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
-오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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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보들레르 800원
칼 샌드버그 800원
프란츠 카프카 800원
이브 본느프와 1,000원
에리카 종 1,000원
가스통 바쉴라르 1,200원
이하브 핫산 1,200원
제레미 리프킨 1,200원
위르겐 하버마스 1,200원
시를 공부하겠다는
미친 제자와 앉아
커피를 마신다
제일 값싼
프란츠 카프카
- 시집 《가끔은 주목받는 생(生)이고 싶다》(1987) 수록
▲이해와 감상
화자는 직접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시를 공부하겠다는 ‘미친 제자’와 같이 커피를 마시며, 자조적인 어조와 반어적 표현을 통해 정신적 가치가 상품화되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일종의 패러디 형식을 사용한 이 시는 속물적 세계에 대한 문명 비판적 성격과 시 장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보여 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시의 전반부는 메뉴판 형식으로 되어 있다. 시인은 값을 부여할 수 없는 문학가, 철학자들에게 가격을 매김으로써 정신적 가치를 상품화시키는 현대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특히 메뉴판 형식의 시 형태는 물질 만능주의 비판이라는 주제 의식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시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전반부에는 샤를르 보들레르(프랑스 시인), 칼 샌드버그(미국 시인), 프란츠 카프카(체코 출신 오스트리아 작가), 이브 본느프와(프랑스 시인), 에리카 종(미국 소설가), 가스통 바슐라트(프랑스 철학자), 이하브 핫산(미국 문예비평가), 제레미 리프킨(미국 경제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독일 철학자) 등 서구의 유명한 문학가와 철학자들의 이름을 메뉴판에 올려놓고, 1,000원 안팎의 가격을 붙여 두었다. 이러한 메뉴의 패러디 형식을 통해 인간도, 문학도 모두 상품화시키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후반부는 시를 공부하겠다는 제자와 커피를 마신다는 내용으로, 주목할 것은 그 제자를 ‘미쳤다’고 표현한 것이다. ‘미친 제자’라는 표현은 이러한 현실에서 문학 공부를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시인의 자조적인 한탄과 의문이 드러난 반어적인 표현이다. 더구나 ‘제일 값싼/프란츠 카프카’는 물질 만능주의 사회에서 인간 사회의 부조리를 통찰한 카프카를 가장 값싸게(초라하게) 취급한 반어적 표현으로, 이 표현 역시 문학을 값으로 환산하는 현실을 풍자하는 것이다. 제목을 ‘프란츠 카프카’로 정한 의도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결국, 시인은 이 시를 통해 문학과 사상, 철학 등의 인문학이 물질 만능의 각박한 현실에 외면당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제시하는 동시에 그와 같은 현실 풍조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작자 오규원(吳圭原, 1941~2007)
시인. 경남 밀양 출생. 1968년 《현대문학》에 <우계의 시>, <몇 개의 현상> 등이 추천되어 등단했다. 주로 시의 언어와 구조를 탐구하거나 물질문명과 정치화되어 가는 현대 언어를 비판하는 시를 썼다. 시집으로 《분명한 사건》(1971), 《순례》(1973), 《이 땅에 씌여지는 서정시》(1981), 《가끔은 주목받는 생(生)이고 싶다》(1987), 《마음의 감옥》(1991), 《토마토는 붉다 아니 달콤하다》(1999), 《사랑의 감옥》(2001),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2005)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