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 8월령(八月令) ♧
팔월(八月)이라 한가을(仲秋) 되니 백로 추분(白露秋分) 절기(節氣)로다.
북두칠성(北斗星) 좌로 돌아 서쪽하늘(西天) 가리키니,
선선한 아침 저녁 가을 정취(秋意) 완연하다.
귀뚜라미 맑은 소리 벽 사이(壁間)에 들리누나,
아침엔 안개 끼고 밤이면 이슬 내려,
온갖 곡식 열매 맺어 결실을 재촉하니,
들에 나가 둘러보면 힘 들인 공 나타난다.
온갖 곡식 이삭 패니 무르익어 고개 숙이고,
서쪽바람(西風)에 익는 빛은 누런 구름(黃雲) 되어 일어난다.
흰 눈(白雪) 같은 면화송이 산호(珊瑚) 같은 고추송이,
처마에 널으니 가을 햇볕 맑고 밝다.
안팎 마당 쓸어 놓고 소쿠리 망태기 장만하소.
면화 따는 바구니에 수수이삭 콩가지요,
나뭇꾼 돌아올 때 머루 다래 산과일(山果)이로다.
뒷동산 밤 대추는 아이들 차지구나.
잘 익은 열매 모아 말렸다가 때가 되면 쓰게 하소
명주를 끊어 내어 가을 햇볕(秋陽)에 말리우니,
알록달록(靑紅) 물들어 울긋불긋 색색이라.
부모(父母)님 나이 드시니(年滿) 수의(壽衣) 먼저 지어놓고,
나머지는 말려서 자녀(子女) 혼수(婚需) 준비하세.
지붕 위의 단단한 박은 쓸만한 그릇이요.
댑싸리비를 매어 타작할 때 쓰오리라.
참깨 들깨 거둔 뒤에 일찍 여문 벼 타작하고,
담배 녹두 아쉬워도 내다 팔면 돈이 되니(作錢),
장 구경도 하려니와 흥정할 것 잊지 마소.
북어쾌 젓조기 사다 추석 명절(秋夕名日) 쇠어 보세.
햅쌀로 만든 술(新稻酒)과 송편 박나물 토란국을
선산(先山)에 제물(祭物)하고 이웃집과 나눠 먹세.
며느리 휴가 받아 친정집 찾아 뵐 때
개 잡아 삶아내고 떡 상자와 술병이라.
초록 장옷에 남빛 치마 입고 다시 보니,
여름 동안 지친 얼굴 회복이 되었구나.
한가위 밝은 달밤(中秋夜)에 마음 놓고 놀고 오소.
올해 할 일도 못 다 했는데 내년 계획 짜오리라.
덩굴풀 베어 내고 더운갈이 한 뒤에 밀 보리를 심어(秋耕) 보세.
충분히 안 익어도 급한 대로 걷어 가소.
사람 공적(人功)만 그러할까 자연현상(天時)도 그러하니,
잠시도 쉴 틈 없이 마치면 또 시작일세.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는 조선후기 헌종 때 다산 정약용 선생의
둘째 아들 정학유(丁學游, 1786~1855)가 지은 월령체 장편가사로,
1년 12달 동안 농가에서 할 일을 읊었다.
월령(月令)이란 그달 그달의 할 일을 적은 행사표라는 뜻이다.
농가월령가는 농가의 행사를 월별로 나누어 세시풍속과 권농(勸農)을 노래한 것으로,
당시의 농속(農俗)과 옛말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서가(序歌)까지 모두 13장, 1,024구나 되는 긴 가사로 3·4조와 4·4조로 구성되어 있다.
八 月 令 (원문)
八月이라 仲秋되니
白露秋分 節氣로다
北斗星 자로도라
西天을 가르치네
선선한 조석기운
秋意가 완연하다
귀또라미 말근소리
壁間에 들리노나
아침에 안개끼고
밤이면 이슬나려
여물드러 고개수거
西風에 익는빛은
黃雲이 이리난다
白雪가튼 면화송이
珊瑚가튼 고초다래
첨아에 너럿스니
가을볕 명랑하다
안팟마당 다까노코
발채망구 장만하소
면화따는 다라끼에
수수이삭 콩가지오
나무꾼 도라올제
머루다래 山果로다
뒷동산 밤대초는
아희들 세상이라
알암도 말리어라
철대여 쓰게하자
명지를 끈허내여
秋陽에 마전하야
쪽므리고 잇드리니
靑紅이 색색이라
父母님 年滿하니
壽衣를 유의하고
그나마 마루재아
子女의 婚需하세
집우에 구든박은
요긴한 기명이라
댑싸리 비를매여
마당질에 쓰오리라
참깨들깨 거둔후에
중오려 타작하고
담배발 녹두말을
아쉬어 作錢하랴
장구경도 하려니와
흥정할것 잊지마소
북어쾌 젓조기로
秋夕名日 쉬어보세
新稻酒 오려송편
박나물 토란국을
先山에 祭物하고
이옷집 난화먹세
며느리 말미바다
본집에 근친갈제
개자바 살마얹고
떡고리며 술병이라
초록장옷 반물치마
단장하고 다시보니
여름동안 지친얼골
소복이 되엿느냐
中秋夜 발근달에
지기펴고 놀고오소
금년할일 못다하야
명년게교 하오리라
밀대비어 더운가리
모맥을 秋耕하세
끝끝히 못이거도
급한대로 걷고갈소
人功만 그러할가
天時도 이러하니
반각도 쉴새업시
마치며 시작느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