 싶었다. 다행히 선한 분의 도움으로 수술비용을 마련해 다시 살아났다.
이젠 복음이2도 나이가 들었나 보다.. 젊어서 부터 잔병이 많더니만 나이가 드니 아픈 곳이 하나 둘씩 더 늘어만 간다. 하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다. 여전히 충직한 일꾼으로 우리의 발이 되어준다. 여전히 아픈 곳이 많다. 한쪽 눈은 깨어져 보기가 흉하고, 옆두리는 부딪혀서 깨어져 상흔이 민망할 정도로 뚜렷하다. 근래에 들어 기력을 한번 소진(방전) 후에 찬바람도 불어주지 못한다. 여름엔 복음이2도 우리도 사우나가 된다.
그제는 일년에 한 차례 받는 정기 검사를 받으러 갔다. 아픈 곳이 많아서 혹시나 통과하지 못하면 어떡하나..라는 염려가 있었다. 하지만 용케도 복음이2는 검사를 잘 받고 괜찮다는 듯 다시 돌아왔다. 검사관이 1년짜리 상태확인 스티커를 큰 창얼굴 귀퉁이에 붙일 때 복음이2는 어깨를 으쓱댔다. "아직은 나 살아있어!" 라고 하는 듯 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시동을 꺼려는 순간 아프다고 에러코더가 뜬다. 그것을 보면서 마음이 짠했다. 검사받는 동안 숨기고 참는다고 고생 많이했다. 만약 검사때 아픈 것 티냈으면, 영영 떠나 보낼 뻔했는데, 아직은 우리와 같이 있고 싶은지 꾹 참았다가 집에 돌아오니 아픈 티를 낸다. 어제 늦은 밤에 일부러 밖에 나와 복음이2와 신나게 도로를 달렸다. 기분을 전환시켜줄 요량으로 또 달리면 속에 있는 더러운 것들이 다 나오라고.. 날씨도 더운데 태양 아래 주차장에서 늘 대기하는 복음이2에게 선물이라도 주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