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이루어지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알고 상대가
모른다면, 속일 수는 있어도 함께 갈 수는 없다.
천지개벽이란
과거는 불투명 한 것이고,
미래는 점점 더 투명해지는 사회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유리알처럼 투명한 사회를 살기 위해서는
미래를 살아가는 법칙,
곧 교육이 반드시 바로 서야 한다.
모순이 보인다는 것은 이미 해결의 시간이 지나버렸다는 신호다.
전쟁이 보이고,
폭력도 보이고,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해결 할 지식인들이 없다라는 것이다.
똑똑함이 깊어질수록
세상에서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도,
어떤 행동이 미래를 어떻게 바꾸는지도 보이기 마련이다.
보는 데서 멈추면 점만치는것이고,
보고 해결하면 지도자가 된다.
옛날 어느 고을에 아리따운 아씨가 있었다.
동네 도련님이 연애편지를 보냈는데,
한통의 답신이 돌아왔다.
그 내용을 읽어보니
“左도 絲요, 右도 絲인데, 가운데는 言이고, 아래에는 心이라네.”
이 글자를 조합하면 ‘사로할 연(戀)’ 자가 된다.
즉, 좌사우사 중언하심(左絲右絲 中言下心)
사랑이란
말과 행동으로 노력할 때 이어지는 것’임을 뜻한다.
조선의 역사 속에서도 다툼은 끊이지 않았다.
선조 때 이조좌랑 자리를 두고 동인과 서인이 갈라졌고,
남인과 북인으로,
훈구파와 사림파로, 결국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로 이어졌다.
이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면
오늘의 혼란도 반복된다.
진보 지식인들이 공부하는 동안,
보수 가문은 묵묵히 경제의 기틀을 세웠다.
세조와 한명회, 유방과 장자방, 태종과 하륜, 유비와 제갈량의 만남을 보면
인연들이 만나야
큰 뜻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지식은
백성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다.
진보가 공부를 다 하고 나면,
보수를 만나야 한다.
경제를 모르면 자신도 돈을 좇게 되고, 결국 대모와 혼란이 일어난다.
경제를 바르게 운용하면 국민의 삶이 좋아지고,
그때 비로소 국민은 지식인을 존경하고 사모하게 된다.
이것이 서로 다른 갖춤이 만나 조화를 이루는 길이다.
강진의 ‘붓’이라는 노래를 들으면
“겨우 떨어진 것은 70년,
함께 한 것은 오천 년”이라는 노랫말이 들린다.
그 말처럼 상대를 아끼고 존중할 때 융합이 일어난다.
국민들이 기뻐서 눈물을 흘릴 때,
지도자는 사랑과 존경을 한몸에 받는다.
아직 인류는 ‘사랑’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알지 못한다.
미래에 만들어질 단어를 너무 일찍,
너무 가볍게 사용했기 때문이다.
남녀의 만남은 좋으면 함께하고, 아니면 헤어질 일이다.
사랑은
노력위에 나중에 만들어진다.
만날때는 좋아서 만나고 서로를 위해서 돕고나면
비로서
상대를 아끼고 사랑하게 된다.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일어난다.
쉬운 것이 사랑이라면 이미 모든 사람들이 천상으로 올라갔을 것이다.
같이 연구해 보아야 한다.
사회연구원 김수길 / 2025년 11월 13일
수소와 산소가 만나야 새로운 물이 된다.
나 또한 성장하려면
내 앞의 사람과 융합해야만 이룰 수 있다.
이루어지지 않으면 짝사랑이요,
이루어지면 연인이 된다.
상대와 융합하질 않는다면
누구라도 잘사는 법칙은 두 번 다시 존재하지 않는다.
정법강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