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Solver)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가 무슨 뜻이예요?
우리집은 까치설날인 그믐날이 진짜 설날 같은 기분이 든다. 첫 며느리가 들어온 후에 필자가 설날에는 세배 후 아침을 먹고 자기네들 사는 집으로 돌려보내 며느리를 친정집으로 빨리 보내기 위해서 만든 규칙이다.
이번처럼 연휴가 길면 설날 2~3일전에 와서 설 기분을 낸다.
그믐날 저녁식사를 끝내고 식구들과 차를 한잔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 기중에 둘째 며느리가 아버님 제사 모실 때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가 무슨 뜻이 예요? 하고 묻는다. 전혀 생각지도 않은 질문이다.
어떻게 생각지도 않은 것을 묻느냐?
예, 저희들 혼인할 때에 아버님께서 사주(四柱)와 혼서(婚書)를 써 주시면서 한문으로 쓰시고 한글로 풀이를 해 주셔서 무슨 내용인줄 알았습니다.
한문만 쓰면 전혀 알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도 무슨 말인지 알수가 없어서 여쭙니다
필자는 아들 둘을 혼인시키면서 사주(四柱)와 혼서(婚書)를 한문(漢文)으로 쓰고 별도로 한글로 써서 보냈다.
아이들 성년식 때나 큰댁에서 제사를 모실 때도 지방(紙榜)이나 축문(祝文)을 한문(漢文)과 한글로 병행하여 무슨 말인지 알아듣게 읽어 주었다.
참 일상에서 명절마다 평범하게 대하는 지방(紙榜)이지만 막상 질문을 받으면 설명이 쉽지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 처제가 병원에 장기 입원중이라 처제식구들도 우리 집에서 설을 쉬게 되어 어른들만도 13명이 되었다.
어디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가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
하고 주위를 보고 물었다.
예 제사모실 때 제사상에 모시는 혼령(魂靈) 아닙니까?
막내 아들놈의 대답니다.
주위에서 이구동성으로 “그거야 알지” 질문이 그게 아니고 내용이 무슨뜻인가를 묻는 것 아니냐? 하는 말들이다. 다들 고등학교 대학들을 나왔지만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를 풀이할 리가 없다.
종이와 볼펜으로 상위에서 글자를 써가면서 설명을 시작하였다.
*현(顯)-자전(字典)적인 풀이로는 “높을 현” “나타날 현”의 뜻으로 혼령이 지금 제사 자리에 계심을 뜻한다.
*고(考)-자전(字典)적인 풀이로는 “오래살 고” “마칠 고”이지만 남자의 제사 시는 “죽은아비 고”로 읽어야 한다.
*비(妣)-엄마에 해당되는 글자로 “죽은 어미 비”로 읽는다.
그러므로
*현고(顯考)-죽은 아버지(남자)의 혼령이 제삿날에 거룩하게 나타나심을 뜻한다.
*현비(顯妣)-죽은 어머니(여자)의 혼령이 제사 자리에 나타나 계심을 뜻한다.
*학(學)-“배울 학”으로 배운다의 뜻이고
*생(生)-“날 생”으로 태어남 “삶”이라는 뜻이다.
*학생(學生)-일반적으로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유교적 문화 속에서 죽은 자에 대하여 벼슬 이름 대신으로 사용한다. 벼슬을 한사람은 벼슬이름을 쓰는데(공직에 한하여, 예를 들어 영의정, 장관등) 평생 공부하면서 출세준비를 하였지만 벼슬을 못하고 죽은 사람에게는 “학생(學生)”이란 명칭으로 대신한다.
관혼상제(冠婚喪祭)에서 학생(學生)이란 말은 (幼學生)의 줄인말이다.
유학(幼學)이란 벼슬을 하지 않은 유생(儒生)이라는 말이다.
비록 벼슬은 못했지만 지식의 깊이나 세상을 보는 경륜만은 높다는 말이다.
우리 풍속은 살아생전보다 죽고 나면 죽은 자의 삶을 기려 추서(追敍)하는 아름다운 배려가 있다. 지방(紙榜)에서 학생(學生)도 이런 뜻으로 높이는 것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유인(孺人)-조선시대에 왕족 및 문무관(文武官)의 처(妻)에게, 남편의 벼슬에 따라 내리던 벼슬 이름이다. 봉작(封爵)을 말한다.
*부(府)-관청(官廳)이나 마을을 뜻한다.
*군(君)-임금이나 어진사람을 즉 군자(君子)를 뜻한다.
*부군(府君)-부원군(府院君)의 준말로서 부원군(府院君)은 왕(王)의 장인(丈人)을 말하거나 종1품의 벼슬, 또는 종친(宗親)의 서열(序列)에서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를 뜻한다.
제사에서 부군(府君)은 “돌아가신 아버지나 조상(남자)을 높이는 명칭” 이라 풀이된다.
*신(神)-신령(神靈) 정신(精神) 귀신(鬼神)의 뜻이다.
*위(位)-자리의 뜻이다.
*신위(神位)-고인의 혼령(魂靈)이 계신 자리라는 말이다.
정리하여 말하자면 지방(紙榜)인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남자)
*현비유인김해김씨신위(顯妣孺人金海金氏神位-여자)
〈돌아가신 아버님이나 어머님 조상님께서 삶의 시작과 끝을 배움을 통하여 밝은 덕을 삼으신 것을 지고(至高)의 선(善)으로 여겨섰으므로 살아생전 본연(本然)의 마음이 신선(神仙)으로 화현(化現)해서 이 제사(祭祀)의 자리에 강림(降臨)하소서 !〉라는 축원(祝願)이다.
내가 생각할 때는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는 그렇게 좋은 내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그렇게 존경하는 부모나 조상의 지방(紙榜)에 “이름”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엄격한 유교사회에서 부모의 이름을 함부로 거론해서는 안 된다는 관념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평생 공부를 해도 벼슬을 못한 것도 한(恨)인데 죽고 난 후에도 “학생(學生)” 이라고 하니 학생보다 부모이름을 지방(紙榜)에 쓰는 것이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에 합당하고 존경하는 부모에 대한 자식의 효심(孝心)가 아닐까.
제사 때 지방(紙榜)을 꼭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이라 쓰지 않아도 된다. 사진을 세워두면 살아생전의 부모 모습을 대하는 현실감과 정성이 더 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방(紙榜)도 〈존경하는 아버지 어머님 오늘 부모님의 제사일에 오셔서 저희들의 잔을 받으소서〉이렇게 한글로 써도 조금도 잘못된 것이 아니다.
아무 뜻도 모르면서 전에부터 내려오는 풍습이라 형식적으로 맹종(盲從)하는 것은 진정 도리가 아니다. 내용을 알고 정성을 드려야 한다.
필자의 집안은 〈면장(面長)〉한사람도 배출(輩出)하지 못한 한미(寒微)한 가문이다. 그런데 자손은 많아서 선영(先塋) 은 광범위하다. 젊었을 때 고향에 성묘를 갈 때마다 나는 종중(宗中)의 어른들에게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하여 미움을 사곤 했다.
내 주장은 묘 밑에 화강암으로 받침석을 하지 말라는 주장이다. 이유는 묘지는 그냥 자연스럽게 흙으로 덮여 있다가 세월이 흘러 자연적으로 무너져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자연회귀(自然回歸)의 원칙이다.
묘지에 돌로 받침석을 만들어 천년만년을 존속하면 온 나라가 묘지 천지가 될 것이다. 묘지만 장식한다고 효도를 다하고 복 받는다고 생각하나 !
또 비석을 세울 때 면적만 허용되면 아들 딸 외손자 등도 자 기록하여 다음에 본인과의 관계를 알게 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여자의 묘 비석에도 망자(亡者)의 이름을 쓰라는 것이다. 나의 이런 말을 유교의 법도에 어긋난다면서 “저놈 공부하여 서울 가더니 사람 버렸다” 고 야단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른 지금에는 자손들이 벌초도 하지 않아서 묘지인지 산인지 분별이 안 되는 묘가 많다. 종교나 풍속에서 바르고 좋은 전통은 필이 계승해야 되지만 맹목적이고 뜻도 모르는 맹종은 스스로를 미명(微明)속에 살게 한다.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